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1화 (490/1,284)

 # 491

회귀의 전설

491장. 나를 구해줘 (4)

‘저, 저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용창호 소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주한미군사령관은 병사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오늘은 고기가 반찬으로 나오는 날이었다.

조마조마하며 그들을 조심스럽게 안내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한국군 육군훈련소 방문 자체가 특이한 상황이었다.

육군 대장들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표정들이 굳어 있어 언질을 받을 틈도 없었다.

그것도 식사 시간이 임박해서야 훈련병들과 같이 밥을 먹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논산 시내 유명한 맛집을 섭외하려던 용창호 계획은 보기 좋게 틀어졌다.

눈치 빠른 행보관이 저녁 메뉴로 고기를 급히 투입했다.

그나마 대장 일행들은 군기가 바짝 든 4주차 일반 훈련병 연대로 이끌었으나 벨 사령관은 콕 찍어 29연대를 원했다.

까라면 까라는 유재홍 장군의 명도 있었던 터라 불안감 속에서도 식당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장태산이라는 특정 훈련병을 언급하며 만나고 싶다고 요구하는 벨 사령관.

의문이 연속되는 와중에 장태산을 찾아냈다.

다른 보충역과 달리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장태산 훈련병은 관등성명도 멋지게 읊었다.

영어도 유창했다.

무슨 상황인지 감은 안 잡히지만 뭐가 되었든 무사히 넘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장태산 훈련병이 제대로 뒤통수를 때렸다.

벨 사령관이 식단에 대해 한 마디 던지자 대장들이 약속이나 한 듯 얼굴을 붉히며 용창호를 노려봤다.

거기에 더해 장태산 훈련병은 소시지 셋 조각을 얘기하며 신까지 언급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식당 안에 있던 장교들뿐만 아니라 조교와 훈련병들 모두 얼이 나간 표정이 됐다.

감히 육군 대장들 앞에서 식단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장태산 훈련병.

“장태산 훈련병. 본래 훈련소 음식은 맛이 없는 법이야.”

제2작사 사령관 유재홍이 분위기를 수습해 보려는 듯 나섰다.

미군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의 발로였다.

“음식 맛에 불평하는 게 아닙니다.”

훈련병은 대장 앞에서도 할 말 다 하며 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뭔가?”

“제가 알기로 훈련병은 하루에 3200kcal를 계산한 음식을 배당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훈련이 고되기에 일반병사들이 배식받는 3000kcal보다 더 많습니다. 고기를 비롯한 단백질, 지방, 섬유질과 기타 무기질이 포함된 균형 잡힌 식단이 요구되지만……. 지난 1주일 동안 배식받은 식단은 철저하게 탄수화물과 섬유질이 주였습니다. 장군님께서 직접 확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식단표와 배급되는 음식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뭐라고? 음식이 달라?”

유재홍 장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용창호를 돌아봤다.

군대 짬밥이 보통 맛까지 보장할 수는 없지만 칼로리는 정확히 계산해 제공되어야 맞았다.

가끔 행보관들이 장난을 쳤지만 어느 정도 선은 지켰었다.

그런데 훈련병이 정확한 팩트를 지적하며 그간의 정황을 알렸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 위생을 위해 식단을 조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용창호는 등 뒤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온몸이 젖는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간식 제공 횟수와 질도 현격하게 떨어져 있습니다. 간식이 재량이라 하지만 제가 친구들로부터 들었던 그런 간식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이런 무더위에 수박 한 조각 구경 못 해봤습니다.”

장태산 훈련병의 말은 확성기를 댄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다른 훈련병들 표정은 동질감에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른 것처럼 변했다.

영양가는 볼품없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간 꾸역꾸역 밥을 먹었던 훈련병들이었다.

매일 풀떼기에 쌀밥이 주였으니 훈련병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고기라고 해봐야 돈가스 한 번과 치킨 너겟 몇 개 먹은 게 전부였다.

게다가 돼지고기가 나온다고 해서 보면 살은 없고 비계가 대부분이었다.

상황이 이 정도니 소고기는 냄새도 맡아볼 턱이 없었다.

“으음…….”

유재홍 장군이 신음을 흘렸다.

이 훈련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상황이 파악됐다.

‘저 돼지 새끼! 적당히 처먹지!’

군대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대장이었다.

모든 병과를 원만히 이수해야만 대장이 될 수 있었다.

선을 넘지 않는 비리 수준은 봐줄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틀렸다.

벨 사령관 옆에서 카투사 통역병이 차근차근 정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남 장군님, 저 훈련병 말이 사실입니까? 여기 병사들은 유사시에 투입되는 귀중한 전력 자산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벨 사령관이 남창승 연합사 부사령관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억지로 참아내는 남창승 대장.

육군에서는 육군참모총장 바로 밑 기수이자 서열이었다.

그런 그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훈련병 식단 문제로 추궁을 당하고 있었다.

훈련병의 말이 사실인 게 확실했다.

입고 있는 훈련복만 봐도 상태가 심각했다.

사단 훈련소장을 지휘한 적이 있었던 남창승 대장도 저렇게 엉망인 복장은 오랜만에 봤다.

과거 10년 전에나 훈련소에서 사용하던 상태였다.

C급이 아니라 준 폐기물 수준이었다.

“유 장군. 헌병실장 내려오라고 해. 그리고 기무대에 연락 취하고.”

“알겠습니다.”

남창승 대장의 말에 후배인 유재홍 대장이 바로 대답했다.

“사령관님, 대한민국 육군은 비위사실에 대해 절대 비호하지 않습니다. 상확을 파악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창승 대장이 영어로 벨 사령관에게 앞으로의 조치에 대해 설명했다.

이걸로 미군이 트집을 잡으면 골치 아플 수도 있었다.

자칫 여론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한두 명 옷 벗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제대로 처리하는 게 정답이었다.

자기 사람이라고 감쌀 수 있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헌병 조사라뇨! 이건 직무범위를 넘는 월권입니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용창호가 아예 정신줄을 놓고 소리쳤다.

그것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감히 상급자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다.

‘저 새끼가……. 넌 뒤졌어!’

남창승의 눈에는 새파란 애송이로 보이는 훈련소 소장이었다.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았다.

처음 볼 때부터 훈련소 소장이라는 작자가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해 뱃살을 출렁거리며 나타났다.

이곳에 불려온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었다.

벨 사령관이 갑자기 자신을 호출하더니 미래 동반 전략 자산 양산의 핵심인 육군훈련소 방문을 요청했다.

형식적으로는 요청이었지만 차라리 명령에 가까웠다.

논산을 관할로 두고 있는 제2작사 사령관 동행도 요구했다.

정황상 정치적 행위임이 틀림없음을 직감했다.

어떤 용무인지 전혀 내용을 모른 채 이곳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감출 수 없는 진실.

병사들의 꾀죄죄한 몰골과 고기 한 점에 환장하는 모습에 남창승 대장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한미연합사 식단 수준에 비하면 이곳은 부랑자 배급소나 진배없었다.

과거와 달리 군 식단에 투입되는 예산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육군훈련소는 과거 10년 전의 식단보다 못한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수치스러울 정도의 사태가 벌어진 마당에 소장이라는 놈이 월권을 언급하며 아가리를 놀렸다.

“이 자식이 미쳤나!”

쫘아아아앗.

순식간에 유재홍 장군이 벌떡 일어나 용창호 소장의 뺨을 갈겼다.

“!!!”

뒤따르던 장교들 표정이 굳을 대로 굳었다.

장군이 훈련병들 앞에서 훈련소 소장의 뺨을 때렸다.

장교들 간의 폭행은 병사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행한다는 룰이 깨진 순간이었다.

그 만큼 엉망으로 관리되어 온 육군훈련소.

“뭣들 해! 저 자식 항명죄로 체포해!”

남창승 장군이 나서기 전에 알아서 처리하는 유재홍 대장.

타다다닥.

식당에 있던 장교들이 대장의 명을 따랐다.

용창호 양쪽 팔을 두 명의 장교가 포박했다.

“놔! 놓으라고! 내가 가만있을 줄 아십니까! 나도 이대로 당하지 않을 겁니다!!!”

이럴 때는 조용히 사라져야 마지막 남은 장군의 체면이라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용창호는 눈알이 뒤집어져 막말을 쏟아냈다.

장교들 손에 현역 육군 소장이 끌려 나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대장들 보호를 위해 밖에서 대기 중이던 헌병들에게 바로 인계가 됐다.

“불미스런 모습을 보여 유감입니다.”

남창승 대장이 영어로 벨 사령관에게 유감을 전했다.

“아닙니다. 모든 조직에 저런 암적인 존재들이 있는 법입니다. 빠른 조치에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벨 사령관은 과감한 한국군 해결 방식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놀라워했다.

장군의 항명한 처사를 바로 처단해 버리는 대장들.

미군 같았다면 소송 문제를 막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철저하게 따랐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병사들을 위해 따로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있는 훈련병과 말입니다.”

벨 사령관이 요청했다.

같이 밥 먹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장교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인태 참모장이 나섰다.

벨 사령관이 장태산 훈련병과 조용히 식사하기를 원했다.

육군훈련소 역사상 대사건들이 연속 터지고 있었다.

“참모장인가?”

“참모장 이인태!”

소장의 부재시에는 참모장이 훈련소의 전권을 행사했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준장 이인태가 앞으로 나섰다.

“장태산 훈련병 잠시 데려가도 되겠나?”

남창승 대장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이인태 참모장은 대장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신병처럼 답했다.

이것도 기회였다.

“그럼 이곳에 남아 뒷수습 좀 부탁하네. 장교들과 훈련병들……. 알아서 좀 하게.”

“충성!”

그렇게 대장들이 훈련병 한 명과 식당을 빠져나갔다.

훈련소의 다른 장교가 그들을 안내했다.

이인태와 남은 장교들은 잠시 멍하게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현역 육군훈련소 소장이 뺨을 맞고 헌병들에게 끌려갔다.

영화 같은 장면에 훈련병들은 배가 고픈 줄도 잊고 입을 쩍 벌렸다.

“조건우 대령.”

“넵! 참모장님!”

“비밀 유지시키게.”

“충성!”

“그리고……. 헌병대에 연락해 최종식 행보관…… 바로 연행해. 증거 인멸 못 하게 말이야.”

“충성!”

항명한 소장을 다시 볼 일이 없다는 걸 이인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장과 짬짜미를 먹었던 행보관에 대한 척결까지 떨어졌다.

“오늘부터 간식 제대로 공급하고 식단도 다시 조절해. 애들…… 사람 밥 좀 먹이자.”

“추우우웅성!”

힘차게 답하는 조건우 대령.

그의 얼굴에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가 번졌다.

***

화끈했던 퍼포먼스는 잘 마무리 됐다.

딸그락.

그릇에 붙어 있는 마지막 밥알을 떼먹었다.

장교 식당의 식사는 오랜만에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줬다.

사회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획득한 이들 중에서 선발되는 장교식당 취사병들은 수준이 달랐다.

사비로 식비를 내는 장교들이 훈련병들 고생하는 걸 모를 만했다.

살점이 두툼하게 붙은 매콤한 제육볶음에 신선한 상추와 마늘.

양파와 마늘 같은 부재료를 아끼지 않고 끓여낸 진짜 된장국에 아삭한 알타리무 김치.

얼마나 맛있었는지 밥을 세 번이나 받아먹었다.

그것도 별들 앞에서 말이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군.”

유재홍 장군이 나의 식욕이 어이가 없는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장군들 앞에서 밥 세 그릇 비운 훈련병은 처음 볼 것이다.

“사람이 먹는 밥을 훈련소에 들어와 처음 먹습니다.”

“……과거에 그런 말 했다면 자네는 영창감이야.”

“세상이 변했습니다. 지금 훈련병들은 과거의 병사들이 아닙니다. 배고팠던 아버지들의 피땀으로 성장한 귀한 자식들입니다. 군대에서도 최소한의 예의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침없이 나의 의견을 피력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대장들이 나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뿌리 깊은 부조리들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분들도 국방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후배들 간의 암묵적 도움과 거래된 비리로 별을 단 분들이 상당수였다.

“……세상 많이 좋아진 것 같군. 훈련병에게 이런 조언을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남창승 대장이 웃으며 한마디 섞어 왔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다들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일 뿐입니다. 장군님들이 보기에 일개 훈련병으로 보이겠지만……. 사회에서 절 만나기 위해서는 그 정도 권력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허어…….”

남창승 장군이 어이없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일개 훈련병의 말이니 건방지면서도 파격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것도 나이가 한참 어린 사회 초년생 정도의 훈련병에게 말이다.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쉽게 설명해 드리죠.”

시원한 보리차로 입가심을 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화장실에 간 벨 사령관을 제가 꽂았습니다.”

“뭐, 뭐라고!!!”

“말이 심하군! 지금 자네 장난하나!”

두 장군의 표정이 혼자 보기 아쉬울 만큼 심각하게 진지해졌다.

비밀 대화를 원했기에 장교 식당에는 대장들과 나만 자리하고 있었다.

“못 믿겠죠? 그럼 확인시켜드리죠.”

저벅저벅.

그때 벨 사령관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벨 사령관님, 두 장군께서 제가 사령관님을 추천했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군요.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나의 말에 씨이이익 웃는 벨 사령관.

“맞습니다. 여기 있는 다니엘 장……. 훈련병이 저를 주한미군사령관에 추천해 준 후원자입니다.”

“헉!”

“그런 말도 안 되는…….”

두 장군의 표정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미국 대장급 군 인사를 일개 훈련병이 추천했다는 말을 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벌어진 일이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팩트를 겨냥한 질문을 던졌다.

“…….”

약속이나 한 듯 침묵하는 두 장군.

“비밀을 엄수해 주십시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귀찮아질 수 있습니다.”

내친 김에 대장들 상대로 협박도 날렸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

이제 별을 단 대장들과 입장이 바뀌었다.

“훈련병 신분이지만 취사병이 되고 싶습니다.”

“취사병???”

“모든 훈련을 모두 최고점으로 통과하겠습니다.”

나 이래봬도 과거 전직 조교 출신이었다.

훈련 중 최고점 받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전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엄마의 마음이 담긴 집밥을 먹여주고 싶습니다.”

손맛 좋은 나의 실력, 놀리면 뭐하나.

맛있는 집밥을 만들어 훈련병들 먹이면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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