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0
회귀의 전설
520장. 막장은 막장을 불렀다 (2)
‘차일드 가…….’
부부우우우웅 부우웅.
모터보트를 타고 목적지에 접근 중인 루이스는 마음이 착잡했다.
세이셀 공항까지는 전용기를 타고 왔다.
오는 동안에 여러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를 이용해 소요 시간을 단축하고 목적지 가까이에 빨리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헬기나 경비행기가 필요했다.
예약되어 있던 헬기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소속이 확실한 각국의 대형 여객기를 제외하고 모든 헬기와 경비행기 이착륙 금지명령이 떨어졌다.
말도 안 되는 급작스러운 조치에 프랑스 정보국을 통해 상황을 알아봤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 전해졌다.
목적지 근해에서 미국 항모전단이 훈련 중이었다.
그들에 의해 헬기 이용이 차단당했다.
루이스는 이 모든 상황 전개가 차일드 가문의 힘이라는 걸 알았다.
차일드 가문의 주인인 야훼 바트의 안전을 위해 내려진 모종의 조치.
미국 항모까지 동원되었을 만큼 야훼의 동선은 영향력이 컸다.
권력의 격차에 루이스는 쓴 입맛을 다셨다.
‘야훼 바트와 사라 요한슨이 같이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곳에서 평화 협정이라도 체결하려는 건 아닐 테고…….’
루이스는 머리가 복잡했다.
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구도 아닌 차일드와 기사 가문.
종교는 비슷했지만 엄연히 그 속은 달랐다.
미묘한 관계가 천 년 이상 지속 됐다.
아사신과 이슬람이 없었다면 기사단과 야훼 바트는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이다.
현 시대에는 아무래도 기사단이 불리했다.
세속적인 교세와 달리 경제면에서는 기사단이 확실히 밀렸다.
기사단이 유럽을 통합하고 유로화를 만들어냈지만 차일드 가문의 경제력은 처음부터 넘사벽이었다.
유럽 연합에 몰아닥친 경제 풍파 상당 부분이 차일드 가문의 수작이 확실했다.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차일드 가문의 직계와 방계의 후손들이 월가의 거물과 만나는 자리였다.
의문에 싸인 한국인 천재 투자자의 휴가지에 일제히 모이는 회동.
반드시 그 내용을 알아내야 했다.
코린 경이 비비안을 보낸 이유는 뻔했다.
한국인 투자자 다니엘 장과 비비안의 인연이 작지 않았다.
지금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섬을 바라보는 비비안.
여동생의 절절한 그리움이 루이스를 아프게 만들었다.
‘비비안. 그놈은 카사노바의 재림이라고!’
아내인 클라라와 썸씽이 있었던 다니엘 장.
수집된 정보에 의하면 녀석 주변에는 미녀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루이스 역시 결혼 전에는 경계 없이 여자를 두루 만났지만 다니엘 장만큼은 아니었다.
가는 곳곳에서 매번 여성들과 연분을 뿌린 다니엘 장.
‘반드시 가면을 벗겨주겠어!’
루이스는 속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그런데 로리아나는 왜?’
철저한 위장막 속에 감춰진 신의 딸 야훼 바트.
루이스도 딱 한 번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 죽었다.
그때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었다.
비밀 장례식장에는 미국과 러시아, 일본을 비롯해 중국과 인도 같은 세계를 경영하는 대통령과 총리, 그 밖의 실세들인 경제계 인사들 100명이 참석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기둥.
그 장장한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루이스는 그 당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던 로리아나를 봤다.
신의 은총으로 성스럽기까지 했던 검은 옷차림으로도 가릴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빛을 발산하던 미녀.
루이스의 기억에서 몇 달 동안 생생하게 살아 있었을 만큼 충격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야훼 바트 로리아나가 이곳에 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기분이 나쁜 루이스.
엄연히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까지 있지만 남자의 질투는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올랐다.
부르르르르르르.
그리고 배는 엔진을 조절하며 선착장에 접안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일단의 경호원들.
싸늘한 경계의 눈빛으로 루이스와 기사단 경호원들을 노려봤다.
***
“보스를 안다는 루이스와 비비안 그리고 그들의 경호원들이라고 합니다.”
누구? 비비안?
경호원들이 모터 소리에 놀라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잠시 후 한진웅 대표가 빠르게 다가와 보고를 했다.
“어떻게 할까요?”
로리아나와 로버트의 경호원들 일부도 선착장으로 갔다.
로리아나가 나를 쳐다봤다.
이곳의 주재자가 당신이니 알아서 결정하라는 눈빛이었다.
골치가 아파왔다.
지금 이곳은 나의 오랜만에 갖는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내기 위한 휴가지였다.
쌍둥이들을 비롯해 친족 같은 직원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을 뿐인데 사건이 점점 커졌다.
사라 요한슨에 이어 야훼 바트, 그리고 비비안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면 초 싸이코 인증이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니 정중히 모십시오.”
“알겠습니다.”
한진웅 대표와 로리아나 경호 팀장이 사라졌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난장판이다.
막장에 소스 하나 더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여기서 돌려보낸다면 비비안이 슬플 거다.
“기사단의 루이스 남매라니……. 오늘 초대 손님들 명단이 화려하네요~”
사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었다.
로리아나를 바라보는 사라.
은근히 감춰진 여러 감정들이 보였다.
……사라 당신까지 그러지마.
찌리릿.
사고까지는 아니지만 묘한 경쟁심리가 두 사람 사이에서 감지됐다.
“우리 할 얘기가 많지?”
로리아나가 사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 밤이 지루하지는 않겠어.”
“두 분이 친하십니까?”
차일드 가문의 직계와 방계의 대표적 혈족들이었다.
“한때는 친구 같은 사이였죠. 어린 시절 휴가도 함께 보내기도 하고……. 한 침대에서 남자 친구 얘기도 나눴을 만큼.”
사라가 과거를 회상하며 시선을 로리아나에게 두었다.
그랬던 사이가…….
돈이 문제다.
있는 분들의 권력 싸움은 세상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직계와 방계의 싸움에 알게 모르게 날벼락 맞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라……. 난 아직도 그 시절 그대로야.”
로리아나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 감정을 드러냈다.
“나도 마찬가지야. 다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막고 있잖아.”
“왜 우리가 이래야 될까? 야훼께서 결코 원하지 않는 길이야.”
“가문의 이름으로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야훼께서도 장자만 예뻐하시지는 않았어.”
“그 문제는…….”
두 가문 사이에 얽혀 있는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한 듯했다.
부모님이 소천하면 남은 단 100만 원 때문에도 싸운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그만하시죠.”
두 여자의 입을 막았다.
사라와 로리아나가 동시에 날 봤다.
“이곳은 제 휴가지입니다. 날카로운 가문의 일로 기세 싸움을 벌일 생각이라면……. 두 분 다 돌아가십시오.”
나 이런 남자다.
경고인 듯한 통보를 했다.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경호원들이 총질할 것만 같았다.
“…….”
다행히 침묵하는 두 여인.
어디 가서 이런 말 들을 분들이 아니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망삘 분위기는 사양이다.
빨리 돌아가 못다 마신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밤이 깊어가는 휴가지에서 들려오는 평안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이 밤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
사라를 쳐다봤다.
끄덕.
고개로 의사를 표하는 사라.
그녀는 내 의견에 동조했다.
또 로리아나를 봤다.
날 지그시 바라보는 로리아나.
화가 났을 수 있다.
차일드 가문의 현 주인이 뭐가 아쉬워서…….
“사라는 제 친구랍니다~.”
응? 뭐라고?
“그렇지 사라?”
“그럼~ 우리는 친구지~.”
스윽.
느닷없이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뭐야……. 이 그림!
갑자기 급 화해 모드가 작동됐다.
야훼를 모시는 신의 딸이 휴전을 선포했다.
사라도 자연스럽게 로리아나의 손을 맞잡았다.
“배고파요~.”
입가에 미소를 짓는 로리아나.
로리아나의 배고프다는 말도 신비롭게 들렸다.
분위기만 따지자면 로리아나가 오늘 모인 많은 미녀들 중에 갑이다.
야훼 신도 남성이 확실했다.
“로리아나, 예전처럼 밤새 맥주 마실까?”
“그럴까?”
“바닷가에서는 스테이크에 마시는 맥주 맛이 환상이야~.”
“나 진짜 배고파.”
“가자~”
“응!”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내 앞에서 사라졌다.
“…….”
방금 전까지 현실적인 문제로 함께할 수 없다고 말하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여인이 나만 두고 갔다.
닭 쫓던 개가 된 것 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여심.
- 야훼가 당신에게 조용히 특별 수당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야훼! 도대체 뭘 꾸미는 겁니까!
***
“맛있어요~.”
“그렇죠? 파인애플 구이가 이런 맛이라니…….”
“맥주 한 잔 따라 주실래요?”
“전 와인 마실 거예요~.”
“으흐흐. 난 소맥요!”
“주아 미성년자 아니야?”
“한국에서는 대학교 들어가면 이 정도는 다 마셔요.”
“정말요?”
“네~ 사라 언니~.”
‘뭐지 이 분위기?’
루이스는 귓가에 들려오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배 기사단의 미래 후계자이자 기사인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걸 알렸다.
그럼에도 마중 나온 이들은 인상이 딱딱한 경호원들뿐이다.
“이곳부터는 두 분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딱딱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스라엘 출신 경호원이 루이스 경호원들 앞을 막아섰다.
보트로 20여 명의 경호원들이 함께 동행해 왔다.
그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 탓에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었다.
파바밧.
경호원들끼리 주고받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무기도 없는 한국 경호원들의 기세가 가장 드셌다.
“알겠어요. 들어가요 오빠.”
비비안이 앞으로 나섰다.
평소 오빠를 배려하던 모습과 달랐다.
“기다리십시오.”
경호원들에게 명령하고 루이스는 리조트의 야외 데크로 걸어갔다.
부드럽게 밟히는 모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서지듯 느껴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지만 춥지 않았다.
하늘의 달과 별이 환상적인 그림처럼 빛을 뿜으며 지상에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 새로 온 손님들이다!”
“어서 와요~.”
“!!!”
루이스는 깜짝 놀랐다.
따듯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고기와 야채가 구워지고 있었고 넓은 야외 테이블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상당한 미모의 여인들이 앉아 손을 흔들며 반겼다.
루이스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이 아빠가 분명했지만 아직 젊은 남자였다.
이런 파티 분위기를 절대 싫어하지 않았다.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여인들 모두 다 특급 미녀들.
루이스와 비비안은 그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로리아나! 사라 요한슨!’
맥주를 마시고 있는 차일드 가문의 두 여인 모습에 루이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두 사람이 저런 사이가 될 수 없었다.
암살까지 감행될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분명 준 전쟁 상태였다.
그런 로리아나와 사라 요한슨이 친자매처럼 마주 앉아 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눴다.
루이스를 보고도 특별히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둘만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환영합니다~ 로버트 라이언이라고 합니다.”
편안한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던 중년 미국 남자가 악수를 청해왔다.
“반갑습니다. 루이스 발루아라고 합니다.”
루이스는 월가의 거물 앞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춰 인사를 했다.
홍콩상행은행을 비롯해 여러 사업과 얽혀 있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사람 좋은 미소를 보내는 로버트 라이언.
오늘은 그와 악수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은 셈이었다.
“다니엘…….”
그사이 비비안이 맥주잔을 들고 서 있던 동양 남자를 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서와. 비비~ 잘 지냈어?”
“응…….”
‘저놈이 다니엘 장!’
한눈에 봐도 훤칠하고 잘생긴 게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다니엘 장.
“아닌 것 같은데?”
자신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만져본 적이 없는 여동생의 머리칼을 자연스럽게 쓰다듬었다.
화르르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리고…….
“이분은?”
“우리 오빠야. 오빠 인사해. 다니엘 장……. 날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자 친구~. 다니엘 장…….”
두 번씩이나 이름을 강조하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비비안.
“……루이스 발루아라고 합니다.”
호감의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루이스.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오른손에 있던 잔을 왼손에 옮기며 손을 마주잡는 다니엘 장.
콰득.
루이스는 은근히 손에 힘을 줬다.
일반인과 달리 나름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던 루이스였다.
유치하지만 다니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혀 끄떡도 하지 않는 다니엘 장.
대신 놈의 입가에 장난기 서린 미소가 번졌다.
우드드득.
도리어 루이스의 손에 가해지는 엄청난 악력.
“윽!”
그만 루이스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조용히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호기심 어린 사방의 시선.
다들 말을 섞지는 않았지만 두 남자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다니엘 장의 얼굴이 루이스의 얼굴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루이스의 귓가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루이스는 좀체 움직일 수 없었다.
‘이놈! 위험하다!’
악마 같은 차갑기 그지없는 다니엘 장의 눈빛이 루이스의 눈동자를 꿰뚫듯 스쳤다.
그물을 치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노련한 사냥꾼 같았다.
그리고…….
“사업이 쫄딱 망해가는 상황인데…… 이 먼 곳까지 찾아오셨습니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