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회귀의 전설
518장. 기묘한 휴가 (2)
“휴가라……. 팔자가 좋은 녀석이군.”
리장창은 홍콩의 자택에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방금 전 루이스까지 그곳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흐음……. 클라라는?”
“클라라 양과 아이는 저택에 남아있습니다. 루이스와 비비안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제갈유량이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를 읊었다.
“이스라엘의 신녀도 움직였다고 하지 않았나?”
“뿐만 아니라 로버트 라이언과 사라 요한슨까지 움직였습니다.”
“이유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경호 상태는?”
“미국 대통령 수준입니다.”
“대단하군.”
리장창은 감히 테러를 꿈꾸지 않았다.
사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보배인 야훼바트까지 움직였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중국에 엄청난 타격이 휘몰아칠 수 있었다.
밖으로 투사할 힘도 부족했다.
밀고 있던 태자당의 인물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부주석까지 오르고 차기 주석이 예약되었지만 반대파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자칫 삐끗했다가는 모든 게 어긋날 수 있었다.
공청단의 반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중국몽을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를 배출해야 했다.
연임이 아닌 종신직의 황제가 필요했다.
그 물밑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원로들만 남은 상해방과 손을 잡고 세력이 강한 공청단을 밀어붙였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아직은 원하는 만큼의 수확은 아니었다.
공청단이 잡고 있는 권력이 상당히 강했다.
천지회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도 모자랐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치열하게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고 있었다.
권력자들을 포섭, 회유, 협박하는 일들이 매일 전쟁처럼 일어났다.
그만큼 외부로 돌릴 인적 여력이 없었다.
‘운이 좋은 녀석이야…….’
리장창은 적으로 지명된 장태산이 운이 좋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보통 방법으로 처리할 놈이 아니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좀 더 강하고 튼튼하게 옭아매어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극단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최적의 시간도 함께 안배돼야 했다.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최대한 정보력을 가동해서…….”
“됐어.”
“네?”
“며칠 후에 사위에게 물어볼 거야. 어차피 우리는 피로 맺어진 동맹이니까.”
“아!”
리장창의 말에 제갈유량은 탄성을 터트렸다.
주군이 요 근래 눈에 띄게 변했다.
장태산 문제로 잃어버렸던 균형 감각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시야가 더 넓어졌다.
딸인 클라라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와 사뭇 달랐다.
적극적 성향으로 바뀌었다.
“로버트 라이언이 투자했던 홍콩상행은행 주가가 얼마나 뛰었어?”
“……폭락장보다 4배 이상 뛰었습니다.”
“4배?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그놈이 벌어갔군.”
리장창의 입맛이 써졌다.
로버트 라이언의 차익이 수백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다니엘이라는 놈과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에 상당히 크게 관여가 된 것 같습니다.”
“월가 놈들은 뼛속까지 장사꾼이야. 지금이야 뭔가 빼먹을 게 있으니 달라붙겠지만 그놈 능력이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처리할 게 분명해.”
리장창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월가의 성공한 투자자들의 차가운 푸른 피를 믿고 싶었다.
돈 앞에서라면 부모와 자식도 헐값에 팔아먹을 인간들이 그들이었다.
‘장태산……. 네 놈의 능력도 이제 밑천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네 놈이 신이 아닌 이상!’
과거 관계가 이렇게 되기 전 장태산의 집터까지 두 눈으로 보고 왔던 리장창.
이제 운발이 다할 때가 되었다고 짐작했다.
미래를 다 꿰차고 사는 신이 현신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
‘다니엘…….’
사라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뜨거웠던 그날 밤의 추억은 환영처럼 금세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이 더했다.
한 번씩 운명처럼 그를 만났다.
살아가는 공간이 다르고 각자가 바쁜 시간 속에 섞여 사느라 쉽게 마주할 수는 없었다.
다른 남자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니엘은 잘생긴 동양 청년들의 수준을 넘어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겸비한 남자였다.
뜨거운 땀으로 목욕하다시피 하며 그림을 그리던 그때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밤새 잠을 재우지 않았던 다니엘의 짐승 같던 모습은 흉터처럼 사라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중요한 인물이 되어 버린 로버트 라이언의 휴가 계획을 알아냈다.
로버트 라이언의 새로운 연인 제시카를 친구로 포섭했다.
다니엘이 로버트 라이언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는 걸 알고 힘을 썼다.
미국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차일드 가문의 방계인 요한슨 가문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이용했다.
로버트 라이언은 제시카의 친구가 된 사라의 동행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방문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착한 휴가지.
다니엘이 뭇 미녀들과 함께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당황한 모습.
풋 하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니엘의 저렇게 당황해하는 표정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다니엘 대표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하하하.”
로버트 라이언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게요. 굳이 바쁘시면 이렇게 무리해서 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월가의 로버트 라이언에게 농담 섞인 구박을 자연스럽게 던지는 다니엘.
사라는 아직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 못했다.
접점이 많긴 했지만 이해하기 묘한 관계였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에 다니엘이 깊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렇지만 로버트 라이언에게 대놓고 말할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굴리는 자금 규모가 달랐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는 대부분 표면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월가의 대부가 된 셈이다.
그런 로버트 라이언도 다니엘에게 있어서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이에요. 다니엘.”
“사라…….”
다니엘이 선글라스를 벗고 미소를 지으며 아는 체를 해왔다.
당황함은 잠시뿐이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함으로 무장됐다.
파바밧.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쳤다.
다른 누구보다 깊었던 사이.
말하지 않아도 뜨거운 감정적 교감이 서로를 스쳤다.
“다니엘, 여기 피앙세는 제 여자 친구 제시카입니다.”
로버트가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의 여자 친구를 소개했다.
“대단한 분이라고 말씀 많이 들었어요~ 다니엘 장 대표님.”
제시카가 악수를 청했다.
“대부분 과장일 겁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시카.”
제시카와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다니엘.
“다시 보게 되었네요~ 사라 요한슨 양~.”
도도희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좋은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요. 도희…….”
“엔젤라에요~.”
도도희가 사라와 인사를 나눴다.
“오빠~ 배고파~.”
“손님들이 또 오셨네…….”
물놀이에 지친 쌍둥이 동생들이 다가왔다.
정보로만 듣던 다니엘의 쌍둥이 동생.
‘두 사람 모두 상당한 미녀군.’
사라는 두 사람의 미모에 내심 감탄했다.
이곳에 모인 성인 미녀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젊고 발랄한 기운이 두 사람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했다.
“어……. 혹시 사라 요한슨 아니세요?”
그때 장주아가 사라를 알아본 듯 입을 열었다.
“절 아세요?”
“와! 정말 맞아요? 뉴욕 현대 미술관 큐레이터 맞으시죠? 미술 잡지 인터뷰에서 봤어요!”
장주아는 사라의 직업까지 알았다.
“그림 전공이세요?”
“네! 한국대 미대에 재학 중이에요!”
“그래요? 언제 시간 되면 초대하고 싶군요. 뉴욕 현대 미술관에 비밀스럽게 보관된 세계적 명화들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 정말요?”
장주아가 눈을 반짝였다.
대단한 미모의 여성이라 기억했던 뉴욕 현대 미술관의 큐레이터의 초대.
결코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기회였다.
‘됐어!’
그건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눈앞에 마련된 다니엘과의 접점.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정말 맛있어요!”
“와아아……. 개꿀맛!”
“흐아앙! 맛있다! 와인!”
어느새 저녁이 찾아왔다.
선셋 크루즈 여행까지 경험한 일행들은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 야외 데크에서 고기구이 파티를 벌였다.
신선한 각종 해산물과 폭립을 비롯한 온갖 고기와 야채 구이는 주희 말처럼 개꿀맛이었다.
몇 년 후에는 개존맛이라는 격정적 표현으로 바뀌는 찬사가 어울리는 메뉴였다.
주방장 모자를 눌러쓴 통통한 50대 원주민 요리사 실력이 제대로였다.
서빙을 보는 직원들도 눈치가 빠르고 친절했다.
와인을 비롯해 맥주가 빠르게 비워졌다.
사라의 생각지 못한 등장은 예상 밖으로 문제없이 정리됐다.
도도희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와 그녀를 살폈다.
그렇게 봐봐야 의미 없다.
이곳에서 사라와 좋은 시간을(?) 보낼 만큼 바보는 아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쌍둥이 여동생들 앞에서 오빠 체면을 내던지고 싶지 않았다.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로버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라가 마음먹으면 세상에 안 될 일이 몇 가지 없었다.
“언니~ 진짜 예뻐요~. 헤에.”
미술학도인 주아가 사라에게 푹 빠졌다.
사라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식은 나도 감탄할 정도였다.
“주아가 더 예뻐~.”
두 사람은 쿵짝이 잘 맞았다.
주아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미녀가 세상을 움직이는 큰 손 집안의 딸이라는 걸 말이다.
“……으흐흐흐. 또 오네……. 나쁜 놈~.”
그때 홀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김한별이 나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눈빛이 이미 풀렸다.
뭔지 몰라도 몹시 불편하고 위험한 듯한 기운이 감지 됐다.
김한별이 소유한 예지력은 장난 아니었다.
미래를 걷는 자 김한별.
내가 이계 세상에 가는 것도 때려 맞춰내는 그녀의 예지력은 정말 놀라웠다.
불길함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뭐가?”
순박한 유세라 팀장이 물었다.
“몰라도 돼~. 아웅……. 오늘 밤 피곤하겠네. 키키키.”
김한별이 친구인 유세라의 코를 손으로 누르며 대꾸했다.
의도적으로 시선은 나를 향했고 ‘피곤하겠네’라는 말도 나에게 던졌다.
“로버트, 잠시만요.”
여자친구의 가녀린 허리를 희롱하던 로버트에게 눈짓을 보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보스, 무슨 일 있습니까?”
“혹시 다른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습니까?”
“손님요? 없습니다. 사라 요한슨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그건 됐습니다.”
사라 요한슨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호감이 남다른 사라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필이 왔다.
뭔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 이 자리에 합류할 것만 같았다.
사양하고 싶었다.
휴가 분위기가 기묘하게 바뀌는 건 절대 비추천이다.
하지만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것도 어둠 속에서 보디가드 여럿을 대동한 채 유유히 나타날 것 같은…….
응? 저, 저분들은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