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1화 (470/1,284)

 # 471

회귀의 전설

471장. 좋은 일 (1)

“이렇게 가는 길이 맞는 걸까?”

“왜? 요즘 애들 말로 쫄리냐?”

“쫄리기는……. 가는 길은 옳지만 기존 권력들이 가만있을까? 주민들도 반대할 거야. 전세 임대주택 들어가면 기존 아파트 주민들 좋아라 하겠다. 집값 떨어트린다고 아마 꽹과리 치고 난리 날 걸?”

“신경 끄자.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된다. 오늘은 기분 좋게 술 좀 마시자.”

“그래 마시자.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안 마실 수가 없다.”

“내일부터 바짝 달려야 하니 긴장 늦추지 마라. 보스…… 생각보다 더 무서운 분이다.”

“눈빛이 살아 있더라.”

“짠~.”

팅.

얼음을 채운 잔에 싱글 몰트 위스키를 부어 언더락 스타일로 하관우 회장과 황효관 대표가 바에서 술잔을 나눴다.

중년의 회장과 대표였지만 청춘 시절로 돌아간 듯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가벼웠다.

강남 뒷골목의 아는 사람만 출입하는 작은 바.

과거에도 두 사람은 이곳에서 자주 만나 술을 마셨다.

퇴사당한 뒤에는 올 수 없었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다시 출입이 가능했다.

“사회적 기업이라……. 보스 자선 사업가 맞지?”

황효관 대표가 넌지시 물었다.

“맞아. 그렇다고 기업 수익이 나빠진 것도 아니다. TS 계열사 생산성과 매출 모두 늘었다.”

“노조가 가만 있어?”

“너 모르는구나. 보스가…… 대한노총 지시받고 까불던 노조원들 작살나게 밟아놨어.”

“오오! 그게 가능해?”

“보스잖아.”

“세상에……. 이번 천일 건설에서 보였던 힘 말고 그런 배짱도 있단 말이지?”

“잘 보여라. 임원들에게도 혜택이 엄청나다. 최측근은 자가용 비행기 빌려줘서 해외여행도 보내준다.”

“너도 갔다 왔어?”

“물론이지~. 마누라한테 점수 좀 땄다.”

“부럽다…….”

“너도 보스가 곧 보내주실 거다.”

“도운중 회장님은 일만 빡시게 시켰는데.”

“회장님께 전화한다.”

“마음대로 해. 이제 보스가 아니잖아~.”

“효관이 태세전환이 빠른데?”

“너도 그렇잖아.”

“인정~. 크크크크.”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마음 놓고 활짝 웃었다.

그룹의 나아갈 바를 정확히 알고 나니 더 힘이 났다.

“그런데 제주도 땅에 알박기 하라는 의미는 뭐야? 넌 알아?”

황효관이 하관우 회장에게 물었다.

아직도 이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였다.

여유 자금으로 제주도의 경관 좋은 땅 곳곳을 골라 알박기 하라는 지시가 마지막 지시 내용이었다.

“목장하려는 것도 아니고……. 알박기면 펜션?”

하관우 회장이 개인적인 생각을 내놨다.

“보스가 펜션은 무슨……. 아마 누구 사업하는데 엿 먹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제주도 땅 경관 좋은 곳은 모두 박으라고 했으니 말이야.”

황효관이 자신의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보스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대강 사업도 전부 넘겨주라니……. 그거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으로 돈 버는 공산데……. 다른 건설사는 들어가지도 못한 수주에 천일이나 가능했던 거잖아. 그런데 그걸 넘겨?”

“다른 건설사에서 땅으로 받으라잖아.”

“아까워서 그렇지.”

“차라리 잘됐잖아. 국가사업이지만 우리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업이고.”

“그건 그렇지만…….”

황효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몇 년 동안 보장받고 꿀 빠는 국책사업이 바로 오대강 사업이었다.

천일 건설이 대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수주해 놨다.

그 사업만 몇 조 규모였다.

국민들 여론이 집중돼 있는 국가사업이라 돈을 떼일 염려도 없었고 웬만한 문제점은 감리도 눈을 감았다.

그런 큰 사업을 다른 기업에 넘겨주고 대신 땅으로 받으라고 보스는 명했다.

“그냥 명령대로 따르면 돼. 우리를 백수에서 구원해 주신 신의 명령이다.”

“그래! 무조건 고다!”

“기분 좋게 고!”

하관우 회장이 잔을 들고 외쳤다.

“좋다! 고고!”

황효관도 따라 외쳤다.

오늘은 취하고 싶은 날.

신의 안배 같은 보스를 만난 이후 계속해서 좋은 일만 일어나고 있었다.

***

“마지막 떨이~. 수입 양념갈비가 3인분에 만 원!!!”

“겹살이가 싸요.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겹살이 한 근에 만 원!!! 모두 다 국내산 보증입니다~.”

“거기 예쁜 아주머니! 한우 꼬리 좀 들여가요~. 봄인데 가족들 몸보신 하셔야죠.”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인 시장에 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상인들이 마지막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싼 가격을 노리고 이 시간대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많았다.

“세 근 사면 전지 찌갯거리로 한 근 주세요~.”

“사모님. 그거 팔아서 우리 마누라 속옷 값도 안 나와요.”

“사장님 인심 좀 써요~.”

“옛다. 인심이다! 전지는 안 되고 후지로 한 근!”

사방이 활기찼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장동 축산물도매시장.

한때 도축장도 있었지만 지금은 수천 개의 도소매 상가들이 들어섰다.

청바지에 가볍게 셔츠를 입고 남색 마이를 걸쳤다.

어깨에 가방을 걸쳤다.

누가 봐도 학생의 모습이었다.

“모델인가?”

“뭔 총각이 저리 잘생겼대?”

“몸매 봐……. 세상에.”

퇴근 시간이 겹쳐서 마장동 정육식당을 찾은 남녀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상인들도 호감어린 시선을 보냈다.

지난 생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호사의 연속이었다.

이곳 마장동 나들이는 처음이었다.

배고픈 지방 출신으로 노량진 고시생이 마장동에 와 볼 일이 없었다.

“취향 독특하네.”

오늘 만날 인물이 고기를 사겠다고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

시장 입구에서 그를 기다렸다.

“장 대표님!”

그가 나타났다.

허름한 점퍼에 편한 바지를 입고 낡은 구두를 신은 모습이 신선했다.

이곳 어딘가에서 일하는 잡부의 퇴근 복장 같았다.

“국회의원이 시민들 눈치도 안 봅니까?”

악수를 건네며 진담 같은 농담을 던졌다.

“장주시 초선 국회의원들을 서울 시민들이 알아볼 리가 없습니다. 존재감이 없어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무시당합니다.”

양우석 국회의원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마장동은 한우라고 하던데…….”

“비정규직 공무원에게 한우라니요. 다음에 대표님이 사실 때 한우 먹죠.”

“그럼 뭐 먹습니까?”

“이곳에 기가 막힌 곳이 있습니다. 소주, 막걸리와 환상 궁합인 안주가 있거든요. 가시죠.”

양우석 국회의원이 발 빠르게 앞장섰다.

“잘 아시나 봅니다.”

“배고프고 고기 땡길 때 학교 친구들과 자주 왔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몇 천 원이면 배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한국대생이 배고플 때가 있습니까?”

“민주투사가 되면 언제나 배가 고파집니다. 투쟁에 비례해 술값이 늘어나는 법입니다.”

나와 다른 세대를 살았던 양우석 국회의원이다.

이들 같은 세대가 피 흘려 지켜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갔다.

물론 변절자들도 발생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도 나타났지만 말이다.

“여깁니다~.”

“이건…….”

“죽이죠? 장 대표님도 서민 음식 드셔봐야 합니다. 부속고기 전문점이라 싱싱한 각종 잡고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노릇하게 구워진 껍데기는……. 크으.”

말하는 중에도 입맛을 다시는 양우석 의원.

노량진에서 컵밥으로 연명하던 전생의 나를 모르니 충분히 이해는 됐다.

사실 이 정도면 서민치고는 중산층이나 즐기는 수준이었다.

“기대가 큽니다.”

연탄이 들어가는 드럼통에 자리를 잡았다.

“고기는 연탄구이가 제일입니다. 숯불보다 은은한 맛이 더 죽여줍니다.”

연신 입맛을 다시는 양우석 의원.

“주문하시겠습니까?”

알바생이 다가왔다.

“고기 두 판 하고 소주 한 병 주십시오. 대표님은?”

“맥주 두 병 추가해 주십시오.”

메뉴는 간단하게 판으로 정해졌다.

한 판에 7천 원.

2010년에는 술값까지 해서 2만원 남짓으로 한 끼가 풍족하게 해결이 됐다.

“너무 대접이 소홀한 것 아닙니까?”

“맛을 보시면 그런 말 못할 겁니다~.”

양우석 의원과도 많이 가까워졌다.

우연히 인연이 되어 그를 국회의원까지 밀어올렸다.

미래와 달리 빠른 입성이었다.

“친구 분들은 많이 만드셨습니까?”

치이이이익.

연탄불이라 바로 석쇠가 준비되고 껍질부터 시작해 주먹고기, 갈빗살 등등의 잡고기가 등장했다.

내가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구웠다.

사삭 가볍게 굵은 소금도 뿌렸다.

요리 레벨이 높아 소금만 뿌려도 맛이 끝내 줄 것이다.

마장동에서 해체하고 남은 돼지 자투리 고기였다.

맛있게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고기들을 알맞게 뒤집었다.

“초선에게는 초선 친구들밖에 없습니다. 재선부터는 콧대가 하늘을 찌릅니다.”

“처음 친구들이 중요하죠.”

양우석 의원과 그냥 심심해서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여러 가지 문제로 나에게 상의를 구했다.

한번 만날 때가 되기도 해 자리를 만들었다.

“대표님 덕분에 술값은 걱정이 없습니다.”

양우석 의원이 해맑게 웃었다.

정치는 돈 먹는 하마였다.

지역구 경조사 관리부터 시작해 조직 운영을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다.

국회의원 월급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불법 정치자금을 눈 부릅뜨고 감시했지만 지역구에 가면 결국 다들 의원들의 찬조금을 내심 바랐다.

아이러니한 세상의 일면이었다.

최대한 적법하게 측근들을 통해 정치자금을 건넸다.

부족한 돈은 출판기념회를 열어 밀어줬다.

초선이지만 중진처럼 자금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만들었다.

정치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행위다.

양우석 의원이 밥을 사고 술을 사면 자연스럽게 친구가 많아질 것이다.

특히 초선들은 모두 인맥에 있어서도 배가 고픈 시절이다.

그들을 포섭하게 만들었다.

“큰일하는데 술값을 아끼면 안 되죠.”

“……대표님 가끔 보면 애늙은이 같습니다. 말투도 그렇고.”

양우석 의원이 나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도 누가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사이좋게 고기 먹으러 온 모습이었다.

“만나는 분들이 다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모두 아재들밖에 없었다.

나 또한 전생에 30대 백수였다.

“한 잔 말아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요즘 친구들 만나면 이 소맥을 말더군요. 본래 일본에서 넘어왔는데 이제 한국적으로 대중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나도 모르는 걸 술꾼답게 양우석 의원은 알고 있었다.

맥주를 먼저 채우고 소주잔에 소주를 부어 맥주잔에 떨어뜨려 섞었다.

탁!

가볍게 숟가락을 넣어 젓가락으로 가격했다.

파르르르 진동을 일으키며 맥주와 소주가 섞였다.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두 가지 술이 가진 기운의 합병 광경은 예술이었다.

술도 마나를 품고 있는 물질이었다.

“오!”

맛있게 제조된 소맥에 양우석 의원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부족하지만 한 번 말아봤습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갑니다!”

챙!

한 잔 더 말아 잔을 부딪쳤다.

꿀꺽 꿀꺽.

“캬아~.”

시원하게 원 샷으로 잔을 비운 양우석 국회의원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조용히 잔을 비웠다.

요즘 일이 많아 나도 가볍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이런 술자리가 필요했다.

“대표님……. 어떤 꿈을 꾸시기에…… 저 같은 정치낭인을 밀어주시는 겁니까?”

술이 돌고 안주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살짝 취기가 오르자 양우석 의원이 물어왔다.

“좋은 나라 만들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초딩의 교과서적 대답이 나갔다.

“좋은 나라라…….”

양우석 의원이 대답이 심심했는지 말을 한 번 더 곱씹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닌 듯 고민에 빠진 양우석 의원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청춘들이 피땀 흘려 일하면 세 끼 밥 먹고, 따뜻한 자기 집에서 잠자고, 다음 날 편한 옷 입고 다시 출근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평범하지만 어려운 일이군요.”

“사실 간단한 문제인데 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기업들은 돈 버는 만큼 적당히 사회에 환원하고, 가진 자들은 갭 투자 같은 부동산으로 헛짓거리 안하고 노동자라는 핑계로 무식하게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는 사회. 그게 좋은 나라의 밑거름 아니겠습니까.”

“으음…….”

간단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에 양우석 의원이 신음을 흘렸다.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였다.

“벅차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소맥 한 잔을 더 말았다.

찰랑거리는 잔을 들고 그를 봤다.

언제나 나의 테스트는 진행 중.

“욕 많이 먹고 장수하렵니다.”

양우석 의원이 웃으며 잔을 받았다.

“힘드실 겁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가려면 정치인으로서 수없는 고비를 넘겨야 할 것이다.

여야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경제인들이 주무르는 여론에 선동당한 이들이 감정적으로 그를 물고 뜯어 죽이려 달려들 게 뻔했다.

“선악불이(善惡不二)라고 저를 깨우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왕 욕먹은 거 세상 좋은 일을 위해 악인 한 번 돼보렵니다. 크크.”

양우석 의원이 악당처럼 웃었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적임자였다.

“지옥은 걱정 마십시오. 포인트 화끈하게 풀어서 신선 자리 예약해 놓겠습니다.”

“???”

농담 같은 진실에 두 눈만 껌벅거리는 양우석 의원.

“원 샷!”

그를 위해 시원하게 잔을 부딪쳤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