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5
회귀의 전설
505장. 미친 천재 (1)
“아스맛 그룹의 라훌 회장이 장태산이라는 놈을 만났다고?”
“그렇습니다. 회장님.”
“무슨 일로?”
“삼룡 자동차 문제 같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데…….”
“아직 그것까지는 파악 못했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무슨 자동차 장사를 한다고 설쳐. 월가 놈들 돈 확실해? 그 놈 돈 아냐?”
“미국 자본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습니다. 자금의 출처는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지만 로버트 라이언 회사가 연관된 건 분명합니다.”
“또 로버트 라이언이야? 그 자식은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 그래서 장태산이라는 꼬맹이하고 움직였다는 거야?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삼룡에 그 돈을 퍼부을 것 같으면 우리 주식을 샀어야지!”
연대 자동차그룹 회장실에 전문구 회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황소를 닮은 두꺼비 관상의 전문구 회장은 성격이 과격했다.
부친이었던 전준영 회장의 불같은 성격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눈치는 매우 빨랐다.
그룹이 분할될 때도 눈치 빠르게 알짜배기를 챙겼다.
정치권에도 줄이 많아 IMF를 비롯해 여러 경로로 몰아닥친 한파를 무사히 통과했다.
기한 자동차까지 흡수하면서 덩치를 더 키웠다.
내수시장을 휩쓸며 그 힘을 가세해 세계 시장에 노크를 했고 그게 먹혔다.
저렴하면서도 적당한 선에서 탈 만한 자동차를 소비자에게 공급한 게 성공했다.
동시에 그 부분이 약점이 됐다.
고급차 시장에 도전하려고 해도 과거의 저가 이미지가 발목을 계속 잡았다.
절치부심 도약의 때를 기다리고 있던 전문구 회장은 고심에 빠졌다.
‘삼룡과 도대체 뭔 얘기를 나눈 거야?’
라훌 아스맛 회장은 인도에서 투투 자동차로 연대 자동차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아스맛 그룹은 결코 무시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소형 자동차와 농기계 쪽에서는 알아주는 강자였다.
1998년 인도에 진출한 연대 자동차는 현지 맞춤형 차량을 선보이며 초석을 다지고 있었다.
지금은 소형차 위주로 돌리고 있지만 인도의 잠재되어 있는 소비심리가 폭발하면 중국처럼 고급차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 시장을 보고 투자하고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 찝찝한 일이 발생했다.
‘장태산 그 자식이 문제군…….’
어느 날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름, 장태산.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치부하고 무시했다.
안아 그룹 해체 때만 해도 해외 자본의 침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딸의 갤러리 인수를 비롯해 여러 사건에 그 이름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급히 그룹의 정보원들을 통해 알아보니 생각지 못한 거물이 돼 있었다.
오정 회장뿐만 아니라 로펌 이사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함부로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겸비한 재능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뛰어난 머리로 주식과 선물 투자 기법을 운용해 수조를 앉은 자리에서 벌었다.
뒤늦게 수합한 정보를 통해 모든 정황을 확인한 바였다.
한때 주식에 투자해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지만 주식시장이 활황이 되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
공부도 잘해 한국대 법대 재학 중이었고,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 합법적으로 군 면제까지 받았다.
보통 사람 이상을 뛰어넘는 놈이 이번에는 라훌 회장을 만났다.
삼룡 자동차 인수 건으로 만난 게 확실했다.
건방지게 외국 자본을 끌어와 삼룡 자동차 우선 협상자 지위를 확보했다.
채권단의 채무를 모조리 떠안고 삼룡차 노조원들의 주거 문제까지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장태산.
게다가 정리해고 된 직원들 복직까지 완벽하게 해결한 놈이었다.
그 파장이 연대 자동차 노조에까지 미쳐 암암리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꿈틀거렸다.
삼룡차에서 제시한 직원 복지 문제가 해소되면서 그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대웅 자동차 현동영 전 대표가 장태산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현동영이?”
전문구 회장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대웅 자동차 대표 시절 연대를 몹시 괴롭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도운중 회장의 명을 받고 연대보다 빠르게 세계 시장에 침투했다.
만약 대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연대 자동차는 없었다.
선단식 경영으로 미국부터 시작해 러시아, 인도, 베트남, 동유럽까지 자동차 공장을 확보한 대웅 자동차였다.
IMF가 1년만 늦게 터졌어도 대웅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대웅을 이끌고 있는 40대 후반의 젊은 대표가 현동영이었다.
지금은 60대에 가까워진 연배지만 두려웠다.
몇 년 전 대웅 자동차 판매 대표를 마지막으로 재계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그의 능력만은 전문구 뇌리에 깊이 남았다.
“삼룡 자동차를 맡기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문구 회장의 오른팔 격인 기획조정실 정진환 부회장의 보고가 계속 됐다.
전문구 회장이 연대 그룹 발령 시절부터 함께했던, 입이 무겁기로 소문이 자자한 기획통이었다.
“아무리 현동영이라고 해도 삼룡은 무리야. 프레임 방식을 아직도 사용하는 무식한 놈들에게 경쟁력이 있을 거 같아?”
전문구는 대놓고 삼룡을 무시했다.
시대가 변해 모노코코 방식으로 원가를 절감해야 함에도 삼룡은 그렇지 못했다.
낡은 공장 시설에다가 노하우도 없는 탓에 과거 설계 방식에 의존했다.
튼튼하지만 연비가 엉망이고 무엇보다 제조 원가가 높았다.
엔진과 미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한 물 간 녀석들이었다.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왠지 찝찝합니다.”
정진환 부회장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였다.
“그렇지? 임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버지 말투를 이어 받은 전문구 회장이 공감하는 시선으로 은근하게 물었다.
“TS 그룹과 천일 그룹이 서로 회사를 맞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월가 놈들 방식이야 다 똑같지. 회사를 키워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IMF 시절 당시 호되게 당한 연대 그룹은 해외 자금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대웅 그룹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어 해외 자본의 먹잇감이 돼 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냄새가 심합니다……. 냄새가.”
“나도 그래……. 장태산이라는 그 어린 놈…… 뭔가 있어……. 뭔가.”
대한민국 경제계의 주역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코를 킁킁거렸다.
확실하지 않지만 매우 불길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그 냄새.
하지만 아직은 그을린 듯한 냄새만 풍길 뿐이었다.
***
“보스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웅맨들은 상사를 대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 충성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도운중 회장 경영 스타일이 나에게 맞았다.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나이가 환갑에 가깝지만 오십 초반으로 보이는 젠틀맨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소파에 앉았다.
도운중 회장은 나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대웅 자동차를 화끈하게 밀어붙였던 전 대표, 현동영을 붙여줬다.
오늘은 면접 날.
하관우 회장과 천일건설 황효관 대표에게 운을 뗐다.
그들도 구체적으로 소식을 들은 듯, 현동영을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도운중 회장과도 통화를 했다.
쓸 만한 인재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도운중 회장님께서 칭찬이 자자하시더군요.”
“과찬이십니다. 회장님께서도 보스…… 가 엄청난 분이라는 얘기를 들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덕담 같은 인사가 오고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경청하겠습니다.”
“삼룡 자동차를 인수하게 될 겁니다.”
“우선 협상자 지위를 획득했다고 들었습니다.”
“거의 확정적입니다. 우발 채무까지 모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거절하면 채권단이 병신이죠.”
은행 자금도 모두 국민들 돈이었다.
자기들끼리 실적 잔치를 해대지만 결국은 피땀 흘려 저축한 국민들의 살이었다.
그걸 떼어먹고 살만큼 비양심적이지 않았다.
나의 수입 금액에서 몇 십억 달러 정도 떼어내는 것은 티도 안 났다.
“상당히 파격적인 인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스의 인품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쪽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한없이 퍼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삼룡 자동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회생 가치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자동차 경쟁력이 그 동안 경영주체들의 방만 경영으로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규모면에서 기대 경제도 실현이 안 됩니다. SUV 종가라는 타이틀 말고는 국민적 인식도 낮습니다.”
현실적이면서 냉정한 판단이었다.
“살려볼 생각입니다.”
“……. 외람되지만 삼룡은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바꿔야죠. 모조리.”
강하게 나갔다.
“삼룡을 인수한 컨소시엄에서 ‘볼부’ 또한 안았습니다. 통합시킬 생각입니다.”
“네? 보, 볼부와 통합요?”
“볼부는 지금껏 어떤 회사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자동차 공학에 강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삼룡과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기대 이상일 걸로 생각합니다.”
“볼부는 가격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볼부는 럭셔리 브랜드로 나갈 겁니다. 삼룡은 그대로 갑니다.”
“보스……. 자동차 산업은 유기적 생명체와 같아서 단박에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공장을 준비하십시오. 자동차 경량화와 연비 향상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 말씀은…….”
“모노코코 조립 방식에 고온 성형과 냉각이 동시에 이뤄지는 인장강도 1500mpa 이상의 초고장력강으로 주요 차체를 생산하십시오. IIHS에서 실시하는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획득해야 합니다.”
“!!!”
나의 말에 현동영 예비 대표는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 보스. 핫스탬핑 공법이 투입되면 생산성이 낮아지고 금형제작비 단가가 치솟습니다.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중형차 기준으로 자동차 공장 원가는 판매가의 50%에서 60%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공장 원가는 그렇지만 광고비를 비롯해 연구비, 영업비, AS 비용까지 합치면 마진율은 10%에서 15% 사이입니다. 소용차는 더 박합니다.”
“반드시 그대로 진행하십시오. 자동화 설비 공장을 신축하시고요. 공장 부지가 남아 있습니다. 삼룡의 주력 차종인 SUV는 마진율이 더 높습니다. 소비자가 편리한 생활을 영위 할 수 있는 가치와 헤리티지를 품어야 합니다. 차들에 대한 소비자의 믿음과 애정이 샘솟지 않으면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음…….”
현동영이 깊은 신음을 흘렸다.
자동차 개발 기간/에는/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 안에 싹 뜯어 고치라는 얘기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새로운 대형 SUV와 중소형 SUV를 동시에 준비하십시오. 투자자금은 한 차당 3000억 이상입니다. R&D 개발 부서를 연대 자동차 규모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대웅 자동차 시절 인맥을 동원해도 상관없습니다. 볼부에서도 연구진을 파견할 예정이니 참고하십시오.”
“…….”
정신없이 삼룡차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자 현동영 예비 대표는 멍한 표정이 됐다.
그리고 아직 얘기는 끝나지 않았다.
“음향 시설을 비롯해 최신 전자 장비를 투입하십시오. 소비자의 감성을 싸구려로 만들지 않는다면 자동차 사업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진율을 낮춰도 상관없습니다. AS는 기본 5년에 10만Km입니다. 한 번 타면 최소 그 기간 동안에는 고장이 나면 안 됩니다.”
현동영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원가를 낮추려다 보니 자동차 품질이 개판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소비자가 아무리 애지중지하며 사용해도 품질이 낮으면 고장이 잦은 건 당연했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걸 막아야 했다.
안전하고 잔고장이 없으면서 미래 지향적 디자인과 신기술 적용이 조화를 이뤄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등을 돌렸던 소비자들이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특히 지금은 스마트폰과 SNS 세상이 활짝 열렸다.
앞으로는 더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솔직하고 묵묵하게 앞으로 나가야만 소비자의 심장을 감동시켜 성공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이 자료 한 번 보시겠습니까?”
탁자 위에 있던 노트북 화면을 돌려줬다.
뭘까 하는 시선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현동영.
“허억! 이건!!!”
***
현동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운중 회장으로부터 삼룡 자동차 대표로 낙점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TS그룹 하관우 회장으로부터도 주의 사항을 들었다.
이력서를 보낼 것도 없이 삼룡 자동차 투자자 사무실에서 면접이 이루어졌다.
보스라고 칭해지는 인물 앞이었다.
나이는 한참 어렸지만 미리 알아본 젊은 투자자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실력 있는 경제인들이 보스로 모시기에 충분했다.
그 젊은 보스가 생각지 못한 파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삼룡차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제시한 플랜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정복이라는 엄청난 야망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야망을 꿈으로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현동영은 금방 알아챘다.
쿵! 쿵!
현동영의 심장도 젊은 투자자 못지않게 거칠게 뛰었다.
실현하지 못했던 대웅 자동차의 꿈이 어쩌면 이곳에서 실현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수천 억 투자비를 거침없이 투입하겠다고 말하는 투자자.
그만큼의 돈을 쏟아 부으면 당연히 걸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면에서 강세인 볼부와 합쳐지면 그의 말대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날 게 확실했다.
그 동안 코가 몹시 높았던 볼부였다.
그런 볼부를 보스가 안았다.
삼룡차의 튼튼함과 합쳐지면 세계적 메이커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
마침 보스가 보여준 노트북의 자료화면.
“마음에 듭니까?”
“보, 보스…….”
“이 녀석이 대형 SUV 컨셉카입니다. 이 녀석은…….”
화면이 자동으로 바뀌면서 등장한 새로운 자동차의 디자인과 간략한 설계 도면을 설명하는 보스.
‘대박이다! 이것들이 세상에 나간다면……!’
현동영 대표는 탁자 밑에서 두 손을 움켜잡았다.
자동차 전문가인 자신이 봐도 소비자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한 디자인의 신차 설계도면.
전문가들이 수년 이상 공들여 완성한 작품이 확실했다.
누군지 몰라도 머리가 아주 좋은 디자인 조력자가 젊은 보스 측근에 있었다.
“며칠 동안 심심해서 디자인을 좀 뽑아 봤는데 마음에 듭니까?”
“네? 며, 며칠요??? 그, 그것도…… 지, 직접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