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2화 (461/1,284)

 # 462

회귀의 전설

462장. 또 다른 전쟁의 서막 (3)

“팀장님……. 별거 없는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대표실 컴퓨터에 웹사이트 몇 개 하고 증권회사 프로그램과 증권회사 거래 계좌만 있습니다.”

“재무 담당 컴퓨터는? 다른 거 깔린 거 없어? 디지털 포렌식으로 싹 뒤져봤어?”

“……밤새 살펴본 전문가가 그러는데 아무것도 없답니다. 주식 거래 내역은 저희가 확보한 것과 똑같습니다. 서류도 볼 것도 없습니다.”

“그 새끼 블랙 카드로 수십억 긁었다고 제보가 들어왔어! 카드 주인이 다르니까 뒤져봐. 연봉 삥땅 칠 수 있어.”

“자기 카드로 긁었습니다.”

“외국인 명의가 아니고?”

“카드사에 확인해 봤는데 몇 달 전 새로 발급받았습니다. 외국에서 받았던 연봉에 대한 세금도 전부 납부한 상태구요. 삼우 로펌 회계팀에서 비용받고 다 정리했습니다.”

“……말이 안 돼! 그럼 집은? 구입 자금 추적해 봤어?”

“주식으로 번 돈입니다. 깔끔합니다.”

“집에 있는 외제 차는!”

“미국계 투자회사 임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리스입니다.”

“먼지가 하나도 없어?”

“외국 투자도 대부분 면세 혜택 나올 때 들어갔습니다. 오가는 자금 내역이 깔끔합니다. 세금도 다 납부했고…….

“…….”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3과 팀장 김필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국세청 직원들 중에서도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 여기 조사4국이었다.

대부분이 정치권에 의해 휘둘러지는 권력의 총아였다.

어떤 기업도 조사4국의 검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 자식 부모가 모은 자금은?”

“주식 투자로 벌었습니다.”

“차명계좌로 운영한 거 아냐! 시골에서 과일 농사 짓던 아줌마가 어떻게 주식 투자로 수조를 벌어!”

장태산에 대한 기본 정보를 열람한 상태였다.

김필주는 더 열이 받았다.

자신은 어렵게 9급으로 시작해 오늘의 자리에 오른 반면 녀석은 달랐다.

고등학교 시절 인세를 받은 돈으로 주식을 시작했고 그 돈을 밑천 삼아 엄청난 부를 쌓았다.

꼼꼼히 자료를 찾아봤지만 작전주도 없었다.

순순히 개인의 운으로 오늘의 부를 축적했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배가 아팠다.

그래서 쉽고 재기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싶었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습니다. 부모와는 투자 위임을 받아도 됩니다. 미성년자 시절 부모로부터 동의를 받아 투자법인을 열었습니다. 치밀한 놈입니다.”

“있어! 그 새끼 외할아버지 비자금을 사용했을 거야.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를 이용해 뻥튀기 했단 말이야!”

“…….”

바로 밑에 직급인 7급 팀원은 입을 다물었다.

조사를 충분히 하고 증거를 확보했지만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이건 털어도 먼지 하나 없었다.

“용준아. 너 팀장으로 승진해야지……. 이 건, 위에서 특별히 내려온 거다.”

김필주는 팀원을 달랬다.

지청장 명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이번 건을 마무리하면 과장급으로 진급할 수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느낌? 뭐가?”

“작년에 3팀 날아갔지 않습니까.”

“멍청한 놈들이라 그렇지! 우리는 달라. 장태산은 TS 그룹이 아니라 개인일 뿐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게 조사해 보니까. 장태산 투자 회사 중에 TS 그룹이 있었습니다.”

“뭐? TS 그룹!”

TS 그룹이라는 말에 팀장 김필주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국세청 조사국이 건드렸다가 유일하게 개 털린 곳이 바로 TS 그룹이었다.

이번 정권의 실세인 장만수 장관 지시를 받고 국세청장이 칼을 휘둘렀다가 결국 목이 날아갈 뻔했다.

그 책임을 물어 조사과 하나가 깡그리 날아갔다.

과장을 비롯해 팀원들 모두 지방이나 한직으로 모두 좌천당했다.

TS 그룹을 봐주는 미국 투자자가 미국 행정부와 연이 깊다는 정보가 돌았다.

앞으로도 TS 그룹은 대통령이나 윗선이 미치지 않고서는 건들 수 없을 것이다.

국세청 직원들도 강한 자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공무원 집단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지, 진짜야?”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게 무슨…….”

김필주가 답답한 듯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청장…… 이 왜?’

사실 의문이 들긴 했었다.

너무 급작스런 지시였다.

맡고 있던 다른 기업을 놔두고 우선 장태산부터 털라는 명령.

투자 법인과 개인이었기에 큰 의심 없이 쉽게 덤벼들었다.

정보는 금방 드러났고 맛을 보여주리라 으르렁거리며 신나게 물어뜯었다.

그런데 조짐이 뭔가 이상했다.

“팀장님. 확인 한 번 더하고 갈까요?”

“……늦었어. 이미 털었잖아.”

“밑에 직원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서류가 너무 깔끔해서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투자 대부분이 면세 혜택을 받을 때 진행했습니다. 뒤에 삼우 로펌이 버티고 있습니다.”

팀원 박용준이 팀장의 심기를 살피며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X발! 못 먹어도 고다! 팀원들 다독이고 바로 중앙지검 남병찬 부장 검사님께 토스해. 그 쪽에서 알아서 한다고 했어.”

“팀장님…….”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 거야. X미! 우리는 피라미야. 걸려봤자 감봉이나 전출 가면 그만이야.”

욕을 뱉으면서도 광기를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김필주.

‘돈벼락 맞은 새끼들은 다 죽어야 해! 세상이…… 개 같이 불공평해!’

마음속에서 끝없이 분노의 주인인 악마가 속삭였다.

***

“푸하하하하하하. 사무실 새로 리모델링 할 생각인 거야? 시원해서 좋네~.”

“조 변호사님. 저 파산하면 변호사님도 실업자 됩니다.”

“장 대표는 너무 세상 어려움 없이 컸어. 가끔 사는 게 엿 같구나 느낄 필요가 있어. 공권력에 당한 기분이 어때?”

“더럽네요. 개 같이.”

“흐흐흐. 특히 국세청에 당하면 맛이 더 더러워~. 그 자식들은 하이에나야. 위에서 물어뜯으라고 하면 앞뒤 안 보고 달려들어.”

“죄송합니다…… 보스.”

한진웅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기는. 공권력이 그래서 무서운 거야.”

“변호사님 말씀대로 한 대표님은 마음 쓰지 마십시오.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잖아요.”

위임 받은 공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앞으로 10년 가깝게 이런 사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독특한 사상으로 무장한 집단들이 대한민국을 사방에 팔아먹었다.

곧 임명되는 법원의 최고 수장이라는 작자가 친일파들과 결합해 일본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법도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가진 자들이 어둠 속에서 카르텔을 이루고 활개를 쳤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치적 청렴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산업발전과 동시에 주체인 경제인의 마인드 진화가 특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고도 성장기에 치솟는 경제 성장의 맛을 본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

국가가 모든 걸 주도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진 자들이 만들어 낸 대표적 공약이 ‘848’이다.

환상을 입힌 뻥이었다.

폭발적인 경제 인구와 더불어 저임금 노동 집약적 산업 시절에나 가능했던 수치였다.

70년대와 80, 90년 IMF 전에는 사업을 벌였던 상당수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대출 금리가 10%가 넘어도 빌릴 수만 있으면 이익이 됐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은 세상 곳곳에 넘쳐흘렀다.

부모들은 오로지 아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도 기세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한국 전쟁 이후 태어난 가난한 세대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경제적 부를 일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기에 그들은 불도저처럼 미래의 안락한 삶만을 위해 밀고 나갔다.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에서 나온 피나는 노력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산업 전반에 걸쳐 거침없는 성장이 이루어졌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했다.

경제 활동 인구가 줄어들고 노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다른 국가들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중국을 거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과거 한국과 같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기세 좋게 성장하고 있지만 중국도 성장률이 점점 떨어져 2020년에는 4%를 찍었다.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 가격을 당해 염병하던 공산당 공룡이 허덕였다.

그리고 2010년.

한국은 과거의 영화로웠던 시절의 환상을 잊지 못한 이들의 선동으로 선택된 사기꾼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판을 벌렸다.

혁명적 기술 자립도 없이 이루기 힘든 환상적인 수치를 들고 당선 되었기에 땅부터 팠다.

부동산은 본격적으로 치솟았다.

연방은행에서 찍어낸 달러가 세계적 저금리를 만들어 냈고 더불어 각국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나타났다.

모두 다 미래 경쟁력을 잡아먹는 악수가 된다.

부동산이 안정돼야 청춘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할 텐데 그럴 수 없었다.

서울 변두리 아파트도 수억을 그냥 찍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평생 만질 수 없는 거금이 콘크리트 벽에 함몰되었다.

은행들은 정부 시책에 따라 돈을 뿌렸다.

이자 놀이를 하며 꿀을 빨았다.

부채가 거품이 되어 갔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더 부자가 됐다.

적당한 부채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한계를 넘으면 파산밖에 답이 없었다.

2020년에 터진 제2의 경제 대란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시기였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었다.

부동산 갭 투자를 비롯해 여러 사행성 투기로 한 방을 노린 일부 국민이 만들어 낸 욕망의 거품덩어리였다.

저금리에 저축 대신 모두 빚을 내며 생활했다.

미래를 대비하기보다는 이 순간만을 누리며 살았다.

가진 자들은 현금과 외환을 비축하고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을 때를 기다렸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폭탄과 20년 장기 불황이 코앞에서 기다렸다.

그런 미래가 곧 닥칠 것을 알고 있어서 더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리 알고 있다 해도 나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괴물처럼 진화한 욕망의 전이는 전 지구적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나는 2010년도의 더러운 권력의 희생양으로 찍혔다.

당할 때마다 솔직히 기분 엿 같았다.

“조 변호사님. 기분 더러운데 화끈한 복수 방법 없습니까?”

그렇다고 앉아서 당하는 게 또 체질상 불가능했다.

“말만 해. 어떻게 해줄까?”

폭격을 맞은 사무실.

책상 위에 모니터만 달랑 남았다.

장식용으로 꽂혀 있던 책들은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닫혀있던 원목 책상 서랍도 부셔져 나갔다.

조용히 열 것이지 장도리를 사용해 뜯어버렸다.

대표실 문도 박살나 유리가 사방으로 비산됐다.

바닥은 함부로 밟아 거친 발자국에 엉망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유세라 팀장이 타놓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추슬렀다.

“누굽니까?”

“서울지방국세청 유광석 청장이 조사4국 조사3과 1개 팀을 움직였어.”

“윗선 지시 없이 행동했겠군요.”

“거기는 지방청장 직속이야. 국세청장 허락 안 받았다. 알았다면 이런 일 없었을 거다.”

당연했다.

로버트 라이언을 이용하면 이 번 사건은 단박에 내 뜻대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싱겁게 끝내 버리면 흥이 나지 않았다.

그냥 털면 심심했다.

뭔가 화끈한 다른 게 필요했다.

“그 뒤에는……. 찬병원입니까?”

“어? 너 알고 있었어?”

조 변호사님이 놀랐는지 눈치를 보냈다.

“네.”

“흐흐흐. 찬병원 원장 마누라하고 한 판 붙은 여파다. 그 여자가 이 바닥 터줏대감이야. 웬만한 로펌보다 힘이 세.”

조 변호사님 요즘 심심했던 것 같다.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다소 들떠 있었다.

“청장 와이프와 연결됐습니까?”

“와아아! 역시 우리 장 대표 감 안 죽었어~. 이연숙이라고 청장 와이프가 찬병원 VIP다.”

“아프지도 않는데 병원 VIP입니까?”

“거기가 여자들에게는 극락이야. 각종 뷰티 코스가 예술이래~.”

“네???”

“우리 와이프도 과거에 퇴짜 맞은 곳인데……. 원장 마누라가 중용대학교 발라버렸다고 오늘 아침부터 소문내고 다닌다더라.”

그 네 가지 부족한 아줌마가 미리 김칫국 드셨다.

“겁이 없는 분이군요.”

“강남 사모님들 놀이터잖아.”

“좋은 소스 없습니까?”

조 변호사님도 이제는 강남에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는 분이다.

뭔가를 더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게……. 은밀하게 도는 소문인데 말이야…….”

조 변호사님이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뭡니까?”

나도 은밀하게 대답했다.

곰 같은 한진웅 대표도 귀를 모았다.

“그곳에 말이야…….”

남자들만의 신호를 보내며 음침하게 웃는 조 변호사님.

세 남자의 머리가 가까이 맞닿았다.

- 노세~ 노세~♬.

그때 조 변호사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분위기를 확 깨는 멜로디.

“뭐야?”

조 변호사님이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폰을 켜두는 조 변호사님.

- 접니다. 선배님!

“바쁘신 부장검사님이 무슨 일이신가~.”

- 따끈따끈한 정보가 들어와 연락드렸습니다.

“뜨거운 거야?”

- 선배님이 부탁하셨던 LOR 투자법인에 대해 방금 남병찬 부장이 구속영장 쳤습니다.

“구속영장? 벌써?”

들려온 말에 놀라며 나를 바라보는 조 변호사님.

나도 믿기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정도로 빠른 공격.

분명 찬병원 말고 뒤에 또 누가 있는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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