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6
회귀의 전설
466장. 때려잡기 좋은 날 (2)
“여보……. 이제 어떡해요…….”
찬병원 원장 부인 진미혜는 바들바들 떨며 남편을 바라봤다.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쳐 도저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찬병원 원장실에 갇혀 버린 신세가 됐다.
“…….”
원장 신문환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부친 때부터 쌓았던 의료인의 명예가 산산이 날아갔다.
아내를 멋대로 행동하게 방치한 자신의 책임이 컸다.
외과 의사로서 개인 병원을 이 정도로 키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내가 강남 사모들을 끌어 들이고 VIP실을 만들 때 내심 쾌재를 불렀었다.
성형외과를 중점적으로 키웠고 서브로 피부과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마사지사를 고용할 때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눈에 봐도 이상한 고용 형태였다.
서비스업 선수들 저리 가라할 만한 체격의 체육학과 출신들을 모집했다.
전문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을 소지한 자들이라 간섭하지 않았다.
그들의 월급 체계도 상식선과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인력들이 암암리에 수군거렸다.
급한 대로 건물을 신축해 분리 관리했다.
찬병원 옆 신축 건물에 들어선 뷰티클럽으로 관리됐기에 비밀은 새나가지 않았다.
비밀이 지켜지면서 갈수록 영향력이 커졌다.
아내의 입김은 그만큼 더 세졌고 병원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고위 관료들부터 시작해 정치권과 법조계까지 인맥은 한계를 모르고 넓어졌다.
얼마 되지 않아 종합병원급으로 성장했다.
대한민국 역사에 일개 개인병원이 이렇게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전례가 없었다.
모두 다 와이프 공이라 여겼다.
어지간한 불법은 눈감아 줬다.
전화 한 통 하면 웬만한 민원은 소리 소문 없이 해결됐다.
그 와중에 와이프는 능력 좋게 뚜쟁이 역할도 맡아 상류층의 혼사에까지 개입했다.
강남에 찬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성을 쌓았다.
막말로 국회 비례의원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딸 수 있었다.
순풍에 돛 단 듯했던 찬병원의 항해였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막을 수 있는 종류의 사고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인맥으로 엮여있던 유력인사들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고 피했다.
서울지방국세청장과 조국일보 편집국장 와이프 동영상이 일사천리로 퍼졌다.
누가 봐도 찬병원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직원 복장과 병원 상징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가감 없이 펼쳐진 포르노 급의 영상들.
“여보! 대책을 세워야 해요! 대책을!”
얼이 반쯤 나간 진미혜가 말 없는 남편을 닦달했다.
“책임져야지.”
“책임요? 내가요? 나보고 지금 감옥에라도 들어가라는 거예요!”
진미혜가 히스테리를 부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았던 그녀다.
유력가문과 인사들 사이를 교류하며 공작부인처럼 살았다.
감옥 같은 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당신이 원장은 아니잖아.”
“여보…….”
담담한 신문환 원장의 말에 진미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편이 뭔가 결심한 걸 알아챘다.
“다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마. 여론이 가라앉으려면 내가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당신은 뒷수습을 해. 병원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돌리고 당분간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
“…….”
진미혜는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이 한 번 결심하면 말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은이는 성격이 예민하니까 자퇴시켜.”
“자퇴요?”
“한국에서는 이제 학교 못 다녀.”
“그, 그럼 어떻게?”
“미국 의대에 입학하는 걸로 해. 당신도 3년 정도 미국에 가 있어. 지은이 뒷바라지 하고 그곳에서 쉬어. 나머지 큰 녀석들은 타격을 안 받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흐으으으윽.”
진미혜는 치미는 분함을 어쩌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태산이라는 놈 하나 잡으려다가 모든 걸 날리게 생겼다.
병원 서버에 3중 보안장치로 보관하고 있던 자료가 해킹 당했다.
나중에 위급할 때 사용하려던 협박 자료들이 모두 털렸다.
이제 강남 바닥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됐다.
“비자금하고 이것저것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위기는 잠시일 뿐이야. 어차피……. 강남 여편네들 우리 손에서 못 벗어나.”
신문환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마약 같은 프로포폴 뿐만 아니라 VIP들을 위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왔었다.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병원은 대한민국에 찬병원밖에 없다고 자부했다.
돈과 명성만 있다면 병원 VIP가 되어 온갖 특혜를 대놓고 받아왔던 부류가 그들이었다.
그건 중독이었다.
가진 자들은 없는 자들을 짓밟는 맛으로 세상을 주무르며 살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특혜가 핵심이었다.
“다, 당신은요…….”
“이미 얘기 끝냈어. 1년 살고 나머지는 집행유예로 풀려날 거야.”
그동안 쌓았던 인맥이 그냥 썩은 동아줄은 아니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일정 미래 보장에 대한 약속받았다.
“여보……. 미안해요.”
“됐어. 당신 수고한 거 다 알아.”
가재는 게 편이었다.
신문환이 아내 진미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악으로 부를 쌓은 두 부부는 서로의 보호막이 되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드르륵.
그때 거칠게 원장실 문이 열렸다.
일단의 양복 입은 이들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
“당신들 뭐야!!!”
진미혜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나 검산데~.”
피식 웃으며 말하는 서울중앙지검 남병찬 부장검사.
‘이것들이 날 물로 봤다 이거지!’
웃는 얼굴과 달리 눈동자는 분노로 활활 불타올랐다.
“신문환 원장님 맞으시죠?”
소파에 앉아있는 신문환을 향해 남병찬 검사가 물었다.
“맞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남병찬입니다. 지금부터 조세 포탈 및 배임과 횡령, 외환관리법 위반, 불법 성매매 혐의로 긴급 체포 및 압수수색을 실시합니다. 여기 영장.”
짧게 말하며 영장을 내보이는 남병찬.
위에서 조용하고 부드럽게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고 온 만큼 이를 악물고 친절하게 대했다.
또 다른 연줄의 작용이었다.
신문환은 영장을 조용히 바라봤다.
“연행해.”
“넵!”
뒤에 있던 수사관들이 신문환 원장 손에 수갑을 채웠다.
“다,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손 못 놔!!!”
남편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자 비명에 가까운 악을 쓰는 진미혜.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관들이 신문환의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수갑 찬 손을 수건으로 덮어 끌고 나갔다.
“다 뒤져!”
“넵!”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압수 상자를 들고 있던 수사관들이 우르르 원장실로 들어왔다.
“병원 서버와 회계장부도 모조리 챙겨!”
우르르르르.
밖으로 수사관들이 퍼져나갔다.
20명이 넘는 검찰 인력이 파견됐다.
남병찬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너……. 일개 부장 검사 따위가……!”
몸소 당하는 치욕에 진미혜는 남병찬을 바라보며 악독한 눈빛을 보냈다.
“일개 부장검사???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모님~ 크크크.”
남병찬이 비열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닥 숙였다 다시 치켜들며 진미혜를 쳐다봤다.
“야! 너 죽고 싶어!”
아직도 어제까지 누렸던 습관이 남아 있던 진미혜는 삿대질을 퍼부었다.
뚜벅뚜벅.
조용히 진미혜에게 다가가는 남병찬.
“!!!”
놀라 주춤거리는 진미혜.
“이 아줌마가 미쳤나. 야? 너 끌려가고 싶어? 남편이 뒤집어썼지만 너도 공범이야. 오늘 일개 부장검사가 휘두르는 칼 한번 맞아볼래? 피부 관리가 잘 돼서 감빵 가면 예쁨 많이 받겠어~ 크크크.”
남병찬이 마치 악마처럼 속삭였다.
파르르.
공포와 치욕에 진미혜의 몸뚱이가 사정없이 떨렸다.
든든한 남편과 배경이 사라진 걸 그제야 실감했다.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짐 챙겨서 떠나. 포주 아줌마야~.”
진미혜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비웃듯 경고를 날리는 남병찬.
스르륵.
진미혜는 겁에 질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원장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흥건한 물기.
‘아우! X발! 이 맛에 검사 한다니까!’
남병찬은 힘 있는 자를 굴복시킨 쾌감에 내심 짜릿함을 맛봤다.
리앤장과 연결된 뒤로 모든 게 술술 풀렸다.
손에 쥐어진 찬병원 조세포탈 혐의와 여러 증거자료들.
지검장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가슴에 맺혀 응어리진 한을 한 방에 풀었다.
***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2시에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랏데에서는 아직 인가?”
“곧 나타날 겁니다. 랏데 법무팀에 연락해 놨습니다.”
“연금 쪽은?”
“곧 출발한다고 연락 받았습니다.”
“흠…….”
천일건설 본사 회장실에서 천준용 회장이 비서의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체크했다.
평소라면 천해운 부회장이 일을 처리하겠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었다.
개를 잘 못 키운 죄로 천해운은 감옥에 있었다.
비자금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컸다.
주총만 잘 막아내면 가을쯤 사면으로 풀려날 것이라는 약조를 받았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외국계 기업이 천일건설을 노렸다.
천일 그룹의 핵심인 건설이 무너지면 그룹은 공중분해가 될 것이다.
천준용 회장은 지난 몇 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대로 일궈낸 그룹을 다른 놈들의 아가리에 처넣고 싶지 않았다.
‘랏데와 국민연금만 도와준다면 아무도 우리 천일 그룹을 넘볼 수 없다!’
이런 날을 대비해 가족과 계열사에 주식을 분산시켜 놨다.
지금도 암중으로 아들 천해운을 위해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작은 계열사 덩치를 키워 합병하면 간단하게 승계 작업이 완료된다.
천준용 사후에도 천 씨가 천일 그룹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일송회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 천일 건설 주총 소식은 드러나지 않았다.
찬병원 불법 성매매 사건만 연일 떠들어댔다.
그룹이 아닌 일개 개인병원과 연루된 사건이었기에 경계 없이 마음껏 깠다.
광고주 집행 능력이 떨어지는 개인병원의 비애였다.
언론은 광고에 따라 움직였다.
그 점에서 천일 그룹은 준수한 성과를 냈다.
큰 건으로 가끔 언론에 재갈을 물려왔다.
요즘도 다른 그룹에 비해 약을 많이 치는 쪽에 들었다.
오늘 주총은 별 탈 없이 마무리 될 것이다.
아무리 외국 자본이라고 해도 시장에 주식이 없었다.
“그놈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오늘 일만 마무리 되면…….”
천준용은 강남하나회 구광필을 믿었다.
과거와 달리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구광필이지만 일 처리 하나는 깔끔했다.
지금껏 맡겨 문제가 되거나 실패한 일이 없었다.
“회장님. 시간이 다된 거 같습니다.”
“그럼 가볼까.”
천준용 회장이 노구를 일으켰다.
한창 시절 열정을 불태웠던 회장실.
넓은 회의실과 의자 뒤편에 걸려 있는 선친의 초상화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과거처럼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정치인들 만나는 것도 신물이 났다.
그저 조용히 햇빛 좋은 집에서 화초에 물이나 주며 자손들 재롱 떠는 걸 보는 게 낙이었다.
그런 일상이 미꾸라지 한 마리로 인해 흙탕물이 됐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가 차가운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삐이잇.
나가려는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비서실장이 대신 물었다.
[실장님……. 지금 주총장에 그 놈과 경호원들이 나타났답니다.]
“그놈? 누구?”
[장태산 말입니다!]
그룹 빌딩 대강당에서 열리는 주총.
그곳에 파견된 비서실 직원의 연락이었다.
“뭐라고 장태산?”
문을 나서려다 말고 놀라는 천준용 회장.
그의 얼굴에 분노와 노여움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