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7
회귀의 전설
497장. 저안저견 불안불견(猪眼猪見 佛眼佛見) (1)
“!!!”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금껏 노사 협의회의 때면 의례적으로 매왔던 빨간 머리띠는 노동자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투쟁의 상징을 놓고 나이도 어린 투자자 대리인이 대놓고 지적을 한 것이다.
“지,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우리의 투쟁을 무시하는 거야!”
목소리까지 파르르 떨며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정성동이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2009년 파업 이후 삼룡 자동차 노조는 감정이 격해질 대로 격해져 있었다.
공권력 앞에 힘없이 무너진 자신들 처지를 수치스러워 했다.
어제의 동료가 회사에서 내쫓겨 길바닥에 나앉았다.
노조는 임금 50퍼센트를 삭감하고 퇴직금으로 신차 개발에 투입 하자고 제안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여론을 조작해 그 힘으로 자신들의 제안을 묵살한 채 밀어버렸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고, 적자인 회사와 한 몸이 되어 위기를 벗어나고자 생각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가는 여론의 철저한 등 돌림과 목숨 줄을 잡은 법정관리인들의 횡포뿐이었다.
‘이 자식이 감히!’
정성동은 장태산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투자자 대표를 노려봤다.
여차하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갈 생각이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밑바닥에서 가열 차게 타올랐다.
“자자. 첫 만남부터 이렇게 기 싸움 할 필요 없습니다. 진정들 하십시오. 정성동 수석부위원장도 앉아요.”
정영태 상무가 정성동을 타일렀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그깟 돈 좀 있다고 어디서 수작질이야!”
억눌렸던 분노와 서러움이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는 화산처럼 터지는 법.
정성동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눈은 장태산을 죽일 듯이 쏘아봤다.
“그깟 돈! 그것 때문에 지금 그 꼬라지인 걸 모르나?”
“……뭐라고!”
장태산은 꿈쩍도 않고 정성동을 비웃었다.
“!!!”
다시 한 번 회의실 공기는 깊은 침묵과 경악에 빠졌다.
감정 격한 노조원들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태산은 작정한 듯 노조원들을 자극했다.
“거지가 된 부자가 거친 사막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식량? 타고 갈 낙타? 그것도 아니면 재롱 떨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원숭이?”
냉랭한 공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장태산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닥쳐! 어디서 헛소리야!”
성격이 불 같은 정성동이 소리쳤다.
질문의 요지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단지 장태산이 돈으로 노조를 대표한 자신을 희롱한다고만 여겼다.
“가정 먼저 버려야 할 건……. 과거의 부를 상징했던 사자 같은 자존심이다. 바로 당신이 대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또 품고 있는 그 알량한 감정의 노예. 그 자존심!”
조용하지만 묵직한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포효가 회의실에 퍼졌다.
“…….”
정성동은 뭔가에 홀린 듯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장태산이라는 어린놈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치는 순간 오금이 저리고 숨이 턱 막혀왔다.
“당신이 위원장인가?”
장태산이 노조원들 중앙에 앉아 있는 강일권을 바라봤다.
“어린…… 친구가 버릇이 없군.”
강일권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장태산에게 훈계를 했다.
전혀 이런 전개를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세상을 그냥 살지는 않았다.
‘두려운 게 없는 놈이군!’
강일권은 장태산의 몇 마디 말로 그를 알아봤다.
그의 눈동자에서 깊게 잠긴 채 일렁이는 새파란 분노.
마주보고 있지 않았지만 스치는 그의 눈빛에 순간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어린 친구? 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회의실이 떠나가라 크게 웃는 장태산.
“당신, 나를 압니까?”
기분 나쁘게 피식 웃으며 장태산이 강일권을 똑바로 쳐다봤다.
“다들 나 처음 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왜들 반말이실까? 여기가 사회 초년생들 모이는 학교야? 그리고 한국대 법대에서도 누구 하나 나에게 반말 못 해! 썅!”
“…….”
강약의 묘한 리듬을 타며 회의실 공기를 주무르는 장태산의 발언.
무거운 침묵이 회의실에 가득 찼다.
거침없는 장태산의 발언에 누구 하나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표정들이 경직됐다.
투자자 대리인이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나이가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상 장유유서를 강요하려다 장태산의 폭발에 모두 얼어붙었다.
“직장 잘려서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기에 구제 좀 해주러 왔더니 뭐라고? 그까짓 돈? 그런 너희는 뭘 가지고 있어? 알량한 퇴직금? 그것도 아니면 뭐? 푸하하하하. 당신들 퇴직금 다 합쳐봐야 내가 하루에 움직이는 자금에 비하면 우리 직원들 용돈 수준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소리치는 장태산.
그의 쩌렁쩌렁 울리는 일갈에 회의실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노동조합 위원들뿐만 아니라 정영태와 임유일 법정대리인들도 얼굴을 들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말이라고 너무 쉽게 함부로 했다.
누가 들어도 빤한 거짓말을 되는 대로 지껄였다.
삼룡차 노조 퇴직 적립금은 수천억에 달했다.
그런 거대 자금을 놓고 하루에 움직이는 자금이니 직원 용돈이니 하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말을 따지지 못했다.
믿을 수 없지만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위험한 놈이다!’
임유일은 다시 한 번 조용히 장태산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연대 자동차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였지만 그의 귀에까지 들려온 소문이 사실인 듯했다.
자수성가한 엄청난 자본을 소유한 투자자.
정보가 부족해 그 이상을 알지 못했지만 임유일은 조용히 장태산을 지켜봤다.
젊은 시절 모셨던 고 전준영 회장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맨 앞에서 호령하던 한국 경제계의 신화.
그가 다시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고 전준영 회장이 재림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대표님……. 진짜 화났네.’
도도희는 장태산 대표가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언제나 회사에서는 다정하고 자애로운 남자였다.
조 변호사를 비롯해 연배가 많은 어른들과 자리하면 장난스럽지만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다.
모든 직원들을 상대할 때도 지위를 이용해 함부로 사람을 대하지도 않았다.
씨큐리티 직원들 한 명까지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자랑할 만한 보스였다.
그런 대표가 아주 눈이 돌아갔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 노조 위원들.
그들의 태도는 누가 봐도 한심했다.
자신 같았다면 매년 적자만 내는 회사, 이런 강성노조가 좌지우지하는 회사는 매입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공장을 새로 차려도 됐다.
각 지방 단체에서도 얼씨구나 환영할 일이었다.
정리 해고된 직원들을 불러들이면 일 년에 책정되어야 할 자금이 퇴직금을 비롯해 복지비용까지 수천억에 달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래 자동차 시장 운명 자체가 불투명했다.
갈수록 대형화되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 틈에서 오래된 프레임 SUV는 주력 자동차로서 매력이 없었다.
엔진이나 미션에 대한 노하우도 없었다.
구형 엔진과 미션을 수입해서 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야말로 뼈대만 튼튼한 옛 시절 공룡 같은 회사였다.
굳이 이런 상태의 회사를 매입하려고 애쓰는 대표.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이유를 듣게 될 것 같았다.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냐?’
조윤태 변호사는 입을 다문 채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노조 직원들을 훑어봤다.
지금 당장 고개 숙이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 고개 빳빳하게 치켜들고 머리에 빨간 띠까지 보란 듯이 두르고 나타난 노조 위원들.
생각이란 것을 포기한 막무가내의 또라이들처럼 행동했다.
누가 봐도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연대 자동차 노조와 함께 강성으로 분류되는 삼룡 자동차 노조였다.
삼우 로펌에서도 과거 회사를 대리해 손배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겪었던 노조의 무식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적자를 보는 와중에도 보너스뿐만 아니라 회사 주식까지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회사가 노동자들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공동성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식하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적자가 반복되는 중에도 돈 내놓으라고 땡깡 놓던 그들의 행태에 당시 조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오랜만에 그들과 마주했다.
“닥쳐! X발! 머리에 먹물 들었다고 자랑하냐? 돈이면 다야!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디서 건방 떨어! 회사 안 팔아 개새끼야!”
정성동은 이성을 잃고 길길이 날뛰었다.
수석부위원장 자리가 그냥 명함 다는 게 아니었다.
노조원들에게 투쟁력을 인정받아야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니가 뭔데?”
장태산 역시 끄덕도 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난 삼룡 자동차 수석부위원장…….”
“이 회사가 당신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삼룡 자동차는 선배들과 우리가 만들어낸 노동의 산물이야! 너희들 같은 자본가들이 씹다 뱉는 껌이 아니야!!!”
“엿 까는 소리하고 있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 당신들 무슨 배짱으로 우리 제안 거절했어? 정리해고 노조원들 복직만 해주면 감사하다고 했던 건 그새 잊고……. 손해배상? 거기에 추가 조건 더 달겠지. 당신들 자녀들 먼저 꽂아주라고~.”
“!!!”
장태산 말에 강일권과 정성동은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들이 제시할 수를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정신 나간 새끼들! 빨간 띠만 두르면 다 해결돼?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노조와 당신들보다 끗발 날렸던 영국 자동차 노조가 모조리 사라진 건 알아? 알 턱이 있나~. 공부는 X나게 안 하면서 밥통 타령만 하니…….”
걸쭉한 욕을 곁들인 장태산의 비웃음 섞인 발언은 계속 됐다.
“회사가 너희들 거라고? 그럼 너희들 집 팔고 땅 팔아서 회사 매입해. 그럼 간단하잖아. 신용 대출도 좋네. 이것저것 끌어들여서 당신들이 대표하고 임원하고 다 해먹어~. 차도 할인 팍팍 받아 일 년마다 새로 구입하고 일가친척들까지 동원하면 몇 년 버티겠네. 그럼 어때~. 원 없이 사장질도 해 먹고 여한은 없잖아? 그런데…… 당신들 그건 싫잖아? 그래도 눈도 있고 대가리도 있는데…… 적자 나서 곧 망할 회사 뭐하자고 매입하겠어? 그렇지?”
부정할 수 없는 팩트 공격에 노조 위원들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회사가 망할 때 계산기 두드려 직원들의 지주회사를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답이 안 보였다.
매달 월급은 고사하고 퇴직금 정산도 어려울 게 빤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동네 정치인들을 협박하고 일자리와 지역 경제를 볼모로 삼아 투쟁만 해왔다.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넘쳐나는 미국 공장도 자동차 생산성이 23시간이야. 그런데 이 공장은 30시간이라지? 튼튼한 쇳덩어리 말고 장점이 뭐가 있지? 디자인이 멋있는 것도 아니고……. 내부 인테리어가 좋나? 자동차에 소비자의 니즈를 담을 수 있는 첨단 기술 개발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엔진과 미션은 전량 수입이고……. 연구원들 월급이 생산직보다 뒤떨어져 다들 도망치기 바쁘고……. 와아……. 사정이 이런데 당신들 양심은 있는 거야? 해마다 돈 달라고 파업하면 어떤 미친 장사치가 이 회사를 매입해?”
멈출 기색이 없는 장태산의 공격에 노조 위원들은 얼이 빠졌다.
대놓고 면전에서 노조원을 저렇게 난도질하는 자는 처음 봤다.
“결정적으로 내가 빠지면 투투 자동차가 퇴직 직원들 불러줄 것 같아? 저기 앉아 있는 임유일 씨 보이지? 저 양반이 투투 자동차 대리인이야. 당신들과 채무 싹 정리하고 중간 상인 매커리에 넘겨주는 게 임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선한 주인을 보고 짖어? 저안저견 불안불견(猪眼猪見 佛眼佛見)! 당신들 눈에는 돈 있는 자는 다 욕심 많은 돼지로 보이지? 살려주겠다고 찾아온 신도 못 알아보는 이 머리에 똥만 찬 중생들아!”
급기야 사자후가 터졌다.
정확히 자신의 배후 매커리를 찍어낸 장태산의 말에 임유일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거기까지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강성 노조 정리와 채무 조정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면 수고비로 20억이 손에 떨어진다.
매커리 뒤에는 대통령의 조카가 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해외 자원 개발과 사회 간접 시설 민간 자본 투자에 대부분 매커리가 관여하고 있는 진짜 이유였다.
정치권에 들어가는 수수료만 해도 수천억이 훌쩍 넘었다.
모두 다 해외 비밀 계좌에 적립 됐다.
그런 조직 아래서 용돈이나 벌며 앉아 있던 임유일.
“흐꾹……. 흐꾹…….”
갑자기 딸국질이 터졌다.
급히 냉수를 마셔봤지만 그치지 않았다.
파바바밧.
노조 위원들이 임유일을 노려보았다.
장태산의 말에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모든 일의 뒷얘기를 알게 됐다.
법정관리인으로 지정된 임유일로 인해 경찰이 투입됐었다.
과거에 비하면 어린아이들 수준의 파업이었음에도 피 튀기는 전쟁으로 변질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무조건적인 파업 철회와 정리해고만 요구했던 임유일 법정관리인.
“난…… 아니야! 법정관리인으로서 정당한 판단을 내렸을 뿐이야! 당신들도 욕심 많은 연대 노조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어차피 삼룡을 매입한 인수자도 없는데 파산보다도 낫잖아!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한 거야!”
코너에 몰린 임유일도 포효했다.
연대 자동차 사장 시절, 해마다 벌어졌던 노조 파업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쳐졌다.
세계를 통틀어 자동차 직원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연대 자동차 직원의 연봉이었다.
일본이나 미국 자동차 노조원들보다 월급이 많았다.
물가 상승률을 웃도는 월급 이상과 보너스 요구에 이어 자사주 배당이나 자녀 채용 같은 걸 조건으로 내세웠다.
정직원들이라고 하청 직원들을 대놓고 무시했고 자신들만 배불리 챙겨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러고 나더니 노사조약으로 업무 강도가 높다며 생산 물량을 스스로 조절하고 인력 재배치를 금지시켰다.
잘 팔리는 자동차를 더 생산할 수도 없었다.
하루 정도만 교육받으면 일도 아니었지만 그것도 싫다고 말하는 노조였다.
회사는 해외 공장을 점점 늘렸다.
강력한 노조와 파업으로 적기에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회사 이익에 대한 공정한 분배만 요구했지 생산성 향상에는 관심도 없었다.
원가 절감 보너스를 내걸자 미친 듯이 자동차 부품들을 빼먹는 경쟁에 빠져들었다.
소비자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부품 업체들에 대한 갑질은 도를 넘었다.
연대 자동차가 망하는 걸 꼭 보고 싶다는 하청업체 사장들과 직원들이 주변에 널렸다.
회사도 이익을 내야만 했다.
노조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해서 하청업체를 쥐어짜 원가를 절감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노조의 관심은 언제나 임금투쟁과 보너스밖에 없었다.
임유일은 스스로 떳떳했다.
망해가는 회사 법정관리인으로서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저기 앉아 있는 호랑이 같은 장태산을 마주하기 전까지 모든 게 원만했다.
“제안을 하지. 이 자리에 늦게 나타난 것과 반말한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면…… 큰마음 한 번 쓴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당신들 때문이 아니라 당신들 뒤에서 바라보고 있을 불쌍한 가족들……. 그리고 이 땅을 지켜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과 지역 시민들을 위해서였다. 당신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한 번 더 참고 기회를 주겠다.”
굳은 표정을 풀며 마지막 제안을 내놓는 장태산.
꿀꺽.
무거운 침묵에 가라앉았던 회의실 공기.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