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1화 (450/1,284)

 # 451

회귀의 전설

451장. 파멸의 골짜기를 파는 자들 (2)

“티, 팀장님……. 오늘 수익률 보셨습니까?”

“봤다, 봤어…….”

“세 배입니다. 세 배!”

“그래. 세 배 넘게 벌었다. 그리고 죽다 살아났다. 물 타기 했던 거 다 복구했고……. 마누라에게 어제 상 받았다.”

“으흐흐흐. 이게 다 주식의 신 덕분입니다! 온갖 의심과 싸워 신뢰를 지켜낸 그 믿음을 놓지 않고 담대하게 나간 우리들에게 신께서 인생 보너스를 주신 겁니다!!!”

다른 직원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카움 증권의 본사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는 감사팀 팀장 전영국과 팀원 윤정혁은 3월의 따사로운 햇살을 마음껏 즐겼다.

주식의 신을 영접하고 걸었던 지난 시절의 모진 추위.

돌아온 주식의 신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감사팀 직원 신분이라 열람할 수 있었던 투자 패턴.

전 재산을 밀어 넣었고 신용대출까지 받아 물 타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었다.

그야말로 죽음과 파멸의 골짜기를 기면서 헤맸다.

주식의 신이 투자한 대기업 주식들이 가을 낙엽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오직 치고 들어오는 의심을 거두고 일말의 믿음만으로(?) 따랐다.

믿지 않고서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출금 상환일.

윤정혁과 달리 전영국은 애가 딸린 가장이었다.

그동안 주식 시장에서 선배나 동료들이 어떻게 망해 넘어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그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주식의 신을 따랐다.

그러다 선배들처럼 깊은 골짜기로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주식의 신은 신이었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계좌 잔고는 플러스가 됐고 급기야 세 배 수익을 얻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암암리에 감춰온 신용 대출을 마누라에게 들켰다.

집 담보대출까지 들어간 걸 알고 이혼 소리가 나오는 상황까지 됐다.

다행히 수익 계좌를 확인하고 난 뒤에는 입을 닫았다.

물론 친형 명의로 된 차명 계좌였다.

급기야 마누라는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자산이 억 단위를 넘어 10억 대가 되었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장어도 얻어먹고 밤새 뜨겁게 사랑도 받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새 아침.

“저! 앞으로도 믿음 흔들리지 않고 굳게 갈 겁니다!”

팀원 윤정혁은 알지도 못하는 주식의 신을 향한 신실한 신도가 됐다.

“팀장님도 가실 거죠?”

골짜기를 헤맬 때 받았던 스트레스로 몇 년은 늙어버린 듯한 얼굴의 전영국 팀장.

“……X발! 못 먹어도 고다! 나도 신을 버리지 않을 거야!”

“그럼요! 우리는…… 영원한 주식의 신! 광신도입니다!!!”

***

-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 광신도들의 열렬한 신심으로 강력한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광신도? 누구? 나의 신도? 내가 신이야?”

알 수 없는 내용의 알림음이 들렸다.

이놈의 알림은 불친절의 끝판왕이었다.

모르는 사실도 일단 내질러주고 땡이었다.

고개를 저으며 밖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세상이야…….”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봄이 번져가는 풍경은 상큼한 미인의 미소를 연상하게 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불야성의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맞았다.

출근을 서두르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삶은 모두 존경 받아 마땅했다.

가만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도 저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세상에 섞여 살며 가족, 친구들을 위해 할 일이 많았다.

서둘러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어제 저녁 고연지, 코하네와 함께 12시까지 달렸다.

고 회장님 댁에서 전화가 왔지만 나와 함께 있다는 소리에 고연지는 금방 통금이 연장됐다.

코하네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연지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다.

좋은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더 맛있었다.

노래방까지 들러 한 곡 뽑아줬다.

코하네가 노래를 듣더니 덥석 나에게 안겨왔다.

태산 짱이라고 하트 뿅뿅을 날렸다.

그렇게 두 여인과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찾아온 아침.

유세라 팀장이 내려주는 모닝커피 생각에 다른 때보다 일찍 사무실에 나왔다.

스르르릇.

사무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유세라 팀장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도 오피스룩의 종결자로 당당히 등장한 그녀.

베이지색 슬림 벨트 골지 롱 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낌없이 드러난 유세라 팀장의 몸매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좋은 아침…….”

타다다닥.

인사를 건네는 와중에 갑자기 그녀가 느닷없이 나에게 달려왔다.

덥석!

“???”

아침부터 왜! 

순식간에 의문이 생겼다.

얼떨결에 아침부터 그녀를 품에 안고 말았다.

이십 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줄 수 있는 포근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익숙한 그녀의 체취는 덤이었다.

“흐으으윽…….”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유세라 팀장.

진심으로 그녀에게 잘 못한 게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린 처지라 본의 아니게 의문에 빠졌다.

스르륵.

그러나 내 손은 지 멋대로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하며 어루만지고 있었다.

눈물짓는 여인을 달래는 데 이만한 약손이(?) 없다는 걸 이번 생에서 확실히 배웠다.

“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뭐가 고맙지?

그녀 월급이 파격적으로 오른 건 맞지만 그게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고마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유 팀장님…….”

흡!

헐? 이건 또 뭐야!!!

유 팀장님이라 부르는 순간 안겨 있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진하게 입을 맞춰왔다.

생각지도 못한 과감한 기습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

상큼한 체리 입술맛이 후각을 자극했다.

눈이 절로 동그랗게 떠졌다.

유세라 팀장이 이렇게 과감한 성격이 아닌데…….

“저 버리시면 안 돼요…….”

기습 키스를 던지고 다시 품에 안기는 유 팀장.

아침 막장 드라마 같은 분위기로 흐르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커피 드릴게요.”

다다다닥.

그녀도 이 사태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커피를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쌩 탕비실로 사라지는 유세라 팀장.

“뭐…… 뭐지?”

모닝커피 한 잔 마시러 일찍 나왔다가 예기치 않게 체리맛 입술을 선물 받았다.

진하게 느껴지는 여운.

유세라 팀장이 사라진 탕비실 쪽으로 계속 눈길이 갔다.

***

쿵! 쿵! 쿵!

유세라는 심장이 미친 듯 뛰는 걸 느꼈다.

어린 대표가 좋았지만 이렇게 감정 표현하는 건 처음이었다.

진짜 순수하게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전 직장인 로펌에서 받았던 사회에 대한 불신을 장태산 대표 덕분에 날렸다.

친구들 모두 부러워하는 꿈의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어린 대표는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따뜻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지만 절대 부하 직원들을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마워요. 진심으로…….”

유세라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과 라면을 끓여 먹다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

동생이 실수로 뜨거운 라면을 쏟아 버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모와 몸매를 가졌지만 여태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투피스 비키니는 평생 입을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흉터가 모두 사라졌다.

대표가 선물이라며 건네준 마법 성수.

효과가 진짜 마법과 같았다.

목욕할 때 마법 성수를 부어 몸을 담갔다.

대표가 어렵게 구한 거라 말했었기에 유세라는 믿고 기꺼이 사용했다.

그리고…….

“진짜 마법 성수였어!”

나른하게 근육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쯤 깜빡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상쾌한 기분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때 믿기지 않는 마법이 펼쳐졌다.

굳었던 몸이 전부 풀리고 피부가 고등학교 시절처럼 탄력적으로 변했다.

믿을 수 없어 거울 앞에 선 순간 유세라는 비명을 터트렸다.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던 가슴 흉터가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동시에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가던 잔주름도 자취를 감췄다.

단숨에 몇 년의 세월을 훌쩍 거스른 것 같은 피부 상태가 됐다.

뿐만 아니었다.

지병 같았던 변비도 해결됐다.

모든 몸의 기능이 10대 수준으로 돌아간 듯 상쾌했다.

활력이 넘치고 두뇌회전도 빨라졌다.

흉터가 사라진 가슴은 유세라가 봐도 너무 매력적으로 변했다.

여자의 일생을 바꿔놓은 신의 선물 같았다.

이런 귀한 선물을 허락한 대표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둘렀고 그가 거짓말처럼 사무실에 있었다.

용기를 내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보기만 했지만 과감하게 행동했다.

주변에 본인보다 더 미모가 뛰어난 여성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가슴 흉터 때문에 반쯤 결혼은 포기하고 살았었다.

도도희 상무와 농담처럼 나눴던 회사에 뼈를 묻을 거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확고함을 다시 되새겼다.

“버리지만 않는다면…… 평생 곁에 있을 거야…….”

입술에 남아 있는 일방적으로 훔친 따뜻함의 여운.

유세라는 얼굴을 붉히며 다른 날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내렸다.

“꺄아아악! 대표님! 사랑해요!!!”

그때 들려오는 도도희 상무의 하이톤 목소리.

“왜, 왜 그래요!”

“나버리지 마요! 버리면 이 회사와 함께 자폭해 버릴 거예요!”

방방 뛰는 도도희 상무와 당황하는 어린 대표의 목소리가 하모니처럼 들렸다.

안 봐도 뻔했다.

도도희 상무도 마법성수 효과에 놀라 대표 품에 덥석 안겼을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 젊은 피부란 존재감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

“선물 대성공~.”

성수 두 병 인심 쓴 효과가 대단했다.

도도희 상무와 유세라 팀장은 나에게 평생 충성 맹세를 남발했다.

아침부터 두 미녀가 품에 번갈아 안겼다.

내가 봐도 두 미녀의 피부는 나이에 비해 꽤 어리게 변했다.

성수의 효과는 백혈병도 치유할 정도였다.

신전 사제들이 귀하게 바친 공물이었지만 두 여인에게 쓴 게 아깝지 않았다.

미녀들의 키스와 포옹으로 시작해 흐뭇한 하루를 출발했다.

누가 봐도 난 나쁜 남자가 맞다.

회사에서는 두 미녀가 공식적인 오피스 와이프처럼 나를 캐어했다.

세계 환경과 평화를 위해 아프리카로 출장 간 김한별을 위해서는 따로 한 병 남겨 놨다.

그녀의 반응도 두 여성과 다르지 않을 게 뻔했다.

“오늘 커피는 해결됐네.”

유세라 팀장이 고급스러운 텀블러에 담아준 커피를 들고 학교에 왔다.

3학년 수업은 모두 법학 과목으로 채웠다.

학교 졸업장을 위해서는 바쁘게 전공과목을 이수해야만 했다.

어차피 교수들과 면접 때 내기를 걸어 무난한 패스와 점수는 보장 됐다.

최종 합격은 아니지만 한국대 법학과 최연소로 2차까지 동차에 패스한 자는 나밖에 없었다.

드르륵.

3학년에 개설된 전공과목인 형법 각론 1.

구 법학관 3층 강의실 문을 열었다.

전공과목답게 50명 정도가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곳에 일찍 온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앉았다.

대부분이 처음 본 이들이었다.

남자 동기들 중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군대에 간 애들이 꽤 됐다.

여학생들 중에서도 이때쯤 대부분 휴학하고 신림동에 들어가는 게 관례였다.

눈에 익은 몇몇 동기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복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고시에 올인 하는 인생들답게 칙칙한 체취가 강의실을 꽉 채웠다.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흐흐~ 나 어제 선봤다.”

“그래? 어떤 집안이야? 얼굴은 예뻐?”

“얼굴을 손댔는지 봐줄만 하더라. 집안도 분당 땅부자라 빵빵하고~.”

“오오! 땡잡았는데~.”

“넌 안 봤냐? 마담뚜들한테서 연락 안 왔어?”

“왔지~.”

“선 볼 거냐?”

“당연하지. 오늘의 영광을 위해 그 동안 얼마나 개고생 했는데……. 크크크.”

“여자 친구 어떻게 할 거야?”

“요즘 정리 중이다. 4년 봤으면 됐지. 평생 그 얼굴 볼 자신도 없고…… 결혼해도 열쇠 한 개 받기도 힘들 것 같아.”

“성격 착하고 얼굴도 괜찮았는데…….”

“새끼야. 얼굴 뜯어 먹고 살 일 있냐? 그런 건 돈 벌면 자연스럽게 밖에서 해결하는 거야~”

“크크크. 그래. 니 말이 맞다. 전 남자 친구 중에 고시 패스한 인간이 있다는 것도 인생 훈장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좋은 곳 갈래?”

“어디?”

“마담들에게 선봤다고 용돈 받았다. 형아가 좋은 곳 뚫어 놨다. 애들이…… 그냥 죽여~.”

뭐지 이 개쓰레기들의 언사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얼굴색과 옷이 남다른 두 남학생.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정도 돼보였다.

작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놈들로 보였다.

연수원에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수업 들으며 졸업장을 획득하려는 자들 같았다.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과 탐욕의 떼.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 태산아~.”

그때 아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선배.”

“너도 이 수업 들어?”

“아마도~.”

“피이, 아마도는 무슨~.”

예린 선배가 옆 자리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형법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어~ 이예린~ 우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냐?”

“이리 와. 선배가 합격 비결 얘기해 줄게~.”

느끼한 목소리로 옆자리를 가리키는 두 쓰레기들.

나는 나쁜 남자였지만 저놈들은 나쁜 쓰레기였다.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넌 뭔데 그런 눈으로 꼬나봐? 너 몇 학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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