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1
회귀의 전설
461장. 또 다른 전쟁의 서막 (2)
“알았어요. 고마워요. 여보.”
서울지방국세청 와이프인 이연숙이 전화기에 대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요. 저녁에 봬요~ 사랑해요~.”
이연숙의 새살떠는 모습을 진미혜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강남 찬병원 VIP 대기실.
“처리했대.”
이연숙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을 건넸다.
“정말요! 대단해요~ 사모님!”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찬병원 사모 진미혜의 호들갑에 이연숙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업하는 자라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국세조사를 받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졌다.
행정소송에 가더라도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동안 세금 때리고 억눌러 놓고 있으면 어지간한 회사는 파산하고 만다.
지금껏 특별세무조사에서 벗어난 기업이나 개인은 없었다.
“사모님~ 오늘 특별 코스로 모실 게요~.”
“그럴까?”
“그리고 기대하세요. 제가 좋은 인연 소개시켜 드릴 게요~.”
“정말?”
“저 진미혜 지금껏 거짓말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왔어요. 이렇게 은혜를 받았는데 당연히 돌려드려야지요.”
“뭐 바라고 한 건 아닌데~ 호호호.”
“다 알죠~ 사모님. 청장님 닮아 사심 없는 거~ 큰일 하셔야 하는데~.”
‘됐어! 장태산 이 새끼! 넌 이제 죽었어!’
진미혜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어린놈의 새끼가 자신 앞에서 저질렀던 돈질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성질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런 대로 이제 반쯤 복수가 끝났다.
국세청이 털고 나면 다음은 언론이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잘하면 놈이 딴 메달까지 박탈하자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다.
사법시험도 물 건너갈 것이고 사업은 곤두박질치며 쫄딱 망할 게 뻔했다.
그리고 놈이 자랑하던 집안은 너덜너덜해지는 게 마지막 코스였다.
재벌들의 비자금 변칙 상속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한국에서는 발붙이고 살 수 없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이 물고 뜯어 알아서 난도질할 것이다.
세상은 제 잘난 맛에 사는 능력 있는 자를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나 가진 자에 대한 질투는 그 무엇으로도 진화되지 않을 만큼 무서웠다.
진실 따위는 안중에 없고 씹어 먹을 수 있는 종류의 맛있는 먹잇감인 것에 만족했다.
“사모님~ 가시죠. 예전에 마사지 받았던 미스터 유가 대기 중입니다.”
“어머~ 그래요?”
VIP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마사지.
은밀하게 잘생기고 실한 남자들을 사모들에게 붙였다.
여차하면 나중에 써먹을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그걸 전혀 모르고 내심 기뻐하는 이연숙.
요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영계라면 다들 환장하는 세상이었다.
***
“카리나……. 정말 그 남자 멋있어!”
“뭐야…… 비올라? 설마 내 앞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소리를 할 건 아니지?”
“으으으! 우정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됐어! 다니엘은 내가 찍었어!”
“사랑은 움직이는 법이야~.”
“아니야. 처음 볼 때 이미 우리 둘은 운명을 느꼈어!”
“됐거든! 연애도 못해본 네가 뭘 알아?”
“그래서 공주님은 알고?”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아빠가 엄청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건 확실히 알지~.”
“총리님 만나고 계시지?”
“성격 급하다니까. 다니엘 가자마자 약속 잡았어.”
“잘 될까?”
“안 되면 어쩔 거야. 연립 정부도 위태로운데 이럴 때 크게 터트려야지. 정치적 쇼로 이만한 게 없는데~.”
“공주님. 정치를 아세요?”
“흐흐흐. 당연하지.”
스웨덴 여름 궁전의 공주방에선 카리나와 비올라 공주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투자자 전권 위임 대표 다니엘.
국왕과 함께 점심부터 수십 병이 넘는 와인을 비웠다.
아돌프 국왕은 보기보다 더 상남자였다.
스웨덴 바이킹의 위대한 핏줄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런 국왕이 술에서 손을 들었다.
다니엘은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밀 계약은 체결됐고 국왕은 페르 라르손 대표, 총리와 만남을 가졌다.
몇 시간 후면 스웨덴 볼부에 대한 지원이 결정될 것이다.
“카리나. 우리 한국 갈까?”
“응?”
“갑자기 가보고 싶어~. 한국에 가면 다니엘 같은 남자들이 많겠지?”
“공주님……. 올해 언니가 시집가는 해입니다. 조신하셔야죠.”
“됐어! 조신한다고 누가 알아줘! 난……. 반드시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할 거야!”
“다니엘은 빼줘~.”
“그건 봐서~ 흐흐흐흐.”
“나쁜 바이킹 공주 같으니라고!”
“그래 난 나쁜 바이킹 공주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져야 속이 풀리는 위대한 바이킹의 후예가 바로 나다! 움하하하하하.”
장난스런 두 여인의 웃음이 왕궁에 퍼졌다.
순간의 선택이 스웨덴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결정.
모처에서 바이킹 두목과 총리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겼다.
***
“미세먼지가 많아도 역시 한국 땅이 최고야~.”
창문을 열고 공기 냄새를 맡았다.
도도희는 피곤하다고 리무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 그녀는 과음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몇 병을 그녀가 비웠다.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상당히 먼 거리였다.
일반인은 시차 적응하기가 힘든 여행이었다.
그에 반해 난 쌩쌩했다.
부아아아아아앙.
평일 아침이라 올림픽대로는 한산했다.
공항에 주차되어 있던 스포츠카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핸즈프리로 연결했다.
- 대표님, 큰일 났어요!
유세라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입니까?”
목소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기분이 쌔했다.
어지간한 일로 유세라 팀장은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않았다.
- 사무실이 털렸어요!
“털려요?”
- 방금 서울국세청 직원들이 회사 자료와…… 대표님 컴퓨터를 들고 갔어요.
“뭐라고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주인 없는 사이 본진이 털렸다.
그래봤자 나올 건 없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기에 컴퓨터에는 자료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세무조사 같은 거 해봐야 먼지 밖에 안 났다.
1원 한 장 꿍친 게 없었다.
삼우 로펌 변호사들과 회계사들이 완벽하게 일처리 했다.
- 이제 어떡해요……. 우아아앙!
유세라 팀장이 많이 당황했는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습니다. 이번 기회에 사무실 세팅 다시 하죠. 그러니까 뚝!”
- 대표님 농담이 나와요?
“그럼 울어요? 하하하하.”
- 대표님 진짜 나빠요……. 난 심장이 놀래 우황청심환 먹었단 말이에요!
“선물 사왔습니다.”
- ……정말요?
여자와 애들 달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금방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한진웅 대표님하고 조 변호사님 호출해 주십시오.”
- 네…….
“커피 세트는 안 가져갔죠.”
- 그건 비품이잖아요.
“그럼 맛있는 커피 부탁합니다~. 스웨덴 왕실에도 유세라 팀장님 같은 바리스타는 없더군요.”
- 왕실요?
“자세한 이야기는 도도희 상무님에게 들으세요~.”
이동 중 통화는 짧게 끝냈다.
가벼운 말로 유세라 팀장을 일단 달랬다.
하지만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굳어졌다.
장만수나 국세청장 라인은 아니었다.
멋모르고 나를 이렇게 깠다면 정보 수집이 한참 아래 단계 라인인 인사가 분명했다.
의심 가는 리스트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나는 얼굴들.
“너희들이겠지…….”
부아아아아앙.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세상 조용히 살고자 그토록 노력했지만 불어오는 미세먼지 같은 바람은 쉼이 없었다.
남들을 짓밟아야 사는 맛을 느끼는 불쌍한 인간들.
“원한다면 모조리…… 부숴 주겠어!”
***
“도대체 교수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중추신경계! 말초신경계! 자율신경계! 체성신경계……. 으아아! 그걸 다 원문으로 이해하고 외우라고? 이게 무슨 1학년 1학기 수업이야…… 난 대학에 왔지. 암기 지옥에 온 게 아니라고!!!”
“선배들이 그러더라. 교수님들이 군기 잡으려고 더 빡세게 수업한대.”
“흐윽……. 차라리 전과할까?”
“수능 다시 보라고? 됐다!”
“어떻게 한 과목 수업량이 수능 양이랑 버금 갈 수가 있지? 그게 다섯 과목이라는 게 놀랍다. 흐흐흐.”
“웃음이 나와?”
“그럼 미칠까?”
“이러다 소개팅도 못 나가는 거 아냐?”
한국대 의예과 1학년 전공 강의실.
2010년부터 의전원 문제로 학부생이 반절로 줄어들었다.
과거와 달리 7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정원이 됐다.
그런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오전 수업을 받다 멘붕에 빠졌다.
교수가 쪽지 시험 범위를 내줬다.
문제는 교과서 두께가 엄청났고 원서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모두들 넋이 나가 하소연하기 바빴다.
“선배들에게 잘 보여야 해. 필수 족보를 캐지 못하면 우리는…… 교과서의 노예가 될 거야.”
“주희야. 니가 미인계로 좀 꼬셔봐.”
“맞아. 남자 선배들 보는 눈이 심상치 않잖아~.”
“뭐야? 니들 친구 팔아서 영화를 누리겠다고?”
“흐흐흐. 주희야 미모를 썩히는 건 죄야.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여자는 인생을 반절만 산다는 철학자 명언이 오늘따라 가슴에 박힌다……. 나중에 성형외과 개업하면 내가 첫 손님 해줄게. 내 동생도 둘이나 있어~.”
“와…… 도대체 어떤 인간이 그런 진실된 망발을 뱉는 거야!”
“팩트 지린다…….”
장주희 곁에 여자 동기생들이 모였다.
예쁜 얼굴과 달리 성격이 좋은 장주희였다.
사심 없는 동기들은 그런 장주희를 중심으로 뭉쳤다.
한국대 의대 호박꽃 클럽을 결성했다.
숫자는 다섯.
스스로 자아비판에 가까운 말을 했지만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 몸이 행차 좀 해주겠어~.”
장주희가 장난스럽게 고고한 척 자세를 취했다.
“흐흐흐. 주희야, 잘되면 우리 오빠 소개시켜 줄게. 강남 성형외과 개업의야~.”
“됐어~.”
“그러지 말고 만나봐. 나이는 좀 삭았지만 돈 잘 벌어. 네 사진보고 안달이 났다. 영계 좋은 건 알아가지고…….”
“너희 오빠는 양심도 없대? 최소 띠동갑 각인데! 주희야, 우리 오빠는 착실한 공무원이야. 행시 패스하고 사무관인데 어때 만나볼래? 서른도 되기 전에 재경부에 들어갔어. 나중에 장관 부인 소리 들을 거야~.”
친구들이 서슴없이 장주희를 노렸다.
성격 좋은 예쁜 미인을 가족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가득 넘쳤다.
“우리 오빠가 가만 안 둘 걸~.”
장주희는 고개를 저었다.
“너, 오빠 있어?”
“뭐하는 분이야?”
“한국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오오오! 털도 안 뽑고 바로 먹어도 된다는 한국대 법대생!”
“으으으. 수지…… 너 1학년 말투가 왜 그래!”
“잘생겼어? 주희 닮았다면 안 봐도 미남이겠지?”
“전화해봐. 오빠에게 점심 사달라고 해! 얼굴 좀 보자!”
“됐어. 그러다 너희들…… 상사병 걸려~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그러다 인생 망친 애들 많아.”
“오오올~ 그 정도야?”
“더 궁금해지는데? 흐흐흐.”
대부분 공부에 목숨을 걸렀던 평범한 여학생들이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또각또각.
그때 다른 강의를 듣고 있던 여자 동기 셋이 다가왔다.
“야~ 장주희!”
찬병원의 막내 딸 신지은이 앞장 선 채 도도한 표정으로 장주희를 불렀다.
“야? 이게 미쳤나…….”
한 성격 하는 장주희가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
한때 장주여고의 보이지 않는 짱으로 군림했었던 장주희.
장주희 덕분에 장주여고에는 일진들이 없었다.
그 모습에 신지은이 움찔 놀랐다.
장주희만 보면 랏데 명품 백화점 일이 떠올랐다.
재수 없던 쌍둥이와 그 오빠 놈.
‘엄마가 마음껏 짓밟으라고 했어!’
방금 전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세무조사로 장주희 오빠를 확실하게 보냈다는 내용.
“말투 천박한 거 하고는……. 장주희 너 그거 알아?”
“뭘 알아?”
“너희 집 오늘부로 끝났어~.”
“끝나?”
“너희 오빠……. 사무실 조금 전에 국세청에서 털었대~.”
팔짱은 끼고 신지은이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러나 되돌아 온 반응은 놀랍도록 담담했다.
“그, 그래서라니! 너희 오빠 끝났다고!!!”
심지어 악을 쓰는 신지은.
“미친 개소리하고는…….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오빠 대한민국에서 성질 제일 더러워~. 누군지 몰라도 참 안 됐다.”
“뭐, 뭐가 안 돼!”
“몰라서 물어. 우리 오빤 한 번 물면……. 지옥까지 끌고 가~.”
씨익 악당처럼 웃는 장주희.
장주희는 절대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오빠의 능력.
지금쯤 이미 그 상대를 죽이고도 남을 플랜을 완성시켰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