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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화 (522/1,284)

 # 523

회귀의 전설

523장.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사라는 다니엘과 로리아나의 이른 새벽의 만남에 깜짝 놀랐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겨우 눈을 붙이고 잠들었지만 새벽에 다시 깼다.

답답한 마음에 바닷가로 산책을 나왔다.

사라도 이곳 세이셀은 처음이었다.

휴가지로는 정말 최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었다.

물과 공기, 모래사장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맑고 쾌적했다.

아직 개장 전이라 인파도 없었다.

오로지 몇몇 사람을 위한 완벽한 휴식처였다.

무심히 걸음을 옮기던 사라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큼 가슴이 뛰었다.

두 사람 사이가 생각보다 가까워 보였다.

로리아나가 아닌 자신이 다니엘과 나란히 서 있어야 했다.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도 유년시절을 지난 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로리아나를 만났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관계도 존재도 아니었다.

그녀는 엄연한 차일드 가문의 수장이었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도 전화 한 통화로 꾸짖을 수 있는 자리의 주인이었다.

차일드 여러 가문의 당대 주인들도 로리아나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로리아나가 다니엘의 휴가지를 방문했다.

속 이야기를 전부 드러내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개인적으로 로리아나 역시 다니엘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았다.

사라의 직감이 말해왔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향해 깊은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말이다.

“하아…….”

짧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다니엘은 자신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관계는 아니었다.

하룻밤 잊을 수 없을 만큼의 진한 인연이 있었지만 그 일 역시 스스로 정리했었다.

그때는 다니엘이 이렇게도 가슴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 될지 사라도 예상 못했다.

그런 다니엘이 로리아나와 핑크 무드를 자아내고 있었다.

뭔가 의도치 않은 사달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로리아나가 다니엘과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된다면 답이 없었다.

유럽 기사단장 가문의 딸 비비안도 다니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회사에 근무하는 여인들도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여인들 중에서 단연 로리아나가 제일 강적이었다.

사라가 봐도 로리아나는 무척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야훼의 축복이 로리아나를 더욱 신비로운 여인으로 만들었고 형용할 수 없는 축복이 듬뿍 내렸다.

차일드 가문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은 황금 왕관과 같았다.

무엇을 비교해도 차이가 나는 자신과 로리아나.

“???”

그런데 갑자기 다니엘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두 사람 사이에 벌레라도 날아든 것 같았다.

그리고 로리아나와 거리를 벌리며 서는 다니엘.

‘무슨 일이지?’

사라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지켜봤다.

방금 전과 달리 갑자기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인 두 사람.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라 입장에서는 나쁜 일 같지 않았다.

사랑은 전투와 같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쟁.

공표하지 않았지만 사라 역시 그 전투의 참전자였다.

***

지참금?

지금 세상이 어느 시대인데 사기를 치려고 해!

그리고 받으려면 내가 받아야지 도리어 요구를?

야훼 이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로리아나와 날 밀어주는 척하면서 카르마 포인트를 노리고 있었다.

신들도 인간이랑 똑같았다.

인간 세상의 돈과 다름없는 카르마 포인트에 다들 눈이 멀었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인을 카르마 포인트에 팔아먹으려 하다니!

솔직히 말하면 찰나에 많이 고민했다.

로리아나 같은 여자 세상에 드물다는 건 너무 잘 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배경이 진짜 세상에 없는 신이라는 게 문제다.

로리아나와 입술이 닿는 순간 계약은 자동 성립될 것이다.

야훼도 낚시질 전문가였다.

울트라 퀼리티 미끼를 던지고 나를 여유 있게 낚아채려 했다.

그러나 그런 야훼를 익히 알고 있기에 후다닥 물러났다.

야훼는 자기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다른 신들보다 남달랐다.

선한 것 같으면서도 대놓고 차별적인 신이었다.

당황했는지 로리아나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봤다.

애도 아니고 충분히 감정적으로 교감한 상태에서 느꼈을 키스 타임.

저 순수한 눈빛 봐라.

남자 손 한 번 안 잡아본 신의 딸이 맞았다.

그래도 안 된다.

중급 신인 솔로몬도 그렇게 내 포인트를 채갔다.

계약 조건이 최소 수십 퍼센트 각이다.

홀릴 만한 미모의 여인 한 명을 위해 내 인생을 이렇게 던질 수 없었다.

노노!

- 야훼가 조건을 다운시켰습니다. 지참금을 지불하시겠습니까?

얼마나 깎아준 거야?

궁금한 걸 물었다.

- 10% 이상 다운됐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본래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되냐고!

- 업계 관행상 계약 전에는 비밀입니다.

업계 관행?

봐라! 봐라! 저게 말이 돼?

계약 조건은 알려주지도 않고 깎아주겠다는 악덕 상인의 심보.

내가 신들 보이스피싱에 당할 바보 같아?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

괜히 로리아나에게 손이라도 대는 날에는 손해배상 청구 들어올 각이다.

야훼는 중급 신이 아닌 그 이상의 신이다.

금수저 신들은 신계 영향력이 남다를 것이다.

아쉽지만 여기서 후퇴다.

- 야훼가……. 당신에게 잠깐 이용권을 허락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자, 잠깐 이용권?

파아앗.

갑자기 로리아나 쪽에서 달콤한 향기가 훅 풍겨왔다.

입술에서는 뭔가 촉촉한 빛이 감돌았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로리아나의 눈빛이 몽롱하게 풀리는 게 확실히 보였다.

와……. 야훼, 진짜 꾼이다.

공짜 미끼로 유혹할 줄도 안다.

이거 쥐약이다.

맛보면 큰일 난다.

그래도 자꾸 시선은 의지와 상관없이 달콤해 보이는 입술 쪽으로 향했다.

공짜 좋아하는 대머리 기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심장이 제멋대로 뜨거워졌다.

약간 백치미 상태가 된 로리아나는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스윽.

오른손이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안 돼!

왼팔로 오른손을 잡아챘다.

신성 마법에 매혹 마법 그리고 야훼 신의 버프가 더해진 로리아나.

타 죽을 걸 알면서 불길에 달려가는 불나방 꼴은 되기 싫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유혹은 지독했다.

다시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 마른침.

차박 한 걸음 앞으로 발이 움직였다.

기다렸다는 듯 두 눈을 사르르 다시 감는 로리아나.

야훼가 그녀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난…….

“다니엘~.”

“???”

그때 귀에 들려오는 사라의 목소리.

“!!!”

퍼뜩 정신이 확 들었다.

“아!”

로리아나도 야훼의 수작질에서 깨어나며 탄성을 터트렸다.

와! 이거 제대로 독박 쓸 뻔했다.

앞으로 로리아나와 단 둘이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마약도 처음에는 공짜로 제공되는 법이다.

“두 사람 거기서 뭐하세요?”

사라는 알면서도 모른 척 물어왔다.

“신에 대한 경건한(?) 탐색 중이었습니다.”

“네? 신에 대한 경건한 탐색이요?”

전혀 이해 안 될 말에 당연한 의문을 표하는 사라.

깊은 내막까지 알려줄 수는 없었다.

로리아나도 야훼의 뜻을 알아버린 듯 얼굴이 붉어졌다 하얘졌다 난리다.

야훼 나쁜 아재 리스트에 등재다.

“태양이…… 떴네요.”

야훼와 밀당 하는 사이 어느새 태양은 수평선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두 사람 오늘 돌아갈 건 아니죠?”

“네? 네에…….”

로리아나가 정신없는 와중에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유혹에 뜨거워졌던 심장도 불어오는 바람으로 식혀졌다.

그리고 다시 차오르기 시작한 가볍고 맑은 근원적 에너지.

가슴에 남에 있던 희미한 욕망까지 지워버렸다.

환하게 열리는 하늘을 바라봤다.

피식 웃었다.

야훼 당신.

다음에는…… 더 뜨거운 미끼를 준비해 봐.

오늘은 좀 약했던 거 당신도 알지?

***

“고맙습니다. 보스.”

“고맙기는요. 하하.”

로버트가 기(氣) 마사지를 받고 감동의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아직 성수는 주지 않았다.

그건 나중을 위한 특별 보너스로 아껴뒀다.

“아닙니다. 보스는……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고마움을 잊지 않는 로버트를 향해 푸근한 보스 미소를 던졌다.

“루이스는 떠났습니까?”

“조금 전 떠났습니다.”

“급한 일인가 보군요. 인사도 없이 가다니.”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여동생을 남겨 두고 갈 정도니 그런 것 같습니다.”

루이스는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솔로라면 모를까 그는 애 딸린 유부남이다.

괜히 남아 있어 봐야 가슴 속에 질투만 더해질 뿐이다.

“유럽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마십시오. 앞으로도 그들은 우리에게 꿀을 바쳐야 하는 사랑스런 꿀벌입니다.”

사악한 양봉업자가 되어 보기로 진작 마음먹었다.

“알겠습니다. 지시를 확실히 따르겠습니다.”

유로화는 달러와 함께 덩치가 가장 컸다.

환율 전쟁에서 필수불가결한 전쟁터였다.

앞으로도 계속 유로화는 흔들린다.

롤러코스터 같은 유로화는 가장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작은 인연 때문에 그 맛있는 먹잇감을 버린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내 방 창가로 나갔다.

그때 리조트 야외 수영장에서 놀고 있다 나와 눈이 딱 부딪친 뭇 여인들의 시선.

오매불망 나의 시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뜨거웠다.

“다니엘~”

“오빠!”

“대표님~! 어서 내려와요~.”

미녀들이 하나같이 비키니를 입고 가장 가벼운 몸짓으로 손을 흔들었다.

신선계가 1도 안 부러웠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요 파라다이스였다.

흐뭇해진 마음으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언제 또다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지 모르는 화려한 휴가.

서로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과 함께 잊지 못할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

설사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할지라도 난…….

한 자락 추억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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