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4화 (453/1,284)

 # 454

회귀의 전설

454장. 모두가 행복한 인생 (2)

“스웨덴?”

“방금 도착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로?”

“볼부 자동차 인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로버트 라이언과 동행인가요?”

“아닙니다. 여비서와 같이 움직였습니다.”

“…….”

야훼 바트는 지시했던 일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아직도 거세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지중해의 거친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

마음의 준비를 마친 그녀의 표정은 단단해졌다.

“준비하세요.”

“끌고 올까요?”

“아닙니다. 제가 갈 겁니다.”

“바트시여……. 그건 위험합니다.”

“신이 원하는 길입니다.”

“알겠습니다.”

두 번 말이 필요 없었다.

“지금 당장입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야훼 바트라 불렸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과 같았다.

총리를 비롯해 정치권과 군부 모두 다 야훼 바트의 명에 띠라 움직였다.

그녀의 한 마디면 당장 세계적 경제 위기가 불어 닥칠 수 있었다.

그런 야훼 바트가 움직임을 결정했다.

명을 받은 자가 조용히 사라졌다.

홀로 남은 야훼 바트.

“신께서 모든 걸 예비하시니……. 난 그 길을 오로지 믿음으로 갈 뿐이다.”

신께 경배와 찬양을 올리는 야훼 바트.

책상 위에 던져져 있는 낯선 동양인의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뭐지? 저 눈빛!’

도도희는 좋았던 기분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대표와 함께 스웨덴 출장길에 올랐다.

로버트 라이언이 보내준 대형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했다.

비행사와 요리사, 스튜어디스 두 명, 그리고 대표와 도도희 둘이 전부였다.

맛있는 요리와 와인을 마시며 여왕처럼 스웨덴 볼부 본사가 있는 예테보리로 날아왔다.

피곤하면 넓은 침실에 누워 눈을 붙이기도 했다.

호텔처럼 샤워를 하고 곱게 화장을 마쳤다.

화장 흡수력이 장난 아니었다.

장태산 대표가 건넸던 마법성수로 인해 도도희도 몇 년은 젊어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심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곳들 위주로 발진을 했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었다.

공기가 나쁜 한국에 와서 더 심해졌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아토피가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피부까지 탱탱해졌다.

유세라의 가슴 흉터도 사라졌다는 놀라운 효능도 알게 됐다.

대표 옆에만 있으면 평생 늙지 않을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모르는 사람은 무모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도희 역시 결코 장태산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남자보다 장태산 대표는 매력이 넘치고 멋졌다.

다른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독점할 수 없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주변에 미녀들이 너무 많이 널렸다.

지금 눈앞의 북유럽 금발 미녀도 대표에게 눈빛 하트를 날렸다.

동양인 남자는 매력이 없다는 편견이 있지만 장 대표는 달랐다.

“다니엘 장 대표님?”

금발 미녀가 새하얀 치아가 보일 만큼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네. 맞습니다.”

대표에게 다가가려는 걸 도도희가 의도적으로 가로막았다.

도도희보다 10cm 이상 키가 큰 늘씬한 미녀는 거침없이 호감을 드러냈다.

“누구신가요? 전 페어 대표님 비서 카리나라고 합니다.”

“투자 회사 임원이자 다니엘 대표님 수행비서 엔젤라라고 합니다.”

도도희는 사무적으로 인사를 받고 건넸다.

파바밧.

두 여자 사이에서 짧은 불꽃이 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볼부 자동차 대표 페어 라르손이라고 합니다.”

페어가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스웨덴어를 근사하게 구사하는 장태산.

그도 손을 내밀었다.

“오! 스웨덴어를 잘 하시는군요.”

손을 맞잡으며 페어가 놀라움을 표했다.

인구가 많지 않는 스웨덴도 고유어가 있었다.

영어가 대부분 통하기는 했지만 자국의 언어는 그 나라의 상징이었다.

장태산의 스웨덴어에 페어와 카리나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이럴 게 아니라 차로 움직이시죠.”

“감사합니다.”

장태산은 가볍지 않게 상대를 대했다.

인수를 결정한 투자자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 대표부터 모두 날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주식회사는 주주 마음대로 결정됐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은 투자자 대표였다.

“오는 동안 피곤하시지 않았습니까?”

“편히 왔습니다.”

“페어라고 불러주십시오.”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페어의 친밀한 접근을 장태산은 가볍게 거부했다.

적당한 경계가 세워졌다.

장태산은 볼부 자동차가 신형 상품 라인 개발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봉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저벅저벅. 또각또각.

잠시 대화가 사라진 네 사람은 먼지 하나 없는 공항 내를 걸었다.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잖아.’

페어 라르손은 긴장했다.

압도적인 키와 덩치로 동양인을 누르겠다는 포부는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다니엘이라는 자는 날렵한 몸이지만 탄탄함이 슈트 안쪽에서도 느껴졌다.

한 자루 잘 버려진 검 같았다.

잘 못 손댔다가는 단숨에 베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찹니다.”

이제는 스웨덴에서도 아저씨들이나 즐겨 타는 볼부 구형 모델이 주차장에 정차되어 있었다.

나름 대형급이지만 투박한 사각형의 디자인은 금세 질리게 만들었다.

“제가 열겠습니다.”

카리나가 뒷좌석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장태산이 먼저 직접 열고 차 안에 탔다.

“카리나. 운전 잘 부탁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비서인 카리나가 운전을 했다.

뒷좌석에 장태산과 페어가 앉았다.

그리고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며 두 여성이 앞좌석에 앉았다.

부우웅.

묵직하게 움직이는 차.

3월이었지만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스웨덴 도로를 볼부 자동차는 빠르게 나아갔다.

***

“대표님. 카리나라는 여비서 조심해요.”

“왜요?”

“왜긴 왜요! 대표님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으니까 그렇죠.”

“그게 문제가 됩니까? 좋은 거 아닙니까?”

“아우! 우리 대표님……. 바람둥이!”

도도희가 입술을 내밀며 툴툴거렸다.

호텔에 들렀다.

스웨덴에 에테보리에 위치한 4성급 팰튼 호텔 스위트룸을 잡았다.

공항에서 옷가방이 배달되어 도착해 있었다.

가볍고 편한 세미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연한 카키색 정장에 블랙 니트를 안에 바쳐 입었다.

볼부 자동차 대표와 저녁식사가 잡혔다.

대표가 직접 마중 나왔을 만큼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어설픈 협상가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았다.

초장에 길들여야 두 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스웨덴의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깨끗한 공기와 파란 하늘, 고풍스런 건축물과 늘씬한 미남미녀들이 많았다.

거리는 조용했지만 은근히 활기가 느껴졌다.

“으으~ 대표님은 뭘 입어도 모델이라니까…….”

도도희가 옷을 입고 있는 날 보고 고개를 저었다.

“도희 상무도 아름답습니다.”

“카리나보다 키가 작잖아요…….”

“도운중 회장님을 탓하십시오.”

“어릴 적부터 뱉었던 욕 덕분에 우리 아빠 100세까지 살 거예요~.”

언제나 발랄하고 통통 튀는 도도희.

“레이디. 가실까요?”

그녀에게 왼팔을 내밀었다.

“네~ 대표님.”

일반 여성은 소화하기 힘든 바이올렛 투피스 정장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도도희는 봄날의 전령사 같았다.

그녀와 함께 호텔 최상층 식당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호텔 직원들 모두 친절했다.

나에 대한 소식을 들은 듯 조심스러워하는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식당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와우~.”

도도희가 감탄을 터트렸다.

격자무늬 대형 창밖으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강이 보였다.

작은 유람선과 보트, 강 건너 뾰족한 건물의 첨탑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몇 달 후 시작되는 백야의 전초전인 듯 늦은 시간임에도 밖은 생각보다 환했다.

“예약하셨습니까?”

“다니엘 장 대표님입니다.”

도도희가 나섰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서빙하는 웨이터가 살짝 놀라며 친절하게 창이 달린 룸으로 안내했다.

저녁은 내가 대접하기로 했다.

돈도 많은데 망해서 팔려가는 볼부 대표에게 얻어먹기 그랬다.

비즈니스는 본래 이렇게 하는 것.

도도희와 함께 웨이터가 빼주는 의자에 앉았다.

“주문은…….”

“주방장 특선으로 올리라는 지배인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럼 그걸로 주십시오.”

하지만 팰튼 호텔은 내가 주인이었다.

지배인 성의를 봐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 진짜 좋아요. 스톡홀름과 달라요.”

“스웨덴에 와봤습니까?”

“대학교 때 친구들과 유럽 여행 왔었어요~”

“남자 친구랑?”

“피이~ 관심도 없으면서 약 올리면 못 써요!”

도도희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눴다.

가끔 이런 식의 출장도 나쁘지 않았다.

유세라 팀장이 한국을 담당하는 안방마님이라면 도도희 상무는 해외 바이어 접대 임원이었다.

미국 유명 대학교 출신에 월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렸다.

이번 볼부 인수에도 도도희 상무가 깊숙이 관여했다.

“지사 발령 받고 싶으면 말하세요.”

“뭐죠? 지금 여기에 절 짱박아 놓고 대표님 뭘 하시고 싶어서 그러시나~. 세라 언니는 너무 마음이 넓어서 대표님 방어가 안 돼요. 그러니 꿈 깨세요~.”

상큼하게 웃는 도도희.

여우는 여우였다.

똑똑.

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스르륵.

웨이터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는 두 남녀.

볼부 자동차 대표 페어와 비서 카리나였다.

“하하. 제가 늦지 않았습니다.”

페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했다.

“앉으십시오. 카리나 양.”

“감사합니다. 다니엘 대표님.”

활짝 웃는 카리나.

도도희가 질투할 만했다.

완벽한 팔등신 몸매에 가슴까지 풍만한 스웨덴 미녀.

몸매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슴부위가 브이 자로 푹 패인 블랙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같은 색감의 정장 상의를 걸쳤다.

공항에서 봤던 체크무늬 바지 정장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한쪽으로 몰아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금발과 도발적인 파란 눈동자.

안경을 벗으니 사람이 달라보였다.

나를 향해 노골적으로 진한 관심을 드러냈다.

“에휴.”

도도희의 한숨이 들렸다.

도도희가 동양적인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면 카리나는 북유럽 미녀의 정수 같았다.

선수촌에서 만났던 노르웨이 미녀 소피아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진한 쌍꺼풀과 도톰한 입술, 오뚝한 콧날과 부드러운 금발…….

나를 알고 있는 듯한 열망 가득한 눈동자.

“카리나, 절 아십니까?”

“네…… 다니엘. 전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응? 나를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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