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
회귀의 전설
474장. 내가 간다 (1)
“세상에……. 너 얼굴 어떻게 한 거야? 수술했어? 아니면 도대체 이 탱글탱글 피부는 뭐냐고!”
“흐윽……. 잔주름도 없어. 나 울고 싶어…….”
“칼퇴근하는 신의 직장에……. 이제는 피부도 대학교 신입생처럼 변하다니! 세상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난 오늘도 상사의 느끼한 눈길에 오바이트를 참았건만!”
“유세라. 너 정체가 뭐야? 애인이 외계인이야?”
“세라 남자친구도 없잖아. 회사에 뼈를 묻는다고 입에 달고 다니는 앤데~.”
“도대체 너희 회사 뭐하는 곳이야?”
“너희들 몰라? 세라 근무하는 투자회사 은행이나 증권사 쪽에서는 엄청 유명해~.”
“왜? 뭐가 유명해?”
“일개 투자회사가 굴리는 자금이 수조야. 그것도 순수 자금으로~.”
“허어어얼……. 그게 진짜야? 외부 투자금이 아니라 순수 자금이라고?”
“우리 지점장님 세라 소개시켜 달라고 난리도 아니다. 세라야~ 계좌 옮길 생각 없어? 나 이거 따면 승진하는데 도와줘라. 으응~.”
강남사거리에 위치한 잘 나가는 퓨전 레스토랑 예약 룸에서 네 명의 여인이 수다를 떨었다.
근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세라의 대학 동기들이었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여성들이라 회사 일에 치여 피로에 잔뜩 절어 있었다.
그중 홀로 청초하고 싱그러운 생기가 가득한 유세라는 미소를 지었다.
“서류 보내봐. 검토해 볼게.”
“정말! 와아아아아아아! 고마워 세라야!!!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유세라……. 히잉. 넌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한 거니?”
“연봉 올랐다고 했지? 얼마야? 억까지 안 되지?”
“……보너스 포함하면 그 정도는 돼.”
“어, 억이라고!”
“임원급이다. 세상에! 세상에!”
“우리 동기들 중에 세라 네가 가장 출세했다!”
“로펌에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더니……. 축하해. 세라야~.”
대학교 다닐 때부터 친한 사이었던 동기들은 진심으로 축하했다.
“고마워, 다들 너희들이 응원해 준 덕분이야.”
세라는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힘든 시절 위로와 힘을 줬던 친구들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쏴!”
“오케이! 오늘 불초소녀 유세라가 풀코스로 친구들을 접대하겠나이다!”
“코오오오올!!!”
“오늘 한 번 끝까지 달려보자. 우리 홍대 클럽 다닐 때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 대시를 받았니! 오늘도 한번 클럽 접수해보자!”
“그래 불금인데 당연하지! 달리자 달려! 아오오오!”
“불꽃나방들이여 야성을 깨우자!!! 으흐흐흐흐!”
“잔을 들라. 동지들이여!”
유세라와 동기들은 생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들었다.
대학교 시절의 흥을 끌어올렸다.
지난 5일간 조직에 충성하다 지치고 탈진했던 그녀들은 날을 잡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고 과장 새끼! 자다가 고자 되기를!”
“박 팀장……. 손모가지 분질러지기를!”
“유 대리 그 자식 눈깔에 염증나기를!”
성희롱하던 직장 상사들을 잘근잘근 씹어 안주로 던지던 세 명의 친구들이 유세라를 바라봤다.
어서 너도 씹을 안주를 던지라는 눈빛.
“우리 대표님……. 언제나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헐……. 이거 실화냐?”
“세상에 직장 상사에게 저런 상스런 축복을…….”
“열녀 났네~.”
“건배!”
친구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세라는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이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준 장태산 대표.
유세라는 진심으로 그의 건승을 기원했다.
***
“가까운 인연이라니…….”
갑작스런 경고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알림음은 지금껏 거짓으로 뭔가를 알린 적이 없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다.
운도 돌고 도는 법.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삐이잇.
[네! 보스.]
인터폰으로 씨큐리티에 연결했다.
“지금 즉시 가족을 비롯해 관리 인맥들의 동선을 파악해 보고해 주십시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 목숨을 노리는 자가 한둘이 아닌 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인연자는 달랐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자칫 작은 문제만으로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도대체 누구야?”
조심한다고 신경을 쓰긴 했지만 갈수록 인연들이 많아져서 관리하기 힘들었다.
가족들부터 시작해 하나둘씩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짚어봤다.
띠리리리리리.
핸드폰 단축 번호를 눌렀다.
- 오빠~.
“주희는?”
- 집에서 리포트 작성하고 있어.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 야심한 시각에 어딜 나가~ 걱정 마셔.
여동생들은 집에 있었다.
통화를 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들~.
“어머니! 아버지는요?”
- 주무시고 계셔. 봄이라 일거리가 많아.
“곧 찾아뵙겠습니다.”
- 그래. 공사장도 바쁘게 돌아가더라. 한 번 봐야지.
“네~. 쉬십시오.”
가족의 안전을 확인됐다.
“조 변호사님……. 그것도 아니면……. 직원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 하나.
급히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녀를 생각하자 급작스런 흉통이 찾아왔다.
누가 되었든 선기가 통하는 자는 우주의 기와 하나로 연결되는 법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세라 씨…….”
연락이 닿지 않았다.
도도희 상무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호를 받았다.
일중독자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가 많았다.
그에 반해 칼퇴근하는 유세라 씨는 경호를 거절했다.
평범한 자신에게 누구도 관심 없을 거라면서 말이다.
삐이이이잇.
인터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 보스. 접니다.
“한 대표님 어떻게 됐습니까?”
- 긴급 위치 신호 작동 및 문자를 보냈습니다. 가족분들을 비롯해 조 변호사님, 도도희 상무님 모두 연락이 됐습니다. 다만……. 유세라 팀장님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
유세라였다.
이런 날을 대비해 회사 중요 인물들 핸드폰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놓았다.
누군가 그녀를 노리고 있음이 확실했다.
“비상령을 발동하십시오! 가용 직원들 전원 회사 복귀입니다! 마지막 위치가 어디에서 잡혔습니까?”
- 강남사거리에서 학동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신속하게 직원들 파견하십시오.”
-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느낌이 안 좋았다.
몇 년 간 동거동락 했던 유세라의 신변에 무슨 일이 발생했음이 확실했다.
언제나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 회사의 중요한 일을 나서서 처리하는 만능 커리어 우먼.
회사 기밀이 많아 직원들을 더 충원하지 못하는 만큼 그녀의 역할이 중요했다.
평소에도 웃으며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말해왔던 그녀.
아름다운 미소가 자꾸 떠올랐다 사라졌다.
“누구야! 도대체 누구야!”
이가 갈렸다.
암암리에 적이 많았다.
무너트린 그룹부터 정치인에 병원 사모 등등.
대한민국 유력 인사들과 대놓고 척을 졌다.
“비열한 놈들이다……. 평범한 놈들이 아니야.”
나를 불러내기 위한 미끼로 그녀를 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림음도 죽음의 손길이 나를 노린다고 경고해 왔다.
연락이 올 게 확실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는 느낌.
띠리리리리리리리리.
아니나 다를까 핸드폰이 울렸다.
그리고 화면에 뜬 낯선 번호.
긴장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름 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점을 노린 자들이었다.
“여보세요.”
평소처럼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 장태산 씨 안녕하십니까~. 흐흐흐.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냄새가 나는 음성 끝에 들려오는 음흉한 웃음.
“누구십니까?”
목소리는 처음보다 더 차분해졌다.
분노의 마음이 차갑게 이성을 각성시키고 있었다.
이럴 때 흥분하면 될 일도 안 되고 사고가 나는 법이다.
- 똑똑한 분이라 짐작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닌가?
놈이 나를 가지고 놀려고 들었다.
“알고 있으니까 말해. 개새끼야.”
원하는 대로 한 번 질러줬다.
- 크하하하하하하.
놈의 웃음이 폭주했다.
- 당신 여직원이 아주 미녀야~. 피부도 야들야들 하고…….
“…….”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처 하나라도 나면……. 너희들 다 죽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차분하게 경고를 날리는 일뿐이었다.
소재 자체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
다 죽여 버린다는 말 또한 농담이 아니었다.
속으로 놈들이 타고 갈 지옥행 열차 티켓을 예약했다.
원하는 만큼의 뿌리를 뽑기 전에는 놈들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워워~ 걱정 마. 나 양아치 아냐.
믿지 못할 말을 잘도 내깔렸다.
유세라 팀장을 납치한 놈이 제 스스로 양아치가 아니라고 말했다.
“조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길게 말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 그 잘난 얼굴 좀 보자.
목적은 확실했다.
“알았다.”
- 올 때 떨거지들 달고 오지 마. 허튼 수작 부르면 이년……. 뼈까지 녹아서 하수구 구정물로 흐를 거야. 어차피 이년 말고도 회 칠 것들은 많으니까~. 크크크
진짜 개새끼였다.
상대의 협박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일 한두 번 해본 놈이 아닐 테니 당연했다.
“바꿔.”
- 건방진 새끼. 크크크. 야~ 그년 입 좀 풀어봐.
- 넵!
싸구려 조폭이 확실했다.
먼 거리에서 절도 있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오가는 말들 속에서 조직 크기의 힘이 느껴졌다.
“아아아악!”
유세라 씨 비명 소리가 들렸다.
- 닥쳐!
짜아아악.
뺨을 때린 듯한 소리가 한 차례 강하게 들렸다.
으득.
당장 손을 볼 수 없는 것에 이가 갈렸다.
나로 인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당하며 공포에 질려있을 유세라 씨 얼굴이 떠올랐다.
- 흑……. 흐윽…….
- 야~ 너네 잘난 대표다. 니 목소리가 듣고 싶단다.
“세라 씨!”
다급하게 그녀 이름을 불렀다.
- 대, 대표님…….
공포에 질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다친 곳 없습니까!”
급한 대로 지금 상태를 물었다.
- 괜찮아요.
나와 통화가 된 것만으로도 세라 씨 목소리는 안정을 찾아갔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갈게요!”
- 오, 오지 마세요! 대표님! 위험해요! 오시면…….
짜아악!
- 아아아악!
- 어디서 건방지게 끼어들어~. 니가 저 새끼 애인이라도 돼?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오지 말라고 말하는 유세라.
지금 사태가 어떤지 이미 유세라도 감을 잡았다는 의미였다.
또다시 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터졌다.
“어디야……. 지금 간다.”
- 오려고? 크크. 와야지. 네가 안 오면 이년 오늘 험한 꼴 당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당연히 와야지~
“말해.”
- 문자 찍을게. 그쪽으로 와. 허튼짓하면…….
뚝.
놈은 뒷말을 다 하지 않고 끊어버렸다.
띠링.
그리고 곧바로 울리는 문자 알림음.
하남 쪽 공장 주소가 찍혔다.
인터넷으로 주소를 넣고 주변 지형을 살폈다.
공장 옆쪽에 위치한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왔다.
씨익.
심장은 차가워졌고 입술은 제멋대로 씰룩거리며 올라갔다.
비릿한 피맛이 심장에서 뿜어져 전신을 휘돌았다.
“구덩이 따로 팔 일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