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7
회귀의 전설
477장. 뜻밖의 조력자 (2)
탕! 탕! 타다다당.
“으아아아악! 악!”
“???”
공장 안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난무하는 비명 소리에 김철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공장과의 거리는 약 200미터.
예민한 청각을 소유한 김철수의 귀에 공장 안의 상황을 짐작할 만한 소리들이 낱낱이 들려왔다.
“종간나새끼들……. 무작이 시끄럽구만. 뱃대지 부른 도야지 아새끼들 일처리하고는…….”
김철수는 불필요한 소음에 인상을 썼다.
살찐 돼지 같은 조폭들 몸뚱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주먹을 휘둘러 입에 풀칠하며 사는 놈들은 하나같이 돼지 모양새였다.
남한의 모든 작태가 내심 불쾌하고 마음에 안 들었다.
남한에 파견된 직후에는 북한 실정과 확연히 다른 신문물에 경외심을 품기도 했었다.
속도를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기차는 운행에 며칠씩 걸리는 북한 철도와 비교가 됐다.
당 간부들이나 사용하는 핸드폰을 코흘리개 애새끼들도 다 들고 다녔다.
먹을 것은 풍족하다 못해 음식물 쓰레기통이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버려진 것들로 꽉 찼다.
자신이 비밀로 보내주는 돈이 아니면 아내와 자식도 꽃제비가 되었어야 할 정도로 북한의 식량 사정은 열악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고 난 뒤 난파되었지만 북남의 사정이 이렇게 차이 날 줄 미처 몰랐다.
황해도 출신이지만 특출 난 능력으로 평양에서 생활하며 밥 안 굶고 살았던 김철수였다.
그런 그가 당황했을 정도로 남한 사회는 부유하고 풍족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의 나약함이었다.
김철수는 나약해 빠진 사람들을 대면할 때마다 혀를 찼다.
운동 같은 활동 대신 게임에 빠져 지내는 청소년들의 육체는 허약했고, 물질적인 것들이 차고 넘쳐도 사람들의 불만은 끊길 줄 모르고 계속 쌓였다.
잘나가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 스스로 절망의 늪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이가 없었다.
당장 오늘 먹을 식량만 있어도 행복했던 김철수는 이런 남한 사람들의 만족을 모르는 모습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북한에서도 배부르고 넓은 집에서 사는 당 간부 가족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 간부들도 언제 숙청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산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생각 끝에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으로 사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 김철수의 판단은 맞아 들어갔다.
그러나 일은 김철수의 뜻대로만 흐르지 않았다.
남한 파견에 암살 명령이 하달됐다.
김철수도 남파 교육을 받긴 받았지만 진짜 남한에 파견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막상 일이 터지자 젊은 아내와 아들이 눈에 밟혔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었다.
당에서 떨어진 명령은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만 했다.
성공하면 영웅이 될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가족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눈물로 생이별을 하고 남한에 파견됐다.
황상엽 주변에 국정원 특수 요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에 암살 계획을 이행하려는 순간…….
“썅…….”
그 순간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김철수는 욕이 터져 나왔다.
믿었던 조국이 김철수와 남파 조직원들을 버렸다.
북한에 침투한 남한 간첩들 신상 목록과 맞교환을 해 버렸다.
구광필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 시점부터 김철수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됐다.
“…….”
소음이 들리던 공장 안에서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목표 대상을 누가 죽여도 상관없었다.
남한에 들어와 지금까지 목을 딴 사람이 100명을 넘었다.
북한에서도 반역자들을 대상으로 암살 교육이 실행됐다.
더 이상 사람의 목숨을 제거하는 일은 김철수에게 그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았다.
오직 생이별한 가족만이 소중했다.
오늘 일만 끝나면 두둑하게 보너스를 받아 가족들을 북한에서 탈출시킬 수 있었다.
끼리리리릭.
드디어 공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유유히 걸어 나오는 사람.
김철수는 급히 저격총에 달린 야간투시경으로 상대를 확인했다.
“!!!”
사진으로 봤던 놈이다.
그의 품에 기절한 듯 축 늘어진 여자가 안겨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놈.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구광필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명을 내렸다.
“종간나 새끼들…… 실패했구만.”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김철수가 투시경을 응시했다.
놈을 조준하며 방아쇠를…….
퍼어어어어엉! 퍼버버버버버벙!
그 순간 갑자기 공장이 폭격에라도 맞은 듯 엄청난 폭발음을 일으키며 불길에 휩싸였다.
거세게 치솟아 오른 불길에 눈이 부시는 김철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끼릭.
푸슉!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겨 총을 발사했다.
쇄애앳.
그리고 그 순간 김철수를 향해 공격해 오는 빛 속에 실루엣 하나.
“헛!”
김철수는 수많은 훈련을 통해 배웠던 임기응변 태세로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콰득.
그의 움직임을 따라 바닥에 박히는 날선 검 한 자루.
김철수는 두 눈을 비비며 튕기듯 일어서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이 에미나이는 뭐야!’
***
“파이어 볼!”
마나를 응축해 마법을 시전했다.
완벽하게 뼈까지 태워 흔적을 없애기 위해 마나를 더했다.
재가 된 뼈로는 DNA를 추출할 수 없었다.
동정심은 추호도 없었다.
나를 제거하겠다고 불러들인 공장 안에 상당히 많은 혼령들이 떠돌았다.
조폭들 주변 역시 영의 기운들이 뭉쳐 떠 있었다.
산 사람 한두 명 죽여서 묻은 놈들이 아니었다.
일 년에 일어나는 수만 명의 실종자들 속 상당수가 이런 놈들 손에 운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놈들의 몸이 박살날 때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를 지급받았다.
마지막에 죽였던 놈은 일반 조폭보다 몇 배나 많은 포인트가 쏟아졌다.
용서라는 말은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유세라를 미끼삼아 나를 제거하겠다고 수를 쓴 악마들이었다.
내가 그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내가 죽고 또 다른 희생들이 생겼을 것이다.
퍼어어어어엉! 퍼버버버버버벙!
공장이 마법에 폭발해 폭삭 내려앉았다.
수면마법에 취한 유세라 씨는 그때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푹 자고 나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 마무리가 됐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퍼어어억!
공장 파편에 대비해 펼쳤던 실드를 뚫고 강력한 무언가가 왼쪽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촤아아아아앗.
휘청.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뒤늦은 고통에 몸서리쳤다.
저격총이었다.
실드 마법을 뚫을 정도로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고성능 저격총이 확실했다.
“실드! 실드!”
연속 실드를 펼치고 몸을 날렸다.
전면을 향해 미친 듯 달렸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공장의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저격총은 단발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저격수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특등 저격수는 중대 병력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이 존재했다.
털썩.
일단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2차 사격은 없었다.
“으윽.”
그때서야 고통이 제대로 밀려왔다.
조금만 자세가 달랐어도 심장이 뚫려 즉사했을 것이다.
항상 위험에 대비한다고 했지만 저격소총을 소유한 저격수를 이런 곳에서 맞닥뜨릴 줄은 몰랐다.
금강불괴가 되지 않는 한 보통 사람의 목숨은 지키기 힘들었다.
유세라를 조심스럽게 조용히 눕혔다.
이대로 당하고 돌아가는 것은 억울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고 이가 갈렸다.
강남하나회의 치밀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대한민국의 법 테두리가 강남하나회에 영향력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악의 씨앗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남겨 둔 나의 잘못이기도 했다.
한동철 상무라는 놈을 처리할 때 같이 제거했어야 했다.
“아공간…….”
아공간을 다시 열었다.
오른손으로 빠르게 성수를 찾았다.
비상용으로 남겨 둔 몇 병이 남아 있었다.
성수를 꺼내 상처에 들이 부었다.
“크으으윽!”
얼마나 강력했는지 총알에 구멍이 난 근육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마법이나 성수가 없었다면 잠시 후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치이이이잇.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며 강렬한 아픔을 동반했다.
으드득.
턱이 아플 만큼 이를 악물었다.
신들의 특급 선물답게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지구에서는 구할 수 없는 엄청난 치료제였다.
머리통이 터지거나 심장이 뚫려 즉사하지만 않는다면 목숨을 구명할 수 있었다.
스릉.
상처가 다 아문 것을 확인하고 아공간에서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건너편을 유심히 살폈다.
카앙! 캉!
“합!”
뭔가 낯설지 않은 소음과 함께 여성의 목소리가 분명한 기합소리가 들렸다.
“???”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황 전개.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나를 돕는 조력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턱! 터더덕!
유세라의 안전을 확보해 놓은 뒤 빠르게 숲속을 가로질러 방향을 잡고 이동했다.
저격수가 나의 움직임을 확인해도 공격을 가할 수 없는 속도였다.
“썅!”
남성의 거칠게 내뱉는 욕 한 마디가 들렸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서 이제 십여 미터.
카아앙!
“아악!”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종간나 에미나이 뒈져!”
북한 말투를 사용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터엉!
자리를 빠르게 박차며 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렸다.
위험천만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군용 단도로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향해 내리찍고 있는 놈.
새카만 기운이 놈 주변으로 아른거렸다.
금방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는 기운으로 판단이 됐다.
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쇄애애앳.
“!!!”
평범한 놈은 아니었다.
검을 던지는 소리만으로 놈은 귀신처럼 반응했다.
푹!
하지만 검이 더 빨랐다.
복부를 뚫고 손잡이까지 깊숙이 박혀드는 검.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쓰러진 여성을 향해 단도를 찍어 내렸다.
독한 놈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시간을 번 것만으로 충분했다.
달려온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뻐어어어억.
손목에 전달되는 묵직한 느낌.
콰다다다당.
목뼈가 부러지며 저만큼 몇 미터를 날아가 처박히는 암살자.
복부에 칼이 박히고 내공이 실린 주먹에 맞고도 숨이 붙어있을 자는 없었다.
“하악…… 학.”
쓰러져 있던 여성이 거칠게 숨을 헐떡거렸다.
체구가 작았다.
“괜찮습니까?”
여성에게 다가갔다.
피 냄새가 강하게 코끝을 때렸다.
깊은 상처를 입은 게 확실했다.
“헛!”
쓰러진 여성을 본 내 입에서는 그만 비명이 터졌다.
짙은 먹구름이 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여성.
아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