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5화 (514/1,284)

 # 515

회귀의 전설

515장. 가자아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악!”

마지막까지 반항하던 기사의 팔이 잘려 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

아라돈 후작이 다스리던 쥬넨 후작의 내성이 적막에 휩싸였다.

갑작스런 기습으로 외성문을 닫을 시간도 갖지 못했다.

황혼이 질 무렵 일단의 기마병들이 나타났다.

성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경비병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일찍 전쟁을 끝내고 기사들이 급하게 귀환했다고 생각했다.

쥬넨 후작가의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닥쳐온 기사들이 성문을 점령했다.

대응하던 병사들과 성문 담당 기사의 목이 그 자리에서 날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규모 기사들의 습격.

외성문이 뚫리는 순간 이미 전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라돈 후작을 따라 가문의 기사와 정병들 상당수가 출병 중이었다.

끝까지 저항하던 기사들이 꽤 있었지만 정리는 오래 끌지 않고 쉽게 끝났다.

“기사들에게는 마력 수갑을 채우고 병사들은 무기를 빼앗은 후 연무장에 모아두도록 하라!”

카이루 후작이 명을 내렸다.

“명을 따릅니다!”

기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말로만 존재했던 전격전이었다.

대륙 역사상 이렇게 빠른 전격전과 승리는 기록된 바가 없었다.

기마병으로만 쥬넨 후작가 성을 빼앗았다.

보병들은 속보로 오고 있지만 최소 며칠은 더 걸릴 것이었다.

그 전에 성과 중요 요새를 함락시켜버린 카이루 후작가의 기사들의 전과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되도록 피는 피하도록 하세요. 저들 또한 크로얀 제국의 백성들입니다.”

“황녀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아린 황녀의 명에 카이루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황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전투였다.

7서클 마법사는 전장의 보배였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요.”

후작성을 점령했지만 베커성이 무너지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베커 수호 공작이 아라돈 후작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이 승리도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잘 마무리되어야 했다.

아라돈 후작이 승리할 경우 카이루 후작과 황녀의 목숨도 담보가 되지 않았다.

미완의 승리.

아린은 간절한 마음으로 베커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빌었다.

‘당신을 믿어요. 베커…….’

***

“!!!”

모두가 경악에 찬 시선으로 한곳을 바라봤다.

검을 들고 10만 대군 앞에서 당당하게 아라돈 후작에게 검을 겨누는 자.

그 태도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미친 게 분명했다.

7서클 마법을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파쇄 해 버린 놈.

“아라돈 후작!”

겁도 없이 후작을 불러댔다.

“난 위대한 크로얀 제국의 황실 수호 의무를 명받은 베커 장 공작이다!”

“!!!!!!”

침략자들 모두 쩌렁쩌렁 마력이 담겨 울려 퍼지는 외침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이곳의 영주가 스스로를 베커 장 공작이라 밝혔다.

그것도 망해버린 크로얀 제국의 황실 수호 공작.

아라돈을 비롯해 귀족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전쟁을 주도하는 귀족 모두는 반역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크로얀 제국은 망해 사라졌지만 아라돈을 비롯해 여기 모인 귀족들 상당수가 그 황실의 이름으로 작위를 받았다.

마음에 아직 빚이 남아 있었다.

아니 제국이라는 거대한 이름은 멸망해 버린 뒤인 지금까지도 귀족들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거짓말이다! 용감한 나의 기사여! 당장 나서서 저 자의 입을 찢으라!”

아라돈이 손을 번쩍 들며 손가락으로 베커를 가리켰다.

더 떠들지 못하도록 빨리 입을 닫게 만들고 싶었다.

허무맹랑한 거짓이 확실하지만 뒷맛이 찝찝했다.

병사들이 동요함이 느껴졌다.

“제가 명을 완수하겠나이다!”

카를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에 모인 귀족과 기사들 중에 가장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자였다.

“경을 믿는다!”

“피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카를 백작이 아라돈 후작에게 예를 올리고 베커를 향해 걸어갔다.

그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파바바밧.

보이지 않는 탐색의 불꽃이 튀겼다.

“경은 누군가?”

오만하다 못해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베커의 말에 카를 백작이 인상을 구겼다.

“난 아라돈 드 쥬넨 가문의 오른팔인 카를 드 바스몬 백작이다. 거짓을 입에 올리는 네놈의 입을 찢겠다!”

스릉.

상대에 대한 예는 무시하고 투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카를 백작이 검을 뽑아들었다.

“후훗.”

입술 끝에 짧게 웃음을 띠는 베커.

“건방진!”

“본 공작이 선수를 양보하지.”

으드득.

분노로 이를 가는 카를 백작.

자신 앞에서 저렇게 건방을 떤 자를 근래에 만나보지 못했다.

“……그토록 원한다면 죽여주마!”

파앗!

카를 백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에서 풍겨 나오는 새파란 마력의 빛.

“오오오!”

“역시!”

아라돈 후작을 비롯해 지켜보고 있던 귀족들 모두 카를 백작의 기세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검도 명검인 데다가 마력 운용 능력 또한 장난 아니었다.

대단한 마력 호흡법을 소유한 가문의 주인다웠다.

“탓!”

카를 백작이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렸다.

마력에 의해 훨씬 가벼워진 몸놀림.

한 마리 새처럼 대지를 박차자 순식간에 공간이 압축됐다.

팟!

베커도 몸을 날렸다.

검에 깃든 새파란 마력.

검과 검이 부딪쳤다.

콰아앙!

폭발음이 터졌다.

대기가 진동하고 마력불꽃이 사방에 튀었다.

쾅! 콰과과과광!

인간의 시력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의 속도로 검이 움직였다.

“하압!”

“탓!”

두 사람의 기합이 연속 터졌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결투.

지켜보는 모두의 손에 잔뜩 힘을 준 채 결투를 바라봤다.

***

오랜만이었다.

아니 이런 강자를 만난 건 처음인 것 같다.

검을 휘두르는 맛이 났다.

천룡신군이 도매가격으로 넘겨준 검술이 허공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콰아아앙!

놈의 검이 가격하는 나의 검을 막았다.

마력이 제법 넘쳤다.

흥이 절로 났다.

신나게 그 동안 익혀두었던 검술을 응용했다.

쇄애애앳.

과거에 읽었던 판타지 소설 속의 소드 마스터가 된 것처럼 검에서 마력이 빛났다.

쇠가 부딪칠 일이 없었다.

검에 둘러싸인 마력이 서로의 목을 노렸다.

“크으.”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간 마주친 눈동자에 경악이 넘쳤다.

지금쯤이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순간이다.

내가 전혀 지치거나 마력이 딸리지 않다는 걸 알아챈 것 같다.

그래 너도 힘들지?

이제 쇼 타임은 끝낼 때가 됐다.

멍청한 아라돈 후작이 강을 건너 와 포진했다.

놈들이 나의 가을 밀밭을 망가트렸다.

손해배상을 제대로 계산해 화끈하게 보상받아야 했다.

카가가가가가가각.

놈의 검과 내 검이 서로 맞부딪히며 섞였다.

이제는 끝내야 할 때.

“홀드~.”

마법을 걸었다.

“!!!”

그대로 굳어버린 놈.

벗어나고자 마력을 끓어 올리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봤자 안 통했다.

내가 뿌린 마법의 마나량이 녀석의 마력량을 훌쩍 넘었다.

이래서 인생 살면서 방심은 절대 금물인 법이다.

검질 하다가 마법까지 사용하는 나 같은 인간은 처음 대면할 것이다.

“너에게 개인적 감정은 없다.”

푸우욱.

투구도 쓰지 않은 백작의 목에 검 끝을 쑤셔 넣었다.

“케륵.”

무슨 말을 뱉으려고 입을 열던 놈의 입에서 핏물이 울컥 뿜어져 나왔다.

고통스러울 자에게 평안을 허락해야 할 시간.

뽑혀진 검이 빠르게 공간을 갈랐다.

촤아아앗.

핏물이 튀었다.

억울해 눈을 감지 못한 머리통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바닥에 떨어졌다.

쿠우웅.

피를 뿜으며 몸통이 넘어졌다.

사람 목숨을 함부로 하는 망나니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죽음의 재물이 필요했다.

후작을 비롯한 침략자에 대한 경고.

스윽.

다시 후작을 향해 겨눠지는 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는 아라돈 후작.

“죽여! 저자를 밟아 죽여라!!!”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

“…….”

카를 백작이라는 자의 죽음을 통해 맛 본 공포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귀족과 기사들이 아라돈 후작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타이밍이 적당했다.

이런 순간을 대비해 아린에게 잠시 물건 하나를 빌려왔다.

본래 부부 재산은 공동 소유.

재벌집 외동 사위는 처갓집 재산의 정당한 상속자였다.

왼손을 힘차게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크로얀 제국 황실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파아아아앗!

왼쪽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에서 빛이 터졌다.

그 순간 머리 위 높은 허공에 그려지는 황금빛의 거대한 드래곤.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르케우스가 포효했다.

아린이 사용했을 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드래곤 피어가 담긴 울음소리.

“모두 무릎을 꿇어라!!!”

파아아아아아아앗.

쿠아아아아아 쿠아아아아앗!

하르케우스의 드래곤 피어가 내 마력을 쭉쭉 빨아 마시고 공간을 찢을 듯 울렸다.

“드, 드래곤!”

“으으…….”

피어에 놀란 병사들이 자리에 주저 않았다.

소리에 놀라 귀를 틀어막는 자들이 대부분.

망연자실한 표정의 아라돈 후작과 귀족들, 그리고 기사들.

“바람아!”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쇄애애애애애애애애앳.

잠잠하던 대지 위에 거친 바람이 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넋을 놓고 멍청해져 버린 아라돈 후작이 정령에 의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주, 주군!!!”

“각하!!!”

귀족과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적장의 목이 필요한 법.

“터져라!”

번쩍.

작렬하는 전격 마법.

바람의 정령에 이끌려 둥둥 떠오른 아라돈 후작.

살기 위해 허공에서 바둥거렸다.

쩌적 쩌적!

그의 머리통과 몸통을 새파란 벼락이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어어어억!

수박 터지듯 폭발하는 후작의 머리통과 갑옷 안에 싸여있던 육신.

후두두두둑.

허공에서 이미 새카맣게 타 버린 살점과 뜨거운 김을 뿜어지는 핏덩어리가 뿌려졌다.

“…….”

아예 사고력을 상실해 버린 침략자들.

지금 자신들 눈앞에서 연속 불어 닥친 이 불행의 결말을 감히 짐작도 하지 못했다.

가열 차게 멈추지 말고 계속 밀어붙여야 할 때.

“꿇어라!”

엄청난 마력이 담긴 마지막 일갈.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강 건너편에 미리 대기 중이던 별동대가 말을 타고 나타나 후방의 길을 막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성문이 열리며 기사와 병사들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결전의 순간.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직 사라지 않고 선명하게 떠 있는 하르케우스의 그림자가 한 번 더 울부짖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드래곤이시여!”

털썩 털썩.

전의를 상실한 아라돈 후작의 병사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뒤를 이어 주군을 잃은 귀족과 기사들까지 고개를 숙였다.

감히 고개를 뻣뻣이 세운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대규모의 병력 모두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뱉지 못했다.

이 얼마나 완벽한 승리인가.

까칠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의 리포트를 끝낸 것과 같은 지금 이 순간.

남은 건 단 하나.

가자아아아아아아아!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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