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9화 (438/1,284)

 # 439

회귀의 전설

439장. 믿음과 배신 (3)

“이건…….”

“슈퍼 커패시터라는 차세대 에너지 저장 장치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고서가 말하는 바가 그건가? 그 녀석이 대용량의 전기를 빠르게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다. 그 말이지?”

“그렇습니다.”

“한국 TS 그룹 산하 회사라고?”

“TS 큐셀이라는 사업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개발했다고?”

“확실한 정보입니다. 산방 그룹에서 스카우트하려던 연구원이 제공한 정보입니다.”

중국 국영 기업 산방에서 태양광 사업을 추진했다.

노동집약적 기업의 한계를 절감하고 당 차원에서 지원했다.

필요한 기술들은 은밀하게 산업 스파이를 이용하거나 인재들을 빼왔다.

자금과 미모의 여성들을 이용해 빼낼 수 있는 것들을 다 빼냈다.

효과는 대단했다.

세계 금융 위기에 한국 대기업 산하 알짜 기업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우수한 인재들이 거리로 내쫓겼다.

버려진 그들을 포섭하는 건 쉬웠다.

타락한 한국 권력가들과 결탁해 기업체 수십 곳을 조용히 삼켰다.

단숨에 10년 이상 벌어져 있던 기술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헤드 헌팅 대상이 가져온 기가 막힌 정보.

천지회 정보를 총괄하는 리장창은 연구 보고서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배터리 산업은 한국 기업들이 강자였다.

세계적 특허를 독점했다.

넘볼 수가 없었다.

중국 시장을 미끼로 한국 기업들을 끌어 들였다.

미래 먹거리 산업임을 알기에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합자 회사 형태로 공장을 운영하다 노하우 및 기술을 빼돌려 삼키려는 수작이었다.

몇 년쯤은 돈을 퍼주며 손해를 보는 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대계는 최소 10년 주기로 움직였다.

그런데 모든 계획을 뒤집을 만한 엄청난 물건이 나타났다.

리튬은 명함도 못 내밀 황제의 만찬 같았다.

“정확도는? 특허 내용은?”

“……물질에 대한 정보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TS 그룹은 그자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어. 장태산 그놈이 투자한 회사잖아.”

“그자가 뭔가를 계획하는 것 같습니다.”

“쇠탈의 후예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놈도 목적은 우리처럼…… 한국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미친 듯 머리를 쓰고 있을 것이다.”

“죽이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기다려. 아직 방법은 많아.”

“어떻게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정보를 건넨 놈을 단단히 옭아매. 빠져나갈 수 없도록 노예로 만들어. 그리고 기다려야지. 어차피 탐욕스러운 놈들은 돈이라면 환장하잖아.”

“넵!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북경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그분께서는 올 가을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오르실 겁니다.”

“상해방 애들은?”

“아직 자신들의 세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중국몽을 실현하기 전에 내부의 분열로 일을 망칠 수 있어.”

“계획을 짜두고 있습니다.”

“비리 수집은?”

“그것 또한 단주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 내가 너무 급했다. 지금부터는 조금 더 신중하게 일들을 처리한다.”

“명을 받듭니다.”

“이 시간부로 그 놈에 대한 공격과 접근은 정보부 쪽 움직임을 제외하고 모두 금지한다.”

“알겠습니다.”

“기다린다……. 놈의 목을 움켜쥘 그때를…….”

과거와 달리 여유 있는 냉정함을 회복한 리장창.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 덫을 놓는 사냥꾼처럼 교활함이 더 예리해지고 있었다.

***

“이걸 넘겨도 괜찮겠습니까?”

“네~ 어차피 알려질 내용들입니다.”

“워낙 파격적이라…….”

“신선한 맛이 있어야지 썩은 냄새나면 안 달려듭니다.”

“네?”

“차일드 가문이 만만한 사람들도 아니고 선수들이잖습니까. 적당한 크기의 살점을 떼어줘야 우리가 안전합니다.”

“……인정합니다. 보스.”

아무리 월가의 떠오르는 전설이라 불리는 로버트라지만 차일드 가문 앞에서는 그냥 어린애 수준이었다.

큰 사업을 위해서는 이쪽 업계 큰 형님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마력석으로 배터리 사업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돈에 눈 돌아간 정치권과 권력이 없는 죄도 만들어 난도질 할 게 뻔했다.

국가의 공적 기관을 이용해 계열사들을 탈탈 털어댈 것이다.

또 대기업들이 시장을 빼앗으려는 것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은 확실했다.

TS 그룹 힘으로 버티기에는 레벨 차이가 너무 컸다.

이럴 때는 눈치 봐서 적당하게 상납하고 시작하는 게 서로 편했다.

어차피 마력석 공급자는 지구에서 나만이 유일했다.

기술적 특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마력석은 지구에서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판명이 났다.

여차하면 공급을 끊으면 그만이었다.

“사라 요한슨과 대화가 잘 됐습니다. 지금쯤이면 그녀 아버지와 사업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 쪽 큰 우산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핵우산처럼 미국과 지분을 나눈다면 누구도 터치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차일드 가문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라 요한슨이 적격이었다.

그녀는 나를 신뢰하고 전적으로 믿었다.

공적인 관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그녀는 마음을 드러냈다.

서로 윈윈 하는 거래였다.

누가 봐도 신 배터리 사업은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였다.

차일드 가문이 서로 치고 받고 있는 와중에 이런 사업은 방계들의 구미를 자극할 것이다.

“그럼 미국에 공장을 신설할 생각이십니까?”

로버트의 눈치는 역시 빨랐다.

사라 요한슨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다음 상황을 예측했다.

똑똑한 사람답게 대화하기가 편했다.

“러스트 밸트 쪽으로 잡아주십시오.”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이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인들에게 과거 제조업의 영광을 안겨주었던 중심지였다.

미국 동북부 5대호 지역에 포진한 동부 뉴욕,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인디애나, 미시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의 주들이었다.

지금의 미국을 탄생시킨 공장 밸트로 불렸던 자존심의 시발점이었다.

한때는 미국 절반의 고용 인구와 총생산량을 차지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비용과 산업 침체로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실업률은 넘치고 범죄율은 치솟았다.

인구는 빠르게 감소했으며 자동차와 기계 산업은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마디로 공장 세우기 가장 알맞은 장소가 됐다.

강성 노조들도 권리만 주장하다 얻어 터졌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던 주장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힘이 적당하게 빠졌다.

앞으로 당분간은 그들이 부르짖었던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다.

2013년 디트로이트 시정부가 파산하며 절정을 찍는다.

하지만 정부의 도움으로 자동차산업이 다시 살아나고 산학 협력이 이뤄져 신산업 분야가 성장하는 계기를 맞는다.

그 전에 러스트 밸트를 차지해야 했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를 점령하는 데 이곳만큼 중요한 곳이 없었다.

앞으로 미국 권력자들을 움켜쥐기 위해서는 그들의 핵심에 둥지를 트는 게 정답이었다.

“땅값과 인건비가 싸잖아요. 각 주에서 세금 면제 혜택도 내걸었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20년 동안 세금을 면제하는 주도 나왔습니다. 노조들도 장기 단체 협약을 맺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예전만 못합니다.”

강성노조도 잘나가는 기업이 유지될 때나 그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망해가는 회사에 일자리를 보존하라고 투쟁해 봐야 답이 없다.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위치가 좋고 싼 매물이 많이 나올 겁니다. 차근차근 현명한 투자자로서 매입해 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로버트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지금껏 내가 실패한 투자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중국에 자본 투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위기를 극복하고자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엄청나게 풀고 있습니다. 적절하게 달러를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중국은 GDP가 5조 5000억 달러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입니다. 투자처로 좋습니다.”

“……솔직히 두렵기까지 합니다.”

“중국의 경제 발전도 두렵지만 그들이 소유한 저렴한 사상을 더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종처럼 여기는 게 그들의 습성입니다.”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직원들 중에서도 관리자급은 절대 중국인을 채용하지 마십시오. 정보가 새나갈 수 있습니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사람이 죄는 아니겠지만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인권이나 인류애는 뒷전입니다. 오직 권력과 물질을 탐하는 괴물일 뿐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로버트에게 중국에 대한 진실을 조금 알려줬다.

로버트도 그런 습성을 월가에서 만났던 중국인들과의 교류에서 어느 정도 경험했을 것이다.

“유럽은 어떻습니까?”

“보스께서 예견하신 대로 그리스, 포르투칼,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 등에서 계속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과도한 재정부채로 인해 재정정책 여지가 상실되어 신규 국채발행이 거부당하고 차환발행이 어려워지는 부채의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그리스가 곧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예정이라 합니다.”

“그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스를 비롯해 아일랜드, 포르투칼, 스페인 등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겁니다.”

미국 금융 위기 전에 풍부한 금융 유동성으로 자산버블이 형성되자 정부를 비롯해 국민들이 부채로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과도한 복지지출이 정부의 발목을 잡았고 국민들은 부채 상환 압박에 시달렸다.

집값이 폭락하자 은행은 부실화 됐고 유로화 통일로 환율정책도 무용지물이 됐다.

산업경쟁력은 곤두박질쳤으며 실업률이 상승하자 국가 경제 시스템이 망가졌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남유럽 국가들에 고위험 대출을 해주다 위기를 맞는다.

유로화 통합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재정은 독립적이지만 통화량은 조절할 수 없는 딜레마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는 고금리국채로 연명하게 되는 이치다.

한 마디로 수출경쟁력은 개뿔도 없으면서 사치와 소비를 즐기다 망했다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황새라면 나머지는 뱁새였다.

특히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를 분식회계로 처리했다.

그 여파가 그대로 국가를 강타했다.

유럽계 은행들도 넘쳐나는 버블을 미국 주택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고 쪽박을 찬다.

개판의 연속이었다.

“투자 방향은 그대로입니까?”

“안 망합니다. 고금리 채권으로 장사하기 좋은 시절입니다. 유럽 연합을 포기할 수 없는 독일과 프랑스 같은 국가가 유럽중앙은행을 통해 막아줄 겁니다. 알고도 먹 못이면 어리석은 거죠. 우리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잖아요~.”

“맞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도박판에 들어왔다면 파산할 각오는 하고 투자해야죠.”

뭔가 안다는 듯 씨익 로버트가 웃었다.

점점 사악한 자본가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버트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 가는 인간이었다.

“친구 하나 승진시켰으면 합니다.”

“누굽니까?

“CIA 근무하는 루크라는 친구입니다. 캐나다에서 처음 봤는데 일 처리가 깔끔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아사신을 처리했던 휴게소에서 루크를 봤다.

나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대놓고 호감을 표했다.

어느 정도 나에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음이 확실했다.

그의 눈에서 승진에 대한 강한 욕망을 읽었다.

그런 인재를 가까운 곳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CIA는 전 세계 어떤 정보조직보다 몇 끗발 위였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핸드폰이 울렸다.

한국이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보스. 접니다.

한진웅 대표의 전화였다.

“무슨 일입니까?”

- 놈이 계획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요?”

- 중국 쪽 해드 헌팅 업체와 접촉해 자료를 넘겼습니다.

모두 다 계획했던 바였다.

TS 큐셀 연구실에는 눈에 띄지 않게 설치된 카메라가 몇 대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전화와 메일 등은 전부 해킹되어 수시로 보고가 됐다.

블라드미르가 넘긴 해킹 기술의 작품이었다.

연구원 노경록의 돌발 행위는 진작 감지 된 바였다.

“처리하세요.”

기다렸던 만큼 목소리가 차갑게 나갔다.

- 알겠습니다.

그런 일로 내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 싫었다.

놈이 배신할 것을 미리 알고 촘촘한 계획을 짰다.

중국이 몸이 달아야 더 큰 사건을 만들 수 있었다.

미끼 역할이 충분히 해 준 배신자.

되돌려 받게 될 것은…… 믿음을 저버린 대가로 얻게 될 뼈저린 후회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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