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0화 (489/1,284)

 # 490

회귀의 전설

490장. 나를 구해줘 (3)

타다다다닥.

용창호는 장교 초임 시절 때처럼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뱃살이 사정없이 출렁였다.

젊은 여자 하사에 대한 탐욕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부관이 말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은 대장급이었다.

그리고 군단장이라는 존재는 이곳에 부임하기 전 부관과 상관으로 모셨던 1군단장이자 얼마 전 진급한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이었다.

둘 다 하늘 같은 4성 장군.

거기에 더해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을 의미했다.

‘그분들이 왜?’

용창호 소장의 머릿속은 물음표만 수없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육군훈련소는 신병이나 훈련하는 곳이다.

한미연합사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세 대의 헬기가 훈련소 헬기장에 착륙하며 강력한 로터음을 울렸다.

대장급 이상만 사용 가능하다는 UH-60의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덩치가 보였다.

두 대의 헬기 앞 쪽에서 착륙해 있는 신형 UH-60헬기.

떡하니 성조기가 그려져 있었다.

노중년의 단단한 체격을 가진 미군이 내렸다.

용창호도 사단장 시절 한 번 봤던 인물이었다.

루크 벨 대장.

한미연합사 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이며 주한미군 선임 장교 신분으로 주한미군사령관으로 불렸다.

주일미군 사령관은 중장에 불과하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은 대장이었다.

휘하에 미8군관 미7공군을 두고 통합 지휘했다.

동시에 전시에는 한미연합 야전군의 총사령관이 된다.

그의 작전통제권에 의해 대한민국 내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움직여야 했다.

평시 작전통제권까지는 없지만 전쟁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작전권을 소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부관들을 대동하고 함께 내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용창호 소장은 짐작할 수 없는 사태에 속이 벌벌 떨렸다.

총 세 대의 헬기가 착륙했다.

헬기에도 4개의 성판이 달렸다.

벨 사령관, 남창승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유재홍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까지 합세해 만들어 낸 장관이었다.

4성 장군들의 어깨에 달린 별들이 용창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계룡대에서나 볼 수 있는 별들의 잔치였다.

“추우우우우성!”

용창호와 부관이 온 힘을 다해 힘차게 경례를 올렸다.

대장들 앞에서 훈련소 소장 따위는 하급 장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들 옆에 그림자처럼 수호하고 다니는 비서실장과 전속부관들은 계급이 낮아도 실세였다.

미래가 보장된 군대의 에이스들이었다.

찌리리릿.

그런 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이거…… 뭐야!’

용창호 소장은 군대에서 갈고 닦은 짬밥으로 지금 본인이 위기에 봉착했음을 알았다.

아마 육군훈련소 창설 이래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작전사령관이 불시 방문한 건 처음일 것이다.

키리졸부 훈련 같은 대규모 한미연합작전 같은 경우에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스윽.

대장들이 가볍게 손만 까딱하고 내렸다.

하나 같이 표정이 불편하게 굳어 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용창호는 바짝 긴장한 채 갑작스런 방문자들을 소장실로 안내했다.

“훈련병들 훈련 모습을 보고 싶군요.”

벨 대장이 영어로 말했다.

어느 정도 영어가 되는 고위급 장교들이니 그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날씨가 더운데 굳이…….”

용창호가 날씨를 핑계 대면 의견을 전했다.

“까라면 까!”

전임 군단장이자 전라, 충청, 경상도가 관할인 제2작전사령관이 인상을 썼다.

용창호는 아차 싶어 화들짝 놀랐다.

사단장 시절 군단장이었던 유재홍 장군에게 쪼인트를 제대로 까인 적이 있었다.

부하 영관급 장교 와이프를 성희롱했다가 신고를 당했었다.

모든 라인을 다 동원해 불명예제대를 겨우 막았다.

그러고 난 후 보임받은 마지막 일자리.

유재홍 제2작전사령관의 얼굴에 노기가 깃들었다.

용창호 소장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사령관은 애초 용창호 소장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붙잡고 있는 라인이 달랐고 연줄이 상당히 짱짱하다 보니 참는 면이 있었다.

여러 상황이 복잡한 가운데 용창호는 오늘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며 그 주인공이 됐다.

“넵!”

두 말이 필요 없었다.

용창호 소장은 긴장감으로 땀이 배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힘차게 답하고 대장들을 안내했다.

오후 4시.

오후 훈련이 마무리 되어가는 육군훈련소.

아직도 뜨거운 열기와 습기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었다.

***

“행보관님, 이제 애들 옷 갈아줘야 합니다. C급이 아니라 폐기물 수준이 됐습니다. 특히 보충역들 옷과 장비들이 엉망입니다. 간식비도 너무 줄여서 훈련병들 살이 쫙쫙 빠졌습니다. 삼계탕이라도 돌려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최종식 행정보급관 바로 아래인 상사가 참다못해 직언을 올렸다.

초급 훈련병들에게는 보통 C급 전투복이 지급되었다.

전투화를 비롯해 속옷 같은 소모품은 새것으로 지급되지만 겉옷에 있어서는 짰다.

그래도 어느 정도 되면 폐기 처분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눈에 띄게 빡빡하게 돌아갔다.

군복부터 시작해 잡다한 물품들 교체 주기가 길어졌다.

당장 급양비용부터 짜졌다.

간식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여름에는 특별 보급식이 지급되는 게 전통이었지만 그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무슨 소리야. 오 상사, 우리 때는 말이야 저 정도면 A급이었어. 그리고 집구석에서 햄이나 처먹던 놈들이 군대 밥이 입맛에 맞겠어? 다 배가 불러서 그래. 나 하사관 훈련 때 밥 한 숟갈 더 먹자고 눈에 불을 켰다. 군대는 말이야 풍족하면 사고가 나. 모자란 듯 굴러가야 군기가 잡히는 법이야.”

최종식은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행정실에서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후임을 가르쳤다.

“행정관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오영식 상사는 선임을 불렀다.

“급양관리나 잘해. 끓는 물에 팍팍 삶는 것들만 제공해. 어차피 자대나 집으로 갈 놈들이야. 4주 정도 적당히 먹는다고 안 죽어.”

후임 말을 최종식 원사는 귓등으로 흘려 들으며 대수롭지 않게 취급했다.

‘이번 달에는 좀 더 챙길 수 있겠군. 흐흐흐.’

여름에 내려오는 특별간식비를 아끼면 제법 큰돈이 됐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손을 댈 수 있는 물품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급양비와 소모품비가 가장 만만했다.

덜컥.

그때 행정관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큰일 났습니다!”

행정관실 소속 하사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황급하게 들어섰다.

“무슨 일이야? 누가 다쳤어?”

“그게 아니라…… 지금 별들이 떴습니다! 별들요!”

“별? 무슨 별?”

“한미연합사 사령관님과 부사령관님 그리고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님이 헬기 타고 왔습니다요!”

“뭐라고!”

달달한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다 말고 최종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장들이 한꺼번에 예고도 없이 방문했다면 그건 대사건이었다.

그동안 큰 사고 없이 평안했던 육군훈련소.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대장님들과 동행한 부관들 눈빛이…… 아주 살벌합니다!”

“야! 뭣들 해! 다들 조용히 비상 때려!”

원사 최종식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급해졌다.

괜히 꼬투리라도 잡히면 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누가 봐도 빤했다.

‘제발! 제발!’

최종식은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빨리 지나가기를 말이다.

***

“제2작사 사령관님이?”

“연합사 부사령관님하고 주한미군사령관님도 오셨대.”

“뭔 일이야?”

“……지금 부대 발칵 뒤집어졌다. 별이 번쩍거려서 장교들 숨도 안 쉰단다.”

“오늘 분위기 살벌하겠네…….”

기간병들이라 불리는 훈련소 소속 조교들이 사방에서 수군거렸다.

뭔지 몰라도 큰 사건 났다.

헬리콥터와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로버트 라이언과도 관련 있다는 걸 나만 알았다.

“오늘 훈련은 모두 끝났다. 바로 씻고 식사를 한다!”

“넵!”

화생방까지 끝낸 상태라 훈련병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살집 좀 키웠던 상당수 훈련병들이 점점 말라갔다.

변비에라도 걸린 듯 다들 화장실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탈수 증상을 예방하기 위해 소금과 물을 수시로 먹게 했다.

입맛 없는데 식단 질까지 엉망이 되자 병사들은 점점 기력이 쇠해졌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훈련병들이 각자의 막사로 향했다.

평소보다 훈련이 일찍 끝났다.

훈련병들은 그거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입대 전 신분인 깡패도 의사도 덕후들도 모두 평안한 오후였다.

그리고…….

“신속하게 식사를 하고 각 분대로 돌아갑니다! 실시!”

취사장 앞에서 조교들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명을 내렸다.

오늘 따라 넉넉하게 시간을 줘서 다들 깨끗하게 씻고 나왔다.

그러나 전투복들에서는 여전히 시큼한 냄새가 풀풀 났다.

계속되는 훈련에 병사들은 녹초가 됐다.

옷을 빨지 않고 간단히 먼지만 털어내고 다시 입는 병사들도 많았다.

어차피 다음 날 엉망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굳이 세탁하려 들지 않았다.

조교들도 그런 일에는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다.

보초 근무까지 서야 했기에 훈련병들은 틈나는 대로 잠자기 바빴다.

인생 2회 차 훈련병 생활도 과거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군대는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 명령에 움직이는 인간 기계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오늘 반찬 뭐야?”

“똥국에 불고기!”

“오오오! 고기다 고기!”

오늘 행보관이 고기를 풀었다.

조삼모사로 길들여진 훈련병들은 고기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빠르게 배식대로 갔다.

멍청하게 전화 통화 유혹에 빠진 훈련병들이 영혼 없이 배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줬다.

고기는 자율 배식이 아니었다.

밥과 똥국, 김치, 고기, 두부조림이 나왔다.“고기 좀 더 줘.”

“정량이야.”

“아쒸…….”

배식하는 병사에게 말을 섞던 훈련병들이 아쉬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평소보다 후하게 밥상이 차려졌다.

고기에 눈먼 장병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식판에 고개를 처박았다.

얼마나 애들을 굶겼는지 정신없었다.

“일동 차렷!!!”

그때 29연대 취사관에 쩌렁쩌렁한 큰 목소리가 울렸다.

밥 먹다 말고 모두 멈추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나를 비롯해 병사들 눈이 문 쪽을 향했다.

번쩍이는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군 소속 장군도 함께였다.

한국군 대장들 두 사람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절절매는 훈련소 소장도 보였다.

용창호라는 육군훈련소 소장.

툭 튀어나온 뱃살과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은 말년이 편할 것 같지 않는 관상이었다.

저놈이 원수였다.

지난 생의 훈련소보다 더 개판으로 만든 위인.

“장태산 훈련병!”

교육 연대장이 나를 지명했다.

“충성! 29연대 3중대 2소대 185번 훈련병 장태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리고 소속과 관등성명을 외쳤다.

전직 병장 어디 가는 거 아니다.

파바바밧.

장군들뿐만 아니라 병사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반가워요. 벨이라고 합니다.”

미국 코쟁이 장군이 나에게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별이 4개였다.

주한미군사령관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 악수를 청한 것이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대장들뿐만 아니라 장교들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벨 사령관님.”

안 반가울 수 없었다.

정확한 미국식 발음으로 답했다.

미국 장군들도 정치적 영향을 받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떡대 좋은 미군 장성은 내 입김으로 한국에 박아 놓은 장군이었다.

로버트는 확실히 똑똑했다.

내 말을 전부 이해했다.

“옆에 앉아 식사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타다다닥.

눈치 빠른 한국 장교들이 쏜살같이 뛰어가 배식을 받아왔다.

그리고 내 옆을 비롯해 정면과 주변 모든 식탁의 훈련병들이 자리를 빼앗겼다.

한마디로 사방에 별들이 포진했다.

지난 생이었다면 얼어서 몸이 굳어 숟가락도 못 들었겠지만 이번 생은 아니었다.

권력자들 옆에 있으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만나서 반갑네. 장태산 훈련병. 나 연합사 부사령관 남창승 대장이라고 한다.”

“충성!”

“난 제2작전사 사령관 유재홍일세.”

“충성!”

장군들도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흐음……. 한국 훈련소 식사는…… 배고픔을 이겨내는 극기 훈련장소인가요?”

벨 사령관이 배식된 밥과 반찬을 보며 장군들에게 물었다.

“…….”

대장들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듯 붉게 변했다.

다들 이런 밥 처음이지?

여기서 그칠 수 없었다.

“오늘 밥은 그래도 고기가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소시지 세 조각만 받아도 하나님께 감사함을 올릴 정도입니다.”

영어로 유창하게 그간의 행태를 짧게 답변했다.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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