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8화 (467/1,284)

 # 468

회귀의 전설

468장. 때려잡기 좋은 날 (4)

“오셨어요~.”

‘오셨어요?’

동룡 회장 주현태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구렁이처럼 치솟아 올랐다.

놈은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고사하고 친한 형 대하듯 자신을 쳐다봤다.

‘재수 없는 새끼.’

녀석은 처음 볼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안아 그룹 주총에서 예상을 깨고 완벽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던 어린 놈.

오늘 또다시 재벌을 공중분해하기 위해 사악한 음모를 꾸몄다.

이번만큼은 그걸 막기 위해 찾아왔다.

천일 그룹과 장태산이 붙었다는 소리를 듣고 정보를 캤다.

놈이 이번에는 천일 그룹을 노렸다.

이유는 명백하지 않았지만 주현태는 확신했다.

여유자금으로 천일 주식을 구입했다.

적극적 M&A설로 인해 주식이 가파르게 뛰어 많이 매집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명분 있게 주식을 들고 직접 찾아왔다.

동룡과 비슷한 규모의 천일 그룹.

구속된 천해운 부회장과는 가끔 술 한 잔하던 사이였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배다른 여동생 주설란은 자신에게 원망을 품고 있었다.

새어머니와 주설란 몫으로 남겨진 유산을 변호사와 입을 맞춰 빼돌렸다.

시끄럽게 짖던 새어머니도 명을 채우지 못하고 갔다.

나름 똑똑했던 주설란은 눈치껏 평범한 남자를 만나 시골로 낙향했다.

차마 같은 피를 나눈 여동생까지는 해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묻혀 사는 것까지 확인하고 신경을 껐다.

그만큼 조용하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런데 때 아니게 여동생의 아들놈이 나타나 온갖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믿을 수 없는 투자 실력으로 수조의 부를 일궜다.

증거는 없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가 되는 장태산을 죽이라고 청부도 했었다.

하지만 목숨이 얼마나 질긴지 놈은 안아에 이어 이제는 천일까지 삼키려 하고 있었다.

외국계 투자자들도 조카 놈과 연관이 돼 있었다.

주현태의 동물적 감각이 여러 차례 그 사실을 말해 왔다.

“한 번 놀러오지 그러냐. 엄마와 같이 오려무나.”

주현태는 속마음을 감추고 넉넉한 외삼촌의 모습을 보였다.

“외삼촌 바쁘시잖아요. 그리고 무서워서 싫어요. 외삼촌만 보면 괜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나요.”

입은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는 장태산.

주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볼 것 같은데……. 보고 싶어도 참아주세요. 가족 간에 쌓인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잖아요.”

장태산은 애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모든 말들은 비수가 되어 주현태의 가슴을 쑤셨다.

외할머니에 관련된 일은 물론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의미.

안아와 천일, 그 다음 차례는 동룡이라는 뜻이었다.

“그래 기다리마. 쌓인 게 있다면 깔끔하게 털고 가야지.”

주현태는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린 조카가 던진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주총 참가하시려고요?”

“천해운 부회장과 형, 동생 하는 사이다. 너를 지지하고 싶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럼요. 저도 공과 사 구분하는 게 좋습니다. 거기에다 합법적이라는 말도 아주 좋아합니다.”

‘청부한 걸 아는 거야?’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짐작 못할 장태산의 말.

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수고해라.”

주현태가 먼저 자리를 떴다.

“오! 주 회장 오셨소.”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귀빈석으로 다가가는데 기다리던 천준용 회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동룡 주 회장님이잖아?”

“……백기사인가 보네.”

“오늘 주총은 끝났네.”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리 앉아요. 주총 끝나고 술 한잔 합시다.”

동룡 회장의 등장에 천준용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알겠습니다.”

회장씩이나 됐지만 오늘 결과가 궁금해 직접 참가한 주현태는 천준용 회장 옆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렸다.

사사삭.

주현태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태산.

‘저 새끼가!’

버르장머리 하나 없는 조카를 쳐다보며 주현태는 이를 갈았다.

오늘 여기서 나가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끝장을 보고 말리라 다짐했다.

***

‘이거 왜 이래? 랏데 그룹과 연금은 왜 안 와!’

천일 그룹 비서실장은 속이 탔다.

랏데 그룹 법무팀에는 연락해 놓았고 연금은 확답까지 받아 놓았다.

그런데 두 곳 다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상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두 곳이 없다면 예상 밖의 위기가 닥칠 것이다.

“하하하하. 그랬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천준용 회장이 동룡 회장과 담소를 나눴다.

다 이겼다 여기는 그 모습에 비서실장은 미칠 지경이 됐다.

타다다닥.

그때 주총장 문을 열고 비서실 직원이 빠르게 실장에게 다가왔다.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

“……랏데에서 이미 주식을 처분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주식을 처분해!”

비서실장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슨 일이야?”

천준용 회장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게…….”

비시설장이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실장님!”

뿐만 아니었다.

연금에서 보낸 법무팀 직원을 밖에서 기다리던 직원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뛰어 들어왔다.

손에 들린 휴대폰.

“뭐, 뭐야.”

“연금 쪽에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한다고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허어억!”

“주총 결과에 모두 승복한다고 방금…….”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뭐냐고!!!”

천준용 회장이 심상치 않는 분위기에 화를 버럭 냈다.

“회, 회장님.”

비서실장의 영혼은 이미 반쯤 가출한 상태였다.

도저히 수습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주총은 법률행위였다.

여기서 늦출 수도 없었다.

“뭡니까! 2시 다 됐는데 진행 안 합니까? 의장 빨리 진행하세요! 지금부터 시간이 늦어지면 주총 방해 행위로 간주하겠습니다!”

“빨리 진행해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합니까!!! 고소당하고 싶어요!”

정각 2시를 지나자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과 위임받은 변호사들이 사방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 그럼 지금부터 천일 건설 대표 이사 해임에 대한 임시주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주총의장이 말을 더듬으며 입을 뗐다.

“회장님……. 랏데는 주식을 처분했고…… 연금은 의결권을 포기했습니다.”

비서실장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천준용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아…….”

강렬한 충격이 뒷목을 치자 두 눈을 감는 천준용.

“회장님!!!”

비서실장이 놀라 황급히 천준용 회장을 붙들며 불렀다.

우르르 경호원들이 회장 곁으로 달려왔다.

“괜찮아……. 난 괜찮아…….”

힘겹게 두 눈을 다시 뜨고 한 곳을 응시하는 천준용.

‘다…… 네놈 짓이더냐!’

주주석 자리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놈.

천준용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분노를 절절하게 느꼈다.

***

“기업의 이익과 지속적 경영 관점에서 이번 이사 해임 건의안 주총은 얼토당토않습니다. 지금껏 천일 건설 대표로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에 여러 주주님들의 현명하신 판단을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천일 건설 대표가 고개를 숙이며 대표 이사 인사를 마쳤다.

식순은 생략할 것들은 생략하고 빠르게 진행됐다.

“그럼 바로……. 성원보고에 들어가겠습니다, 상법 및 정관에 의거 금일 안건은 대표이사와 감사의 해임 안건이 상정되었습니다. 이에 특별결의 사항에 해당하는 바 총 참여 주식 수는 83.7프로로 성원되었습니다. 이에…… 대표 이사와 감사에 대한 해임에 대한 투표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주들의 의견에 따라 전자투표 방식이 아닌 서면투표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사와 감사 해임에 대한 가부와 보유 주식을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주총의장의 발언에 빠르게 주식 의결권이 개제된 서류봉투들이 건네졌다.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랏데 주식도 분할해서 5%를 넘지 않도록 분산시켰다.

대주주 공시 의무가 없었기에 천준용 회장은 이 사실을 몰랐다.

연금 쪽은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가볍게 압력을 넣어 처리했다.

미국 행정부 눈치를 보는 정부였기에 미국 쪽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물을 촘촘하게 짜놓은 후 기다렸고 적들은 중앙으로 몰렸다.

그리고 확!

당황하는 천일 그룹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오늘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돈도 안 되는 그룹 하나 분해하는 게 이렇게 힘들었다.

“쟤들 똥줄 타는 것 같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려면 힘들 겁니다.”

“흐흐. 그룹 쇼핑하는 거 재밌냐?”

“변호사님 재판하는 거 재밌습니까?”

“……그게 그거랑 같냐. 난 일이잖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일입니다. 그것도 돈도 안 되는~.”

“끙…….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룹 분해하는 일을 귀찮은 일 처리인 듯 말하는 나를 보며 조 변호사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의장이 의사봉을 들고 결과지를 봤다.

의장 목소리가 떨렸다.

설마 하는 눈빛으로 의장을 바라보는 천준용 회장.

“대표이사와 감사 해임에 관해 전체 발행 주식 중…… 53.33퍼센트의 의결로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세 번의 망치가 두들겨졌다.

순식간이었다.

“말도 안 돼!!!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 거짓말이야!!!”

천준용 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충격적인 주총 결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새로운 대표 이사와 감사 선임 안건을 진행하십시오.”

삼우 로펌에서 나온 변호사가 의사진행을 독촉했다.

“새로 추천된 대표이사는 전 대웅건설 황효관 부사장님으로…….”

주총의장이 눈을 질근 감고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았다.

다만.

“무효야 무…… 컥!”

큰소리로 무효를 외치던 천준용 회장이 뒷목을 잡았다.

콰다다당.

누가 붙들 사이도 없이 바닥에 넘어지는 천준용 회장.

“회장님!!!”

“119! 119 불러!!!”

결국 천준용 회장이 쓰러졌다.

임원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쯧쯧…….”

조 변호사님이 그룹 회장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빨리! 빨리 업고 달려!”

경호원이 천준용 회장을 들쳐 업고 달렸다.

순간 혈압이 치솟아 쓰러졌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천준용 회장 주변에 저승사자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회의 진행하세요.”

그 와중에도 조 변호사님이 묵직하게 한 마디 던졌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사람이냐! 회장님이 쓰러졌는데 주총이 뭐가 중요해!!!”

“너희들 뭐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건설사 임원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자들의 마지막 항변 같은 것이었다.

“지금부터 대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호를 실시합니다! 만약……. 폭력을 행사하면 정당방위가 될 겁니다!”

한진웅 대표가 일어나 외쳤다.

처저저적.

덩치 좋은 씨큐리티 직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순식간에 분위기는 제압당했다.

“대표이사에 지명된 황효관입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 천일 건설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것을 여러 주주님들 앞에서 맹세하는 바입니다.”

하관우 회장을 통해 천거받은 대웅맨이 강단에 올라 인사를 한 후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와 연관 있는 이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짝짝짝.

완벽하게 대한민국의 또 다른 타락한 재벌 한 곳을 때려잡았다.

속이 다 개운했다.

그리고 나의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인…….

동룡의 주 회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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