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6화 (435/1,284)

 # 436

회귀의 전설

436장. 그 영주의 사랑법

블라투카라는 이름을 가진 마수는 몹시 흥분했다.

50년을 넘게 수명을 이어오면서 하급 마수들을 수없이 잡아먹으며 마력을 키워왔다.

본래 강하지 못한 채 세상에 난 블라투카는 잔머리를 이용해 성장을 거듭했다.

지금은 많이 강해졌고 어느 마수보다 음험했다.

블라투카는 배가 고파오면서 피 냄새를 맡았고 냄새를 쫓아온 끝에 오크 시체더미를 뒤졌다.

마력 냄새가 나는 가장 큰 오크 시체를 골라 맛있게 뜯어먹었다.

마력석은 찾을 수 없었지만 몸 안에 남아 있는 마력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블라투카는 서서히 영역을 넓혀 이곳까지 찾아왔다.

근래 산맥 안쪽에는 자신보다 강한 놈들이 나타난 상황이라 안전하게 지낼 곳이 필요했다.

최대한 힘을 비축해 두어야 큰 마수가 될 수가 있었다.

죽은 오크를 한참 뜯어먹고 있을 때 진짜 맛있는 먹잇감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블라투카는 숨을 죽였다.

살기를 감추고 목표물을 노려봤다.

침샘을 자극하는 달콤한 마력 냄새가 진동했다.

인간 마법사였다.

성장기에 있을 때 인간집단과 몇 번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블라투카는 인간 마법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마력을 무기에 담는 인간들보다 취급하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인간 마법사는 마력만 떨어지면 세상 그 어떤 인간보다 잡아먹기 쉬웠다.

특히 마력이 풍부한 심장을 통째로 씹어 먹으면 마수들도 성장할 수 있었다.

마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간이 바로 인간 마법사였다.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긴 채 인간 마법사를 기다렸다.

어떤 목적이 있는 듯 지상에 내리자마자 오크 사체더미를 살피던 인간 마법사.

기회를 포착하고 단박에 튀어나와 공격했다.

아니다 다를까 마법사가 마법을 펼쳤다.

강력한 보호막이 공격을 막았다.

마력으로 구성된 보호막을 단단한 앞발로 두들겼다.

실력은 출중한 것 같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인간 마법사임이 분명했다.

살기를 감추지 않고 뿌려대자 금세 공포에 휩싸였다.

보호막이 단단한 앞발의 충격에 파괴되려 하자 마법을 난사했다.

인간과의 전투에 익숙한 블라투카는 가볍게 피했다.

마법사의 동작이 그 다음을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커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흥분하면 인간이나 마수들이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다.

오래 살아온 세월만큼 블라투카는 지식을 확장시켜 왔다.

마법을 몇 번 피하는 동안 인간 마법사가 급속도로 지쳤다.

그 틈을 노려 다시 인간 마법사의 목을 노렸다.

단숨에 숨을 끊으면 마력 가득한 피와 심장을 신선한 상태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 때!

쇄애애애애애애애앳!

느닷없이 공간을 가르며 다가오는 예민한 소음이 들렸다.

턱이 빠질 만큼 입을 한껏 벌린 상태였다.

소음을 동반한 무엇인가가 목 언저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인간의 목을 무는 대신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블라투카는 빠른 판단을 내렸다.

날아오는 정체 모를 물체에 마력이 상당했다.

안전이 우선이었다.

급히 마법사 사냥을 멈추고 오른발로 왼발을 쳐 방향을 비틀었다.

쉬익!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블라투카 코앞을 스치며 지나간 마력 덩어리가 뒤쪽 숲을 강타하며 폭발했다.

카르르르르르!

황급히 중심을 잡으며 착지한 후 모습을 보인 적을 노려봤다.

“뭘 봐! 비겁한 싼마이 같은 새끼가!”

분노한 인간 남자가 뭐라고 쏘아붙이며 노려봤다.

마력 넘치는 창을 들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으며 겁도 없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

크라라라!

놈이 펄쩍 뛰어올랐다 다시 착지하며 신경질적으로 울부짖었다.

처음 보는 마수였다.

모든 사물을 집어삼킬 듯한 어둠처럼 온통 새카만 피부를 가졌다.

생긴 모습은 퓨마를 닮았다.

다리는 여섯 개.

이빨은 거짓말 조금 보태 50센티미터 정도 돼 보였고 덩치는 황소만 했다.

눈알은 어둠 속에서도 새빨갛고 예리하게 빛났다.

마력 화살을 순식간에 피했을 만큼 민첩하고 상황판단과 움직임이 빨랐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내공을 가득 담은 창을 놈에게 던졌다.

아린과의 사이에 거리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쇄애애애애앳.

화살보다 더 빠르고 묵직하게 놈을 향해 날아가는 창.

마수가 발바닥으로 창을 후려쳤다.

무협 소설 속 고수 같았다.

카아아아아아앙!

“!!!”

내공이 담긴 창이 날아갔다.

최소 중급 이상의 마수가 분명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놈들과 포스가 달랐다.

“베, 베커!”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아린이 나의 이름을 불러왔다.

예상했던 대로 그녀가 맞았다.

나를 찾아 아린은 이 깊은 산속까지 쫓아온 것이다.

나와 마음이 같았다.

아린이 만약 나와 입장이 바뀌어 있었다면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아린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녀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것이다.

아린은 이곳 이 세계에서 누구보다 나를 아꼈다.

“시간을 벌어볼 테니 마나를 되찾아!”

“네…….”

놀랐을 그녀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오픈 된 채로 나를 따라 이동한 아공간에서 도끼를 꺼내 집어 들었다.

“헛!”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놀란 아린.

그녀 앞에서 아공간을 감출 수 없었다.

어차피 한 번은 밝히고 가야 할 일이었고 지금이 제격인 시점이었다.

어느 누구보다 아린만큼은 믿음이 갔다.

1년 가까이 그녀를 곁에 두고 겪어 왔다.

나를 향한 그녀의 모든 행위들이 진심이라는 걸 이미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계인인 것까지는 밝히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받을 충격과 공포가 아공간 소유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파아아앗.

도끼를 힘주어 쥐었다.

레벨이 오르고 마력이 강해지면서 묵직한 도끼가 식칼처럼 가벼웠다.

크르르르르르르…….

새빨간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더 예리하게 빛났다.

내 공격력을 평가하는 듯했다.

오크보다 머리가 뛰어나고 강하다고 했던 마수.

마계에 거주하는 마물이 뿌린 씨앗들은 인간 세상에서 강자로 군림했다.

놈을 노려봤다.

스윽.

왼손으로 열려 있는 아공간에서 미끼를 꺼냈다.

파앗! 

오크 대전사의 몸뚱이에서 회수해 놓은 하급 마력석이 빛을 뿜었다.

크르르 크르르르르.

놈의 빨간 눈동자가 금세 욕망으로 물들었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전형적인 눈빛과 흡사했다.

“배고프지? 그깟 오크 시체로 되겠어? 마력 엑기스 여기 있는데~.”

마력석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마수의 붉은 두 눈이 마력석을 따라 움직였다.

탐욕스러운 욕망의 허점이 놈의 눈에서 보였다.

7서클에 오르고 내공도 만만치 않았지만 정면 맞짱은 위험했다.

7서클 마법사 아린도 코너에 몰아넣고 가지고 논 놈이다.

자신했던 일격인 창과 화살을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미끼로 유인해 방심하도록 유도해야만 했다.

그리고!

“깜둥아! 물어!”

마력석을 놈이 있는 곳으로 힘차게 던졌다.

“!!!”

눈앞으로 던져진 마력석에 놀란 마수.

웬 떡이냐는 눈빛으로 놈이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쩍 벌렸다.

마수라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발현된 것이다.

“홀드!”

나의 외침에 흑표범을 닮은 마수가 움찔거렸다.

마법이 놈을 묶었다.

순간의 빈틈이면 충분했다.

“흙저씨 붙잡아!”

정령을 향해 내려진 명령.

콰드드득.

정령계 문을 열고 순식간에 나타난 대지의 정령이 놈의 여섯 개의 발을 움켜잡았다.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선 자리에서 발과 몸이 묶이자 거칠게 저항하며 울음을 토하는 놈.

쩌적 쩌저저적.

강한 저항에 흙저씨가 묶고 있던 땅이 들썩였다.

홀드 마법과 정령의 힘에도 거칠게 반항하는 마수.

그만큼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아주 짧았다.

“탓!”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끼를 양손으로 쥐고 대지를 박찼다.

온몸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도끼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라라라아아아아아아!

놈이 위험을 감지하고 포효를 터트렸다.

반항하는 만큼 무식하게 벌어지는 주둥이.

붙들린 땅에서 뽑혀 나오는 놈의 발 하나.

거침없이 공간을 가르는 도끼.

모든 순간이 한 곳으로 몰리는 찰나였다.

콰드드득.

도끼가 놈의 대가리 정중앙에 정확히 박혔다.

문제는 얼마나 단단한지 반쯤 박히다 더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대가리에 꽂힌 도끼에 고통스러워 놈이 울부짖었다.

도끼를 박은 채 자루를 쥐고 있는 나를 물려고 놈의 주동이가 코앞에서 한껏 벌려졌다.

썩은 악취와 함께 독한 가스가 코를 찌르고 진득한 침이 더러운 이빨 사이로 흘렀다.

콰득콰득.

놈이 거칠게 머리를 휘저으며 도끼를 잡고 있는 내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불과 10센티미터 정도의 틈.

주루룩.

순간 발이 뒤로 미끄러졌다.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놈은 강했다.

도끼를 놓치는 순간 놈의 이빨에 아작이 날 게 확실했다.

“으아아아아아아!”

내공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신들의 힘을 덤으로 얻고 난 뒤로 오늘처럼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없었다.

마수 하나가 생각보다 벅찼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쩌억.

도끼가 처음보다 좀 더 놈의 마빡에 박혀 들어갔다.

쿠라라라라라라라라.

놈이 고통에 지랄발광을 했다.

이빨의 공격뿐만 아니라 뽑힌 앞다리로 나를 후려쳐 왔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

“홀드!!!”

그때 등 뒤에서 낭랑한 마법 영창어가 터졌다.

놈의 앞발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주루룩 침을 흘리고 새빨간 눈동자가 공포에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 틈에 조금 더 파고드는 도끼.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마지막 힘을 끌어냈다.

그리고…….

콰지지직.

그제야 놈의 마빡이 도끼날에 시원하게 쪼개져 나갔다.

쩌어어어엉.

놈의 몸뚱이를 타고 흐르던 강력한 마력이 도끼날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거대한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도 잠시.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과 죽음의 공포에 치켜뜬 마수의 눈깔에서는 천천히 생명의 기운이 사라져 갔다.

쿠우우웅.

생명이 빠진 마수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하아아…….”

크게 터져 나오는 한숨.

정말 오랜만에 오줌 지릴 뻔한 쫄깃한 한판승이었다.

“베커!”

뒤쪽에서 아린이 달려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와락 품에 안기는 아린.

조금 전 냉정하게 마법을 영창하던 그녀는 어디로 가고 품에 안겨든 마법사.

“흐으으윽.”

느닷없는 마수 출현에 놀란 그녀가 이제야 나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휘이이잉.

밤바람에 아린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그사이 더 깊어진 하늘의 별빛은 더 반짝였다.

사락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만져 주었다.

“아린~”

품에 안겨 진정을 찾아가는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살며시 고개를 드는 아린.

천상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파괴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아린이 나를 바라봤다.

별빛보다 더 영롱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푸른 눈동자.

“집 밖은 다 위험해~”

부드럽고 다정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눈을 반짝이며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훅하고 코끝을 자극하는 그녀의 향기가 더 진하게 맡아졌다.

아직도 미세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입술을 나의 입술로 덮어갔다.

아린도 조용히 두 눈을 내려감았다.

이 동네 영주의 뜨거운 사랑법에 그녀도 안식을 찾으며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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