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1화 (500/1,284)

 # 501

회귀의 전설

501장. 전설의 예비역 (3)

띠이잉.

맑은 종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심신이 안정되는 맑은 종소리는 고요한 음파를 만들며 공간에 신과의 교감을 이끌어냈다.

스르륵.

라훌 아스맛이 최고의 경배를 올렸다.

신께 올리는 황금잔에는 맑은 향유가 가득 담긴 채 불꽃 심지를 태웠다.

“마혜수라 마혜습벌라…….”

제사장이 그가 모시는 신을 향해 찾아온 제자의 간절함을 대신 청했다.

파르르르 파르르르릇.

파란 재를 온몸에 칠한 제사장이 몸을 떨었다.

인도에서 최고 계급이라 불리는 브라만 중에서도 시바 신을 모시는 제사장.

지극히 높은 계급의 제사장은 온 마음을 다해 시바 신을 청했다.

브라마와 비슈누 그리고 시바 신은 힌두교의 대표적인 신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소유한 시바 신은 힌두교도들이 추앙하는 최고위 신이다.

위대한 고행으로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된 시바 신은 그 자체가 창조이며 파괴였다.

1008개의 얼굴을 소유한 신으로서 여성이며 남성이었고 영원한 휴식이자 창조의 원천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 삼지창을 옆에 세우고 이마 중앙에 박혀 있는 명상의 눈으로 세상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런 시바 신이지만 파괴도 주저하지 않았다.

옛 이름 루드라의 이름으로 폭풍과 뇌우를 뿌리고 죽은 영혼들을 부려 저주를 내리기도 했다.

그런 시바의 부인 사티도 만만치 않았다.

파괴자로서 전쟁과 아수라의 피로 목욕하기를 즐겼던 사티였다.

악마 전쟁에서 악마 다바바스와 아수라들의 목을 벴다.

사티는 동시에 자애로운 구원자로도 알려졌다.

그런 시바 신과 사티의 신상이 존재하는 신전에서 경건한 의식이 거행됐다.

“……신이시여 우둔한 이 어린 자식에게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훌 아스맛이 지혜를 청했다.

시바의 다른 이름 중 하나가 재보의 신이었다.

황금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를 지배하는 신이 바로 시바였다.

힌두교를 믿는 자들이 시바를 찬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자애롭지만 엄하고 무서운 파괴자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넓은 도량을 소유한 신은 오직 시바뿐이었다.

그만큼 위대한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시바는 모든 생명력의 원천으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는 수백 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람바랏따 람바랏~♫”

눈을 감은 제사장의 입에서 신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촤라라랏 촤라라라랏.

동시에 넓은 신전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제사장.

순식간에 무아경에 빠진 듯 제자리에서 거칠게 휘돌았다.

제사장의 춤사위는 점점 더 격해졌다.

창조와 그것의 유지, 그리고 파괴를 행하는 모든 행동이 바로 시바의 춤에서 비롯됐다.

“마혜수라 마혜습벌라!”

라훌 아스맛은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오늘따라 다른 날과 분위기가 달랐다.

쿵쿵! 

라훌 아스맛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신전에 들기 직전 양기를 제거했다.

신께 나오기 전에 거친 욕망의 찌꺼기를 제거함이 신에 대한 기본 예의였다.

“그는…… 나의 또 다른 이름……. 파괴와…… 창조의 아들……. 그를 적으로 삼지 말라. 그는 성스러운 산에서 뻗어간 나간 나의 자손……. 거친 포효가 뱀과 황색 귀신들을 잡아먹을 것이다…….”

“!!!”

생각지 못한 엄청난 신탁이 내려왔다.

결코 시바 신은 인간 세상에 관여하기를 즐기지 않았다.

보통 제사장이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써 사람들의 청을 처리하건만 오늘은 달랐다.

아버지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가문의 보물을 받치고 얻었다는 신탁보다 파장이 강했다.

라훌 아스맛은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다.

털썩.

급기야 제사장은 기가 다 빠진 듯 바닥에 쓰러졌다.

“제사장님!”

라훌 아스맛이 급하게 제사장을 향해 달려갔다.

바이샤 계급인 라훌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는 브라만 계급이었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시절 상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라훌의 아버지는 바이샤 계급인 상인의 딸과 결혼을 했다.

그때 신분이 추락했지만 라훌의 집안은 든든했다.

지금 쓰러진 제사장도 그의 사촌형이었다.

어차피 바이샤 계급까지는 아리안 족의 피였다.

“라훌…….”

제사장이 힘겹게 눈을 떴다.

“제사장님!”

“……신께서 지혜를 주셨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분명 신의 자식과 인연이 있을 것이다. 그와 척을 지지마라. 그는 신성한 산의 후계자……. 시바께서 오른팔로 안은 자이다.”

신께서 오른 팔로 안은 자라함은 곧 그의 존재 자체가 신의 아들임을 의미했다.

‘도대체 누구!’

라훌 아스맛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혜를 구하고자 신전을 찾았을 뿐인데 예기치 않게 신에게 신탁을 받았다.

“최근 새롭게 너와 사업적으로 얽힌 자가 있느냐?”

“……헛!”

그 순간 라훌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설마 한국 사업?’

아직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정체는 모르고 있지만 삼룡 인수와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시바께서 항복시킨 뱀은……. 일본을 말한다. 동시에 황색 귀신을 부리는 자는…… 중국이 섬기는 신이다. 이 사실을 꼭 명심해라. 라훌…….”

“신의 뜻대로 될 것이옵니다.”

라훌은 고개를 숙여 신의 명을 받아들였다.

‘한 번 더 자세히 파봐야겠어……. 그리고 신의 자식과 인연을 만든다!’

***

헛! 서, 서련!!!

“으아아아! FOB 서련이다!”

“저 누나 그때 피자! 장주여고 그 예쁜 누나?”

“서련아! 나야 나! 너랑 사진 찍었던 형철이 오빠!”

난리가 났다.

갑자기 등장한 핫한 걸그룹 센터 메인과 장주여고 학생이었던 미녀 누나의 등장.

“혀, 형철이 너 뭐야? 서련이를 어떻게 알아?”

주희철은 자연스럽게 서련을 아는 체하는 형철을 추궁했다.

“너 몰라? 태산이가 FOB 소속사 이사야. 그래서 나 군대 시절 FOB 싹 끌고 면회 왔다. 나 그날 이후 꽃길만 걸었다.”

“뭐, 뭐라고!!!”

주희철은 김형철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충격이었다.

군대 시절 군바리들의 가장 핫한 워너비가 FOB였다.

깜찍, 귀여움, 발랄함과 섹시함에 청순한 매력이 각기 다른 걸그룹 맴버들.

모든 부대에서 한 번 보기만 했으면 하는 게 소원이지만 그녀들은 군부대 위문 공연은 다니지 않았다.

그런데 형철이에게 면회를 왔다는 서련과 FOB.

희철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태산이를 만나면 군대 제대한 얘기로 눌러보려고 했는데 도리어 희철이 충격타를 맞았다.

여전히 식지 않은 장태산의 인기.

급기야 조금 전과는 또 사람이 달라 보였다.

한 여름임에도 시원해 보이는 슈트 차림의 드레스 코드.

몸매와 얼굴이 되니 뭘 걸쳐도 그 자체가 모델이었다.

어떤 브랜드 제품인지 몰라도 명품일 게 확실했다.

구두부터 시작해 옷, 신발, 시계까지 모두 다 화려하고 찬란했다.

머리칼은 이제 막 제대한 군바리처럼 짧았지만 나름 그 자체가 또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더해 남자의 가장 강력한 액세서리일 수 있는 아름다운 여성 도도희라는 여직원.

급기야 새로이 등장한 두 여인.

‘부러운 새끼……. 난 이번 생에는 글렀다.’

주희철은 속으로 포기 선언을 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저렇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빠? 여기는 무슨 일이야?”

4년 전 피자집에서 생생하게 겪었던 장면이 데자뷰처럼 다시 재연됐다.

그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오늘의 이 순간.

“태산아…….”

팔짱을 끼며 들어오던 두 여인 중 한 사람이 다시 장태산을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장태산을 따라 몸을 일으키는 도도희.

파바바밧.

세 여인의 시선이 한꺼번에 부딪쳤다.

그리고…….

***

“나야 동창회 왔지. 그런 두 사람은 뭐야?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어?”

갑작스럽게 장주시에서 만나게 된 팔짱을 끼고 나타난 서련이와 예린 선배.

나도 황당했다.

한때 나를 두고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여인이 마치 친자매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언니가 회사로 연락을 해와서 만났어. 마침 휴가 기간이라 고향에 같이 놀러왔지……. 그런데 오빠는 뭐야? 한 달 동안 연락도 없고!”

서련이 눈에 불을 켰다.

서운해할 만했다.

그동안 바빠서 FOB를 챙길 시간이 전혀 없었다.

M.T.S 엔터테인먼트 황 대표에게만 조용히 군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FOB 맴버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국방의 의무.

“군대 다녀왔어.”

“……구, 군대? 내가 아는 그 군대?”

“아! 맞아! 태산이 사법시험 2차 끝나고 한 달 동안 국가의 부름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군대였어?”

예린 선배도 나의 최근 근황에 대해 몰랐다.

“오오오오! 맞아! 우리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장태산! 너 군대 면제지? 훈련소로 퉁 친 거야? 와아아아아. 역시 내 친구!”

형철이가 아는 체를 했다.

“뭐야! 태산이 메달 따고 군대 면제받았다고!!!”

희철이 눈은 이제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전화로 군 제대했다고 자랑했던 희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정없이 구겨졌다.

“헐……. 대박! 그럼 태산이 4주로 땡친 거야?”

“하아아아……. 하늘은 뭐가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우리 조상님들은 복 안 쌓고 뭐하신 거냐고요!”

“태산이 저 자식도 우리와 같은 예비역이란 말이야? 으아아아아아!”

친구들의 한숨과 비명 소리가 카페 공기를 다 뒤집어 놨다.

하긴 맥이 안 빠지면 그게 이상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상상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세상을 살고 있었다.

살수들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위험에 빠졌다.

또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돈 벌어 어둠 속에서 애국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군대는 당연히 안 가도 됐다.

회귀하기 전에 뺑이 한 번 쳤음 할 일 다한 거다.

예기치 못한 자리에서 나는 또 전설의 예비역이 됐다.

“그런데……. 누구세요?”

서련이 잔뜩 경계심을 보이며 도도희를 향해 물었다.

성수 덕분에 서련이처럼 피부가 탱탱해진 도도희.

예린 선배도 관심어린 시선으로 도도희를 쳐다봤다.

“서련 양~ 반가워요. 제가 팬인 거 모르죠?”

도도희는 특유의 붙임성 있는 말투로 활짝 웃으며 서련에게 다가갔다.

“누구시길래…….”

그런 점에서 서련이도 만만치 않았다.

“장태산 대표님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도도희 상무라고 해요.”

“네? 사, 상무요???”

자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도도희가 상무라고 직함을 말하자 서련이 깜짝 놀랐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예린 선배도 의아한지 궁금한 듯 물었다.

“예린 선배. 프린스턴 대학교 박사 학위까지 마친 한참 인생 선배야. 나이도 몇 살 위니까 말 조심해 줘.”

“!!!”

도도희에 대한 소개를 들은 예린 선배와 서련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누가 봐도 도도희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의 동안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제가 동안이죠? 이게 다 대표님 덕분이랍니다~.”

반달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도도희,

참으로 위험한 행동이었다.

두 여인뿐만 아니라 늑대 눈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날 노려봤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애정 가득한 살기.

“그런데 회사 상무님이 오빠 동창회에는 왜 오신 거예요? 지금 이 시간이 근무의 연장은 아니잖아요.”

서련의 젊은 공격력은 깊고 예리했다.

“오늘 자동차 회사 인수 건으로 왔다가 동행하게 됐어요. 바빠서 휴가를 못 갔더니 대표님이 본가에서 보내자고 불러주셨어요~.”

“…….”

자동차 회사 인수라는 말에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친구들은 얼이 나간 눈으로 나와 도도희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직 대학생 신분인 그들 귀에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보, 본가요?”

서련이는 자동차 회사 인수 따위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본가라는 말에 꽂혔다.

“오빠……. 아니 이사님. 군대도 말없이 갔다 오고…… 본가에도…….”

눈물이 핑 돌더니 곧 뚝뚝 흘릴 것처럼 돼 버린 서련의 눈동자.

아오! 하늘의 넉넉한 안배는 참 지독했다.

“너도…… 그럼 같이 집에 갈래?”

라면 먹고 갈래 파생 버전도 아니고.

“정말요???”

“뭐…… 어때.”

“와아아아아! 이사님 짱!”

“태산아 나도 잘 곳이 없는데…….”

예린 선배도 끼어들었다.

저 누나는 오늘 또 왜 그래?

“선배도 같이 가요. 둘이나 셋이나…….”

어차피 부모님과 쌍둥이 눈총받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와아! 장태산……. 이 나쁜 놈!”

“저걸 죽여 살려?”

“신들도 무심하시지! 왜 저런 사악한 자에게 축복을 몰아주시는 겁니까!”

늑대 무리처럼 울부짖는 친구들.

- X바 신이 당신을 깊은 눈빛으로 지켜봅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알림음.

그런데 신 이름이 X바?

-X바 신이 당신에게 정력의 축복을 내립니다.

- X바 신이 당신에게…….

- X바 신이…….

그리고 연달아 들려오는 X바 신의 축복.

X바! 지금 나랑 장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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