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8화 (477/1,284)

 # 478

회귀의 전설

478장. 나만의 방식 (1)

“하악……. 학…….”

코하네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놈이 찌른 군용 대검이 갈비뼈를 뚫고 폐 한쪽을 절단냈다.

기흉이 차 곧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았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장태산이 평소 타고 다니는 차에 최첨단 위치추적기를 달아놓았다.

감청까지 되는 장치라 평소에도 장태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급하게 차를 몰아 장태산의 뒤를 따라갔다.

조직에서 하달된 암살 명령을 완수하기에 타이밍이 좋았다.

그렇게 뒤를 밟아 도착한 산 안쪽에 자리한 공장.

은밀히 주변 숲을 이용해 잠복했다.

잠시 뒤 소란스러운 비명과 함께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곧 장태산이 모습을 보이며 나타났다.

그가 여성을 안고 나오는 모습에 코하네는 자신도 모르게 감동했다.

코하네도 익히 알고 있는 장태산의 회사 직원인 미모의 여성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조건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었다.

그 순간 코하네는 북한 말투의 욕을 들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저격총을 이용해 장태산을 사살하려고 하는 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폭발 소리가 들리는 순간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이후 벌어진 육박전.

특수 훈련을 받은 코하네도 놈에게 밀렸다.

상대는 사나운 맹수 같았다.

“코하네!!!”

장태산이 쓰러져 있는 자신을 살폈다.

총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태산…… 상…….”

“코하네! 말하지 마요. 내가 치료해 주겠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아프지……. 으윽.”

후회는 없었다.

순간의 선택이었고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스스로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었다.

어떤 의료행위로도 목숨을 살릴 수 없는 부상이었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 분명한 저격수의 칼을 쓰는 수법은 악랄했다.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했다.

폐를 공격해 구멍을 내고 목까지 확실히 따려고 했던 놈이었다.

후두둑.

코하네가 입고 있던 검은색 옷 상의가 뜯겨졌다.

“이번……. 은혜는 반드시 배로 갚겠습니다.”

피로 몰든 코하네의 상체는 숨을 쉴 때마다 피가 섞인 기포가 올라왔다.

“꺼…… 어억…… 꺽.”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된 코하네.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자 산소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눈에 띄게 파랗게 변해가는 코하네의 얼굴.

촤아아앗.

갑자기 상처 부위에 차가운 무언가가 쏟아졌다.

“마셔요.”

그리고 장태산이 입에 무언가를 물려줬다.

저승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시게 된 물이라고 생각한 코하네가 힘없이 목젖을 열었다.

순간 페퍼민트향 같은 상쾌한 음료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치이이이잇.

칼에 찔린 상처 부위가 욱신거리나 싶더니 이내 시원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온몸을 엄습했던 고통이 사라져갔다.

“!!!”

물론 숨 쉬기도 편해졌다.

분명 폐에 구멍이 뚫려 저승으로 가는 강을 건너야 했지만 코로 맑은 공기가 드나들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그 사이에도 공장은 활활 타올랐다.

불길 덕분에 눈에 훤히 보이는 장태산.

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저승사자 방금 사라졌습니다.”

“네???”

“일어나 봐요.”

말을 하는 데도 전혀 이상이 없자 코하네가 어리둥절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놀랍게도 그 짧은 사이에 몸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회복돼 있었다.

분명히 칼에 찔렸던 상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흉터만 남기고 아물었다.

아니 그 상처마저도 눈에 띄게 작아지더니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멋!”

그 순간 코하네는 오른쪽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나 있었던 것을 알았다.

피에 젖은 옷자락에 겨우 가려져 있을 뿐 훤히 드러나 있던 부끄러운 속살.

코하네는 급한 대로 손바닥으로 가슴을 가렸다.

‘도대체 뭐야!’

코하네는 이 상황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죽음을 불러왔을 분명한 부상이 말끔히 치유됐다.

한때 즐겨읽던 판타지 만화에 나온 사제들이 제조하는 최고급 성수의 효능과 흡사했다.

‘설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코하네가 장태산을 바라봤다.

“……고국으로 돌아가요. 저에게 감시하고 있다는 걸 들켰다고 하면 됩니다.”

“!!!”

장태산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친구로 상대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만나면…… 순댓국 먹으러 가요. 이런 관계가 아닌…… 진짜 친구로.”

또로록.

코하네는 자신도 모르게 따듯한 장태산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조직을 위해 키워진 코하네에게 장태산처럼 진심을 담아 따뜻하게 말해 준 사람은 없었다.

“고마워요. 코하네.”

장태산이 눈물을 흘리는 코하네를 부드럽게 안았다.

손끝에서 따뜻함이 전해지고 심장에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흐으윽……. 아아앙.”

급기야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 만 코하네.

계산하지 않은 순간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코하네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

“다행입니다! 보스!”

“야아……. 진짜 저격총이었어? 와아아…… 조폭 새끼들 무섭네.”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실 코하네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성수로 치료를 받은 코하네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잠든 유세라를 차에 태우고 와 사무실 건물 게스트 룸에 눕혔다.

그리고 조 변호사님과 한진웅 대표를 불렀다.

출동하려던 씨크리티 직원들은 불러들였다.

괜히 경찰의 의심을 사서 받을 필요가 없었다.

“보스, 정말 괜찮으십니까?”

다시 한 번 한 대표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그 조폭 새끼들 어디 있어?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이런 건 바로 언론에 띄우고 영장 쳐야 해!”

조 변호사님도 많이 흥분했다.

모두 다 죽었다.

저격질 하던 놈의 시체도 불타는 공장에 던져 태워버렸다.

총은 땅 파서 깊게 묻었다.

증거는 모두 인멸해 버렸다.

괜히 경찰에 신고해야 봐야 머리만 골치 아팠다.

“강남하나회 소속입니다.”

“……강남하나회?”

조 변호사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검사였던 양반이었기에 그들의 위명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보스 명령만 내리십시오…… 모조리 묻어 버리겠습니다!”

한진웅 대표는 정황을 모르는 만큼 쫄지 않았다.

“구광필이…… 그 새끼 독한 놈인데…….”

“그 정도입니까?”

조 변호사님 말에 한진웅 대표가 재차 물었다.

“예전에 그놈 털려고 동부지검 부장검사가 나섰다가 옷 벗었잖아. 그리고 1년 후쯤 행방불명되고 마누라랑 아들 둘은 교통사고로 한 자리에서 죽었어.”

“헛.”

그제야 한진웅 대표가 움찔하며 신음을 토했다.

“이번 정권과도 인연이 깊어. 구광필이가 선거 때 실세들 많이 도와줬잖아. 그리고 재벌들과의 사이에서도 오가는 커넥션이 만만치 않아. 검사, 형사들 중에서도 조직에서 관리하는 놈들이 있을 정도니까…….”

짧은 설명이었지만 정재계를 비롯해 법조계와도 깊이 얽혀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건설회사 회장이야. 합법적 사업체가 몇 개 있어. 순수익도 만만치 않아. 준 재벌급이야.”

“봐주는 로펌 있습니까?”

“리앤장.”

‘역시나’였다.

대한민국에서 빠질 수 없는 이익집단 카르텔의 핵심인 리앤장.

돈이 있는 곳이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고 덤비는 집단이었다.

일본과 전범기업을 대신해 대법원장과 짜고 대한민국의 과거를 너덜너덜 팔아먹었던 리앤장.

어김없이 오늘도 그 이름이 등장했다.

“보스! 회장새끼 잡아다가 묻어버립시다!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한진웅의 분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참아. 쉽게 잡힐 놈이 아냐. 그 자식 주변에 깡패들이 항상 있어. 소문에 의하면 총기까지 소지하고 있다고 하더군.”

조 변호사님이 한진웅을 다독였다.

“법적으로는 안 될 거 아닙니까!”

답답한 듯 한진웅 대표가 큰소리를 냈다.

“……그게 법이야. 드러난 죄가 있어야 처벌 가능한데 구광필 그놈은 영리해.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 아랫놈들이 책임져. 나름 의리가 있어서 따르는 놈들이 많아. 괜히 전국구를 좌지우지하는 보스가 아냐. 조직원만 수백 명이야.”

조 변호사님이 이래저래 아는 게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놔두면 안 됩니다! 그런 놈들은 반드시 다시 손을 쓸 겁니다!”

“……만만한 지방 똘마니들이 아냐. 구광필 같은 놈은 최소 정권 실세가 나서야 해.”

“그렇다고 놔둡니까? 그런 놈들은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어야 합니다.”

밤이 깊었다.

피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맴돌았다.

구광필은 또다시 오늘과 같은 짓을 벌일 게 뻔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개처럼 사는 놈들이 세상에 너무 많았다.

쓸고 치워도 다시 고개를 드는 악의 종자들.

조 변호사님이나 한 대표에게 맡길 사건이 아니었다.

주변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내가 직접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놈 어디에 숨어있습니까?”

“장 대표. 아직 건들면 안 돼. 증거를 찾아서 한 방에 보내야 돼. 직접 손보려다가 다칠 수 있어.”

조 변호사님이 말렸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한 대표님 부탁해요.”

“넵! 애들도 추려 놓겠습니다!”

한 대표는 나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아챘다.

“장 대표 큰일 난다니까! 정권 실세가 그놈 뒷배야. 리앤장 손 이사도 이번에는 막아줄 수 없어!”

“조 변호사님, 제가 언제 사람 가리면서 팼습니까?”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끄응…….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십시오. 나만의 방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결심이 섰다.

아직 손의 피가 마르기 전인 오늘 밤.

구광필 얼굴을 봐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왜 아직 연락이 없어?”

강남에서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파워팰리스의 최상층 팬트 하우스.

구광필은 집에 돌아와 전화를 기다렸다.

황 이사가 오늘 일을 처리한다고 보고했었다.

가장 믿는 오른팔인 김철수를 딸려 보냈다.

실패는 있을 수 없었다.

조직 총잡이들까지 대동했다.

그 틈에 놈이 목숨을 부지할 경우의 수는 1도 없었다.

그러나 뭔가 불안했다.

“X발. 기분 엿 같네.”

집이라고는 하지만 인기척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식구들은 살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진작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괜히 상대편 조직에게 미끼가 될 수 있어 멀리 보낸 것이다.

홀로 이 넓은 집에서 지냈다.

파워팰리스는 조직원들이 없어도 어느 정도 보호 장치가 돼 있었다.

자체 경비원들 실력은 믿을 만했다.

집에 들어오려면 삼중 안전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건실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어 조직원들을 집에 들이는 일은 만들지 않았다.

또로로록.

홀로 양주를 따라 마시는 구광필.

즐기던 계집 생각도 전혀 나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끈적끈적한 느낌이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장태산……. 잘 가라 새끼야. 크크크.”

애써 불길한 기분을 털어내며 양주를 글라스 잔에 가득 따라 마셨다.

타고난 몸 자체가 강건해 웬만한 술도 가뿐히 소화가 됐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양주 한 컵을 들이켠 구광필.

이상하게 목이 바짝바짝 타 안주도 없이 다시 한 잔을 채웠다.

휘이이이이이잉.

갑자기 3월의 차가운 밤바람이 넓은 거실 안으로 휘몰아쳤다.

“???”

어디 창문이라도 열린 듯했다.

120평 복층 팬트하우스에는 전망이 끝내주는 넓은 테라스가 존재했다.

그곳에 소나무와 잔디를 심었다.

거실에서 나와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구광필.

아니나 다를까. 바깥쪽 거실 문이 열려 있었다.

“내가 열었나?”

가끔 이곳에 나와 발아래 깔린 서울을 바라보며 담배 피는 걸 즐기는 구광필이었다.

손에 양주가 담긴 잔을 들고 열린 문 쪽으로 다가갔다.

“너,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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