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
회귀의 전설
460장. 또 다른 전쟁의 서막 (1)
바이킹들의 두목? 저분이?
세상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외국 중년 남자였다.
안경을 끼고 살짝 벗겨진 머리에 새하얀 머리칼이 덮였다.
키는 나보다 작았다.
고집스런 매부리코가 한 성격 한다는 걸 알렸다.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나이가 적지 않지만 소년처럼 세상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바이킹들의 왕도 아니고 두목이란다.
지금껏 알림음이 거짓말 한 적은 없었다.
이계와 달리 지구표 알림음은 담백하고 진솔했다.
“예를 갖추십시오.”
시종장이 잠시 멍한 나를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실례였다.
“국왕 폐하를 알현합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를 알현합니다.”
도도희도 인사했다.
“우리 시종장이 옛날 사람입니다. 요즘에 누가 왕에게 그렇게 인사합니까~. 편하게 앉으세요.”
바이킹 두목은 씨익 웃으며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시종들이 달려와 의자를 빼줬다.
모두 자리에 앉았다.
“오늘 귀한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해서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부족하더라도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국왕은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인처럼 예를 차렸다.
그리고 시작된 점심 식사.
여섯 명의 시종들이 일사분란하게 부엌에서 요리들을 배달해 왔다.
“오늘을 위해 왕실 와인 창고에서 귀한 녀석을 가져왔습니다. 한 번 맛보세요.”
가벼운 수프부터 시작해서 정찬 요리들이 줄지어 나왔다.
누가 바이킹 후손 아니랄까 봐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사슴고기 스테이크가 멈추지 않고 나왔다.
물론 북방 유럽답게 흰살 생선 스테이크도 빠지지 않았다.
새하얀 바탕에 황금으로 왕실 문양이 각인된 화려한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그 자체로 데코레이션 끝판왕이 됐다.
국왕의 말에 시종장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아빠. 그거 언니 결혼식 때 사용하려던 와인 아닌가요?”
카리나 옆에 있던 튼튼한 여성은 공주가 맞았다.
공주가 모두 아름다울 거라는 순수한 동심은 처음부터 파괴됐다.
바이킹 여전사처럼 뼈대가 굵고 근육이 발달해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만찬장에서 왕을 편하게 아빠라고 불렀다.
누구 하나 말리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스웨덴 국왕은 그렇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안했다.
미래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에도 방문해 소리를 지르며 자국 선수들을 응원했던 스웨덴의 두목이었다.
“그 정도로 이분들은 귀한 분이시란다.”
“와우!”
공주가 놀라며 큼직하게 뜬 눈으로 날 봤다.
“진짜 크로스컨트리 메달리스트에요?”
“네. 맞습니다.”
“오! 눈에 익다했더니! 그때 그 선수였군!”
왕이 놀랐다.
나를 이제야 알아본 것 같았다.
“영광이에요! 그때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금메달인데!”
든든하게 생긴 공주 목소리가 높아졌다.
노르딕 스키에 열광하는 북유럽 민족들답게 메달을 딴 나를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부족한 실력입니다.”
“무슨 소린가! 진짜 실력이었지!”
“맞아요. 겸손은 어울리지 않아요. 스웨덴 선수들이 그 덕분에 메달 하나 따지 못 했어요……. 내 친구도 출전했는데…….”
“시간 있나?”
왕이 갑자기 시간을 물어왔다.
자연스런 하대였다.
“네?”
“북쪽에 가면 아직 눈이 덜 녹았네. 우리 비올라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엄청 좋아하네. 카리나와 같이 한때는 선수였어.”
뭐야? 지금 바이킹 두목이 자신의 딸을 나에게 넘기려는 거야?
“꺄악! 같이 가요. 겨울 별장에 근사한 경기장이 있어요.”
비올라 공주가 비명을 질렀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시종장.
생각보다 왕실 만찬은 그렇게 격식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폐하, 다니엘 대표는 바쁜 분입니다. 아직 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페어 라르손이 나섰다.
“학생? 허허허……. 난 저 나이 때 뭘 했는지…….”
“폐하는 저와 스톡홀름대학에서…… 미팅하던 시절입니다.”
“페어, 왕비 앞에서는 그런 소리 말게.”
“황공하옵니다.”
유쾌한 식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마냥 행복해할 수만은 없었다.
페어 라르손과 바이킹 두목이 은밀한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도 바쁜 몸이었다.
도도희는 왕실 만찬을 먹으며 행복함을 계속 표했다.
스마트폰이라도 있었다면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웨덴의 역사처럼 와인 맛이 진합니다.”
“와인에 대해 아는가?”
“프랑스와 미국 쪽 와이너리 몇 곳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대단하군!”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은 유럽인들의 고지식한 상식을 바꿔 놓을 필요가 있었다.
스웨덴 와인은 남유럽 와인보다 토양이나 환경이 달라 진한 맛이 났다.
옛 시절에 바이킹들이 마시는 독주처럼 강렬했다.
“이 와인 맛처럼 폐하와 페어 라르손 대표님의 볼부에 대한 애정이 뜨겁기를 바랍니다.”
“…….”
싱긋 웃으며 던진 몇 마디에 갑자기 내려앉은 미묘한 침묵.
농담으로 듣기에는 무겁고 무시하기에는 내용이 좀 특별했다.
스웨덴을 정신적으로 책임지는 국왕에게 있어 볼부는 아픈 손가락이다.
“잠시 물러들 가게.”
국왕의 한마디에 시종장과 시종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화끈하다니 사실이었군.”
유럽인들은 모든 대화를 와인으로 시작했다.
아돌프 국왕은 와인 한 모금을 더 마셨다.
“투자금을 내면 그만큼 투자를 한다고 했나?”
왕이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렇습니다.”
“50억 달러를 투자해도 바로 지급 가능한가?”
“물론입니다.”
대답은 언제나 심플하게.
“50억 달러가 자네 대답을 들으니 용돈 수준으로 들리는군.”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닙니다.”
진실로 무장된 허세는 기본으로 깔았다.
“……놀라워. 그런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 사람을 오랜만에 보는군.”
“볼부를 친구 같은 파트너로 삼고 싶습니다. 그동안 볼부가 보였던 인간 중심의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진심이었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와 달리 인간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동차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투자금 필요 없습니다.”
나도 와인을 마셨다.
“???”
사방에서 의문의 시선들이 쏟아졌다.
도도희만 희미하게 웃었다.
“이익이 왔을 때 의리를 생각하고 위급한 시기에 같이 싸워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투자금은 그런 최소한의 성의 표시로 제안했을 뿐입니다. 전 말뿐인 감사함보다는 행동하는 신의를 더 사랑합니다. 질서와 선의, 정의를 사랑하는 티르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말입니다!”
“!!!”
모두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돈 몇 십억 달러가 성의 표시라는 나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북유럽의 신 티르의 이름까지 언급됐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다 스웨덴 바이킹들의 후손이었기에 신화에 대해 잘 알았다.
그리고…….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바이킹 두목이 만찬장이 떠나가라 웃어재꼈다.
누가 들어도 폐부까지 전달되는 시원한 에너지가 담겼다.
“좋아! 아주 좋아! 새로운 친구를 위해 내 기꺼이 왕실 이름을 담보로 깍쟁이 총리에게 30억 달러를 받아주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짝짝 박수까지 치며 시원하게 허락하는 바이킹 두목.
얼굴에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화끈한 바이킹 후손다웠다.
나와 스타일이 맞았다.
- 티르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인 당신에게 짙은 호감을 표합니다.
- 바이킹과 신의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 자신들의 신을 존중한 당신에게 바이킹 조상들이 아낌없이 카르마 포인트를 선물했습니다.
- 바이킹 두목과 혼인으로 얽힌다면 바이킹 조상 및 후손들과의 친밀도가 매우 높게 형성될 것입니다.
- 신성한 신들의 혼인 동맹에 동의하십니까?
바이킹 선조들의 파격적인 거래 제안이 연속 들려왔다.
슬쩍 공주 얼굴을 다시 한 번 봤다.
그러고 대답은.
- NO!!!
***
“아무 일도 없겠지? 히잉. 그냥 따라갈 걸!”
유세라는 월요일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도희와 둘이 보낸 장태산 대표가 걱정이 됐다.
“도희 그게……. 이번에 큰마음 먹은 것 같은데.”
평소에는 한발 떨어져서 대표를 봤던 두 여인.
이번에 받았던 마법성수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불로장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여성들보다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모든 걸 던질 준비가 됐다.
그리고 도도희도 마찬가지였다.
유세라에게 은밀히 대표를 꼬셔 대박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자고 제안했다.
대부분 여성들은 없는 것도 만들어 다시 찾은 젊음을 구매할 것이다.
“별일 없어야 해! 아무리 도희라도 그러면 안 돼!”
사무실을 깨끗이 정리하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응시하는 유세라가 홀로 중얼거렸다.
몇 번 안겨보지 못했던 대표의 품은 언제나 넓었다.
미친 소리라는 말을 듣겠지만 몇 사람 더 품는다고 그 품이 좁아질 리 없었다.
“날씨 좋네~ 소풍 가고 싶다. 대표님 오시면 야유회 가자고 할까?”
창밖으로 보이는 봉은사와 봉은공원에 녹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변했다.
봄빛이 여인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더해지자 유세라는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자신에게 신이 한꺼번에 복을 몰아준 것 같았다.
처음으로 욕심을 냈다.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해!”
초창기 멤버인 그녀를 장태산 대표가 해고하거나 쫓아낼 리는 없었다.
대표 덕분에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분에 넘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자기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유세라는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다.
삐이이이.
그때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1층 경호팀 내선번호가 떴다.
“네~. 무슨 일인가요?”
[총괄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큰일요? 무슨 일요?”
[지금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세무서요? 왜요?”
[제보가 들어와 세무조사를 나왔다고 합니다!]
“제보요?”
갑작스런 상황에 유세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과거 검찰조사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장태산 대표가 직접 막았다.
하지만 지금은 대표도 없이 혼자 있는 사무실이었다.
“어, 어떻게 해…….”
몹시 당황한 유세라.
“조 변호사님에게 일단…….”
급하게 유세라가 핸드폰을 들었다.
스르르륵.
하지만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렸다.
동시에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는 양복 입은 10여 명의 남자들.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
유세라가 소리쳤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3과에서 나왔습니다. 장태산 대표와 LOR 투자법인 탈세혐의로 조세범칙조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여기 법원에서 발부한 수색영장 있습니다.”
안경을 쓴 바짝 마른 세무 공무원이 수색영장을 내밀었다.
“!!!”
놀란 유세라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장부와 거래 자료, 컴퓨터 모두 압수해!”
“넵!”
와당탕탕.
그리고 시작된 전쟁 같은 세무 공무원들의 물품 압수.
세무 공무원들이 깔끔한 사무실을 거칠게 휘저으며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대표실 문이 안 열립니다!”
“그럼 부숴!”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자초하고 있는지 모른 채 우렁차게 지시를 내리는 조사3과 팀장.
와장창창.
순식간에 유리창이 박살나고 강제로 대표실 문이 열렸다.
“하아아…….”
눈을 질끈 감아 버리는 유세라.
누군지 몰라도 사자 굴을 휘저으며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자를 위해 명복을 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