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3화 (502/1,284)

 # 503

회귀의 전설

503장. 신의 대리인 (1)

“장태산이라고?”

“아버지. 그 자식이 나타나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건에 걸린 커미션이 10%입니다. 5000만 불짜리 사업이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끄으응.”

대통령의 친형 최상득은 큰 아들 최시형의 말에 속 끓은 소리를 토했다.

현재 환율로 600억짜리 공돈이 날아갈 사건에 입안이 아주 썼다.

호주 멜버른 메커리 본사에 근무하는 아들 최시형이 급하게 국내로 귀국했다.

인도 아스맛 그룹과 진행 중이던 삼룡 자동차 매각 작업이 파토 조짐을 보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월가 자본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매각 조건이 형성됐다.

아스맛 그룹에 국내 은행권과 연결해 주고 난 뒤 받을 돈이 적지 않았다.

“장태산 그 자식이 도대체 누굽니까? 왜 작은 아버지는 그냥 두고 보고만 계시는 겁니까?”

최시형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 거렸다.

작은 아버지가 서울시장 시절부터 메커리에 취직했던 최시형.

별능력 없는 유학파였던 그는 최병박 정권에 들어서면서 팀장급이 됐다.

지위와 달리 그는 메커리 자산운용그룹의 핵심 투자자의 최측근이었다.

과거 최병박이 연대 건설 대표 시절에 빼돌린 상당 자금이 메커리에 투자됐다.

그런 비자금 관리인으로 최시형이 선임된 셈이었다.

그리고 최병박이 한국 대통령이 된 이후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승승장구했다.

한국 도로와 항만 건설을 비롯해 민간 투자자금이 집행된 사회간접자본에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법적으로 보장받았다.

수십 년간 앉아서 이자만 받아도 몇 대가 먹고 살 만큼의 돈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해외 그룹의 한국 기업 인수에도 메커리가 직간접적으로 관여됐다.

일본이나 중국, 무조건 외국 자본 출처를 묻지 않았다.

이익이 된다면 멀쩡한 위성도 하루아침에 고물로 만들어 팔아먹었다.

비자금 형성에 아주 눈이 멀어 있었다.

“로버트 라이언……. 그의 파트너다.”

“네? 로버트 라이언요?”

최시형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월가 투자자의 전설에 비하면 메커리는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한 게 현실이었다.

“장태산 건드리면 백악관이 나선다. 네 작은 아버지가 약점이 많잖아. 그래서 힘을 못 쓴다.”

“알아보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 같던데 그런 연줄이 다 있습니까?”

“그놈, 주식과 선물 투자로 수조를 벌었다. 다들 그걸 높이 산 것 같다.”

“수조요? 개인이 말입니까?”

외국에 나가 살면서 외국 회사에 근무했던 최시형은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어린놈이 아주 무서워. 안아와 천일 그룹 인수도 그 장태산이라는 놈이 관여했다.”

“장난 아니군요.”

“그래 그러니까 이번 일은 지워버려. 괜히 건드려 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 그놈은 왠지 찝찝해. 일본 쪽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까 큰 건만 신경 써라. 그건 그렇고 멕시코에 큰 건 있다고?”

최상득이 말을 돌리며 다른 건에 관심을 보였다.

“이게 아주 대박입니다. 흐흐흐.”

최시형이 눈치 빠르게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좋은데?”

“아베스트 이상 뽑아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

아베스트라는 말에 최상득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캐나다 정부가 1달러에 판다는 것에 4조 5000억을 투자했다.

채무가 2조가 넘는 무가치한 유전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다.

뒤로 챙긴 자금이 투자금의 30%가 넘었다.

최병박 정부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원외교라는 미명하에 석유공사를 비롯해 공기업들이 돈을 물 쓰듯 뿌렸다.

아베스트뿐만 아니라 쿠르드 유전, 리튬 사업, 주바이르 프로젝트, 니켈 광산 투자, 남아공 유연탄 등등.

수십조가 넘는 자금이 제대로 된 실사나 회의 없이 투자가 결정됐다.

뒤로 커미션을 받은 국회의원들은 예산 집행 찬성 버튼만 눌러주면 그만이었다.

국회의원 수가 압도적으로 받쳐주는 여당의 예산 집행은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어도 될 만큼 빨랐다.

벌써 뒤로 챙겨 쑤셔 박은 비자금이 수조였다.

그런 와중에 믿음직스러운 아들이 새로운 사업을 준비했다.

“동을 주로 생산하는 곳인데 사업성이 아주 좋습니다.”

“진짜 좋아?”

“그게 아니라 저희 사업으로다가 말입니다.”

“흐흐흐흐.”

아들의 영민함에 최상득은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광물자원공사 여유 자금이 빵빵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투자를 하면……. 최소 큰 거 1장은 챙길 것 같습니다.”

“오! 그래?”

“멕시코 정치인들에게 돈 좀 주고 신문 광고 몇 번 때리면 됩니다. 어차피 투자라는 게 손해도 날 수 있는 법 아닙니까~.”

이미 최 씨 가문에 있어 나라 돈은 집안 금고에 쟁여진 용돈과 다를 바 없었다.

오대강 사업으로 쏠쏠하게 받은 돈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보란 듯이 해외 사기꾼들과 대형 사업을 벌였다.

“누가 나설 거냐?”

“블루가 나섭니다.”

“그럼 됐다.”

암호명 블루로 불리는 익명의 대행인.

야당 의원들이 눈치를 채고 메커리에 대해 눈을 붉히면서 대리로 블루를 내세웠다.

“며칠 내로 사업 계획서 올리겠습니다.”

“빨리 추진해야 된다. 곧……. 의원들이 줄을 갈아탈 시기다. 괜히 놓쳤다가는 들통 날 수 있다.”

정치 9단인 최상득이 아들에게 주의를 줬다.

벌써 정치권력이 이동하고 있는 낌새를 감지했다.

“걱정 마십시오.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여론에 세뇌당한 멍청이들이 실드 쳐줄 것 아닙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라. 그 정도는 돈으로 관리가 다 된다.”

“아버지만 믿겠습니다.”

“몸조심하고……. 절대 언론에 얼굴 보이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가기 전에 사촌들 한 번 보고 가. 용돈도 좀 넉넉히 줘라. 요즘 작은집 큰놈이 약에 빠졌다고 하니까 같이 어울리지는 말고.”

“그놈은 언제 철들려나 모르겠습니다.”

“욕심 많은 제수씨가 다 망쳐 놨지. 쯧쯧.”

엄연한 영부인인 제수씨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최상득.

요즘 들어 해외 한식 사업이다 뭐다 해서 돈 빨아 마시려다가 여론 눈총 받은 제수씨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가락 다이아몬드 사건은 아직도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도 준비하십시오……. 작은 아버지 퇴임하면 정산해 달라고 나설 겁니다.”

“그건 걱정마라. 나도 다 준비하고 있으니…….”

한 나라의 대통령인 피붙이도 경계하는 최상득.

사기 판에서는 오직 직계 가족만 믿을 수 있었다.

***

“정말 고마워……. 태산아.”

9월이 됐다.

길고 길었던 2010년 여름도 끝물을 달렸다.

아직 낮에는 더위가 남아 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불었다.

오랜만에 찾아 온 학교.

예린 선배가 아이스커피를 사줬다.

“뭐가 고마워요?”

“그냥 이것저것 다…….”

예린 선배가 보기 좋게 웃었다.

얼마 전 본가에서 서련이를 비롯해 예린 선배, 도도희 상무까지 합세해 3일을 놀다 해산했다.

누구 보다 술친구 생겼다며 아버지가 세 여인을 좋아라 하셨다.

세 사람의 도움으로 공사에 참여한 목장들을 거하게 대접했다.

돼지도 잡고 소도 잡았다.

고기를 굽고 지지고 술자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늦장마 빗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나눴다.

목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술을 마셨다.

술이 취하니 노래가 곳곳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특히 서련이를 알아보는 목장들이 춤과 노래를 주문했다.

몸값 비싼 서련이가 공짜 재능을 뿌렸다.

흥이 넘쳤다.

그렇게 8월까지 알차게 보내고 복학해 등교한 학교.

그 사이 난 휴학 한번 한 적 없이 군대까지 다녀온 예비역이 됐다.

“공짜 아닙니다.”

“그래 알았어. 네 부탁은 반드시 들어줄게.”

“부탁이 아니라 정당한 청탁이라고 해두죠. 사적인 부탁은 하지 않습니다.”

예린 선배가 참하긴 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한 번 깨진 항아리는 붙여도 금이 남듯 사람의 인연도 다시 붙일 수 없는 법이었다.

예린 선배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본가에 있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모습을 몇 번 봤다.

아마 오동성과 만나지 않았다면 내 공식 파트너는 예린 선배였을 가능성이 컸다.

첫사랑 버프는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면접 준비는 안 합니까?”

“공부는 계속 하고 있어. 넌 어떻게 할 거야? 합격해도 학교 계속 다닐 거야? 그것도 아니면 연수원에 들어갈 거야?”

사법시험 2차 문제는 예상했던 그대로 나왔다.

나와 스터디 그룹을 했던 친구들은 고득점을 맞을 것이다.

“학교 휴학하고 연수원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판사나 검사는 취미 없습니다. 그런 선배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3학년인 예린 선배는 판사가 꿈이었다.

연수원 입학보다는 학교를 먼저 졸업하는 맞았다.

“이럴 줄 알고 계절학기까지 들어놨어. 조기 졸업 코스니까…… 연수원 들어가도 돼. 어차피 4학년 전공과목은 점수 나오잖아.”

사법시험에 패스한 학생들은 기본 점수가 보장 됐다.

한국대라고 해서 룰이 다르지 않았다.

“그럼 같이 들어가겠군요.”

“연수원도 기대할게~.”

예린 선배가 뭘 안다는 듯 묘하게 웃었다.

“조용히 살 생각입니다. 평범하게 아무 탈 없이 변호사 자격증 하나 정도만 획득할 생각입니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

“안 될 건 뭐가 있습니까?”

“……1000명이 넘는 연수원생들 중에 반수가 여자야. 그 여자들이 태산이 너를 가만 두겠어? 그럼 내가 손에 장을 지질게.”

“…….”

예린 선배 예상을 적극 부정 못했다.

지금도 교정을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속닥거렸다.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문제인 법.

차가운 아이스커피로 목을 축였다.

“태산아!”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

“수업 있어서 나 먼저 갈게.”

예린 선배가 알아서 자리를 피해줬다.

“오늘 커피 고마웠습니다.”

“그럼 다음에 밥 사~.”

“……알겠습니다.”

떠날 때를 아는 예린 선배 뒷모습이 오늘따라 작아보였다.

“장태산 씨! 너무한 거 아냐?”

엘자 그룹 회장 막내딸 고연지가 앞으로 와서 섰다.

“뭐가?”

“어떻게 방학 때 연락 한 번 안 하냐? 그렇게 순댓국 한 그릇 사주는 돈이 아까워?”

순댓국으로 인연이 된 고연지는 여전히 하는 짓이 귀여웠다.

“군대 갔다 왔어.”

“……군대? 면제 아니었어?”

“4주간 기초 군사훈련 이수해야 해.”

“히잉! 그럼 진작 얘기하지. 아빠 아는 분들이 군에 많은데…….”

나도 아는 사람 많았다.

한미연합사령관이 빽이라는 걸 고연지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럼 입소할 때 불렀어야 할 거 아냐. 난 친구도 아냐?”

새카만 눈동자가 매력적인 큰 눈으로 날 흘겨보는 고연지.

“나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 더 챙겨드려. 요즘 머리 아프실 텐데.”

“아…….”

고자룡 회장과 아주 화끈하게 헤어졌다.

앞으로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고자룡 회장은 세 번은 무릎을 꿇어야 할 판이었다.

“아빠는 아빠고 친구는 친구지. 난 사업에 별 관심 없어.”

고연지가 그사이 많이 성숙해졌다.

선을 딱 그었다.

“졸업하고 뭐할 건데?”

“유학 갈 생각이야……. 엄마가 미국에 가서 박사 밟고 오래. 난 경영인 체질이 아니라나…….”

엘자 그룹 여성들의 운명은 비슷비슷했다.

“어머님이 현명하시네. 내가 봐도 고연지는 경영인 체질 아냐. 내가 엘자 그룹 넘겨준다니까 싫다고 했잖아.”

“그거…… 장난 아니었어?”

“난 그런 말로 장난 안 해.”

“…….”

큰 눈으로 나의 진심을 파악하려는 그녀.

이미 지나간 배였다.

“제대 기념으로 순댓국 쏠게.”

“정말? 흐으으으.”

순대국에 고연지가 또 정신줄을 놨다.

“코하네는?”

“일본으로 돌아갔나 봐. 잘 있으라는 문자 보내오더니 연락이 안 돼. 번호도 바뀐 것 같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서운해?”

“그사이에 정이 든 것 같아.”

“때가 되면 연락 오겠지.”

“그럴까?”

“인연이라면…….”

운명을 믿는 자에게 떨어져 있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었다.

- 거친 세상 운명이라도~♫.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회사였다.

“네. 무슨 일입니까?”

- 대표님.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유세라 팀장이었다.

오늘은 그 어떤 선약도 잡혀 있지 않았다.

“손님요? 어디서 말입니까?”

- 인도 아스맛 그룹의 회장님이 회사에 직접 찾아왔습니다.

“네? 아스맛 그룹의 회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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