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5
회귀의 전설
495장. 참교육 (2)
“아오! 오늘 제대로 똥 밟았다.”
은평구 신흥 조직인 식구파의 보스 최용식은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중학교 다닐 때 이미 일진 노릇 하다가 학교도 잘렸다.
군대도 폭력행위에 연루돼 감옥에 다녀오는 바람에 면제됐다.
새 사람이 되겠다며 중국집 배달 일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주고 잘 따르던 후배들과 모여 조직을 결성한 용식이.
이렇다 할 주먹이 없던 은평구에서 조용히 세력을 키웠다.
20여 명의 신입 조직원들과 함께 노래방이나 주점 등을 돌며 삥을 뜯는 게 주였다.
차츰차츰 사업을 넓혀 보도방까지 운영하며 여자 장사에도 손을 댔다.
최근에 들어서는 사채업에도 손을 댔다.
재미가 쏠쏠했다.
저 신용자들에게 100만 원만 빌려줘도 이자로 거둬들이는 돈이 몇 달이면 몇 백만 원씩 됐다.
협박과 불법 추심은 기본이었다.
연식이 된 대형 조직 조폭들에게 용돈 명목의 돈을 헌납하고 방패로 삼았다.
세력 확장을 위해 새싹들인 청소년 일진들을 끌어 모았다.
나중에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일류 조폭이 되고 싶은 꿈이 있는 최용식.
훈련소 들어간 조직원 장동구를 데리러 갔다가 제대로 똥을 밟았다.
“형님. 그 자식들 뭡니까?”
“오늘 연장만 챙겨왔어도 확실히 담가 버릴 수 있었는데!”
“어디 조직일까요? 진짜 구 회장님 담갔을까요?”
서울로 돌아가는 봉고차에서 나이 어린 조직원들이 입을 털었다.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들이었다.
“그 새끼 구라야. 내가 아는 춘식이 형님이 그러는데 구 회장님은 확실히 자살이래. 한국 조직계에 대한 염려와 걱정으로……. 술을 드시다 그만…….”
용식이는 구광필 회장을 생각하며 눈물까지 흘렸었다.
용식이 인생에 있어서 롤 모델이었던 구광필.
“그런데 형님. 앞으로 동구 어떻게 합니까? 그 새끼 깝칠 텐데.”
“제대로 담글까요?”
조직원들이 씩씩거렸다.
자신들이 당한 분풀이를 동구에게 풀려는 심산이었다.
‘조직의 기강을 위해서도……. 이대로 두면 안 되는데.’
최용식은 다른 때 같지 않게 갈등했다.
자신을 겁박했던 보스라는 놈.
그 녀석이 의도적으로 내비친 눈빛만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렸다.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얇은 수표를 빳빳하게 땅에 박아 세웠다.
그것 하나만 봐도 대단한 놈이었다.
‘그 새끼…… 고수야.’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저항 했지만 분명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놈에게 보호를 받게 된 장동구였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용식이는 고민이 깊었다.
장동구는 봉고차가 아닌 다른 조직원들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괜히 건드렸다가 진짜 피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 보스라는 놈이 어느 조직의 우두머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조직 기강을 위해서는 한 번쯤 손을 써야 했다.
깊어진 고민에 갈등하는 최용식.
우적.
잠깐 휴게소에 들러 간식으로 샀던 다 식은 핫바를 입에 넣고 씹었다.
‘진짜 검찰에 연락한 건 아니겠지?’
입맛이 없었다.
보스라는 놈이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정보를 넘겼다.
떨쳐낼 수 없는 찝찝함이 이동하는 내내 용식이를 괴롭혔다.
불안함은 어느새 온몸을 엄습했다.
“형님. 다 왔습니다.”
은평구 3차 재개발 예정 단지에 위치한 허름한 상가의 2층.
최근 개설한 해피 파이낸셜이라는 무허가 대부업체 사무실이다.
이곳이 최용식이 꾸리는 식구파의 아지트였다.
덜덜덜 끼이익.
차가 멈췄다.
드르르륵.
수동으로 열어야 하는 차문이 열렸다.
“오늘은 회식이다. 짜장면 말고 탕수육 큰 것도 주문하고 소주도…….”
조직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용식이 회식을 제안했다.
지갑에 들어 있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의외로 든든했다.
조직원이 놈이 사라지자 땅을 파서 재빨리 주었다.
쪽팔림은 짧았고 수확은 컸다.
타다다다다닥.
그때 갑자기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나 봉고차 주변을 빠르게 포위했다.
험악한 인상에 떡대가 어마어마했고 포스도 장난 아니었다.
“뭐, 뭐야! 지금 우리 습격하는 거야!”
용식이 당황해 떨며 주변을 둘러싼 장정들을 노려봤다.
“나! 식구파 용식이야! 다 덤벼! 내장으로 젓갈 담가 버린다!”
촤랏.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며 폼을 잡는 용식이.
가로등 불빛도 희미한 상태에서 10여 명의 습격자들을 향해 휙휙 칼을 휘둘렀다.
“용식아……. 재롱 그만 떨어라.”
그때 습격자들 맨 앞으로 나서는 한 남자.
“바, 반장님…….”
최용식도 잘 알고 있는 은평 경찰서 강력계 박 반장이었다.
뚜벅뚜벅 용식이를 향해 다가오는 박 반장.
용식이가 휘두르던 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에라이 꼴통 새끼야! 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조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쫘아아악.
박 반장의 손이 느닷없이 용식이 뒤통수를 강력하게 후렸다.
“왜 때려요!!! 형사가 힘없는 민간인 이렇게 패도 됩니까! 고소할 겁니다!”
용식이 왼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며 씩씩 거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박충호 형사가 강력반 반장이 됐다.
그동안 용식이를 달래고 어르며 직접 감옥까지 보내 새 사람을 만들어보겠다고 노력했던 박충호 반장.
“고소는 X꼴리는 대로 하고……. 너 도대체 누굴 건드린 거냐? 아오…… 멍청한 새끼. 조폭도 배워야 해먹지. 김 형사, 읊어줘라.”
“넵! 반장님!”
강력팀 형사가 종이 몇 장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은평구 식구파 두목 최용식과 그 아래 조직원들에 대해 범죄단체조직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위반,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한 범죄혐의로 체포영장을 집행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체포 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오! 이 새끼들 제대로 걸렸네. 이거 최소 5년 이상 각인데요. 쯧쯧.”
체포영장을 읊던 형사가 혀를 찼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죄명이 줄줄줄 들려오자 최용식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다.
“바, 반장님. 저 안 그랬어요! 저 착한 놈이라는 거 아시잖아요!”
최용식은 바로 비굴 모드로 돌아갔다.
“장난감 치우고 얘기해 인마. 형사 앞에서 칼 든 놈 치고 오래 사는 놈 못 봤다.”
쟁그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이프을 후다닥 집어 던지는 최용식.
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모두 형님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저희를 아무것도 몰라요……. 흐윽.”
줄줄이 봉고차에서 내려온 식구파 조직원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적당히 깝치라고 했지? 다들 수갑 채워서 연행해. 북부 지검장님 지시니까…… 제대로 조서 써라. 괜히 서장님한테 끌려가 털리지 말고.”
‘에휴. 멍청한 놈들.’
박 반장은 피라미 같은 조폭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찍힌 어설픈 양아치 조직원들.
최근 민원이 몇 번 들어와 적당한 때 엮을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검찰 쪽에서 먼저 지휘명령이 하달 됐다.
전관 변호사가 나와도 빼주기 힘든 상황.
앞으로 식구파 조직원들은 몇 년 동안 자유롭게 햇빛 보기는 글러보였다.
***
“대표님!!!”
덥석.
바로 차를 몰고 서울 집에 들렀다.
방학이라 쌍둥이들은 시골집에 가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 전에 압구정 단골 헤어샵에 들러 머리도 다듬었다.
살짝 그을린 피부에 짧은 머리칼은 인상을 강하게 만들었다.
헤어 디자이너들이……. 휴가 다녀왔냐며 멋있다고 아부를 날렸다.
기분 좋게 약간의 팁으로 인심도 쓰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순간 미녀가 품에 가득 안겨왔다.
폭탄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여성의 얼굴 한 번 못 봤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알아서 달려든 유세라 팀장은 감당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대표님……. 보고 싶었어요. 훈련소는 왜 주말에 면회를 안 받아 주는 거예요? 보고 싶어서 갔다가……. 그냥 돌아왔어요.”
큰일 날 소리를 그냥 뱉는다.
군인에게 주말 애인 면회는 끊을 수 없는 마약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별일은 없었어요?”
유세라 팀장의 어깨를 내 손이 지 멋대로 가서 토닥였다.
“네~ 대표님 보고 싶은 것 빼고는 다 괜찮았어요~.”
그녀가 품에 안긴 채 웃는다.
조폭들 납치 사건 이후 내 품을 자주 찾았었다.
“조 변호사님 오실 거예요. 아이스 더치커피 부탁해요.”
“네~.”
그녀의 커피 맛이 참 그리웠다.
배고픈 훈련소에서는 믹스 커피도 땡큐였지만 이제는 국방의 의무가 끝났다.
예비군 훈련 같은 건 일도 아니었다.
사무실에 들어갔다.
컴퓨터는 쌩쌩 잘 돌아갔다.
내가 없는 사이에도 프로그램 매마는 계속 진행됐다.
2010년은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에서 벗어나 반등이 일어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해지 전략으로 유럽은 빅 엿을 먹고 헤롱거렸다.
책상에 앉았다.
예상대로 세계 환율과 주식 시장은 기억대로 흘러갔다.
과거처럼 시장에서 폭리를 취할 수 없었다.
나름 큰손이 되었기에 수익을 조정했다.
그 와중에도 우량주들은 계속 매집하고 있었다.
로버트 라이언을 통한 정공법과 해외 차명 법인과 계좌를 이용한 반칙 공격으로 허상의 돈을 현실의 주식으로 바꿨다.
타다다닥.
“서버 상태도 양호하고.”
역시 미국에 있는 서버 관리는 깨끗했다.
슈퍼컴퓨터를 집착 수준으로 좋아라 하는 온시은 선배는 약속을 칼같이 지켰다.
몇 개의 방화벽을 통해 오직 나만 메인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똑똑.
“장 대표~ 나 왔어.”
조 변호사님이 밖에서 노크를 해왔다.
“들어오십시오.”
“축하해 예비역~”
조 변호사님이 악수를 해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부럽다. 나도 법무장교로 몇 년을 뺑이 치다 나왔는데……. 4주라니…….”
“법무 장교로 꿀 빨다 나오셨잖아요.”
“꿀? 무슨 소리야. 그곳도 전부 학교 선배들밖에 없었다. 장교들 비리 눈감아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군대는 장교라도 다시 갈 곳이 못 돼.”
조 변호사님이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시원한 커피 드세요.”
유세라 팀장이 들어와 커피를 세팅했다.
“역시 유 팀장밖에 없어. 고마워~ 한잔 더 부탁해~.”
“네~.”
시원하게 커피를 원샷으로 마시며 조 변호사님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커피 때문에 저 탈영하고 싶었다니까요.”
“정말요?”
나이가 있음에도 유세라 팀장은 귀엽게 웃었다.
“오늘 저녁은 제대 기념 회식입니다. 맛있는 곳으로 예약 부탁합니다.”
“와아아아! 회식이다!!! 역시 사무실에는 대표님이 있어야 한다니까~.”
유세라 팀장이 환호성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천일은 마무리됐다.”
“계열사도 정리됐습니까?”
“순환출자 핵심인 천일 건설이 무너졌는데 지들이 어떻게 개겨? 다들 백기 투항했다. 안 되는 놈들은 주주의 권리로 자근자근 밟아서 부숴버렸어. 흐흐흐.”
조 변호사님 요즘 악당 기질이 새롭게 개발되는 것 같았다.
“천 회장은요?”
“이빨 빠진 호랑이가 할 일이 뭐가 있겠냐. 횡령에 배임에 이것저것 많이 걸어 놨다. 노친네 얼마나 해먹었으면 장부가 하나도 안 맞아. 새끼들뿐만 아니라 친인척들 모두 검찰에 넘겼다. 다시는 한국에서 그 집안 재기하기 힘들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휴가 가셔야죠.”
“가야지~. 난 할 일 다 했다. 이번 여름휴가는 15박 16일 장기로…….”
자가용 비행기 타고 다니는 여름휴가 맛에 푹 빠진 조윤태 변호사님이었다.
열심히 일한 내 사람들에게 당근 정도는 언제든 제공할 수 있었다.
“그 휴가는 다음에 가셔야 할 것 같아요.”
한 잔 더 부탁한 커피 때문에 열려 있던 문 사이로 도도희 상무가 들어왔다.
근심이 이마에 주름으로 박혀 있는 그녀.
“언니……. 나 시원한 얼음물 대접으로 부탁해.”
오늘은 올 블랙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그녀가 힘없이 소파에 앉으며 얼음물을 찾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곳에 오기 전 회의를 소집할 때만 해도 반갑게 인사하던 도도희 상무였다.
단 몇 시간 만에 기운이 죽상으로 변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 왜 그래요?”
뜬금없는 목적어에 싸잡아 포함된 그 사람들.
“누구 말입니까?”
씩씩 거리는 도도희 상무를 바라보며 그 사람들 정체를 물었다.
“삼룡 자동차 노조 말이에요! 요구를 어느 정도껏 해야지! 상하이 자동차가 먹고 튄 걸 갑자기 우리 보고 배상하라잖아요……. 세상에 그게 말이 돼요?”
볼부와의 합자를 위해 삼룡 자동차 인수를 떠맡은 도도희 상무.
그녀가 잔뜩 화가 난 채 씩씩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해고자 복직으로 해결된 거 아니었어?”
조 변호사님도 어이가 없는지 물었다.
“해고자 복직까지 합의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조건이 달라졌다고 하잖아요. 인도에서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지난 파업 기간 생긴 노조원 손해에 대해 위로금을 지급하고 책임지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잖아요!”
단단히 열 받은 도도희 상무.
화목한 오늘 회식은 물 건너간 것 같다.
“……대한노총 입김이 들어갔겠지. 그 녀석들에게 금속노조원들은 권력의 핵심이나 마찬가지니까…….”
조 변호사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한노총이라는 단체.
안아 케미칼에서 악연을 맺었던 자들이 다시 언급됐다.
“아무리 그래도 똥오줌은 가려야죠! 회사 상태가 엉망인데도 복직을 약속했더니 위로금을 내놓으라니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예요?”
도도희 상무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돌아가는 상황이 짐작이 됐다.
나는 남아 있던 커피를 시원하게 마셔 넘겼다.
“……내일 약속 잡아주십시오. 제가 한 번 만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