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2화 (511/1,284)

 # 512

회귀의 전설

512장. 수호공작 (2)

‘황실 수호 공작이라고! 저자가?’

카이루 후작을 비롯해 한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금은 무너진 크로얀 제국 황실이지만 수호 공작이라는 직책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황실의 위급 상황시 수호 공작이라는 이름으로 황제와 버금가는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였다.

수호 공작은 황제를 제외하고 모든 자를 조사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당연히 황후나 황태자, 황녀 같은 황족뿐만 아니라 고위 귀족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또한 재정이나 군사 부분에서도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2의 황제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필 아린 황녀는 나이도 어리고 신분도 확인이 안 된 베커라는 자를 그 중요한 자리에 선임했다.

카이루 후작과 기사들은 혼란스러웠다.

황녀를 주군으로 받아들였기에 그녀가 임명한 수호 공작의 명도 당연히 따라야 했다.

그러나 쉽게 그에게는 고개가 숙여지지 않았다.

“경들의 우려스러움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여기 계시는 베커 수호 공작님은 정령사입니다.”

‘아무리 정령사라고 해도…….’

그간의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기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어려웠다.

수호 공작 정도의 자리를 수행하려면 진짜 목숨 걸고 따를 만한 능력을 겸비했는지 확인되어야 했다.

그래야 군말 없이 그를 수호 공작으로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었다.

“중급 사대 정령 모두들 소환할 수 있습니다.”

“!!!”

갈등하는 모두를 염두한 아린의 설명에 그제야 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정령사들 중에 그만큼의 축복을 받은 자는 거의 없었다.

물론 후작성에도 정령사가 존재했다.

하지만 겨우 불의 중급 정령사였다.

대우는 귀족급 이상의 대접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 수호 공작으로 임명된 자가 중급 사대 정령사라고 했다.

당혹스럽고 놀란 시선으로 수호 공작을 바라보는 기사들.

“더불어 엘프는 물론 드워프와도 거래하고 있는 대륙 유일의 인간 보장 신용자입니다.”

“아!”

“그런…….”

제국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춘 엘프와 드워프들.

현재 그들과 거래할 수 있는 자라면 뭔가 더 믿음이 가기도 했다.

사실 엘프와 드워프는 인간을 쉽게 믿지 않았다.

과거부터 엘프나 드워프와 거래할 수 있는 자는 무조건 신용하라는 말이 돌았다.

“그래도 부족하겠죠? 황제의 권한과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는 수호 공작의 능력으로는 말입니다.”

뼈가 있는 아린의 말에 모두는 침묵했다.

충성하겠다 말은 했지만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중적 태도를 바라보는 모두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런 심중을 헤아리는 아린의 처세술이 빛나는 자리였다.

나이 어린 황녀지만 충분히 황족다웠다.

“베커 공작님은…… 마법사입니다.”

“???”

마법사라는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거리는 기사들.

“그것도 7서클.”

“허어억!”

“7, 7서클!!!”

“정령사가 마법사?”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니나 다를까 사방에서 경악에 찬 탄성이 터졌다.

카이루 후작을 비롯해 가신들과 기사들 표정이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중급 정령사들 중에 기사는 제법 있었지만 마법사는 드물었다.

그런 능력자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다들 베커 공작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그 시선은 경의를 넘어 의문을 가득 품은 눈빛들이었다.

7서클 마법사는 그 자체가 움직이는 권력이었다.

마탑에서도 장로급 인물 정도 되는 이들이 7서클 마법사였다.

공왕들의 전속 마법사가 7서클이었다.

그런데 중급 정령사에 이어 고서클 마법사라는 베커 수호 공작.

모두가 베커를 향한 시선 속에서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네가 진정 인간이냐!

의구심 가득한 모두와 달리 베커 공작은 아린을 조용히 바라봤다.

“어떤가요? 그래도 황실 수호 공작이 되기에 부족한가요?”

아린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물었다.

“황녀님……. 확인하기 전까지는…….”

카이루 경이 이를 악물고 한마디 뱉었다.

중요한 문제였다.

정말 황녀의 말대로 실력이 확인된다면…….

‘제대로 해볼 수 있다!’

카이루 후작의 심장은 조금 전과 다른 이유로 미친 듯 뛰었다.

신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 크로얀 제국의 부흥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인생 남는 장사를 하는 일이었다.

제국이 영속되는 한 카이루 드 드보루 후작의 이름은 역사를 거듭하도록 널리 알려질 것이었다.

후사도 없는 카이루 후작에게 명예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가문이야 조카들 중 누군가 이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루 이름은 세상에 하나뿐이었다.

사후에도 길이 남을 것은 오직 명예.

카이루 후작이 뜨꺼운 시선으로 베커 수호 공작을 바라봤다.

***

앗! 뜨거!

사람들 시선이 불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아린에게 당했다.

그녀가 황녀란다.

어쩐지 포스가 남달랐다.

단기 속성 족집게 과외로 육성된 나와는 뭔가 달랐다.

정규 교육에 8서클 1타 마법사에게 버프를 받은 아린은…… 생각보다 여우였다.

그녀는 나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볼 것 없는 영지에서 떠날 생각하지 않고 머물 때 살짝 의심해 봤어야 했다.

모든 판이 그녀의 의도대로 깔린 셈이다.

과대포장된 질소 포장 기술의 선구자가 여기에도 있었다.

드워프와 엘프가 보장하는 대륙 유일의 인간 신용자.

그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캬아’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내용물에 비해 포장이 아주 제대로 였다.

물론 어느 정도 진실에 기반을 둔 발언이기는 했다.

본래 맛있고 잘 팔리는 것들에 포장 기술이 더해지는 법이다.

그건 그렇고…….

능력 확인을 요청하는 카이루 후작의 눈빛이 방금 전과 달리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겸손이 미덕이라며 실력을 증명하지 않으면 아린과 나는 사기꾼 되는 거다.

이왕 깔린 판이니 제대로 놀아야 또 맛이다.

오늘 이 시간 부로 황실 수호 공작이라는 신분으로 낙하산 타는 거다.

역시 여자 친구는 황제의 딸이 최고다.

지구로 치면 그룹 부회장 자리에 앉는 거다.

“마법과 정령은 불공평한 것 같은데……. 이걸로 하죠.”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검?”

놀라며 다시 묻는 카이루 후작.

“남자는 검이죠.”

지난 생 소싯적 게임할 때도 나는 마법사나 궁수가 아닌 언제나 기사를 선택했다.

“…….”

나의 발언에 불쾌감을 표하는 후작 옆에 서 있던 귀족 급 보좌관.

다른 기사들과는 레벨이 달라 보였다.

넘쳐나는 마력이 제법 됐다.

무심한 듯했지만 나를 향해 투기를 뿜었다.

OK! 

아재 형님이 나하고 공식적으로 한판 땡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한 듯했다.

“실력을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그를 향해 도발적으로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카이루 후작과 눈빛을 교환하는 기사.

“허락한다.”

허락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후작.

나도 콜!

그렇게 판이 벌어진 한 판 승부.

아린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믿음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래 아린은 나만 믿어.

그까짓 황궁…….

한도 무제한 인간 블랙 카드로 긁어서 사줄게!

***

‘베커…….’

어쩔 수 없었다.

아린은 단단한 표정과 달리 마음은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스승님이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진실을 가감 없이 밝혔다.

그렇지 않고서는 카이루 후작을 끌어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라돈 후작은 철두철미하고 치밀한 자였다.

자신과 베커의 힘으로는 지금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영지를 지켜낼 수 없었다.

후작가에는 마법사들이 제법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면 지금의 성문 정도는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영주성이 다시 과거의 폐성으로 돌아가는 파멸만은 피하고 싶었다.

베커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백작급 이상의 세력이 전쟁을 벌일 때는 병력의 규모부터가 달라졌다.

이제는 베커 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아린은 스승에게서 받은 절대반지를 이용했다.

이제 일파만파 세상에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다.

마지막 남은 크로얀 제국의 적통 핏줄의 출현.

사방에서 인질로 삼거나 잡아 제거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적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제는 뒤로 물러날 수 없었고 실제적인 진짜 세력을 키워야 했다.

그 선두에 카이루 후작이 선택 받았다.

영지민들을 아끼고 기사들의 신임을 받는 카이루 후작이라면 기꺼이 크로얀 제국을 위해 검을 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베커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절대 이용하고자 함에서 내린 직책이 아니었다.

아라돈 후작과의 싸움이 아니었다면 아린은 조용히 베커 옆에서 잊혀진 채 살아도 됐다.

이룰 수 없는 제국 부활의 운명 같은 건 평생 마음에 품고 갈 수도 있었다.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였던 황제.

하지만 운명의 소용돌이는 거침없이 몰아쳐 한꺼번에 모든 걸 드러내고 말았다.

이제는 만천하가 볼 수 있도록 던져진 주사위였다.

베커는 그 누구보다 아린이 믿을 수 있을 만큼 강하고 듬직했다.

얼마 전에 요새에서 베커가 7서클 마법사라는 걸 스스로 말했다.

진작 의심은 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한순간 강하게 풍기던 강력한 마나의 향기.

아린은 마법을 사용해 베커의 서클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진짜 7서클 마법사였다.

그때서야 지금껏 이상하다고 생각됐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시간이 날 때마다 조심스럽게 자신에게 마법을 보여 달라고 청하던 베커.

마법 공식에 대해서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 마법을 배웠는지도 알지 못했다.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베커였다.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인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상관없었다.

자신의 흉한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던 베커가 좋았다.

난생 처음 키스라는 것도 해봤다.

차갑게 식었던 영혼이 일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았다.

엄격했던 스승님, 얼굴도 모르는 가족, 보기만 해도 두려워 도망치던 인간들 중 자신을 유일하게 따뜻한 인격체로 대해줬다.

그런 그를 위해 아린도 도박패를 던졌다.

그리고 결과는…….

차자장!

두 남자의 검이 뽑혔다.

기사들의 결투는 예의를 차리는 장난 수준이 아니었다.

성의 연무장에 자리가 마련됐다.

어느새 몰려든 기사들 수십 명이 구경꾼이 되어 검을 든 두 남자를 쳐다봤다.

결투를 지켜보는 모두의 시선은 진지했다.

“선수를 양보하겠소.”

베커가 여유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투구까지 착용한 기사 다벨 자작이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아앗!

검에 깃들이는 강력한 마력이 눈부셨다.

“타앗!”

기합과 함께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기사.

순식간에 두 남자의 거리가 좁혀졌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기사답게 일반 인간의 신체 능력과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쇄애애애앳.

허공을 거침없이 가르는 기사의 검.

빠르고 정확하게 베커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갔다.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격.

그런 상황 전개에도 베커는 아직 검을 든 채 서 있을 뿐 마주쳐 가지 않았다.

마치 이 자리에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

‘베커!’

혹시 잘못 되기라도 할까 봐 아린은 입을 꾹 다문 채 속으로 베커를 불렀다.

그 때!

번쩍하는 빛이 베커의 손에서 뻗어 나갔다.

기사의 움직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

카아앙!

불똥이 튀었다.

휘리리리리릭.

방금 전까지 다벨 자작이 들고 있던 검이 허공을 날았다.

“헉!”

다벨 자작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경악성.

“마, 말도 안 돼!”

“으으으으으.”

진지하게 결투를 바라보고 있던 기사들도 비명을 토했다.

제대로 공격 장면을 본 자가 드물었다.

기사들의 뛰어난 동체 시력을 벗어난 한 수.

검을 놓친 다벨 자작이 당황한 나머지 멍하니 자신의 빈 손을 내려다 봤다.

실제 전쟁터였다면 곧바로 목숨을 잃었을 상황.

비교 불가한 압도적인 무력 차이였다.

“더 확인하고 싶은 기사가 있나?”

베커가 구경꾼처럼 서 있던 기사들을 훑고 난 뒤 마지막으로 시선을 카이루 후작에게서 멈췄다.

“…….”

영지 제일가는 기사의 패배가 남긴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카이루 후작.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후후훗.”

냉정할 만큼 차갑게 웃음을 흘리는 베커.

그 순간…….

파바바밧.

네 개의 빛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사방에서 선명하게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 각기 다른 크기의 빛 덩어리들.

휘리리리리리링.

넓은 연무장의 동쪽 하늘에서 거친 바람이 불었다.

화르르르르르르.

서쪽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콰드드드드드드득.

단단한 연무장 남쪽 돌바닥이 거칠게 들썩이더니 한 존재가 바닥을 뚫고 나타났다.

쩌저저저저저저정.

북쪽은 새파란 얼음 덩어리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치솟았다.

“저, 정령!!!”

“사대 정령!”

기사들은 사방으로 몸을 돌리며 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고 기겁했다.

갑작스럽게 출현한 사대 정령.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최소 중급 정령들이었다.

“터져라!”

그 순간 베커의 손이 머리 위로 들려지며 하늘을 향해 뻗어졌다.

모두의 눈길이 그의 손끝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창공 높은 곳에 어느새 생성된 거대한 마나의 빛 덩어리.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빛이 폭발했다.

와자장차자자자자자장.

공간에 퍼지는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후작가의 모든 유리창들이 박살나며 터져 나갔다.

“크응…….”

지축을 흔드는 파열음에 귀가 멍멍해진 기사들과 성벽 위의 병사들이 양쪽 귀를 감싼 채 몸을 움츠렸다.

실로 엄청난 마력의 폭발.

고요해진 베커의 눈길이 다시 카이루 후작에게 향했다.

이 정도로 부족하냐 묻고 있었다.

“카이루 드 드보르 후작이……. 황실 수호 공작께 인사 올립니다.”

카이루 후작은 벌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그 누가 아닌 크로얀 제국 황실 수호 공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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