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6화 (475/1,284)

 # 476

회귀의 전설

476장. 뜻밖의 조력자 (1)

철컥……. 철컥.

천천히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다섯 발이 들어가는 탄창에 총알을 조용히 쑤셔 넣었다.

고귀한 종교의식을 치르는 듯 절도가 넘쳤다.

느리면서도 정확한 타이밍에 총알이 탄창에 장전됐다.

철컥.

탄창에 총알을 장전한 상태로 저격 총에 결합시켰다.

Barrett M95.

구경은 50BMG.

전체 길이는 1143mm였고 무게는 10Kg이 넘어갔다.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자랑하는 대구경 저격소총의 대명사인 M82 바렛을 볼트액션 방식으로 바꿔 놓은 개량형 모델이었다.

유효사거리가 2000m 이상으로 총기소지 자유국가인 미국에서도 일반인은 구입이 불가능했다.

총열 끝에 성능 좋은 독일산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능히 맹수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는 녀석은 야간 조준경까지 갖춰졌다.

대한민국 특수부대도 쉽게 소유하기 힘든 저격소총을 만지고 있는 자.

눈동자에 그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이름은 김철수.

총참모부 정찰국 소속 남파조직원.

계급은 상위.

남한에 귀순한 황상엽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을 사살하기 위해 파견됐다.

하지만 임무 도중 동료들이 국정원에 잡히면서 임무는 실패했다.

도주 중 자살명령이 떨어졌지만 거부했다.

강남하나회 구광필에게 직접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청했다.

남한의 어둠 속 왕으로 군림한 자에게 몸을 의탁한 것이다.

구광필은 기꺼이 호응했다.

잘못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구광필은 모험을 택했다.

김철수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맨몸으로 사시미를 소유한 상대편 조직원들 수십 명을 모두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런 김철수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모험은 감수할 수 있었다.

적당한 시신을 찾아 김철수로 둔갑시켰다.

연변 조선족 신분으로 위장한 채 성형수술도 받았고 재외동포등록증도 받았다.

완벽하게 신분이 세탁된 후 그는 구광필의 개가 되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빌어먹게도 조국은 그를 버리는 동시에 가족도 처리했다.

평양에 살던 아내와 아들이 황해도로 쫓겨났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큰돈을 준다고 구광필이 약속했다.

탈북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빼올 수 있었다.

김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170cm정도로 키는 작았지만 온 몸이 마른 근육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진갈색 눈동자는 그 어떤 사치스러운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무심만을 담았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자른 머리칼과 송충이처럼 굵은 눈썹이 그의 성격이 강한 걸 짐작하게 했다.

처저적.

총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김철수는 사격 자세를 취했다.

무거운 저격 소총이 일반 소총처럼 가뿐하게 들렸다.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특수 교육을 제대로 받은 프로였다.

“간나 새끼……. 방탄조끼를 입어도 뒈지는 게야~. 크크.”

짐승의 것 같은 비릿함을 흘리는 김철수.

어둠 속에서 주변과 동화된 위장복을 입고 몸을 숨긴 채다.

처럭.

저격소총 받침대까지 완벽하게 설치됐다.

총구가 향하는 곳.

1차적으로 목표를 맡고 있는 조폭들이 대기 중인 공장이었다.

갈기갈기 찢겨져 죽은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의뢰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말이다.

김철수는 2차 공격임무를 맡았다.

조폭들이 실패하게 되면 다음은 그의 몫이었다.

혹시라도 공장에서 놈이 기어 나오게 되면 그의 총구가 목표물의 심장을 뚫을 것이다.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어둠 속에서 수리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풀벌레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봄의 숲.

숨을 죽이며 고요한 침묵 속에 몸을 숨긴 저격수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지금 공장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

“!!!”

황동석을 비롯해 강남하나회 소속 청부 전문가들은 눈을 부릅뜬 채 멍하니 신비로운 광경을 지켜봤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장태산이 허공에서 뽑아내고 있는 도끼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을 뿜어냈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두뇌 회전은 아예 멈췄다.

유세라를 감싸고 있는 은빛 투명한 막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위험해!’

황동석은 본능이 전하고 있는 위험신호를 감지했다.

처음이었다.

사나운 상대 조폭들 수십 명을 잔인한 손속으로 담가봤지만 오늘 같은 일은 절대 없었다.

“어어어…….”

“으으.”

조직원들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신음을 흘렸다.

“정신 차려 새끼들아! 저거 다 마술이야! 공격해!!!”

황동석은 잠시 본능적인 위험신호를 접어두고 명령을 내렸다.

상황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요상하게 돌아갔다.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큰 사달이 날 것 같은 불길함이 몰려왔다.

“씨발! 뒈져!!!”

장태산과 가장 가까이 있던 조폭이 날이 바짝 선 사시미로 그를 공격해 들어갔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는 거리였다.

조직원은 백정이라 불리는 별명을 가진 자답게 칼놀림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슈욱.

정확히 장태산의 옆구리로 파고드는 사시미.

쉐엣.

장태산의 손에 들린 도끼가 빛의 속도로 번개처럼 움직였다.

뻐걱.

아니 빛보다 빨랐다.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공간이 갈렸다.

그리고 짧은 소음이 일었다.

쩌어억.

사시미와 함께 조직원의 몸뚱이가 사선으로 난도질 되며 갈라졌다.

촤아아아아앗,

쏟아지는 붉은 핏물에 범벅이 된 심장과 폐, 그리고 사람의 다른 장기가 절단 난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철퍽.

김이 오르는 온기가 남은 몸뚱이가 바닥에 두 동강이 난 채 뒹굴었다.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물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자유의지를 상실한 사물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미세하게 근육을 펄떡거리며 움직였다.

하지만 이내 그 미세한 움직임마저도 사라져 버린 덩어리.

“웩…… 우웩.”

“어어……. 어어어어.”

강남하나회 조직원들 몇몇이 구토를 뿜었다.

자신들도 잔인하게 사람의 목숨을 취해봤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하지는 않았다.

칼질 몇 번으로 급소를 공격해 단숨에 숨통을 끊는 방법을 취했다.

가끔 의뢰인의 부탁으로 신체 일부를 회수하기 위해 절단하거나 반대로 흔적 없이 목숨을 거두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을 두 동강 내거나 육신을 고의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피했다.

“뭐, 뭣들 해! 죽여! 죽이라고!”

황동석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눈은 핏발이 서며 붉어졌다.

‘저 새끼……. 미친놈이야!’

머리 좋은 한 상무가 왜 당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잔혹한 저 성품으로 실력 좋은 히트맨들도 다 제거했을 것이다.

“우아아아아아!”

“죽엇!!!”

조직원들이 이성이 마비된 듯 명령에 이끌려 사시미와 쇠몽둥이를 들고 돌격했다.

서로 뒤섞여 있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총잡이들은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소음기가 없어 자칫 난사된 총소리로 일이 시끄러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선택 여하를 따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장태산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퍼억! 콰드득!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도끼에 조직원들의 머리가 박살나고 목이 잘려나갔다.

퍼덕 퍼더더덕.

삽시간에 사방으로 잘린 팔다리가 튀었다.

“아아아아악! 악!”

비명이 공장 안에 메아리쳤다.

“쏴! 쏴버려!!!”

상황이 비관적이라는 걸 깨달은 황동석이 최후 명령을 내렸다.

탕! 타다다당!

러시아 선원들에게 밀수한 권총이 사방에서 불을 뿜었다.

군복무를 제대로 해 낸 조폭들의 권총질은 제법 쓸 만했다.

“실드!”

팅! 티디디디디딩!

“총…… 알이…….”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괴이한 일들이 연속 벌어졌다.

권총을 떠나 총알이 빛의 막에 막혀 다시 튕겨졌다.

철컥 철컥.

총알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채 금방 떨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총 한 발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지금 눈앞의 대상은 그렇지 않았다.

수십 발의 총알이 모조리 쏟아졌지만 모두 투명한 막에 튕겨졌다.

“재롱 다 부렸나?”

장태산이 담담히 물었다.

입가에 걸린 선량한 시민의 모습 같은 미소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두 동강 내서 죽이고도 어떻게 저런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저 새끼…… 진짜 살인마다!’

황동석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렸다.

장태산의 살인 방식은 백정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들이 지금껏 청부를 받고 행해왔던 짓거리는 다 어린아이 장난 수준과 같았다.

스윽.

장태산의 왼손이 어깨 높이까지 올라갔다.

여전히 악마처럼 웃고 있는 놈.

“매직 미사일!”

장태산의 입을 뚫고 요상한 말이 다시 내뱉어졌다.

파바바밧.

그러자 빛과 함께 허공에서 다시 나타난 믿을 수 없는 광경.

이번에는 우윳빛 날카로운 화살들이었다.

‘저, 저게 뭐냐고!’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절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성은 이미 붕괴되기 정신은 그 어떤 사고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지옥으로!”

장태산이 조직원들을 향해 손을 힘차게 뿌렸다.

“헉!”

“!!!”

총질하던 조직원들은 장태산이 보이는 행동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도망이라는 것을 칠 수 없는 상황.

퍽! 퍼버버버버벅!

마치 수박 터지듯 단단한 머리통이 박살이 났다.

허연 뇌수와 함께 뿌려지는 붉은 핏덩어리들.

황동석은 그만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 됐다.

장태산을 죽이기 위해 조직에서 실력 있는 놈들만 20여 명을 추렸다.

싱싱한 미끼와 총까지 준비한 작업장이었지만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

스윽.

장태산이 황동석을 쳐다봤다.

저벅저벅.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오, 오지 마!!! 다가오면 이년 죽여 버릴 거야!”

황동석이 잽싸게 권총을 꺼내 유세라를 겨냥했다.

“내키는 대로~.”

경고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다가오며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장태산.

“씨발! 오지 말라고!!!”

공포에 사로잡힌 황동석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여전히 장태산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탕! 탕! 탕!

황동석은 극한의 공포에 고함을 지르며 유세라를 향해 총구의 방아쇠를 당겼다.

팅! 티디디딩.

하지만 총알이 튕겼다.

철컥 철컥.

마지막 총알이 떨어진 권총은 빈 방아쇠 소리만 냈다.

코앞까지 다가온 장태산.

“자, 잘못 했습니다…….”

황동석은 장태산의 눈빛에 질려 무릎을 꿇었다.

죽음이 이미 양쪽 어깨 위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잘못? 뭘?”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짓 다하겠습니다!!!”

바들바들 몸을 떨며 한 번도 믿은 적 없는 신의 자비를 구했다.

“후후후훗.”

다음 순간을 예상할 수 없는 웃음을 흘리는 장태산.

“용서는……. 내가 이 도끼를 들기 전에 구했어야지.”

쇄애애앳.

말을 끝나기 무섭게 부릅뜬 황동석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 하나.

커다란 도끼가 정통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졌다.

화끈.

순간 황동석은 머리통에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가 뼛속을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고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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