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7화 (516/1,284)

 # 517

회귀의 전설

517장. 기묘한 휴가 (1)

“휴가?”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8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절 기간에 가족과 직원들, 그리고 로버트 라이언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도 함께 움직였다는 건가요?”

“새로 만나는 모델 애인이 함께 이동 중입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직 뜨거운 기운이 배어 있는 지중해 바람이 몰아치며 창밖을 데웠다.

“작은 아가씨도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네?”

“로버트 라이언과 비밀스럽게 동행한 것 같습니다.”

“아!”

말을 듣고 있던 여자 입에서 놀람의 탄성이 터졌다.

그냥 스쳐 들어도 되는 보고가 아니었다.

현재 월가에서 가장 핫한 대형 투자자와 차일드 가문의 방계 가문 유력자가 함께 동행한다는 말이었다.

휴가를 핑계로 뭔가를 획책할지도 몰랐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극복한 시장과 달리 환율 시장은 널뛰기 수준이었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차일드 가문 소속 투자자들도 서로 간에 믿음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암투가 점점 치열해졌다.

직계와 방계의 권력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표면화되고 거칠어졌다.

그런 와중에 월가의 유력가와 방계의 만남이 이뤄졌다.

“감시자를 늘리겠습니다.”

“아니에요.”

“네?”

“내가 직접 가겠어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해 보니 요 근래 휴가를 가 본 적이 없군요.”

“바트시여. 자칫 안전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휴가지는 따로 알아…….”

“뭔가요? 지금 내 말을 거역하는 건가요?”

“!!!”

“나 하나 감당 못할 경호라면 없는 게 낫겠군요.”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그녀의 말투에 보고자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야훼의 보호를 받는 바트를 누가 해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대전도 일으킬 수 있는 야훼 바트 로리아나.

그녀가 더위를 품은 지중해 바다를 바라봤다.

갑자기 입 밖으로 튀어나온 휴가라는 말.

‘내가 왜…….’

말을 뱉고 난 직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끔 뜬금없이 생각나는 다니엘 장.

그가 휴가를 즐기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야훼 바트가 아닌 로리아나라는 이름으로…….

***

“바트가 움직였다고요?”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였어.”

“확실한가요?”

“전투기들이 공해상 상당 부근까지 호위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총리도 못 받는 환대야.”

“흐음……. 그랬단 말이죠.”

프랑스의 대저택에서 진중한 표정의 두 남자가 얘기를 나눴다.

차기 기사단장으로 예정된 루이스 발루아와 기사단의 정보통인 집사 코린 경이었다.

집사 코린은 차기 후계자인 루이스와 비비안을 편하게 대했다.

어릴 때부터 삼촌처럼 옆에서 지켜봐 왔던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갔다.

수 세기 동안 발루아 가문을 보필했던 집사 가문으로서의 의무를 잊지 않았다.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변했지만 발루아 가문에 충성하는 자세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지금도 중요한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며 같이 회의를 했다.

기사단장 아르노는 지금 심처에서 수련 중이었다.

그동안의 중요한 대소사는 아들인 루이스에게 넘겨졌다.

“어떻게 할 거냐?”

“아저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런 일은 직접 가서 보고 판단하는 게 좋다. 로버트 라이언과 비밀의 야훼 바트, 그리고 사라 요한슨에 다니엘이라는 녀석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뭔가 중요한 회의가 있을 것 같다.”

집사 코린 경이 신중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노회했지만 눈빛은 젊은이 못지않게 반짝였다.

지혜로운 사내였다.

“요즘 유로화를 노리는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루이스는 인상을 썼다.

기사 가문은 유럽 연합 탄생과 보호에 지대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요즘 심상치 않게 일이 돌아갔다.

유로존이 흔들렸다.

경제 체력이 약한 그리스를 비롯해 몇몇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

과도한 복지와 유럽 국가 내부 경쟁에서 패배한 몇몇 국가가 유로존 국가들의 발목을 잡았다.

핫머니들이 집요하게 유로화를 공격했다.

월가를 비롯해 홍콩과 일본, 영국 쪽 자본이 수시로 움직였다.

환율이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

연합의 핵심인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이 방어에 나섰지만 힘에 부쳤다.

교묘하고 집요한 그들의 공격.

정체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가상의 세계에 머물다 사라지는 어둠속 그림자들이었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겠군.’

루이스는 코린 경의 말에 다니엘이라는 자를 떠올렸다.

일도 중요했지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니엘은 마법사라 알려져 있었다.

여동생 비비안이 아직도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아내인 클라라와도 인연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일드 가문의 중요 인물들과 휴가를 보낸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를 말이다.

“비비안도 데리고 가렴.”

“네……. 알겠습니다.”

***

“꺄아아아아~”

“너 죽었어!”

“언니 나 잡아 봐라~.”

촤촤촤촷.

부드러운 파도가 출렁이는 백사장에서 여동생 둘이 물을 튀기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놀았다.

쌍둥이들은 대학교 입학 뒤 이렇다 할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

그러다 휴가지로 선택한 바닷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어린 아이처럼 뛰놀았다.

가까운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

같이 동행해 온 경호원들이 외곽 경호를 맡았다.

한진웅 대표가 곳곳의 경호 책임으로 바빴다.

다행인지 그와 함께 온 드워프 가문의 누님이 피곤하다며 숙소에 남아 있어 주변 경호에만 신경 쓰면 됐다.

피 끓는 청춘의 쌍둥이들만 아주 살판났다.

가벼운 반바지와 셔츠 차림의 녀석들은 대한민국의 청춘을 이곳에서 즐겼다.

세이셀의 프라이빗 비치는 이국의 환상적 풍광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야자수 나무가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쌌다.

커다란 파라솔 아래 두툼한 타올이 깔린 썬 베드에 누워 마시는 아이스 커피 한 잔의 여유.

이게 바로 휴가였다.

다른 것은 더 필요 없었다.

철썩거리며 끝없이 밀려오는 파란 파도와 깨끗하고 새하얀 모래사장은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앞으로 일주일 뒤에 개장하게 되는 팰튼 호텔 사업부의 최신형 리조트는 깔끔하고 럭셔리했다.

깨끗한 수영장이 딸려 있는 7성급 풀 빌라였다.

해외 유명 샐럽들이 세이셀을 즐겨 찾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장소였다.

세이셀의 경우 정치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어 쿠데타 같은 문제도 없었다.

사이클론 같은 태풍 영향도 없었다.

연중 기온 24도에서 32도 사이를 유지해 따로 우기도 없다.

인구는 다 합쳐봐야 10만도 안 됐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자연 경관은 최상이었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미세 먼지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공기는 깨끗했고 물도 좋았다.

거기에…….

“대표님 오일 발라드려요?”

옆 썬 베드에 누워 있던 도도희가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쓴 채 나른하고 촉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

그녀를 보면 기분이 저절로 흐뭇해졌다.

성수의 영향으로 잡티 하나 없는 무결점 피부와 몸매를 되찾은 도도희는 무조건 옳았다.

시선 둘 곳 찾기 어려운 투피스 비키니는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아직 세상에 널리 보급되기 전인 레쉬가드 망령은 이곳에 없었다.

바닷가에 왔으면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옷차림을 갖추는 게 맞았다.

도도희처럼.

“대표님~ 마사지는 제가 전문이에요.”

유세라 팀장도 만만치 않았다.

휴양지에 어울리는 연파랑 땡땡이 리본타이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유세라 팀장의 착한 몸매와 참 잘 어울렸다.

“대표님! 제가 손힘이 좋아요~ 마사지 한 번 제대로 받아보실래요? 전 직장에서 제 손맛이 알아 줬어요~.”

내 목숨을 구해주고 취직한 블랙요원 김한별도 만만치 않았다.

카르마 포인트를 위해 세계 난민과 자연 보호에 앞장서고 있던 김한별도 불렀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여직원들 차별하기 싫었다.

휴가도 없이 인류애를 위해 헌신하는 김한별에게도 휴가가 필요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느라 김한별 피부가 많이 상했다.

그녀에게도 오늘 밤 성수 한 병을 허락할 참이다.

아직 새파란 여동생들은 굳이 성수까지 필요 없었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직원들만 받을 수 있는 특별 보너스였다.

“전 됐습니다.”

시원한 코코넛 밀크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봤다.

이계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돌아왔다.

나로 인해 치킨이라는 말을 알게 된 아린은 ‘돼지고기인가 치킨인가’라는 메뉴를 무척 좋아라 해줬다.

달콤함과 매운맛은 중독성이 심했다.

두툼한 돼지갈비를 튀겨 양념 소스를 바른 요리를 아린은 몇 번이나 더 요구했다.

맥주 안주에 그만이었다.

매운 맛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던 아린.

그녀와 함께 먹고 마시다 적당한 시간에 휴가지에 왔다.

이중인생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계와 지구 양쪽 세상 모두에서 난 최선을 다했다.

차별 없이.

“대표님 해질녘에 요트 탈 거죠?”

“당연히 타야지. 바다에서 맞이하는 석양은 그냥 죽음이야~.”

“난 해넘이 보면서 맥주 마실래! 생각만으로 심장이 콩닥콩닥 뛰어~.”

세 미녀들은 아직 소녀 같은 면이 많았다.

수다가 귓가에 멜로디처럼 들렸다.

여자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소녀더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해보고 싶은 것 다 하십시오.”

“정말이죠?”

“여기 스노클링 장소가 그렇게 멋있다고 인터넷에서 봤어요~.”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어~.”

다들 준비성이 철저했다.

난 이렇게 꽃들에 싸여 편히 쉬어도 좋았지만 그녀들은 입장이 달랐다.

자신들의 매력을 풍기며 휴가다운 휴가를 계획했다.

아직 로버트는 도착하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와 있겠다고 말했었지만 늦어지고 있었다.

느긋하게 기다렸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로버트였다.

“어?”

“로버트 라이언!”

“그런데 저 옆에 금발 미녀는 누구야?”

“새로운 애인이야?”

“……와아. 역시 아메리칸 스타일.”

“몸매 죽인다.”

“맞아! 저 여자 모델이야!”

“헐……. 제시카잖아!”

“세상에……. 맞아! 패션 잡지에 나왔던 그 제시카!”

“나이가 우리보다 어린 것 같지 않아?”

“돈이 역시 좋구나.”

세 명의 미녀들이 한 여성의 출현에 놀라 되는 대로 입을 놀렸다.

로버트가 양반이 못됐다.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와우! 역시 로버트!

월가의 잘 나가는 투자자는 한눈에 봐도 대단한 미녀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로버트 라이언도 작은 키가 아닌데 그와 비슷한 신장의 금발 미녀.

한눈에 봐도 모델이 확실했다.

그런데…….

“어머! 저, 저 여자는!”

이미 얼굴을 아는 도도희가 깜짝 놀랐다.

“뭐야? 제시카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

“누구야? 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거야?”

세상에! 로버트 당신 지금 여기에 누구를 데려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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