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0화 (499/1,284)

 # 500

회귀의 전설

500장. 전설의 예비역 (2)

“투자가 위험하다고?”

“그렇습니다. 주인님.”

“……누군가? 또 중국인가?”

“월가 사모펀드 자금입니다.”

“월가?”

인도 뭄바이의 부촌 알타 마운드에 위치한 대저택.

정원이 딸린 7층 건물은 주변 주택들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크고 화려했다.

두바이 7성 호텔급 저택에 미용실과 수영장, 헬스장을 비롯해 영화관, 마사지룸은 물론 헬기장까지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었다.

인도 재계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아스맛 그룹의 주인이 머무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라훌 아스맛 회장이 보고를 받았다.

올해 나이 오십 대 초반의 라훌 회장은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풍염한 몸매의 반전라 상태인 이십 대 여성 둘이 라훌의 가슴과 다리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오일이 듬뿍 발라져 있는 라훌의 몸은 기분 좋게 끈적였다.

여성들은 몸까지 이용해 라훌에게 행복감을 안겼다.

그런 라훌 뒤로 공손한 자세로 시립한 비서가 투자에 관련한 일을 보고했다.

“로버트 라이언 쪽 인물입니다.”

“로버트 라이언……. 그가 나섰단 말이지?”

라훌 아스맛이 입맛을 다셨다.

아스맛 그룹은 인도에서 자동차를 중심으로 성장한 기업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조립 형태의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라훌 아스맛이 회장이 된 이후부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인도를 벗어나 농기계 분야에서는 적극적 M&A로 세계적 기업이 됐다.

그런 그가 삼룡 자동차를 두고 입맛을 다셨다.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인도 고급차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기술 노하우가 필요했다.

조립차나 저가차만 만들었던 아스맛 그룹은 산하의 투투 자동차를 육성하기 원했다.

그런 상황에서 경쟁자가 나타났다.

“조건은?”

“……구조조정당한 전 직원 복직을 비롯해 모든 채무 인수와 채권단 주식을 현물 매입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미쳤군.”

5억 달러 정도를 투자하려고 했던 라훌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삼룡차는 그 정도의 투자가치가 없었다.

불경기에 매물로 나온 자동차 업체들이 삼룡차 말고도 많았다.

하지만 SUV와 대형 세단의 노하우를 동시에 소유한 메이커는 또 드물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난색을 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곳은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니까.”

권력자들의 뜻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메커리 쪽에서는 뭐라고 그래?”

“아무리 한국 정권과 강한 줄이 있다고 하지만 월가 자본을 무시할 수 없을 겁니다. 메커리는 본래 한국인들이 주인이니까요.”

“후후훗. 한국도 인도와 다를 게 없어. 더러운 정치꾼들이 만들어 낸 사모펀드에 잘도 나라의 부를 바치다니…….”

라훌은 비웃음을 흘렸다.

어리석은 정치인들 수작에 요리되는 한국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품었다.

“신전에 갈 것이다. 정갈하고 성스러운 제물을 준비하도록.”

“주인님의 명을 받드옵니다.”

느긋하게 눈을 감으며 마사지의 감흥을(?) 누리는 라훌.

그의 마음을 아는 듯 여인들의 손길은 대범하게 움직였다.

***

“크으으……. 역시 사회물이 좋아. 이 평화로움~ 자유~ 그리고……. 흐흐흐.”

최전방 21사단 가칠봉에서 2년을 보낸 주희철은 이 순간 세상이 다 자기 것 같았다.

제대한 지 이제 3일째.

기상나팔도 없지만 6시만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났다가 멍하니 방 천장을 보다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까칠한 모포 대신 얇은 여름용 이불과 시원한 개인용 선풍기만으로도 만족했다.

느긋하게 기상한 뒤 어머니가 수고했다며 차려 놓은 고기반찬으로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말년에 후임들이 걷어준 전역비와 친척들이 건네준 용돈이 빵빵했다.

운 좋게 2학기 복학으로 바로 연결되어 빈 한 달 간의 휴가가 개꿀맛이었다.

스스스스슷.

어머니가 타라고 내준 경차 에어컨이 시원하고 빵빵하게 나왔다.

“아우……. 그래도 가칠봉이 시원하긴 했어~.”

제대하고 나니 그래도 부대 생활이 가끔 생각났다.

그곳에서 보낸 2년은 결코 짧지 않았다.

현역병 시절에는 가칠봉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싸겠다고 다짐했었다.

최전방 가칠봉 GP에서 보냈던 두 번의 겨울.

10월부터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해 다음 해 5월까지 추웠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근무 서다 볼 일을 보면 바로 오줌이 얼어붙었다.

강원도 산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최전방 고지였다.

눈이 오기 직전 겨울 용품 배달할 때는 완전 지옥이었다.

배달해야 하는 각종 연료와 부식양이 어마어마했다.

눈이 많이 내리면 헬기 말고는 다른 이동 수단이 없었다.

봄이 되어야 황금마차를 볼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와도 모든 게 스톱.

고지대임에도 여름만 되면 산모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아주 끔찍했다.

새하얀 똥덩어리들이 내릴 때 맛보는 새벽 근무는 인생무상을 절로 깨닫게 만들었다.

총도 얼어붙을 정도로 체감 온도가 장난 아니었다.

깔깔이를 두 장씩 껴입고 핫팩을 몸에 둘러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북한과도 가까웠다.

2Km 전방에 위치한 북한 GP 초소병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할 정도의 거리였다.

물론 추억도 많았다.

힘든 곳이었기에 특히 전우애가 남달랐다.

상병 이상 되면 장교들이나 하사들과 고스톱을 치며 긴긴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지뢰밭 주변으로 야생 더덕과 도라지가 지천이었다.

모기만 빼면 한여름에도 무척 시원했던 가칠봉.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추억 장소였다.

“아오! 후임 새끼들 잘 살고 있나 모르겠네? 최 병장 그 자식 물러 터져가지고 애들 사고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이번 장마 장난 아니던데……. 진지 보수 공사는 잘 하고 있겠지?”

희철은 떠나온 부대가 괜히 걱정 됐다.

선임이 사람이 좋으면 애들이 물러지고 그때마다 뜻하지 않게 사고가 터졌다.

요즘 들어 북한과 사이가 더 벌어져 그것도 걱정이 됐다.

“에휴……. 됐다. 애들도 아니고 잘 하겠지. 누가 누구를 걱정해.”

다음 달 복학이 예정된 희철의 인생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래도 태산이 자식…… 보다 군대를 빨리 제대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도 군 장교로 다녀오면…… 나이 서른은 되겠네. 크크크크.”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기와 별반 다를 것 없었던 장태산이 많이 변했다

성적도 고만고만하고 몸도 비리비리하던 녀석이 2학년 여름 방학 때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방학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때부터 인간이 아주 달라졌다.

무시무시한 일진들을 모조리 때려잡고 성적도 탑을 찍었다.

게다가 홍콩에 외국 여자 친구를 만들었던 불가사의한 장태산.

놀랍게도 한국대 법학과에 합격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한 번씩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장태산의 눈부신 변화에 희철은 살짝 배가 아팠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부러운 건 부러운 법이다.

끼이익.

차가 멈췄다.

태산이 모이자고 한 곳은 장주강이 내려다보이는 장주시의 떠오르는 명소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주말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곳에 투자했으면 졸부 소리 정도는 듣는 건데…….”

전망 좋은 자리에 위치한 카페에 주차하며 희철은 입맛을 다셨다.

평생 축산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은 부동산 투자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희철이 왔냐~.”

“김 병장 일찍도 왔네~.”

“김 병장? 빠져가지고 훈련소 군번이 달라 임마.”

김형철이 웃으면서 주희철을 맞았다.

“세월 참 빠르다. 우리가 군대를 다 갔다 오고…….”

형철이와 함께 담배를 빨던 대선이가 말을 거들며 끼어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고등학교 어제 졸업한 것 같은데 예비역 복학생이라니……. 나 아직 모쏠인데 이 저주 누가 풀어 주냐?”

김형철이 쓰게 담배를 빨았다.

“너만 모쏠이냐? 나도 모쏠이다!”

“그것도 자랑이냐? 에라이……. 밥통들.”

“너는? 킬킬킬.”

세 사람이 모여 주차장 옆에서 맛있게 담배를 빨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었지만 한 교실에서 있는 것처럼 친숙했다.

“그런데 태산이 진짜 오는 거야?”

대선이가 물었다.

“내가 확실히 확인했다. 여자랑 같이 오고 있다.”

“누구? 예전에 그 술 잘 사주던 누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목소리가 달랐어.”

대선의 질문에 희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 당시 희철도 함께 자리했지만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술 잘 사주는 누나는 태산이만 빼고 다들 친한 동생처럼 편하게 대했다.

“우리 태산이…… 참 능력도 좋아. 고마운 녀석이기도 하고~.”

형철이 태산을 떠올리며 담배를 한 번 더 빨아들였다.

“뭐가 고마워?”

형철의 말에 희철이 싱겁게 물었다.

“그게 말이야. 태산이가 나 면회 왔잖아.”

“면회? 언제?”

“너 모르냐? 상병 때 태산이가 FOB를…….”

부우우우우웅.

형철이 썰을 풀려고 하는 사이 둔중한 덩치의 검은색 외제차가 희철의 차 옆에 멈췄다.

“저, 저거 벤틀리 맞지? 와아아아아. 나 저거 처음 본다.”

대선이 입이 양쪽으로 찢어지려 했다.

선팅이 진한 벤틀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이 달랐다.

딸각, 차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여, 여신!”

“올!”

장주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도시 미녀가 모습을 보였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8등신 몸매에 시크한 표정의 미녀.

모쏠들인 세 명은 턱이 빠질 듯 입을 쩍 벌어졌다.

“입에 파리 들어간다……. 도희 씨 인사해. 못난 내 친구들이야.”

운전석에서 내리던 장태산이 친구들 모습에 혀를 찼다.

“어머~ 대표님 친구 분들이세요? 안녕하세요~ 도도희라고 해요~.”

애교 일 발 장전하고 도도희가 눈웃음을 발사했다.

“추, 충성!”

습관적으로 당황하면 튀어 나온 경례.

주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도도희를 향해 힘차게 경례를 올리고 말았다.

‘아씨…….’

그리고 경례하던 그대로 쪽팔림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조금 전까지 군대 못 간 장태산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주희철.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그 친구가 가장 부러웠다.

***

“아이고! 대표님 오셨습니까!”

우연히 악연을 풀다 획득하게 된 장주강의 카페.

그곳을 운영하고 있던 사장님이 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장사 잘 되시죠?”

“물론입니다. 대표님 덕분에…….”

사장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이 맛에 재벌도 하는 거다.

“조용히 있다 이동하겠습니다.”

알바 하는 녀석들도 온다는 소리에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오후 5시.

여름 해는 길었다.

카페 거리 옆으로 맛집들이 많이 생겨났다.

친구들도 이곳에서 보기를 선호했다.

“제가 이것저것 준비하겠습니다.”

사장님은 미안했던지 의욕을 불태웠다.

“돈 받으셔야 합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가족에게도 돈을 받아야 성공하는 법입니다.”

가벼운 조언을 잊지 않았다.

괜히 가족과 친척, 친구랍시고 공짜로 풀다가는 사람 잃고 돈도 날리는 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공짜 커피 먹다가는 대머리 신세를 못 면할 것이다.

“커피하고 주스, 그리고 조각케이크 주십시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진짜요? 태산이 회사에서 일하세요?”

“태산이 회사 좋아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미모로 뽑은 거 아닙니까?”

먼저 도착한 친구들 다섯 놈이 도도희를 앉혀놓고 신이 났다.

도도희는 장주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외모의 미녀였다.

수다를 떨어대는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내 회사 학벌 본다.”

그리고 도도희 옆에 앉았다.

“맞아요. 저도 어렵게 입사했어요~.”

“정말요? 아닌 것 같은데…….”

희철이가 부정하는 언사를 내비쳤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혼자 경쟁의식을 보이던 희철.

“프린스턴대 나왔어요.”

도도희가 짧게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다.

“네……. 프린스턴요???”

“그것도 박사 학위 소지자에 월가 인턴쉽 경력자야.”

“허억!”

“프린스턴대……. 박사!”

아직 학사 학위도 받지 못한 친구들에게 프린스턴대 박사 학위 소지자는 강한 충격이었다.

입이 쩍쩍 벌어지는 친구들.

도도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 자리를 즐겼다.

얼어붙은 친구들을 보니 재미있었다.

그들 뒤로 보이는 카페 앞을 흐르는 장주강을 바라봤다.

오늘도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는 장주강 물결을 보니 정말 고향에 온 게 실감났다.

딸랑.

그때 카페 문이 열렸다.

팔짱을 끼고 들어서는 두 명의 여인.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태산아…….”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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