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4화 (493/1,284)

 # 494

회귀의 전설

494장. 참교육 (1)

“……퇴소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추우웅성!”

“그동안 모두 수고 많았다. 충성.”

이인태 참모장이 멋지게 경례로 응답했다.

국민의례와 짧은 훈화에 이어 마지막 보고까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이상으로 육군훈련소 29연대 430기 퇴소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장병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마이크에서 마침표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훈련병들이 다시 찾은 자유에 힘찬 함성을 질렀다.

제약이 따르던 훈련병 신분과 달리 지금 이 시간부로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다.

저들에게는 아직 다른 의무가 남았지만 난 아니었다.

캬아! 

길고 길었던 4주간의 훈련이 끝났다.

눈물이 나려고까지 했다.

나 대신 뽑힌 최우수 29연대 훈련병이 신고를 끝냈다.

인생 2회 차 국방의 의무가 마무리 된 셈이다.

하루에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일과 다르게 또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어젯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아예 날을 샜다.

사회 나가면 다시 꼭 보자는 동기들의 거짓말과 헛된 맹세를 한 귀로 듣고 흘리느라 바빴다.

이상하게 꼬이면서 사회복무역을 비롯해 여러 전문 직종 종사자들이 섞여 구성원을 이뤘던 분대원들.

한 지붕 아래서 지낸 시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다시 만날 일은 드물었다.

이제부터 또 각자 갈 길이 달랐다.

“교육중대 해산!”

교육중대장의 해산 명령이 떨어졌다.

“크으으……. 끝났다. X발.”

“X도 내가 훈련소 방향으로 오줌 싸면 앞으로 사람 새끼가 아니라 개새끼다!”

“아오오오……. 술 땡겨.”

보충역들이 홀가분해진 만큼 거친 말들로 기분을 냈다.

군대는 남자들에는 평생 우리고 우려도 끝나지 않는 지옥 경험과 같았다.

지난 생에도 군대 가는 꿈을 꾸면 그 날 일진은 엉망이었다.

“오빠아아아아아아!”

“상식 씨…….”

“아이고 고생했다. 우리 아들! 살이 쪽 빠졌네.”

“충성!!!”

여기저기 가족들이 훈련병들을 향해 달려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들 바로 경례가 나왔다.

4주간의 군사훈련이 쉬운 게 아니었다.

완전군장 차림의 야간 행군도 원만하게 끝마친 용사들이었다.

모두가 해피한 2010년 여름 29연대 퇴소식.

“휴우…….”

시원하게 한 숨이 나왔다.

지난 4주간의 시간은 나에게 있어 버라이어티 했다.

그냥 버티면 되는 시간이었지만 이곳만의 정신을 억압하는 악의 씨앗을 처단했다.

그 일로 새로운 적이 생성됐다.

현 국방부 장관과 척을 지게 됐다.

이곳에서의 인연이 돌고 돌아 어느 날 어느 때 악연의 고리가 되어 나의 뒤를 노릴지 몰랐다.

그렇다고 두렵지는 않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때 가서 정면 돌파하면 되는 일이었다.

저벅저벅.

훈련소 밖으로 나왔다.

며칠 전 지급된 A급 군복을 입고 나오는 기분이 그냥 죽였다.

가족들은 오지 않았다.

취사관 이모님들 전화를 빌려 간간이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내일 집에서 가족 모두 모여 파티를 벌이기로 약속을 잡아놓았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더블백을 메고 걸었다.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어느새 7월 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리던 장대비가 다행히 오늘은 쏟아지지 않았다.

하늘도 성실하게 훈련받고 퇴소하는 나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분대원이었던 장동구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들어올 때 보였던 비곗살이 많이 빠졌다.

튼튼한 돼지 같았다.

장동구를 겪어보니 생각보다 착한 놈이었다.

어린 시절 뚱뚱한 몸 때문에 줄곧 왕따를 당했던 장동구.

그게 싫어 고등학교 때 전학을 했고 그때부터 어둠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고백을 했다.

부모님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릴 만큼 마음은 여린 녀석이었다.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어렸다.

동사무소로 발령 예정이라는 장동구는 나를 진짜 형처럼 따랐다.

“마무리 잘해라. 친구들 잘 사귀고.”

“네……. 형님.”

하지만 장동구의 표정은 대답과 달리 경직되며 굳어졌다.

녀석이 속해 있는 조직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

들어갈 때는 쉬울지 몰라도 조직 세계, 특히 폭력배들의 세계에서는 등 돌리고 나가는 자를 용서치 않았다.

드르륵.

그때 훈련장 밖에 주차되어 있던 선팅 진한 승합차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내렸다.

“어이 동구야~.”

우르르 몰려나와 모습을 보인 양아치 한 무더기.

“……!”

아니나 다를까. 동구 얼굴이 썩은 생선 몰골이 됐다.

“용식이 형님…….”

“야~ 군대 가더니 살 많이 빠졌네? 동구야. 뭐 하러 이 짓 하냐. 칼빵 한 번 넣고 몇 년 살다 나오면 나처럼 군대도 면제되고 사회에서 알아주는데 말이야~. 크크.”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어린놈이 도금한 이빨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그 뒤로 살찐 돼지들이 졸졸 웃으며 뒤를 따랐다.

날도 더운데 검은 양복을 쫙 빼입고 나타난 놈들을 보고 있자니 웃겼다.

자가용도 아니고 오래된 봉고차를 타고 몰려와 어깨에 한껏 힘을 주고 있었다.

“깡패들이야?”

“훈련소에 무슨 일이래?”

퇴소식에 참가한 훈련병 가족들이 눈에 띄는 그들을 향해 수군거렸다.

“뭘 보쇼! 사람 처음 봐?”

“카아악 퉤!”

조폭 축에 끼지도 못한 양아치들이 거칠게 가래침을 뱉었다.

손등까지 문신을 한 돼지들의 횡포에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썼다.

이 좋은 날……. 만사를 좋게 끝내고 싶은데…….

참으로 하늘이 얄궂었다.

“그런데 너 뭐야? 왜 우리 보고 실실 쪼개?”

도금이빨 양아치가 어이가 없어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시비를 걸었다.

그나마 곱상하게 생긴 내가 만만해 보였던 것 같다.

“용식이 형님! 안 됩니다! 이 형님 건들면 큰일 납니다!”

장동구가 눈치 빠르게 손사래를 치며 앞으로 나섰다.

“형님? 너 이 새끼! 그새 다른 조직에 들어간 거야? 와아. 어이가 없네. 너 우리 조직 강령 알지? 배신자는 사시미 삼십 방!”

용식이라는 놈이 동구를 겁박했다.

“미친 새끼…….”

하는 꼴이 하도 어이가 없어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뭐, 뭐라고 미친 새끼? 와…… 이 겁대가리 상실한 놈 봤나.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은평구 식구파 용식이야!”

조폭의 세력을 공개적으로 광고하며 큰소리치는 식구파 용식이.

“형님! 안 된다니까요!”

장동구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다시 한 번 용식이를 말렸다.

“찌그러져. 배신자 새끼야!”

퍼억!

“컥!”

또라이 용식이가 훈련소 앞에서 장동구를 패고 밟았다.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었다.

“컥!”

덩치 동구가 맥없이 쓰러지며 바닥을 기었다.

그가 과거 저지른 업보에 대한 대가를 이렇게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선은 딱 거기까지.

“너 우리하고 같이 좀 가자. 훈련 끝났으면 세상 교육 좀 받아야지~.”

용식이가 그럴싸한 표정으로 비릿하게 웃었다.

민간인 신분을 회복하자마자 그새 냄새를 맡고 똥파리가 끓었다.

“형님, 교육은 제가 전문이지 말입니다.”

“흐흐. 참교육 하면 저입니다요 형님~.”

뒤에 건들거리며 서 있던 돼지들까지 나서며 다가왔다.

경고하는데 너희들…… 실수하는 거다.

타다다다닥.

그때 등 뒤쪽에서 요란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보스!”

낯익은 목소리가 반갑게 들렸다.

“으헉!”

장동구가 쓰러진 채 그들을 보고 질려버린 눈빛을 보냈다.

“너, 너희들 뭐야!”

용식이는 더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보스! 이 잡스러운 것들은 뭡니까?”

한진웅 대표와 직원들이 인간벽을 치며 앞을 가로막았다.

당장 한 마디만 하면 기초도 없는 양아치들 아작 낼 태세다.

하지만 퇴소 기념일에 피를 보기는 싫었다.

“스마트폰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보스.”

가족들 대신 한진웅 대표를 불렀었다.

딱히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대비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 스마트폰과 차키를 맡겼었던 게 이유였다.

가끔 직원들을 보내 주차해 놓은 자동차 시동 좀 걸어 달라 부탁했었다.

띠디딕.

번호 하나를 길게 눌렀다.

- 하하. 이게 누구야? 우리 귀한 후배님 아니야~ 훈련 다 끝났어?

바로 통화가 됐다.

“네~ 잘 마쳤습니다.”

- 축하한다. 올림픽 메달 따서 군 면제받은 한국대 법학과 후배는 너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 그래. 그 마음 변치 말아라. 후배 뒤처리 하는 일이 요즘 점점 힘에 벅차다.

뼈가 있는 손 선배의 진담 같은 농담.

그가 있기에 내가 한국에서 일하기가 편했다.

“선배님. 북부지검장 잘 아시죠?”

- 물론이지. 무슨 일 있어?

“훈련소 앞에서 은평구 식구파라는 똘마니들이 저를 참교육 시키겠다고 협박하는데 처리 부탁합니다. 이것저것 엮어서 5년 이상 묶어주십시오.”

- OK! 접수 끝.

“며칠 내로 술 한 잔 사주십시오. 제대하고 났더니 술이 땡깁니다.”

- 걱정 마. 좋은 곳으로 잡아 놓을게.

“부탁합니다.”

손대균 이사와 통화가 끝났다.

“…….”

용식이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머리통을 그냥 이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면 눈과 귀가 있으니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것이다.

“용식이 형님! 어서 사과하세요! 여기 계신 형님이 강남하나회 구 회장님…… 담그신 분이라고요!”

장동구가 비명에 가깝게 외쳤다.

“으헉!”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하는 용식이.

구 회장을 담갔다는 말에 혼이 가출해 버린 표정이 됐다.

뭘 그렇게 놀래 인마.

넌 이제…… 아웃이야.

“X발! 거짓말 하고 자빠졌네. 구 회장님은 자살하셨어! 어디서 구라질이야!”

그러면서도 용식이는 믿지 못했다.

저벅저벅 그를 향해 다가갔다.

구 회장을 담글 때처럼 은근한 살기를 일으켰다.

“으으으…….”

동네나 휘어잡는 양아치 똘마니가 당해낼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뿜어져 나온 살기가 용식이를 거미줄처럼 옭아맸다.

“용식아~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다, 닥쳐! X발! 어디서 훈계질이야! 똥 방위 주제에!”

용식이는 아직 세상 무서운 맛을 본 적이 없었다.

턱!

용식이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미 살기에 묶여 꼼짝 못 하는 양아치 용식이.

놈의 탁한 회색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항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공포가 어떤 건지 제대로 맛보고 있었다.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그리고 적당히 아가리 털어. 그 도금한 이빨 뽑아 버리기 전에…….”

놈의 주변으로는 원혼의 기운 같은 것은 특별히 없었다.

아직 사람 목숨까지 해치거나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휘릭.

용식이를 휙 던졌다.

콰다다당.

동구보다 더 생동감 있게 바닥을 구르는 용식이.

도로 옆 흙바닥까지 굴러가 처박혔다.

다른 놈들은 나와 한진웅 대표를 보고 이미 질려 눈도 못 마주쳤다.

“지갑 주십시오.”

“넵!”

수표와 블랙 카드가 담겨 있는 지갑은 한진웅 대표가 맡고 있었다.

촤랏.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 날렸다.

팟!

쓰러진 용식이 바지 앞에 기를 머금은 빳빳한 수표가 꼿꼿하게 박혔다.

“으으으.”

입도 못 열고 벌벌 떠는 용식이.

조금 더 위쪽으로 날아가 박혔다면 알이 박살났을 것이다.

“사식 먹고 반성해라.”

괜히 재수 없게 내 앞에서 양아치질 하다 5년 이상 세상과 단절될 놈에게 주는 위로금이었다.

“동구야, 제대하면 형 찾아와라. 직장 잡아줄게.”

스윽.

명함 한 장을 꺼내 동구에게 줬다.

“형님! 꼭 찾아뵙겠습니다!”

두 손으로 명함을 받으며 꾸벅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장동구.

“430기 동기. 동사무소 잘 지켜.”

“충성!”

동구의 감출 수 없는 귀여운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하늘을 봤다.

방금 전까지 맑았던 육군훈련소의 하늘.

저 앞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밀려왔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만사 편했을 지난 4주의 시간.

눈앞의 하늘을 보니 탁한 세상이 또 나를 부르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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