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2화 (481/1,284)

 # 482

회귀의 전설

482장. 멘토 (2)

“수고했다.”

“다 회장님이 믿어 주신 덕분입니다!”

“아니다. 네가 수고가 많았다.”

오정 그룹의 회장 집무실.

오정의 임성철 회장이 아들 임준형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정 전자에서 출시한 스마트폰 갤루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선주문만 30만 대였다.

그리고 해외 시장까지 합치면 수백만 대는 쉽게 소화할 수 있었다.

인기가 떨어지는 핸드폰과는 판매지수 자체가 달랐다.

가격대도 훨씬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거침없이 스마트폰의 신세계에 빠져들었다.

“정부를 동원해 시간을 벌어 놓아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자칫…… 큰 위기를 맞을 뻔했습니다.”

“이렇게 스마트폰 시장이 커질지 나도 예상 못했다.”

“스마트폰 덕분에 메모리반도체를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큰 규모로 확장 될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AP칩과 모바일 D램, 낸드플래시 시장에 선도적으로 자금을 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임준형은 전자 사장도 아니지만 투자집행을 요구했다.

“보고 받았다. 메모리와 달리 다른 부분은 우리 오정 기술력이 딸린다. 대비책은 준비된 거냐?”

“연구자금이 상당히 소요될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어차피 미래를 위해서는 필수적입니다. 과거 치킨 게임으로 눌러버렸듯 파격적인 자금집행이 요구되는 바입니다.”

임준형은 스마트폰 성공에 힘입어 과감한 투자를 제안했다.

오정의 성공에는 항상 이렇게 선재적인 대규모 투자가 전제됐다.

시장을 파악하면 바로 힘으로 눌러버렸다.

메모리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아 오늘의 오정전자가 될 수 있었다.

“그건 회의를 통해 결정하마.”

“감사합니다. 회장님.”

“넌 하나뿐인 오정의 후계자다. 언제나 자신감 잃지 말고 살아라.”

아들이 1년 전에 이혼했다.

그 뒤로 언론의 표적이 됐지만 아들은 생각보다 잘 버텼다.

이혼한 아들을 보면 뼈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녀 간의 문제는 대그룹 회장도 어쩌지 못했다.

과거처럼 더 이상 여자들이 참고 살던 세상이 아니었다.

“회장님이 계셔서 언제나 든든합니다.”

“녀석…… 넉살은…….”

아들의 말에 임성철 회장은 기분이 좋아졌다.

스마트폰 사업이 성공하자 아들 태도가 변했다.

회사에서도 이렇게 회장님이라 칭할 만큼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진짜 기업인의 면모를 보였다.

“엘자 그룹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해 봤느냐?”

“아직 성과를 못 내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안정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기술 인력이 부족한 엘자 전자에서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입니다.”

“확 치고 나가. 공격적 마케팅을 벌여서 격차를 벌려라. 우리 상대는 엘자가 아닌 전 세계다. 집안에서 성공 못하면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자는 사냥감이 죽을 때까지 목을 놓지 않는다. 그런 정신을 잊지 말아라.”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나이가 있었지만 임성철 회장의 공격적 마인드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 녀석과는 아직 화해를 하지 않았느냐?”

“……아직입니다.”

“다시 만나 보거라. 소문에 듣자하니 천일 그룹을 이번에 삼켰다고 하더라.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거라. 녀석은…… 나도 속을 파악 못할 정도로 심기가 깊다.”

“알겠습니다.”

임준형은 대답하긴 했지만 목소리에 힘을 담지 않았다.

대한민국 재계의 유일한 황태자로 불리는 사람이 자신이었다.

하찮은 천일 그룹 따위를 삼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정 눈에는 천일 그룹 정도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저 녀석……. 자존심 세우다 언제 큰일 나겠군.’

다 큰 자식에게 누구를 만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도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은 더 그랬다.

임성철 회장이야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아들 입장은 또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어차피 작은 오해일 뿐 그런 일로 오정이 망할 일은 없었다.

특히 막내딸과 장태산은 가깝게 지내는 관계였다.

이번 설에도 섭섭지 않게 장태산 집에 선물을 보냈다.

장태산에 대한 인간적인 관리는 자신이 하면 그만이었다.

‘생각난 김에 술이나 한잔 할까?’

갑자기 장태산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진 임성철 회장.

한 번 보자고 말을 전하긴 했지만 장태산이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

대통령도 전화 한 통이면 만날 수 있는 임성철 회장이었건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수고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해.”

“쉬십시오. 회장님.”

임준형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장태산……. 그 어린놈은 왜 자꾸 언급하시는 거야.’

돌아서는 임준형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장태산이었다.

어린 녀석이 주제에 맞지 않게 가진 게 너무 많았다.

비서실을 통해 보고 받는 녀석의 기행은 누가 봐도 놀랄 일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관심은 딱 거기까지.

장태산이 고개를 숙이고 바짝 엎드리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은 없었다.

회장인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참고 있을 뿐 앞에서 까불면 앞날을 장담 못했다.

***

“바쁜 시간 아닌가 모르겠군.”

“네. 지금 한창 바쁜 시간입니다.”

“???”

엘자 고자룡 회장이 나의 답변에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며칠 후에 사법 시험 2차입니다. 회장님 부름이 아니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어? 이거 진짜 미안해지는데 하하하.”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웃음의 의미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자네 생각이 나서 술 한 잔 하고 싶었네. 마시게.”

여의도 엘자 그룹 본사와 가까운 63빌딩 일식집.

나도 태어나서 처음 와본 곳으로 놀라울 만큼 야경이 끝내줬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이 내려다 보였고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중간에 놓인 다리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오가는 자동차 라이트들과 빌딩 숲이 만들어 내는 야간조명은 술맛을 더했다.

“얼마나 할까요?”

“그렇게 비싸지는 않네. 주방장 특별 코스로 100만 원쯤 잡으면 될 걸세.”

“그게 아니라 이 빌딩요.”

“???”

“야경이 끝내주게 아름답습니다. 제 집보다 서울 야경이 멋진 곳은 이 빌딩이 처음입니다.”

“……농담이 아닌 것 같군.”

농담이 아니라 내 소유의 건물이다.

안아를 인수하면서 TS 그룹에 귀속됐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걸 구입하고도 와보지 못한 것이 괜히 후회됐다.

앞으로 자주 와서 건물주로서 아름다운 뷰를 즐겨야 할 것 같다.

안주도 괜찮았다.

산마와 참치로 만든 전체 요리가 나왔다.

맑은 미소 된장국에 자연산 참돔을 비롯한 조리장 특선 모듬회가 먹음직스럽게 세팅되었다.

술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도자기에 담겨 있는 사케였다.

쪽바리는 싫었지만 일식까지 거부하지는 않는다.

음식은 죄가 없었다.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잔을 들고 고마움을 표했다.

고자룡 회장 덕분에 한국의 명소 하나를 발견했다.

“고맙다니 다행이군.”

고자룡 회장도 참 안됐다.

오정의 스마트폰 출시로 똥줄 탈 것임에도 나이 어린 나를 먼저 불렀다.

멘토 역할을 기대한 것 같았다.

안 봐도 머리에 그려지는 상황.

고자룡 회장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입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사케 고유의 향과 맛이 전해졌다.

맑고 담백한 한국 전통주와 달리 사케는 특유의 향이 담겨 있었다.

살짝 달짝지근하면서도 독한 맛이 뒤에 따라왔다.

겉으로는 세상 온순하지만 속은 알 수 없는 일본인 같은 술이었다.

입에 회를 넣고 음미했다.

자연산 참돔만이 줄 수 있는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네.”

“회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경영하는 사업체가 있습니다. 사법 시험도 봐야 하고 학교 수업도 있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하하. 미안하네. 다음에 다시 한 번 거하게 대접하겠네.”

처음 볼 때부터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자존심은 강했지만 인자한 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이유가 있어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저를 왜 부르셨습니까? 지금 한창 정신없을 시점일 텐데요…….”

야경을 배경 삼아 마시는 술 한 잔이 끝내줬다.

이제는 술값을 할 때.

“……다 알고 있는 것 같군.”

“오정에 제대로 한 방 맞았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건…….”

“뼈아픈 일격일 겁니다. 이번 사건으로……. 엘자는 스마트폰과 관련해서 센터에서 영원히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너무 심한 비약이야.”

“비약요? 뭐 핸드폰 제조하던 기술로 얼마간 버틸 수는 있겠지만 곧 중국업체들이 치고 올라올 겁니다. 국가에서 파격적으로 지원을 받고 기술을 훔쳐 내 금세 엘자를 뛰어넘어 치고 나갈 게 확실합니다.”

파르르 고자룡 회장의 얼굴 근육이 떨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두 번째 만남과 술자리에서도 독설은 이어졌다.

독설이 아니라 엘자의 미래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국내에 안주하다 제대로 패착을 밟았다.

반도체 수직 계열화를 이루지 못한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중국업체는 단순 하청 업체일 뿐이야. 그리고 전자 기술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다 일본이 한국에 당했습니다. 그들도 방심하다 잘나가던 전자산업을 대차게 말아 먹었습니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그것도 중국은 일당 독재의 공산국가입니다. 엘자에서 특허권을 주장하더라도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트집을 잡아 벌금 때리면 그만입니다. 지금 다들 중국의 환상에 빠져있지만 곧 그곳은 한국 업체들의 무덤이 될 겁니다. 10억 내수시장요? 반대로 10억의 무지한 자들의 횡포는 다들 생각을 안 하더군요.”

신랄하게 짱깨 속성을 해부해줬다.

“홍위병으로 문명을 싹 불질러 버리고 지식자들을 창으로 찔러 죽인 무식한 족속들입니다. 돈이 된다면 어떤 짓도 불사할 놈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사업가들의 마인드가 무지해 보입니다. 엘자에서도 중국에 LCD 공장을 추진하고 있더군요. 배터리 사업도 함께 말입니다.”

“……!”

내 말에 깜짝 놀라는 고자룡 회장.

“발 빼십시오. 지금이야 달콤한 말로 유혹하지만 기술을 넘겨주지 않으면 공장 가동도 못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공장이 가동되면 내수 기업 대우를 해준다고 약조가 되었네.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라도 중국 시장은 반드시 선점해야 하는 대상이야.”

고자룡 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엘자가 안 되는 겁니다.”

“뭐라고!”

“제가 처음 뵈었을 때 말씀드렸죠? 엘자 주식은 매력이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엘자는 저에게는 계륵과 다름없습니다. 버리자니 딸린 직원과 가족들이 눈에 밟히고 취하자니 그 둔한 행보와 한치 앞만 보는 행보에…… 고개가 저어집니다.”

“자네…….”

고자룡 회장의 인내가 바닥을 보인 듯 눈빛이 이글거렸다.

또로록.

무심히 잔에 술을 채웠다.

나도 이런 불편한 자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미래에서 봤던 엘자가 중국에게 수모를 당하던 모습이 머리에 아직도 생생했다.

LCD 공장은 건설과 동시에 중국이 삼켜 버렸다.

야금야금 기술과 기술자들을 빼돌린 중국은 엘자의 LCD 기술을 추월해 버렸다.

LED 공정이 남아 있지만 그 또한 위태로웠다.

2020년에 LED도 중국이 앞질러버린다.

수십조가 넘는 파격적인 지원과 인재 빼돌리기에 장사가 없었다.

오정처럼 뚝심과 저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5G 장비 사업으로 국민들에게 불신까지 얻는다.

그러나 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묶인 사업으로 인해 엘자는 중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

말릴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려야 했다.

“자네의 미래를 보는 안목은 높이 사지만 판단은 안타깝군.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국가 간에 허락을 받아서 행해지는 대형 사업일세. 중국도 함부로 하지 못해.”

확신에 찬 말에 어이가 없었다.

“오만한 겁니까? 아니면 무지한 겁니까?”

“그만하게! 말이 너무 건방지군!”

“술값은 해야죠.”

“…….”

“중국에서 보기에 엘자 그룹이 대단해 보일 것 같습니까? 오정이라면 모를까 중국은 연대도 엘자도 아래로 깔고 시작합니다. 도광양회라는 말의 의미를 뼈에 각인하십시오. 중국에 들어가는 순간 수렁에 빠지는 겁니다. 국가 이익 앞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이 가당키나 합니까?”

푹푹 칼로 고자룡 회장을 난도질했다.

항해를 담당하는 선장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사공이 많아 그렇지 않아도 노선 조종이 힘든 엘자 그룹이었다.

“자네와의 인연은…… 길게 갈 수 없을 것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아까웠지만 실력이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인연은 무의미했다.

이젠 우리 사랑을~♬.

때마침 스마트폰 벨소리가 울렸다.

확실히 이 일을 마무리 할 필요가 있었다.

스피커 폰 기능을 활성화 시켰다.

- 장 대표. 날세~.

“넵~ 회장님.”

- 바쁜 거 아니면 오늘 술 한잔하지. 내가 기분이 좋아서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나?

“물론입니다. 저도 회장님 뵙고 싶었습니다.”

- 하하 그랬나? 그럼 예전에 봤던 곳으로 오게나. 오늘 거하게 취해보세~.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날 초대하는 임성철 회장.

“…….”

오정 임 회장의 나를 대하는 자세에 멍해진 고자룡 회장.

목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누군지 알고도 남았다.

“술값은 다 한 거 같군요. 다음에는…… 모르는 사람으로 대했으면 합니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이상의 인연은 서로에게 상처였다.

“장태산!!!”

뒤에서 나를 부르는 고자룡 회장의 분노에 찬 목소리.

걸음은 멈췄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마지막 남은 예의.

“반드시 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거야! 똑똑히 지켜봐! 엘자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말겠어!”

상처 입은 사자가 온 힘을 다해 으르렁 거렸다.

진실은 가끔 마주하기 두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법이다.

난 진심으로 기원했다.

저 사자가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 초원을 호령하는 맹수가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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