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6화 (495/1,284)

 # 496

회귀의 전설

496장. 참교육 (3)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죠.”

삼룡 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인 강일권이 통화를 끝냈다.

“누굽니까?”

수석 부위원장인 정성동이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물었다.

과거와 달리 삼룡 자동차 노동조합은 위세가 크게 꺾였다.

2009년 옥쇄파업으로 얻은 게 거의 없었다.

IMF 이후 대웅이 해체되면서 중국 상해기차에 넘어갔다.

그때만 해도 중국 시장을 노릴 것이라 예상하며 기뻐했던 노조였다.

하지만 왕서방들은 삼룡의 기술을 쏙 빼먹고 먹튀를 감행했다.

약속했던 투자는 거의 없었고 한국계 은행에 돈을 빌려 연명하다 필요한 기술 전부 빼돌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고의 부도를 냈다.

고소고발이 난무했지만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무관심했다.

삼룡 자동차에 고액의 인건비를 지불할 마음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신차 출시는 없고 계속 사골 우리듯 차를 팔다 영업 적자를 면치 못했다.

노조도 파업을 멈추지 않았다.

국가에서 대규모 사업장을 정리 못할 것을 알고 투쟁을 감행했다.

다른 정부 시절이라면 충분히 먹혔겠지만 철저한 장사꾼인 최병박 대통령에게는 어림없었다.

법정관리가 시작됐고 직원들이 잘려 나갔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보다 강성인 삼룡 자동차 직원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노조는 패배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한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으로 변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강성노조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여론이 좋지 않았다.

희망퇴직과 강제해고가 시작됐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로 블랙리스트 노조원들이 고난에 빠졌다.

무기력한 삼룡 노조.

그러나 희망의 빛이 보였다.

인도 자동차 기업이 인수를 타진해 왔다.

동시에 미국계 자금도 인수에 참여했다.

채권은행들 간에 조건이 오갔다.

노조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해고자 복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인도 기업은 난색을 보였지만 미국계 기업은 받아들였다.

노조는 욕심을 냈다.

대한노총 금속지회에서 표면적으로 탈퇴했지만 노조위원장과 위원들은 뼛속까지 대한노총 사람들이었다.

파업 후 받지 못했던 임금과 보너스 그리고 적극적 손배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추가했다.

당연히 그 조건에 미국 인수 쪽에서 난색을 표했다.

“미국 쪽 인수 업체에서 내일 보잖다.”

“그래요?”

“몸이 달았나 보다.”

“좀 더 세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 쪽하고 경쟁하면 당연히 몸값이 올라야죠.”

“영악한 정부쪽 법정관리인만으로는 안 돼. 우리가 작년에는 밀렸다만 이제는 아니야……. 좀 더 바짝 조여 받아낼 건 받아내야지!”

“위원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회사 망한 게 우리 탓입니까? 경영을 개판으로 한 임원 놈들이 문제지 말입니다.”

“그래. 노동자들이 무슨 죄야. 우린 죽어라 만든 죄밖에 없다.”

강일권 위원장과 정성동 수석부위원장이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조건을 하나 더 걸도록 하죠.”

“뭘로?”

“파업 때문에 조합원들 애들이 공부하기 힘들었잖습니까. 그러니……. 직원을 뽑을 때 우선적으로 입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대 쪽도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쎈 거 아냐?”

“밀어붙일 때 밀어붙여야 합니다. 아니면 이것저것 양보하다가 우리만 골병 듭니다.”

“좋아! 한 번 타진해 보자.”

“크으~ 기분도 좋은데 오늘 소주 한잔하시죠?”

“그럴까?”

“집행부원들 소집해서 내일 미팅 건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녁에 다들 보자고.”

“바로 전화 돌리겠습니다!”

활기가 도는 삼룡자동차 노조실.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 자신들이 만나게 될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

“평온하네요.”

“파업 뒤에 판매 규모도 줄고 있으니 동네가 조용하지. 어차피 삼룡자동차는 옛날부터 흑자 보는 자동차 회사는 아니었잖아.”

“그래서 더 괘씸해요. 대표님이 제시한 조건이 이런 시국에 말도 안 되는 호조건이라는 걸 알 텐데 저렇게 배짱을 부리다니……. 용서가 안 돼요.”

도도희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제 회식 자리에서도 술을 왕창 마시고 일찍 정신줄을 놓은 채 노조를 욕했다.

그래도 아침 일찍 특유의 오피스룩으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도운중 회장 핏줄답게 정신력이 대단했다.

“다 왔습니다.”

혹시 모를 폭력에 대비해 한진웅 대표가 직접 운전했다.

씨큐리티 직원들도 다른 차로 이동했다.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성 노동조합원들에게서 귀한 여직원을 보호해야 했다.

“은행 측하고 법정관리인도 참석한다고 했습니까?”

“돈 받아내려면 발바닥 땀나도록 일해야죠.”

도도희에게서 보이는 냉정한 철칙.

조직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끼릭.

차가 멈췄다.

불과 어제 훈련소를 나왔는데 하루 만에 이런 큰 사건에 연루됐다.

여름이라 날씨가 푹푹 쪘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투두두두둑 투두두둑.

국지성 소나기처럼 굵은 빗방울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쏟아졌다.

처럭.

한진웅 대표가 우산을 펼쳤다.

“제가 들겠습니다.”

“보스 우산은 제가…….”

“손 다 있습니다. 이런 건 영화에서 나쁜 보스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

한진웅 대표가 물러났다.

“대표님~ 전 우산이 없어요.”

이 상황에서 도도희는 나의 팔을 붙잡고 작업 들어왔다.

“도 상무, 우산 줄까?”

조 변호사님이 웃으면서 도도희 상무를 놀렸다.

“사양합니다~. 대표님이 제 우산이랍니다. 흐흐.”

도도희 상무와 주차장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차박차박.

씨큐리티 직원들 10여 명이 우산을 들고 주변을 경호했다.

작업하던 삼룡차 직원들이 이동하는 우리 일행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날이 궂은 여름날 우리는 그렇게 삼룡자동차 본사 회의실에 도착했다.

***

“정 상무는 오늘 일을 아나?”

“미국 쪽과 관련 있는 자들입니다.”

“……뭔 뜸을 이렇게 들여. 빨리 끝내지.”

법원에서 공동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정영태 삼룡 자동차 상무와 전 연대자동차 사장 임유일이 대화를 나눴다.

같은 권한을 소유한 법정관리인이었지만 전직 연대자동차 사장이자 정권에서 보내온 임유일이 우위에 있었다.

대부분의 결정이 임유일 손에서 이뤄졌다.

노조가 임금 50% 삭감과 순환근무 허락, 퇴직금으로 신차 개발비 투입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임유일은 경찰을 불러들여 한번에 정리했다.

정권에서 제대로 입김을 받았다.

현 대통령의 형인 최상득의 아들이 근무하는 매커리와 이번 일이 연관되어 있었다.

인도 기업에 헐값에 넘기기로 매커리가 약속을 해놓았기에 강하게 밀어붙였다.

촛불로 민심이 돌아간 상태에서 여론 조작을 통해 노조원들을 몹쓸 놈으로 만들었다.

예상대로 2,600명이 넘는 정직원들이 잘려 나갔다.

희망퇴직과 무급 휴가를 비롯해 합리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강성인 노조도 한몫했다.

좀 더 여론에 호소하고 자중했어야 했지만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강하게 나왔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노조는 철저하게 패했다.

삐이잇.

[투자자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법정관리인이 사용하는 대표실 인터폰이 울렸다.

“가지.”

“알겠습니다.”

정영태 상무는 임유일 뒤를 따랐다.

‘도대체 꿍꿍이가 뭐야?’

삼룡의 임원인 정영태는 복잡한 시선으로 임유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임유일은 수시로 정치인들과 통화했다.

그럴 때마다 노조원들이 잘려 나갔다.

뭔가 음흉한 음모를 품고 사는 전 연대 자동차 사장 임유일.

거만한 걸음으로 투자자들을 만나는 자리로 향했다.

스르르륵.

본사 회의실 문이 열렸다.

입구에 투자자들과 함께 온 듯한 경호원들이 보였다.

‘뭐야 이것들은?’

임유일은 건장한 경호원들을 보며 인상을 썼다.

한때 수만 직원들을 거느렸던 연대 자동차 회사 사장 시절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었다.

법정관리인 신분이었지만 현 최병박 대통령과 연대 시절부터 인연이 깊었다.

그래서 이곳에 꽂혔고 일을 맡아 추진하고 있었다.

인상을 쓰며 임유일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몇 번 봤던 예쁘장한 도도희라는 여자와 삼우 로펌 조윤태 변호사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의 머리카락이 짧은 매끈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보였다.

임유일 눈에는 수행직원 정도로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조 변호사님.”

명색이 법정관리인이었기에 임유일은 감정을 감추고 로펌 변호사에게 먼저 악수를 건넸다.

“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장태산 대표님께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조윤태 변호사가 옆에 있던 젊은 사내를 가리켰다.

‘장태산……. 설마 그 장태산?’

임유일은 조 변호사의 말에 깜짝 놀랐다.

경제계에서 요즘 회자되는 투자회사의 젊은 대표가 장태산이었다.

안아 그룹과 천일 그룹 투자 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런 그가 이곳에 나타났다.

‘이거……. 큰일인데.’

위에서 지시 받은 일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바로 임유일의 안색이 변했다.

“어디 안 좋으십니까?”

장태산이라는 놈이 불쾌하게 씨익 웃으며 물어왔다.

“아, 아닙니다. 삼룡 법정관리인 임유일입니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악수를 건네는 임유일.

“투자자들 의뢰를 받고 찾아온 LOR 투자법인 대표 장태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놈치고는 정중했다.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야.’

임유일은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공동 법정관리인 정영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장태산입니다.”

나이도 어린놈이 전혀 위축된 기색이 없었다.

정영태 관리인과도 악수를 했다.

“장마 빗소리가 오늘따라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회의실 분위기를 주도했다.

변호사와 그 옆에 있던 외국 투자자 담당 여자도 대표를 앞으로 내세웠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장태산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크음…….”

대기업 사장이었던 임유일은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은행 측에서는 참가하지 않았습니까?”

“저에게 1차 권한을 일임한 상태입니다.”

임유일이 자신의 권력을 뽐내듯 내보였다.

은행권도 움직일 수 있는 윗선이 있다는 은연중의 피력이었다.

“그래요?”

‘저 자식……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장태산의 눈빛에 임유일의 얼굴이 굳어 갔다.

큰 기업을 경영하는 프로 기업가처럼 속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스르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등장한 다섯 명의 노조원들.

“저희가 늦은 것 같군요.”

강일권 위원장이 노조 측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드르륵.

다섯 명의 노조 집행부가 자리를 잡았다.

파바밧.

법정관리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노조집행부는 하나같이 임유일을 노려봤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게 말입니다. 가장 멀리서 온 우리가 가장 먼저 오다니……. 다들 손님 접대가 엉망입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장태산이 감정 없는 말로 입을 열었다.

“???”

집행부 노조원들이 나이가 한참 어린 젊은 장태산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한마디로 ‘넌 뭐하는 자식이냐’ 하는 시선.

“투자자들을 대표해서 실사 파견 나온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밝히는 장태산.

“!!!”

노조원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회의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삼룡 노조원들 같으신데……. 그 머리에 빨간 띠 좀 벗으면 안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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