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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9장. 역적의 괴수 (528/1,284)

529장. 역적의 괴수

아빠?

저 남자가?

현수와 예린 선배는 잘 모르는 눈치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얼굴은 아니지만 난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남자는 대한민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3대 메이저 신문사 중 한 곳의 주인이었다.

동시에 2011년 연말에 개국하는 종합편성채널인 중부방송인 JBBC 그룹의 회장이기도 했다.

이름은…….

“다들 만나게 되어 반갑네. 난 아린이 아빠 되는 강중현이라고 하네.”

확실히 그가 맞았다.

둥글둥글한 인상과 달리 속을 알 수 없는 사업가였다.

현 오정 그룹 임성철 회장의 처제를 아내로 둔 동서지간이었다.

인맥뿐만 아니라 집안사람들 모두 대단했다.

형제와 자매들 모두 다 중부 그룹 산하 회사의 사장이었다.

“아빠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에요? 오늘 바쁘다고 해놓고~.”

아린 선배가 다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동글동글한 인상의 강중현 회장에게서 아린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야 짐작하고 있던 한 축이 완성됐다.

손유리 선배와 어릴 적부터 친했던 이유가 있었다.

중부일보 회장과 리앤장 로펌은 죽이 잘 맞았다.

대한민국 상류층의 대주주들이었다.

조국일보에 반 보 밀리는 중부일보.

정치색이 기득권의 한 부분임은 분명했다.

중부일보와 앞으로 개국하는 JBBC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그리고 JBBC는 미래의 사회에선 사회적 문제 정화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 연수원 입학 축하하려고 회의 다 뒤로 미뤘다.”

강아린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강중현 회장.

“으헤헤~ 역시 우리 아빠!”

아린 선배의 애교 출처는 아빠였다.

오고가는 부녀의 대화는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달달했다.

“그런 그렇고 아직 점심 전이지? 우리 딸 덕분에 당 떨어진 부모가 되었으니 은혜는 갚아야지.”

“아, 아빠 그 말 들었어요?”

“그럼 제일 뒷자리에서 아주 흐뭇하게 듣고 있었지. 그리고 역시 내 딸이다 싶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 아빠의 당까지 걱정해 주는 우리 딸~.”

“…….”

아린 선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킥…….”

“크흡.”

예린 선배와 현수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때 강중현 회장이 나를 봤다.

파바밧.

눈동자가 마주쳤다.

“자네가 장태산 군인가?”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날 아는가?”

“물론입니다.”

강중현 회장이 이채를 띠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중하게 악수했다.

꽈악.

손에서 느껴지는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이 아재 분위기 왜 이래?

다시 한 번 마주친 눈빛.

강중현 회장의 눈동자가 나를 냉정하게 스캔하고 있었다.

***

“잘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하하. 회장은 무슨~. 우리 아린이 후배니까 아버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우리 같은 성씨 아닌가.”

“아버님처럼 모시겠습니다!”

강현수가 활짝 웃으며 강중현 회장의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사법연수원 가까운 곳에 위치한 2층 건물의 고급 일식집.

미리 예약이 된 듯 특실로 안내 됐다.

강중현은 딸 강아린의 연수원 입학을 축하하기 위해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찾아왔다.

한국대 법학과에 입학했을 만큼 수재이긴 했지만 이렇게 사법시험에 쉽게 합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날고 긴다는 천재들 간의 전쟁이었다.

앞으로도 최소 2년 정도는 더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사법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그것도 최상위권이었다.

임성철 회장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회장과 사장들이 줄지어 축하를 해왔다.

아버지로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최근 들어 집안에 이런 경사가 없었다.

요즘 강중현 회장과 그룹 전체가 안팎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종편에 선정됐지만 여론이 좋지 못했다.

11월 개국을 앞두고 직원들을 새로 뽑고 앞으로 방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만 했다.

확실한 여당색인 조국이나 동서 일보와 달리 다른 걸 시도하고 싶었다.

친일파 조중동이라는 이름을 벗어 던지는 게 꿈이었다.

신문은 대대로 잡아 놓은 라인이 있어 건들 수 없었다.

회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편집국장부터 시작해 주간 및 논설위원, 고위급 직원들 모두 정권이나 타 기업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건들면 다른 사업이 타격을 입고 위험했다.

유일하게 이제 시작하는 종편만 외압과 정치색이 얕았다.

유명 인사를 물밑 작업으로 섭외 중이었다.

단박에 시청률을 잡아 성공하고 싶었다.

나태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존 방송국 채널과 다른 형태의 미래를 꿈꾸는 강중현 회장.

일분일초가 바쁜 와중에 틈을 내 이곳에 참석했다.

‘정말 어린 녀석이 대단하군.’

회를 한 점 입에 넣고 조용히 웃고 있는 장태산을 살피며 강중현은 감탄했다.

딸의 축하를 빌미로 장태산을 만나보는 게 목적이었다.

처형인 황라현 오정 그룹 안주인에게서 작년에 처음 제대로 언질을 받았다.

처가 쪽 가족 모임에 초대받았을 때 처형이 장태산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 보라고 권했었다.

마침 강중현도 장태산이라는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정재계에 한두 번 회자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간간이 들려왔다.

안아와 천일 그룹 해체 배후에 장태산이 있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다.

상당수 주변인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각 신문 기자들에게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강중현 회장도 임성철 회장으로부터 장태산을 세상에 직접 알리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서 더욱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다행히 딸 아린과 안면이 있는 친구였다.

쉽게 남을 평가하지 않는 딸이 집에 와서 대단한 후배가 있다고 칭찬했다.

강중현 회장 또한 이것저것 뒤로 알아본 후 더욱 더 장태산에게 호감이 갔다.

월척 수준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강중현도 생각지 못했던 감당하기 힘든 거물들이 장태산 뒤에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만나게 된 오늘 강중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고 초면임에도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가까운 이웃집 아저씨를 만난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간간이 눈을 마주칠 때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언뜻 지었을 뿐이다.

차라리 강중현이 그런 순간마다 가슴이 떨렸다.

오성 임성철 회장을 볼 때마다 느꼈던 거인의 향기 같은 것이 맡아졌다.

“아빠. 우리 태산이 어때요? 멋지지 않아요? 듬직해 보이죠.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잘생겼고…… 돈도 많아요. 으흐흐.”

딸 강아린은 태산에 대해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 여자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지…….”

딸의 후배인 이예린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녀가 다음 대 대법관이 될 고등 법원 부장 판사 여식이라는 걸 강중현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착한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 간식은 다 챙겼습니다. 지금도 장주시에 내려가면 친구들이 태산이 보고 싶어서 다 모입니다.”

인덕도 넘치는 녀석이었다.

“그놈들이 친구였어? 나보다 내 카드를 더 사랑하는데?”

“그게 그거지~ 친구를 사랑하니까 카드도 사랑하는 게 아니겠냐? 흐흐.”

강중현은 장태산과 친구 강현수의 가벼운 대화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났다.

수십 년 전 자신도 저런 시절을 보냈었다.

다만 그때 강중현은 친구들을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만 생각했었다.

사는 것 자체가 모든 걸 주고받는 비즈니스라고 교육받으며 살아왔었다.

크게 쓸모가 없다고 판단이 되는 친구들은 기억과 연락처에서 지워졌고, 자신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지금 남아 있는 친구들은 살면서 한 번쯤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이들만 남았다.

자신의 지난 시절이 이 순간만큼은 무척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장태산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는 강중현의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태산 군 고맙네. 우리 딸을 일찍 사람 만들어줘서.”

“아닙니다. 선배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 내가 너에게 사, 사랑을 줬어?”

강아린이 술잔을 들고 동그란 눈을 치뜨며 물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님이 저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막……. 고백하고 술만 마시면 자기 괜찮다고 사랑 받아 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켁!”

짓궂은 미소를 짓는 장태산의 농담에 아린이 술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분위기도 휘어잡을 줄 알고…….’

딸이 장태산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자라고는 아빠밖에 없다고 큰소리치던 녀석 입에서 언젠가부터 장태산이란 이름이 수없이 튀어 나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같은 이름을 들었다.

그러나 미래를 약속할 만한 관계는 될 수 없었다.

장태산은 딸이 감당할 만한 그릇의 크기를 넘었다.

이미 임성철 회장의 막내딸인 임윤아가 저 녀석을 좋아하고 있었다.

게다가 리앤장의 손대균 이사의 딸과도 인연이 깊었다.

특히 장태산의 눈빛 자체가 딸을 여자로 보고 있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나, 나도!”

이예린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홍당무가 된 강아린도 따라 나섰다.

“그럼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강현수도 오래 참았는지 다급하게 일어났다.

“…….”

예상치 못하게 덩그러니 남게 된 두 사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스윽.

강중현이 명함을 내밀었다.

장태산이 명함을 받았다.

“조만간 한번 찾아오게. 식견이 넓은 자네와 조용히 밥 한 번 먹고 싶군.”

강중현이 의미가 담긴 초대 의사를 밝혔다.

“…….”

가만히 강중현을 바라보는 장태산.

‘내공이 장난 아니군.’

초대는 강중현이 먼저 했지만 어째 허락 받기를 기다리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장태산이 명함을 챙겼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잠깐 사이에 기 싸움에서 밀렸다는 걸 강중현은 알아챘다.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생각보다 훨씬 강단 있었다.

어린 친구들 중에 저렇게 당당히 자신의 명함을 받는 친구는 처음이었다.

“소문대로 통이 커서 마음에 들어.”

그만 강중현의 진심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태산은 잠시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웃음을 띠고 명함이 건네졌지만 룸에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아린이를 돌봐줘서 고맙네.”

이것 또한 강중현의 진심이었다.

가문의 이름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스스로 성공하기 위해 한국대 간판과 사법시험만 한 게 없었다.

강아린은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

장차 훌륭한 집안의 배우자감 자리에 앉을 것이다.

미모와 지성을 경비한 상류층 며느리 감은 대한민국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선배님이 앞으로 많이 도와주실 거라 투자를 좀 했습니다.”

넌지시 계획적 접근이었음을 밝히는 장태산.

‘투자?’

강중현이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는 장태산의 입매를 봤다.

‘이 녀석 설마……. 내 정체를 알고 계획적으로?’

순간 의심이 강하게 머리를 때렸다.

충분히 가능성은 높았다.

중부 신문을 칼로 사용하자고 들면 안성맞춤이었다.

“선배님은 나라에 좋은 일 할 운명입니다. 회장님처럼 말입니다.”

“나처럼?”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말하는 장태산의 말에 강중현이 도리어 말려드는 것 같았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답과는 달랐다.

분명 자신이 아닌 딸 아린에 대한 투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뜬금없는 장태산의 앞뒤 없는 조언.

“뭘 말인가?”

“회장님……. 좀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고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로 얽히고설켜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게 된 대한민국, 썩어빠진 기득권……. 죽기 전에 한번은 뒤집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가슴 뜨거운 남자라면 특히 말입니다.”

의미가 무서운 말을 감히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눈앞의 애송이.

“!!!”

강중현 회장은 자심의 마음을 뚫어보는 장태산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치 관심법의 대가 궁예가 재림한 듯한 그의 말에 테이블 밑의 손발이 벌벌 떨렸다.

어느 시절부터 가슴 깊이 묻어놓고 꿈꿔 왔던 반란.

역모를 꿈꾸는 자의 심장을 부채질하는 듯한 저 애송이…….

어느 순간 대한민국 상류층을 정말 파괴해 버릴 것 같은 역적의 괴수 같았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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