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7화 (446/1,284)

 # 447

회귀의 전설

447장. 남자는 일시불

‘거지같은 게 재수 없어!’

찬병원 원장 막내딸인 신지은은 동기인 장주희를 저주하듯 노려봤다.

유년 시절부터 내로라하는 강남 사모님들 사이에서 미모와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강남에서도 신지은 같은 조건을 다 갖춘 며느릿감은 찾아보기 드물었다.

개인 병원이지만 찬병원은 대한민국 부유층들이 주로 찾는 명품 병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신지은의 자존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신지은은 대학교 생활에 있어서도 여태까지의 삶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형제자매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만 의대에 진학했다.

사업하는 오빠와 미술을 전공한 언니는 병원 운영에 관심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평가가치 1조 원이 넘는 병원은 자신의 몫이 될 것이라 콧대가 높았다.

신지은은 한국대 의대생들 틈에서도 자신만한 여성은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녀는 미모와 실력, 재력까지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케이스였다.

그런데 장주희라는 촌뜨기가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남자 동기나 선후배들 사이에 단연 자신이 인기가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들의 경외 섞인 눈은 오직 장주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대 의대 역사상 가장 빼어난 미녀의 등장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일찍 얼굴에 손을 댄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모를 획득한 신지은은 견딜 수 없었다.

장주희는 자신보다 키도 살짝 더 컸고 몸매도 더 잘 빠졌다.

보조개가 패인 귀여운 첫인상과 볼수록 아름다운 얼굴은 누가 봐도 칭찬할 만했다.

O.T 때 남자 학우들의 관심이 온통 장주희에게만 쏠렸다.

신지은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다.

넘치는 돈으로 그들의 관심을 끌어보려 했지만 장주희 역시 스포츠카를 몰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과 왕따를 시키기 위해 대차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장주희는 성격이 활달하고 강단이 있어 쉽게 휘둘리지 않았다.

잡초처럼 막 자란 촌것의 특징인 듯했다.

그런데 오늘도 이렇게 운명의 장난처럼 엮였다.

자신이 입학 선물로 받기 위해 찜했던 에르포스 신상 가방을 더러운 손으로 만지려 했다.

화가 너무 나 명품관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누구? 아는 애야?”

엄마 진미혜가 두 사람 관계를 물었다.

“내가 말했잖아. 그 거지 같은 애.”

“아~ 지방에서 왔다는 분수를 모른다는 그 근본 없는 애?”

한껏 우아를 떨면서 진미혜는 장주희를 오만한 시선으로 흘겨봤다.

“분수 모르는 근본 없는 애? 와아……. 뚝배기 끓어오르네. 아줌마 저 아세요?”

성격 괄괄한 장주희가 참지 못하고 성격을 드러냈다.

“뚝배기? 못 배운 티는 어쩔 수 없구나. 쯧.”

진미혜가 무시하며 혀를 찼다.

‘손을 댄 것 같진 않고. 낯바닥이 곱상하게 생겼네? 재수 없게!’

진미혜도 딸 신지은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딸 신지은이 엄마를 그대로 빼닮았다.

딸보다 곱상하게 생긴 장주희를 은근히 무시하며 밟았다.

싹이 자라기 전 초장에 눌러줘야 딸 학교생활이 편할 거라는 걸 알았다.

강남에서만큼은 이 방법이 제대로 먹혔다.

돈과 명성을 갖춘 찬병원을 따라올 만한 집안은 얼마 없었다.

고위층 사모들 대부분을 알고 지내는 관계였기에 크게 실수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지방 출신이라면 두말해야 입만 아팠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어지간한 지역 국회의원 정도는 날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네요.”

장주아가 야무진 표정으로 나섰다.

동생 일에 부아가 나 발끈했다.

“언니 그냥 있어. 오늘 완전 열 받았어!”

장주희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O.T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왔던 신지은이었다.

아는 사람들과 함께 몰려와 장주희에게 몇 번이나 면전에서 무안을 줬다.

오늘 여기서 기필코 명품 가방 하나를 구입하려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했다.

자꾸 거지라는 말로 신경을 긁어왔기에 화가 났다.

다행히 오빠가 사용 한도를 정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알아서 구입하라는 뜻이었다.

장주희는 다른 곳에서 아끼고 마음먹은 대로 명품점에 들렀다.

거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명품 가방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재수 없게 신지은과 그 엄마를 딱 만났다.

엄마와 신지은 둘 다 싸가지 밥 말아 먹었다.

대놓고 분수도 모르는 근본 없는 애라고 욕을 했다.

부모님까지 포괄적으로 포함된 욕의 의미였다.

“어디서 근본도 없는 것들이 나대! 한국대 의대 입학했으면 의사가 될 텐데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강남 찬병원 원장 사모야! 인턴도 못하고 시골에 내려가 개업의나 할래? 니 인생 여기서 끝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대한민국 상위 병원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강했다.

찬병원 병원장이라면 인턴 과정도 밟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요?”

장주희는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무식한 강남 사모를 쳐다봤다.

말로만 듣고 드라마에서나 봤던 돈 많은 집안 안주인의 갑질을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태어나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래서요??? 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몰라? 아빠가 뭐하는 사람이니?”

“회장요.”

“……회장?”

회장이라는 말에 진미혜가 살짝 당황했다.

한국에서 회장 타이틀은 아무나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 거짓말이야. 쟤 장주시에 살아. 동기들 말로는 과수원 한다고 했어!”

싸가지 신지은이 장주희 정보를 어느 정도 캔 모양이었다.

“뭐야? 과수원? 그래놓고 무슨 회장이야!”

“영농회장인데요~.”

“여, 영농회장?”

진미혜는 하도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었다.

촌구석 마을 영농회장도 회장이라고 말하는 장주희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저게 지금 날 엿 먹여! 너어~~!’

“모르시죠~? 우리 아빠, 면에서는 알아주는 분인데~.”

장주희가 사람 놀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약 올리는 동네 남자 놈들 주먹으로 패고 다녔던 장본인이었다.

“야! 너 나랑 말장난해? 어디 촌구석에서 근본도 없이 살던 게 까불어! 너 죽고 싶어!!! 매니저! 매니저 어딨어!”

진미혜의 카랑카랑 목소리가 명품 매장 안에 울려 퍼졌다.

“네, 넵!”

매장 매니저가 후다닥 달려왔다.

본래부터 까칠한 진미혜였다.

하지만 강남 사모님들을 몰고 다녀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었다.

VIP의 심사를 건드리면 1년 매출이 구멍 날 수 있었다.

“여기 매장 관리 왜 이렇게 하는 거야? 저런 거지같은 것들을 들여보내고. 제대로 처리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여성 매니저가 90도를 한참 넘게 허리를 숙였다.

명품관 직원들 모두 숨을 죽였다.

“찬병원 사모 아냐?”

“무슨 일 있어?”

“사모 눈 뒤집어진 것 같아.”

“오늘 큰일 났네. 쯧쯧.”

쇼핑 하는 몇몇 여성 손님들이 수군거렸다.

강남에서 어깨나 세우고 다니는 사모들이 대부분이라 금세 찬병원 사모를 알아봤다.

상류층에서도 암암리에 소문이 자자한 찬병원 사모 진미혜.

“저 거지들 내 눈앞에서 치워.”

“네?”

“뭐해! 당장 치우라고!!!”

진미혜의 목소리가 더 거세지며 쩌렁쩌렁 에반스 백화점 2층을 뒤흔들었다.

“…….”

사색이 된 에르포스 매장 매니저.

이런 식으로 손님을 내보낸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VIP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매장에서…….”

매니저 기혜정이 눈 질끈 감고 말을 입을 열었다.

바로 그때.

“누구 맘대로 나가라고 합니까……. 누구 맘대로!!!”

거칠고 포악한 사자의 포효가 매장을 뒤흔들었다.

***

“오빠아아아!!!”

주희가 오빠를 부르며 품에 달려들었다.

분을 참고 있었던 듯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덥석 안겨오는 녀석을 일단 꽉 안아줬다.

다 컸다 생각했지만 아직 병아리 같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어 뒤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성경호 회장과의 얘기는 잘 마무리됐다.

술 한 잔 마시고 가라는 청을 겸손하게 거절했다.

내일 주식 양도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약조를 맺고 나오는 길이었다.

더 이상 사자 우리에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쇼핑 중인 동생들을 찾아 백화점으로 내려왔다.

그때 씨큐리티 경호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 강남 찬병원 사모와 딸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들어가 제지하겠다는 걸 일단 말렸다.

직접 눈으로 내 눈으로 보고 마땅한 징벌을 내리고 싶었다.

주변에서 계속해서 벌어지는 갑질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하나를 없애면 또 하나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마치 독버섯처럼 옮겨 다니며 전이되듯 터져 나왔다.

타인을 짓눌러야만 성취욕을 느끼는 변태 성향의 인간이 세상에 너무 많았다.

“뭐야? 어린 게 벌써 스폰까지 받는 거야? 어쩐지~ 스포츠카도 이 잘난 오빠가 사줬니? 장주희 너 완전 싸구려구나~. 호호호호~.”

처음 보는 싸구려 풀풀 풍기는 계집애가 막내 주희에게 흉한 말을 퍼부었다.

“성괴 넌 뭐냐?”

“!!!”

성괴라는 한 마디에 화들짝 놀라는 계집애.

내 눈에는 오래전에 손 댄 듯한 흐릿한 수술 자국이 모두 보였다.

“오빠……. 우리 과 동기야.”

주희가 떨면서 정보를 전해왔다.

당찬 것 같지만 속은 아직 여렸다.

“성괴? 이 호빠 선수 같은 게 미쳤나! 지금 누구 딸보고 성괴래!!!”

보톡스를 잔뜩 맞고 얼굴에 칼을 댄 중년 아줌마가 길길이 날뛰었다.

“성괴를 성괴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 그리고 아줌마 보톡스 적당히 쳐 맞아. 그러다 아줌마 죽으면 안 썩어. 좀비 돼~.”

피식 웃음까지 흘리며 염장을 질렀다.

성경호 회장을 상대하고 나온 터라 이런 하수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아아악! 너 뭐야! 이 X새끼야! 너 죽고 싶어!!!”

품위 없이 지랄발광을 하는 아줌마.

“수준 하고는~.”

별것도 아닌 게 목소리만 컸다.

“너, 너!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어!! 콩밥 먹게 할 거야!!!”

주희 동기라는 애도 만만치 않았다.

“고소해. 나야 모욕죄 정도지만 그쪽 모녀는…… 두 사람 다 주희에 대한 명예훼손죄와 협박죄 공범으로 묶어 처넣을 생각이니까.”

“뭐라고? 니가 뭔데! 네까짓 게 뭔데!!!”

발악을 넘어 발작을 하는 미친X.

저런 종류의 인간이 나중에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였다.

손에 메스 쥐어 주면 사람 여럿 죽일 성질머리였다.

“쌍둥이 친오빠. 동시에 한국대 법대 재학생이다.”

“…….”

한국대 법대라는 말에 여자애가 놀란 눈을 한 채 입을 다물었다.

법대는 의대와 위상이 달랐다.

“매니저! 쫓아내! 호텔 보안직원들 뭐해? 저 쌍것들 쫓아내라고!”

보톡스 아줌마가 거품을 물며 지랄염병을 떨었다.

“…….”

매니저는 내가 등장한 순간부터 행동을 멈췄다.

여기서 잘못 처신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힘없는 약자의 서러움이 그녀의 모습을 통해 드러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너희들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저 거지 같은 것들 하고 나하고 같아? 내가 일 년에 팔아주는 물건이 수억이야! 그런데 내 말이 말 같지가 않아? 야! 여기 대표 나오라고 그래!”

찬병원 아줌마 눈은 이미 뒤집어졌다.

몇 년 뒤 조근영과 주순자 똥구멍 빨아주고 승승장구하는 찬병원.

근본부터가 썩어 있었다.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천박한 생각에 정신은 이미 회생불가능한 상태다.

저 정도면 중증 정신병이었다.

자신들 뜻대로 하지 못하면 화병에 쓰러져 죽는 갑질병.

그 병에 잘 듣는 특효약을 난 알고 있었다.

“매니저님.”

얼이 반쯤 빠진 매니저를 불렀다.

삼십 대 중반의 그녀의 안색은 이미 허옇게 떴고 핼쑥했다.

그녀는 오늘 이 일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다.

“네……. 고객님.”

힘없이 대답하는 매니저.

“고객? 매니저! 너 미쳤어? 저 딴 게 무슨 고객이야! 보면 몰라! 저 새끼 여자들 등치고 사는 호빠 제비 새끼야!”

나오는 대로 입에 올리며 지껄이는 아줌마.

“거지? 우리 어머니 들으면 많이 섭섭하시겠네. 중용 대학교와 중용 대학교 병원 이사장이신데…… 아들이 거지 소리나 듣고 다니다니……. 그런데 찬병원이 대학병원보다 크나?”

“!!!”

중용 대학교 이사장이라는 말에 아줌마 멈칫하더니 입이 굳게 닫혔다.

“주희야~”

“네……. 오빠.”

“세상 살면서 쫄지 마. 허접한 개인 병원 말고 오빠가 큰 종합병원 졸업 선물로 사 줄게~.”

“헤에에…….”

주희의 머리를 쓱쓱 만지자 녀석이 금세 눈물 대신 미소를 보였다.

이 순간 세상 누구보다 오빠가 든든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기 얼마입니까?”

“네?”

이제는 사건 같지도 않은 사건을 마무리할 시간.

이런 잡다한 일로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다.

매니저에게 가격을 물었다.

여동생들 입학 선물 제대로 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명품은 오래 사용해도 명품이었다.

“100억이면 되려나?”

스윽 품에서 블랙 카드를 꺼냈다.

“허엇!”

“브, 블랙…….”

입구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과 매장 직원들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블랙 카드를 이런 평범한 곳에서 보는 거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몇 장 없는 카드였다.

“창고에 있는 것까지 다 포장해서 배달해 주십시오.”

“…….”

입이 떡 벌어져 말도 못하는 매장 매니저.

아마 살다가 이런 반전 있는 경험은 또 처음일 것이다.

“오빠…….”

여동생들도 생각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

방금 전까지 소란하던 매장 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만 바라봤다.

놀란 채 몸을 떠는 두 모녀.

블랙 카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혼이 반쯤 가출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몹시 좋았다.

“매니저님 알죠?”

“네?”

“남자는 일시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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