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3
회귀의 전설
463장. 힘 VS 힘 (1)
“어린놈이 무슨 놈의 적이 이렇게 많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소속 조세범죄수사부의 부장 남병찬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서류를 살폈다.
방금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과에서 무더기 자료가 넘어왔다.
속전속결, 신속함 극치였다.
범죄인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도주할 염려가 있어 신병확보를 위한 영장청구를 요한다는 내용이었다.
영장청구는 본래 검찰의 고유 업무였지만 라인 사건은 바로 처리가 됐다.
그것도 한두 개가 엮인 게 아니었다.
“장모님에…… 재벌에……. 또 재벌……. 그리고 언론사까지……. 와! 이 새끼 이러고도 살아 있는 게 용하네.”
옆 건물에 위치한 중앙지법에 휘하 수사계장을 통해 영장청구서를 보낸 뒤 남병찬은 장태산에 대한 자료를 면밀히 살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재벌뿐만 아니라 장모, 그리고 국회의원과 유력 인사들의 청이 잇달았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장태산의 신병 구속이었다.
“재수 없는 한국대 새끼들……. 이런 놈들은 초장에 밟아야 돼! 어린놈이 주가 조작 혐의가 아주 짙어~. 그리고 재산이 수조? 니미럴 개 X 같은 세상이네. 이게 말이 돼? 어디서 비자금 빼돌려 작업했겠지!”
남병찬은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뇌까렸다.
책상 위에 다리를 쭉 뻗어 올렸다.
이 시간에 부장검사실에 함부로 찾아들어올 인사는 없었다.
밖에서는 반투명한 유리 덕에 방이 반만 보였다.
이 공간 안에서만큼은 그도 귀족이었다.
중앙지검 부장급은 지방 차장급과 맞먹었다.
지방국립대 법학과 출신으로 어렵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다행히 정권을 잡은 지역출신이라는 이점이 작용해 줄을 잘 잡을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지방에서 전전하다 검찰의 꽃인 중앙지검 부장 자리를 꿰찼다.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승진 인사였다.
부동산 알부자인 처가댁 도움도 컸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정치권에 10억 이상의 돈을 뿌린 결과였다.
여기서 사고만 치지 않으면 검사장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검찰 쪽도 전 정권 물을 빼기 위해 물갈이가 심했다.
알아서 검사장들과 고참 기수들이 물러났다.
반면 현 정권 라인 인사들은 자기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을 상부로 끌어 올렸다.
“이놈을 잡고 쭉 올라가 보자고~. 용돈도 벌고~.”
사건 내용은 별거 없었다.
사실 내용으로만 보자면 털 수 있는 건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수조를 번 놈 치고는 위법 행위가 안 보였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한국에서는 주식으로 돈 벌었다 하면 모두 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횡령과 배임죄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비품을 개인용도로 함부로 사용해도 적용될 수 있는 죄목이었다.
죄는 천천히 찾아도 됐다.
구속영장에 두루뭉술하게 증거를 집어넣으면 충분했다.
판사가 봐도 구속될 만한 꺼리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감옥에만 집어넣으면 남병찬의 할 일은 끝났다.
현금으로 벌써 몇 억 이상 수금이 됐다고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만큼 장태산이란 놈에 있어 원한을 가진 자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한국대 출신이라 머리가 좋은 거겠지……. 사법시험 동차 합격하고도 3차를 안 봐? 미친 새끼…….”
자격지심이 차고 넘치는 남병찬은 LOR 투자법인 대표 장태산에 대한 자료를 소설 읽듯 훑었다.
누가 봐도 입지전적의 업적이었다.
“와아아아……. 스키 국가대표로 동메달까지 땄어? 이 자식 뭐야? 사람 맞아?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다양하게 튈 수 있어? 초능력자들처럼 일인 다역이 가능하기라도 한 거야???”
어린 시절부터 무협과 판타지를 읽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남병찬은 어이가 없었다.
세무서에서 넘어온 자료에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넘쳤다.
“으음…….”
그리고 점점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놈이 지금껏 무사히 버텼다는 건 뒤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잔머리와 눈치로 살아남은 남병찬의 인상이 굳어졌다.
“이거……. 찝찝한데.”
찬병원 VIP가 됐다고 좋아라하는 장모와 와이프.
소원 하나 들어준 셈 쳤다.
그리고 연락이 온 재벌들의 대관업무 직원들.
그들에게 부장검사님 소리 듣는 게 내심 기분 좋았다.
하지만 영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됐다지만 신임이었다.
남병찬은 아직 서울 쪽 정보에 누구보다 어두웠다.
“이거 차장에게 미리 깔고 갔어야 하나?”
직속상관인 차장검사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검찰에 장태산 동문인 한국대 법학과 선후배들이 이곳저곳에 많았다.
재산이 수조라면 그만한 인맥이 곳곳에 존재할 것이다.
뚜루루루루루루루.
방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부장님……. 이거 이상합니다!
구속영장 청구하러 간 계장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김 계장 무슨 일이야? 뭐가 이상해?”
- 영장청구 자체가 접수가 안 됩니다.
“뭐? 접수가 안 돼? 그게 말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접수는 기본적으로 받게 돼 있었다.
- 영장 담당부 유 계장이 판사님 지시라고 접수도 받지 말라고 했답니다.
“판사 지시라고?”
이미 말이 맞춰져 있었다.
중앙지법 네 명의 영장 담당 판사들 중에 야간 담당 말고 두 명에게 미리 연락을 해 놨다.
찬병원과 재벌 쪽에서도 손을 써놓는다 약조를 받았던 일인데 뭔가 틀어졌다.
‘이거 뭐야? 영장 담당에게 약 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입맛이 갑자기 싸해졌다.
중앙지법 영장 담당 부장판사들은 대부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이었다.
법원행정처를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지원장, 그리고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그들이 영장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한 권력자의 힘이 작용했다는 징조가 확실했다.
삐이이잇.
그때 인터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뭐야?”
[부장님. 지금 차장님이 바로 올라오라고 하십시다.]
“차장님이?”
[네. 지금 당장이라고 전하셨습니다.]
차장검사실에서 내려온 내선 인터폰.
“X발. 이거 똥 밟은 거 아니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남병찬의 안색은 어느새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
- 선배님. 처리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조만간 좋은 곳에서 술 한 잔 마시자. 영장 판사 생활이 쉬운 게 아닌데 기름칠 좀 해줄게.”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케이~.”
손대균 이사는 경쾌하게 통화를 끝냈다.
“들었지?”
“네.”
“너 이번에 위험했다. 폼을 보아하니 바로 구속영장 나오면 즉시 체포해서 끌고 갈 작정이었던 것 같다. 경찰들도 사무실 주변에 대기 중이었단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말로만?”
“지금까지 말보다 물질로 화답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 일 끝나면 진하게 술 한 잔 대접함이 이 바닥 전통이야. 좋은 곳 아는데 소개시켜줘?”
진담처럼 농담을 하는 손대균 이사.
얼마 전 손유리 이야기는 서로 모른 척했다.
괜히 건드려봐야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찬병원이냐?”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인생 참 버라이어티하게 산다.”
“제 덕분에 선배님들이 심심하지 않으신 겁니다.”
예상 밖으로 이번 적의 기습은 상당히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국세청 수색영장이 집행되자마자 구속영장이 바로 청구됐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빨랐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 당할 뻔했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았다.
보통 세무조사를 받고 나면 조사와 이의 기간을 두게 마련이다.
그리고 조세범을 처벌할 필요가 있으면 검찰로 사건을 송부하는데 이건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는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구속사유야 만들기 나름이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염두해 두고 청구했을 것이다.
영장 담당 판사 방망이가 이유 있다 판단하면 바로 난 구속될 수 있었다.
법이라는 게 있는 자의 편이라는 건 과거부터 미래까지 수없이 보아왔다.
일반인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리그였다.
곧바로 리앤장 손대균 이사님을 호출했다.
힘 대 힘의 대결이었다.
구속영장 발부 단계에서 막았다.
놈들이 중앙지검 부장검사에게 약을 쳤다.
“남병찬이 누굽니까?”
“지방에서 굴러먹던 놈인데……. 이번에 줄잡고 돈 써서 올라왔다.”
“정치 검사입니까?”
“후배님……. 검사는 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 동일체 원칙 아시죠? 총장님이 까라면 다 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총장은 법무부 장관이 조종하고 법무부 장관은 VIP가 임명합니다~.”
손대균 이사의 친절한 설명에 빙긋 웃음이 났다.
물어보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었다.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공무원이었다.
법원처럼 검찰청을 독립시키고 검사동일체 원칙을 파괴하면 볼만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을 감시할 공직자비리수사처를 또 만들면 되겠지만 정권을 잡은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쓸 사냥개 목줄을 놓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권력에 취하면 그 전에 봤던 것은 이미 보이지 않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의 법칙은 성역 없이 적용됐다.
의리 없는 사냥개는 주인이 바뀌면 전 주인을 확실하게 물어 죽였다.
잘못 사용한 칼에 베이는 이치와 같았다.
“실력은 있습니까?”
“실력? 실력이야 넘치지~.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 별 볼일 없는 검사가 지방에서 전전하다 중앙까지 올라왔다면 실력 입증 된 거 아닌가? 그 정도면 그 바닥에서 신화야~.”
손대균 변호사님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건 진실이었다.
“그 신화 좀 밟아야겠군요.”
“어떻게 통영으로 보낼까? 그곳이 낚시하면서 퇴직하기 좋은 곳이지.”
웃으면서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손대균 이사의 힘이 이 정도였다.
삼우 로펌 조 변호사님과 파워가 달랐다.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법률 명문가의 힘인 셈이다.
그리고…… 일송회의 능력이기도 했다.
손대균 이사가 날 많이 봐주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과거와 달리 맑아졌다.
나를 볼 때마다 그의 진심이 엿보였다.
관상이 달라졌다는 건 그 사람의 운명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심상(心相)이 곧 관상(觀相)이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응? 왜? 그 놈이 가장 괘씸한데.”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라고 아시죠?”
“손자병법 승전계에 있는 그 병법?”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남병찬을 이용하자는 거야?”
“지금 남 검사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긴 윗선인 차장검사에게 X나게 깨지고 있겠지. 내가 확실히 조져 놓으라고 했다.”
“잘하셨습니다. 깨져야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어떻게 할 건데?”
“궁금하세요?”
“물론이지. 네 말 대로 요즘 누구 때문에 내가 심심하지가 않아.”
“콩밥 먹을 뻔했는데 술 한잔해야겠습니다.”
“마실래?”
“제가 최근에 투자한 프랑스 와이너리 와인 마실까요?”
“……프랑스 와이너리는 언제 샀어?”
“럭셔리 인생의 필수품입니다.”
“……부러운 놈 같으니.”
“……그 전에 미끼를 던져주십시오.”
“미끼?”
“남병찬 동기가 로펌이 있지 않겠습니까?”
“있지. 중앙지검 부장검사에게는 항상 특별한 로펌 친구들이 붙어.”
리앤장 로펌 연수원 동기가 인맥을 형성했을 것이다.
로펌에서 필요하면 이용하기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특히 중앙지검 부장검사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한민국 검사들 중에서 파워가 가장 쌨다.
스윽.
품에서 USB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냐?”
“편법으로 수집한 위법한 증거입니다.”
“불법 증거? 내용이 뭔데?”
“제가 수집하면 불법이지만 검사님들이 사용하면 적법이 되지 않겠습니까. 특히 공익제보를 받아서 사회적 이슈를 끌만한 내용이면 정권이나 검찰에서도 좋아하다 못해 환장하겠죠.”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이사님도 좋아하실라나 모르겠습니다. 화끈한데~.”
“화끈? 설마…… 그거??”
파르르 떨리는 손대균 이사의 눈동자.
씨익.
살짝 입술 끝에 피어나는 음흉한 웃음 한 자락.
“네~ 그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