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5화 (474/1,284)

 # 475

회귀의 전설

475장. 내가 간다 (2)

“누, 누구세요……. 흑……. 저에게 왜 이러세요…….”

유세라는 미칠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클럽으로 향했다.

술기운이 적당히 흥을 돋우고 몸을 달궜다.

대학교 시절부터 시험이 끝나거나 친구 생일 같은 이벤트가 있으면 으레 클럽을 애용했다.

남자들이 미모를 보고 자주 접근했지만 건전하게 춤만 추는 그녀였다.

흠뻑 땀을 빼고 나면 스트레스가 쫙 풀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자신을 은근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한턱 쐈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클럽에 갔다. 강남에 새로 개업한 클럽이라 물이 좋다고 친구가 추천한 곳이었다.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된 클럽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조용히 놀고 싶은 마음에 룸을 잡았다.

맥주로 목을 축이고 스테이지를 돌았다.

피부가 이십 대 초반 대학생과 별로 차이가 없는 유세라 곁으로 남자들이 모였다.

클럽에서 놀고 있던 여성들을 미모로 압도했다.

오늘도 오피스룩 종결자답게 원피스 정장을 코디하고 나온 유세라.

농염함과 청순함을 동시에 발산했다.

조금만 몸을 흔들어도 남자들이 환장했다.

유세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애는 아니어서 친구들을 주변에 세워 벽을 쳤다.

그렇게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껏 즐긴 유세라는 춤을 추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고 나오는 순간 클럽 보도와 어깨가 부딪쳤다.

놀라 시선을 돌리는 사이 그녀의 입이 수건으로 막혔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눈을 떠보니 지금 이곳 폐공장 안이었다.

조폭 영화에서나 연출되던 분위기의 실재 으스스한 폐공장.

넓은 터에는 녹슨 기계와 낡은 소파, 아무렇게나 버려진 물건들.

그리고 한가운데 불타는 나무가 잔뜩 들어 있는 드럼통이 보였다.

손발은 꽁꽁 묶였다.

입까지 재갈에 물려 있다가 통화 때문에 풀렸다.

“미끼.”

“그게 무슨…….”

유세라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경호를 붙여주겠다는 대표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 이유였다.

“바보냐? 장태산 그 새끼 잡는 싱싱한 미끼가 너라고~.”

황동석이 이죽거리며 유세라를 보고 내깔렸다.

“흑……. 왜 이러세요……. 우리 대표님 아무 잘못도 없어요…….”

유세라는 대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장태산 대표였다.

그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선택했다니 이 순간을 견딜 수 없어 미칠 것 같았다.

“억울해 하지 마~. 저승길에 같이 보내줄 테니까. 크크크.”

“차라리……. 절 죽이세요……. 우리 대표님은 아무 잘못도 없다구요!”

유세라는 퍼뜩 화가 치밀었다.

이 감정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대표의 죽음을 위한 미끼는 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여기서 죽는 게 났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공포가 엄습하는 이 상황에서도 믿지 못할 만큼 용기가 생겼다.

“너희 사귀냐?”

“…….”

“너 완전 웃긴 거 알아? 니가 논개야?”

유세라는 선뜻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애인도 아닌데 왜 지랄이세요~”

“놔두라고! 우리 대표님 놔두란 말이야!!!”

유세라는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지 모른 채 소리쳤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이런 놈들의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야! 깡다구 넘치네~. 얘들아 시끄럽다. 주둥이 묶어!”

“넵!”

“놔~ 놓으라고!”

짜아아악.

“아악!”

무지막지하게 휘둘러지는 솥뚜껑만한 손바닥.

유세라는 짧게 비명을 토하는가 싶더니 기절해 버렸다.

조폭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세라의 입에 단단하게 재갈을 물렸다.

사람의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엿보이지 않았다.

“손보고 싶지만 우리 보스가 미끼는 싱싱해야 한다고 해서 봐주는 거다~. 그 새끼 처리하고 나면…… 넌…… 그때 보자……. 흐흐흐.”

음흉하게 젖은 눈빛으로 웃는 황동석.

탐욕스럽게 유세라를 훑었다.

주루륵.

기절한 상태에서도 유세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어~. 크크.’

황동석은 미끼로 점찍은 계집 뒤를 밟아 미행을 붙였다.

목표로 정한 다른 미끼들보다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새로 조직에서 오픈한 클럽에 운 좋게 친구들과 들어선 미끼.

상주하는 조직원들을 이용해 가볍게 낚아챘다.

납치가 전문인만큼 오늘 건은 일도 아니었다.

기절한 여자를 뒷문을 통해 빼냈다.

그리고 곧장 작업용 공장으로 옮겼다.

작업용 공장은 보통 년 단위로 계약해 사용했다.

조직 사채업에 압류된 외진 공장에서 의뢰인들의 요구에 따라 물건을 처리하고 소각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1년 단위로 옮겨가며 이용했다.

올해도 이 건만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처리하고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청부를 받아 수집한 물건이나 상대편 조직원들 수십 명을 이곳에서 1년 동안 처리해 왔었다.

물건들은 저마다 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비명을 지르며 주검이 되어 사라졌다.

“철수 이 새끼…… 잘 하고 있겠지?”

철수도 이곳에 함께 왔다.

그러나 그가 이곳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시간이면 끝나겠군.”

조직에서 고른 칼잡이뿐만 아니라 소음기 권총을 사용하는 총잡이까지 대기 중이었다.

회장 구광필이 특별히 지시를 내린 일인 만큼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다.

결코 실수해선 안 된다.

“배고픈데 고구마 좀 구워봐라~.”

“알겠습니다. 이사님!”

의뢰 받은 일을 처리하고 나면 언제나 허기가 지고 배가 고팠다.

신경을 바짝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날에는 고구마를 구워먹는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황동석.

낡은 소파에 깊숙이 앉아 발을 까딱거렸다.

끌고 오는 중에 원피스 옷자락이 찢겨져 나간 미끼의 하얀 어깨살이 눈에 들어왔다.

황동석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데일 듯 뜨겁게 드러난 어깨살 위에 멈췄다.

***

부우우우우우웅! 끼이이이이익.

위험할 정도의 속도로 스포츠카를 몰았다.

잔혹한 새끼들이 유세라에게 어떤 못된 짓을 할지 몰랐다.

청소를 한다고 했건만 세상은 아직 그대로였다.

어둠 속에서 자란 싹들은 뿌리도 내리기 전에 고개부터 내밀었다.

한진웅 대표에게 30분 뒤 바로 따라오라고 했다.

우선은 혼자 가는 게 맞았다.

씨큐리티 직원들에게 나의 분노를 그대로 보여주기 싫었다.

평범한 기 싸움이 아니다.

요즘 조폭들은 연장 대신 총기까지 소지하고 다닐 정도로 과감해졌다.

차에 설치된 위치추적기를 가동시켰다.

마음은 단단히 먹었다.

잠깐 틈만 보이면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 새끼들.

부우우웅! 부우우우웅!

다행히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아직 개발이 덜된 하남시.

낮은 산들 사이로 밤의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짙게 깔린 구름 때문에 달빛도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 가로등만이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끼이이익.

브레이크를 잡았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어느 공장 주차장.

주변에 인가나 다른 공장동 같은 것은 없었고 있다 해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누가 소리를 지르다 죽어 나가도 모를 거리였다.

덜컥.

우선 차에서 내렸다.

가벼운 검은색 트레이닝복으로 상하의를 맞췄다.

마중 나온 놈들은 없었다.

대신 공장 마당 한켠에 봉고차 한 대가 보였다.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 한 눈치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이 울렸다.

그놈 번호였다.

- 새끼 진짜 혼자 왔네~. 거기 봉고차에 타. 그럼 너 대신 죽겠다는 년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놈은 멍청한 놈이 아니었다.

봉고차 가까이로 다가갔다.

“타쇼~.

나를 보지도 않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뒷문을 열고 차에 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르르르릉.

차에 타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짙은 썬팅으로 밖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봉고차는 포장길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5분쯤 달리자 또 다른 공장이 나타났다.

사방이 음침한 숲이었다.

차를 주차한 공장보다 더 외진 곳으로 들어왔다.

수도권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내리쇼.”

봉고차를 세우고 운전했던 놈이 무감정하게 나를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차분하게 기를 돌렸다.

사람의 기척이 공장 내부에서 제법 잡혔다.

봉고차도 몇 대 더 있었다.

거침없이 내려 공장동으로 다가갔다.

닫혀 있는 공장 문.

끼리리리릭.

가까이 다가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낡은 쪽문이 열렸다.

짧게 숨을 몰아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발을 내디딘 순간 악마의 소굴이 나를 한입에 삼키는 것 같았다.

***

짝짝짝짝.

공장 안으로 들어서는 장태산을 확인하고 황동석이 박수를 쳤다.

고구마가 장작불에 구워지며 구수한 냄새가 쫙 깔렸다.

김치 대신 고구마에 피 냄새를 묻혀 먹는 걸 즐기는 황동석.

“친구! 진짜 너 멋있다. 여직원 하나 구하겠다고 지옥 구덩이인 줄 알고도 찾아오다니……. 그 용기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마. 크크크크크.”

황동석은 기분이 좋았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놈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없었다.

사방에 총을 든 조직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한동철이 놈에게 당했던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다.

“하나회였구나…….”

‘이 새끼 알고 있었어?’

하나회라는 말이 장태산 입에서 나왔다.

황동석은 역시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 별걸 다 아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저벅저벅.

말을 하면서 장태산은 입에 재갈이 물리고 의자에 손발이 묶인 유세라에게 다가갔다.

찢겨진 옷자락과 헝클어진 머리칼이 그녀가 당한 일들을 대변했다.

“건방진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손에 연장을 든 조직원들이 겁 없이 움직이는 장태산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놔둬라. 견우가 직녀님 만나신다~.”

황동석이 비웃듯 내깔렸다.

이미 독 안에 든 쥐였다.

막간을 이용해 신파극 한 장면 봐도 나쁠 것은 없었다.

아니 끈적한 피가 더 자극적으로 끌어 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당사자 앞에서 짓이겨 버리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없었다.

“읍! 읍!”

어느 틈에 유세라는 깨어나 있었다.

입에 재갈이 물린 유세라가 장태산이 나가오자 신음을 흘리고 눈물을 줄줄 쏟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곳으로 찾아온 저 남자가 고마우면서 사랑스럽고 또 미웠다.

굳이 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됐다.

영화 속 주인공의 등장 같은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유세라도 잘 알았다.

“괜찮아요…… 이제.”

가까이 다가온 장태산이 유세라의 퉁퉁 부은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입에 물린 재갈이 풀렸다.

“흐윽…… 대표님…….”

“미안해요. 세라 씨. 나 때문에…….”

“왜 왔어요! 여기 오시면 안 돼요! 안 된단 말이에요! 흐으으윽.”

유세라가 악을 쓰며 서럽게 울었다.

사랑하면 진짜 상대를 위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걱정 마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악몽에서 깨어날 겁니다.”

“???”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장태산.

그의 손길이 유세라의 두 눈을 가볍게 스쳤다.

“슬립.”

그리고 조용히 새어나오는 한 마디.

유세라는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어라? 너 지금 뭐한 거냐? 손에 뭐 묻혔어?”

드럼통 장작에서 고구마를 꺼내 호호 불며 벗겨 먹던 황동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까지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계집의 고개가 푹 꺾였다.

“픽스 실드.”

파아앗!

대꾸도 없이 장태산이 몇 마디를 더 뱉자 이번에는 빛이 터졌다.

“!!!”

고구마를 들고 있다가 깜짝 놀란 황동석.

뭔가 판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신과 부하들이 장태산을 포위한 게 아니라 장태산이 공장 안에 자신들을 가둔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

“많이 처먹어라……. 이승에서 마지막 만찬이 될 고구마니까.”

차갑게 내뱉는 장태산의 입과 눈꼬리가 한쪽으로 치솟아 올랐다.

스스스스스슷.

그리고 싸한 기운이 주변을 감쌌다.

꿀꺽.

사람 목숨을 멋대로 해봤던 조직원들은 낯설지 않은 기운에 마른침을 삼켰다.

“아공간!”

장태산이 허공을 향해 또 뭐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천천히 허공에서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에 두둥실 나타나기 시작하는 커다란 도끼 한 자루.

“X발!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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