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9
회귀의 전설
519장. 막장은 막장을 불렀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대형 헬기 세 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거침없이 빠르고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야간비행 중인 헬기들.
라이트를 비치며 리조트의 넓은 주차장에 정확하게 착륙했다.
“뭐야?”
“연락 받은 거 있어?”
A.T 씨큐리티 경호원들이 서로 신호를 보내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로버트 라이언과 함께 도착한 미국 경호원들과 이중으로 시설을 경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것들은 뭐야!”
한진웅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예민했다.
그간 보스를 노렸던 습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휴가라고 했지만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총질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총기를 소지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 경호원들은 달랐다.
맨손과 삼단봉 따위로 무장한 자신들과 달리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슴팍에 손이 갔다.
권총을 소지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이것도 국력빨인가! 젠장…….’
한진웅은 입맛이 썼다.
보스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끼리리리릿.
헬기 로터가 꺼졌다.
바람이 잦아들었다.
덜컹.
그리고 열리는 문.
타다다다닥.
세 대의 대형 헬기에서 검은 슈트를 착용한 경호원들이 먼저 튀어 나왔다.
숫자는 약 20여 명.
풍기는 분위기가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한눈에 봐도 실력을 갖춘 자들이었다.
“뭡니까……. 저분들.”
“여기 휴가지 맞습니까?”
“분위기 살벌한 것 보소. 눈빛만으로 사람 잡겠네~.”
“쫄지 마라. 저 새끼들 근육 다 허당이야.”
씨큐리티 직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파바바밧.
헬기에서 내린 경호원들과 눈빛이 부딪쳤다.
“…….”
서로 눈빛만 주고받을 뿐 말이 없었다.
미국 경호원들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다.
휘리리리링.
시원한 저녁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사락.
그때 한 여자가 헬기에서 부드럽게 내렸다.
휴양지에서도 패션쇼를 연상할 만큼의 옷차림과 몸매였다.
머리칼과 얼굴은 가볍게 기도숄로 가린 채였다.
검은색 바지에 새하얀 셔츠가 인상적이었다.
분위기가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데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언뜻 봐도 함부로 다가가기 힘든 존재임이 확실했다.
또각 또각.
그녀가 경호원들을 뒤에 두고 앞장서서 걸었다.
“누구십니까? 멈추십시오.”
로버트 라이언의 미국 측 경호원이 앞으로 나섰다.
“차일드의 주인이시다.”
여자의 가장 가까운 옆에 걸으며 경호하던 남자가 짧게 한 마디를 던졌다.
“!!!”
크게 놀라는 미국 측 경호원.
당황했다.
아니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굳었다.
경호 업체들 간에도 암암리에 소문이 쫙 퍼졌었다.
차일드 가문의 경호원들은 손을 쓰면 상대가 누구라 해도 반드시 피를 보고 그 뿌리까지 뽑아버린다고 말이다.
“뭡니까?”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한진웅이 가까이 다가갔다.
총기는 소지하고 있지 않지만 충성심과 용감함은 하늘을 찔렀다.
여자의 경호원들이 한진웅을 상대로 순식간에 자세를 잡았다.
“대, 대표님! 저거 마이크로 우찌 기관단총이에요!”
“어메! 미치겠네!”
짧은 기관단총이 여자의 경호원들 양복 안쪽으로 보였다.
“…….”
삽시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여차하면 순식간에 경호원 모두가 도륙될 분위기.
‘X발! 도대체 이것들 뭐야!’
한진웅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보스와 동행하면 언제나 대형 사고가 터졌다.
“다니엘 장……. 아니 장태산 씨를 만나려고 왔어요.”
여자가 부드럽게 영어로 방문 목적을 밝혀 왔다.
“선약이 있으십니까?”
한진웅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결코 쫄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 온 로리아나라고 전하면 대답을 주실 것 같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진웅이 옆에 있던 직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타다다다닷.
바쁘게 달려가는 씨큐리티 경호원.
남아 있던 경호원들이 부러움의 시선으로 내달리는 그를 바라봤다.
***
“이스라엘 로리아나…… 라고……. 하아.”
한숨이 절로 터졌다.
“로리아나!”
씨큐리티 직원이 급한 듯 달려왔다.
다급한 용무가 분명해 보여 야외 데크 쪽에서 멀찍이 떨어져 보고를 받았다.
로버트 라이언 역시 당황했다.
이름은 알아도 대면하는 일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경호원들 같이 왔죠?”
“분위기 완전 살벌합니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했습니다.”
기관단총이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말 한 마디면 이스라엘 총리가 핵미사일을 날릴 수도 있었다.
미국 정가를 움직여 약소국가 하나쯤은 며칠 안에 정리할 수 있는 실제 능력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왜?
“날 보러 온 손님이니 정중하게 모십시오. 경호원들은 들여보내지 마십시오.”
“넵!”
타다다닥.
출입이 통제된 야외 데크인지라 바쁘게 경호원이 다시 달려갔다.
스마트폰 전원을 편안한 휴가를 즐기기 위해 꺼놓은 탓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찾아온 거물급 손님.
“보스……. 로리아나가 그 로리아나 맞습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세상에! 신이시여…….”
로버트 라이언이 신을 찾을 정도로 그녀는 대단한 거물이었다.
현 미국 대통령도 양발만 신고 마중하러 달려 나갈 정도의 인물이었다.
“보, 보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접 마중 나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로버트가 떨었다.
로리아나가 마음만 먹으면 로버트 투자회사 정도는 하루아침에 도산시킬 수 있었다.
지구에서 가중 위험한 여자가 로리아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마중을 나갑니까?”
“네? 그녀는, 아니 로리아나 님은…….”
“날 보러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긴장 풀어요.”
“보스…….”
전혀 쫄지 않는 내 모습에 로버트가 입을 다물었다.
“존경합니다. 차일드 가문의 직계와 방계의 여주인들을 한자리에 이렇게 부를 수 있는 분은 세상에……. 보스밖에 없습니다!”
로버트가 단언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곳이 나의 휴가지라는 거다.
점점 분위기가 기묘하다 못해 막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편하게 쉬고 싶었을 뿐인데 화끈하게 불꽃 튀기게 생겼다.
더욱이 사라와 로리아나는 지금 차일드 가문 지분 문제로 복잡한 관계에 있었다.
그런 두 여인이 이곳에서 만난다면…….
“그래도 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서 괜히 사라와 로리아나 사이에 다툼이라도 생긴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분위기 잘 맞추십시오. 여자 친구는 잠시 멀리하십시오.”
“넵! 보스!”
로버트는 최근 들어 가장 긴장한 모습이다.
또각 또각.
그사이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야외 데크로 이어진 나무길을 따라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소리.
구두 발자국 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긴장이 안 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로리아나가 한국 마음에 안 들어 하면 그 순간 IMF 2탄 찍는 거다.
나 하나 망가지는 건 상관없지만 애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내심 기대가 됐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웠던 야훼 바트 로리아나.
그녀와 나눴던 짧은 대화와 같이 마셨던 와인 향기가 코끝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앞에 그녀가 나타났다.
기도숄로 얼굴을 반쯤 가린 로리아나.
역시 신의 향기가 그녀에게서 맡아졌다.
스르릇.
로리아나의 기도숄이 살며시 내려갔다.
“흡!”
로리아나만의 신비한 분위기와 미모에 대놓고 놀라는 로버트.
50년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도 그녀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충격일 것이다.
로리아나에게는 보통의 미녀들에게서 경험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더했다.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로리나아가 나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진갈색 눈동자에 진심으로 반가움이 스쳤다.
“여전히 아름다움은 치명적입니다.”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를 잡는 부드러운 그녀의 손.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가느다란 부드러운 손가락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야훼의 딸도 인간이었다.
“…….”
잠시 의도치 않은 침묵이 흘렀다.
“로버트 라이언 회장님을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로버트의 허리가 꺾어지듯 굽어졌다.
세상에 미국 아재가 허리도 굽힐 줄 알았다.
감히 나처럼 악수를 청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로리아나의 휴가지 방문 목적을 물었다.
그냥 왔을 리가 없었다.
세상 돈을 지배하는 가문의 주인이었다.
이런 누추한 곳에 놀러왔을 리가…….
“휴가에요.”
“네? 휴가요?”
“다니엘 님이 휴가를 왔다기에 불쑥 찾아왔어요. 제가 안 반가운 건 아니죠?”
뭐, 뭐지! 이 들이댐은!
이곳 말고도 그녀만을 위한 럭셔리 초호화 휴가지는 많고 많았다.
그런데 콕 찍어 나의 휴가지를 알고 찾아왔다 말하는 그녀.
로버트가 토끼 눈으로 나와 그녀를 번갈아 봤다.
이 상황이 로버트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로리아나와 내가 아는 사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로버트.
“그럴 리가요~ 전 언제나 환영입니다. 로버트도 그렇죠?”
“물론입니다! 누추한 곳에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심을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부가 극상이다.
로리아나를 나와 동급으로 대우했다.
로버트 눈치 참 본받을 만하다.
“다행이에요. 이곳까지 오면서 기름값이 많이 들었거든요~.”
로리아나가 진담 같은 농담을 던졌다.
하하! 이 썰렁함은 어쩔 거야!
“하, 하하하하하! 다음에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로버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을 진담으로 받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요.”
“모시겠습니다.”
경호원들이 없어서 그런지 로리아나는 오늘따라 한결 밝았다.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전 먼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로버트가 빠르게 야외 데크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와 나만 남겨진 상황.
천천히 걸었다.
“로리…….”
“다니…….”
그녀와 내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풋!”
로리아나가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
야훼의 신녀답게 참 조신했다.
“진짜 실례 아니죠?”
“실례는 지난 번 만남 같은 경우죠. 야심한 시각에 남자 혼자 있는 방에 찾아가면 안 됩니다. 로리아나 님이 몰라서 그렇지 남자는 밤에 대부분 늑대로 변하거든요.”
“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굴을 붉히는 로리아나.
야훼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느새 하늘에 떠오른 커다란 달이 분위기를 쫙 깔아줬다.
“로리아나…….”
갑자기 그녀와 내 앞에 사라가 나타나기 전까지 분위기 좋았다.
“사라…….”
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 두 여인.
어색하게 흐르는 무거운 공기와 침묵.
괜히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난 단지 조용히 휴가를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견치 못한 일들이 연속 터졌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바다 쪽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는 여러 대의 보트 소리.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온 게 분명해 보이는 이 불길함.
갑자기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막장은 막장을 부르는 법!
오늘 드라마 시나리오 한 편 시원하게 뽑아질 것 같은 이 기분.
이럴 때는 무조건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