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7
회귀의 전설
457장. 거래의 조건 (2)
“아빠…….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예요.”
“……알고 있다.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다. 하지만 녀석을 믿을 수 있을까?”
“법적 효력이 있는 약정서를 작성한다고 했어요. 이건…… 반드시 잡아야 해요!”
“하아…….”
집으로 돌아온 페어 라르손은 비서인 딸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장태산은 미끼와 협박을 동시에 던졌다.
어린 녀석이 거래의 참맛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언급한 청산은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당장 투자자를 대표한 그 녀석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볼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다니엘은 투자금 수십억 달러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미국 쪽 투자회사여서 스웨덴은 더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국 법원에 제소하면 더 큰 파장이 몰려올 수 있었다.
“미국 공장만 완성되면 혜택이 엄청나요. 럭셔리 브랜드라고 했으니……. 가격도 저렴하게 책정할 필요가 없어요. 차에 완벽하게 고급 자재들로만 쓸어 담아요!”
카리나의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지금껏 안전 중심으로만 제조해 와 제대로 차에 장착한 럭셔리 제품이 없었다.
“시트는 최고급 나파 가죽으로! 오디오는 뱅 앤 윌킨스! 가니시는 무조건 원목으로! 하아~ 정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요~. 우리의 볼부가 드디어 럭셔리 브랜드가 되다니…… 할아버지가 천국에서 행복해 하실 것 같아요.”
카리나는 부푼 꿈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대표인 페어 라르손은 당면한 문제가 그렇게 좋게만 생각되지 않았다.
스웨덴은 2010년 가을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내각제로 운영되고 있어 총리를 선출하는 문제가 복잡했다.
일당이 독주하지 못해 2006년부터 연립 내각이 성사됐다.
그들 중 힘 있는 자를 섭외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빠 어렵게 생각 마요. 힘들면…… 폐하를 만나요.”
카리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군주의 모든 권한이 박탈된 스웨덴이었지만 의외로 국왕의 입김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라르손 가문은 국왕과 인연 있는 귀족가였다.
“이번에는 힘을 빌려야겠다.”
페어 라르손도 마음을 먹었다.
볼부가 해외에 매각당할 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
한 번쯤 사용해도 되는 국왕 찬스.
페어 라르손이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뚜루루루루루루루.
국왕 비서인 시종장과 연결되는 직통 핸드폰.
- 오랜만입니다. 페어 라르손 백작님.
“시종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 백작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십니까?
“폐하를 뵙고 싶습니다.”
- 언제 말입니까?
“당장 지금이라도 알현하고 싶습니다.”
- 지금요???
시종장이 크게 놀라는 눈치다.
이런 시간에 전화를 넣어 당장 만나기를 청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실례였다.
그것도 약속도 없이 야밤에 국왕과 독대하는 건 군부 쿠데타나 비상 경제 위기에 준하는 상황에서나 가능했다.
“스웨덴의 미래가 걸렸습니다.”
독하게 마음먹은 페어 라르손이 밀어붙였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강한 부탁이었다.
- …….
시종장이 할 말을 잃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탁합니다.”
다시 한 번 간청하는 페어 라르손.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폐하의 의견을 여쭙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통화가 끝났다.
“하아아아아…….”
길게 한숨을 내쉬는 페어 라르손.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패를 소진했다.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어깨가 단단하게 뭉쳤다.
다니엘 장과 만나면서 긴장의 연속이었다.
“저도 같이 갈게요…….”
“그래 줄래?”
“네~.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공주와 친구인 카리나는 국왕이 어릴 적부터 무척 예뻐했다.
그런 카리나도 스웨덴과 볼부를 위해 기꺼이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만난 다니엘이 거짓말 같은 걸 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
‘마법을 알아?’
장태산을 만나러 온 야훼바트는 몹시 당황했다.
지금껏 마법의 기운을 알아챈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사단과 그들과 전쟁 중인 아사신 정도였다.
이스라엘과 야훼를 섬기는 종에게 허락된 특별한 마법이었다.
“신성 마법이군요.”
“!!!”
장태산의 말에 야훼 바트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놀랐다.
특히 신성 마법의 존재는 자신과 가문의 중요 인사들만 아는 극비였다.
차일드 가문에서 그녀가 여자임에도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세상에 알려지면 큰 파란이 일어날 내용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마법.
야훼 바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장태산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과 함께 적아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장태산은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타나 여러 형태의 파장을 만들어 냈다.
경이로운 투자 이익률과 로버트라이언을 통한 비밀스런 행동, 암중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또 다른 주인이 되려는 자로 간주됐다.
만약 차일드 가문과 야훼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특기인 정신 조종 마법을 펼치려 했다.
바보로 만들거나 자살하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장태산이 먼저 마법을 알아봤다.
“멀리서 온 것 같은데 한잔하시겠습니까?”
또로록.
태연하게 투명한 잔에 붉은 포도주를 채우는 장태산.
“부르고뉴 그랑 퀴리 등급의 와인답게 맛이 좋습니다. 품종은 가메. 보졸래 지역 특화 품종으로 경쾌한 산도와 날카로운 가시 꽃 향으로 무장했지만……. 마셔보면 믿을 수 없도록 감미로운 질감과 매혹의 부케 맛이 납니다. 정체 모를 한 밤 손님의 감춰진 마음처럼~.”
장태산이 빙긋 웃었다.
“!!!”
야훼 바트는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향해 매혹의 부케 맛이 난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남자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수집된 정보가 말한 것처럼 바람둥이가 맞았다.
그럼에도 분명 화가 나야하지만 듣기에 싫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야훼 바트는 혼란스러웠다.
“절 아나요?”
야훼 바트는 궁금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 온 자신에 대해 마치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장태산의 모습이 의심스러웠다.
“제가 조용히 초대한 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태산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소피아를 통해 초대했던 당사자임을 아는 것 같았다.
‘무서운 자다.’
야훼 바트는 긴장했다.
“내가 두렵지 않나요?”
“아름다운 여인의 방문을 두려워한다면 남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목소리와 달리 거짓말을 못하는 부드러운 눈빛을 소유한 분이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태산이 와인 잔을 건넸다.
야훼 바트는 잔을 받았다.
은연중 긴장한 탓인지 목이 탔다.
“우리의 인연을 허락한 신들께 감사를 올립니다.”
머리 위를 향해 잔을 드는 장태산.
야훼 바트는 그 모습에 자신만 우습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는 전혀 긴장하지도 않았다.
장난스럽기까지 한 그의 행동에는 악의 같은 것은 없었다.
야훼 바트가 와인을 마셨다.
“……!”
향은 날카로웠지만 장태산 말처럼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감겼다.
적당한 탄닌과 혀끝을 간질이는 묘한 매혹의 맛.
야훼 바트는 기분이 좋아졌다.
장태산이 말한 신들이 안배한 인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이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서도 저렇게 목이 뻣뻣한 남자는 지금껏 없었다.
그는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와인을 음미했다.
사라라라라랑.
투두둑 투두두둣.
열린 창문으로 바람 소리와 얇은 빗소리가 들려왔다.
지중해 바람보다 따뜻했다.
야훼 바트의 묵직하게 닫혀 있던 마음이 나른하게 풀렸다.
“제 이름은 장태산, 애칭으로 다니엘이라 부릅니다.”
와인을 깔끔하게 비운 장태산이 야훼 바트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결국 야훼 바트의 이름을 물어온 것이었다.
야훼의 딸인 그녀는 장태산을 지그시 바라봤다.
지금 장태산이 얼마나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지 그는 정작 몰랐다.
야훼 바트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순간 그는 엄청난 인연자로 선택이 된다.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다.
그저 신실한 야훼의 딸 바트라 불렸던 여인.
‘이것도 운명이라면…….’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야훼 바트.
결정하고 입술을 뗐다.
“제 이름은…….”
그리고 그녀의 붉은 입술이 꽃잎처럼 나풀거렸다.
***
- 야훼가 당신을 직접 인식합니다.
- 강력한 신성 마법 결계가 펼쳐졌습니다.
- 야훼의 성역에 입성했습니다.
방에 그녀가 들어올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알림음이 연속 떴다.
처음에는 마법사인 줄 알았지만 신성 사제였다.
그것도 야훼를 섬기는 신실한 종이 분명했다.
지구에서는 이제 거의 감춰진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여자였다.
야훼 바트!
로버트 라이언이 말했던 그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 직접 찾아왔다.
방문 목적은 몰랐다.
이스라엘에서 스웨덴까지 날아온 그녀는…….
예뻤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도는 풍부한 갈색 머리카락과 속을 알 수 없는 진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키는 작지 않았다.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연보라 슬림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있었다.
유명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손색이 없었다.
사라 요한슨과 친척이라더니 미모도 닮았다.
아니 신비한 분위기는 눈앞의 여인이 더했다.
야훼가 선택한 신녀.
신성 마법이라는 말에 그녀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나름 철저하게 지켜지는 비밀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가볍게 와인을 건넸다.
나를 보며 갈등하는 그녀를 위해 내린 처방전.
조용히 잔을 받아드는 여인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와인 이야기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경호원도 없이 이 밤에 호텔까지 찾아온 그녀의 의중이 짐작되지 않았다.
신 야훼가 같이 동행했다.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연막작전도 펼쳤다.
하급이나 중급신 따위가 아니었다.
신들 세계에서 방귀 좀 뀌는 상위급 신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차일드 가문과 연관이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거지꼴로 만들 수 있는 돈의 주인이었다.
미국 연방은행이 그녀 가문의 지갑이었다.
웃고 있었지만 최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알림음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정체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시간을 끌며 친절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느 정도 신뢰가 갔는지 한층 부드러워지는 그녀.
야훼의 딸은 생각보다 덜 무서웠다.
그래서 통성명을 시도했다.
이름을 알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더 친해지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생각 외로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이름 알려주는 게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해졌다.
“제 이름은…….”
뭔가 결심한 듯 천천히 이름을 밝히는 야훼 바트.
그래 그 이름이…….
“로리아나…… 차일드라고 합니다.”
어렵게 이름을 밝히는 야훼 바트 로리아나.
“로리아나…… 고귀하고 신성한 이름입니다.”
뭔가 듣기만 해도 고귀해 보이는 로리아나라는 이름을 입안에서 되새겼다.
언어학자 반스데일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하나님은 우리의 빛이라는 어원을 품고 있었다.
야훼의 딸다웠다.
로리아나를 바라봤다.
세상에 알려진 차일드 가문의 주인은 인두겁을 쓴 괴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저렇게 부끄러울까?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리며 볼을 붉게 물들이는 그녀.
- 야훼가 당신을…… 찜했습니다.
응? 뭐라고? 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