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
회귀의 전설
434장. 영화 제목은
“……뭘 바라는 거지?”
겨울바람이 기승인 지중해.
이곳에 위치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야파의 최고층 건물의 최상층.
오늘따라 유난히 커다란 보름달이 바다를 환하게 밝혔다.
연한 금빛이 도는 갈색 머리칼의 미녀가 창 밖을 바라봤다.
밝은 연갈색 눈동자가 신비롭게 반짝였다.
야훼의 종으로 간택된 야훼 바트의 운명을 타고난 여인.
세상의 암중 지배자로 불리는 차일드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였다.
그녀는 곤혹스러움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장태산이라는 한국 남자에게 접근하라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친구로 다가가기에는 그가 너무 바빴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이곳저곳을 옮겨다녔다.
한국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미인계를 이용해 포섭하고자 해도 한국에 쓸 만한 조직원이 없었다.
특히 그는 경계심도 강했고 주변 경비도 삼엄했다.
접촉점을 찾기 위해 조직이 다방면으로 움직였다.
마침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장태산이 한국 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자연스럽게 올림픽을 이용하기 위해 조직에서 키워왔던 미녀 선수를 보냈다.
피가 뜨거워 들뜨기 쉬운 빈틈을 노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와의 접촉이 성사됐다.
하지만 조직의 바람과 달리 장태산은 이미 조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연결고리로 내세웠던 선수 소피아를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차일드 가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는 구체적인 요구였다.
“바보는 아닌 것 같은데…… 세상 두려운 게 없는 자군.”
야훼 바트라 불리는 여인은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무지한 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차일드 가의 무서움을 아는 자는 감히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다.
불문율이었다.
차일드라는 이름을 지식 있는 자들 모두 알고 있지만 누구 하나 대놓고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암중 작업에 대해 선동하거나 폭로하지 못했다.
외부와 사사로운 사건에 연루되어도 누구 하나 함부로 할 수 없는 가문이 바로 차일드였다.
요즘 들어 방계 쪽에서 반기를 들었지만 그 또한 가문의 일이었다.
그런 가문의 후계자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이 만남을 청해왔다.
한마디로 건방졌다.
가문 사람들로부터 손을 보자는 소리가 나왔다.
야훼 바트의 한 마디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장태산뿐만 아니라 그의 국가인 대한민국도 6.25 전쟁 당시의 폐허로 만드는 게 가능했다.
없는 죄를 만들고 세계 곳곳이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는 일들이 차일드 가문의 작품이었다.
가문이 쥐고 있는 특기였다.
새로이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도 야훼 바트의 허락을 받아 권좌를 차지했다.
미국 행정부도 연방준비은행을 소유한 차일드 가문의 눈치를 봤다.
“궁금하기도 해. 어떤 자인지…….”
야훼 바트의 어릴 적 친구이자 먼 친척인 사라와 뜨거운 관계에 있었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도도하고 자존심이 남달랐던 사라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빼앗아 간 동양인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또 로버트 라이언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거의 확실했다.
“흐음…… 봄이 좋으려나?”
야훼 바트는 만남 스케줄을 체크했다.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각국 첩보 기관에서도 야훼 바트에 대한 정보는 모조리 비밀에 붙여졌다.
알려고 하거나 아는 체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었다.
촤아아아아 촤아아아앗.
봄을 기다리는 야훼 바트.
겨울의 거친 바람을 타고 지중해 바다가 거칠게 출렁였다.
***
Simple is Best!
단순함이 때로는 최상이라는 말을 가끔 격하게 공감한다.
“매직 미사일!!!”
명료하게 외쳐지는 마법 영창.
파바바밧.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십 개의 마나로 이뤄진 화살들.
“카르르…….”
“쿠에에에???”
마주하던 오크 전사들이 녹슨 무기를 들고 의문을 표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본능으로 알아챘다.
인간처럼 직립 보행을 하지만 그 외에는 본능에만 충실해 머릿속에 잡아먹고 죽이고 싸고밖에 없는 이종족.
어른 팔뚝만 한 매직 미사일의 등장에 순간 얼어붙었다.
무식하고 난폭한 오크도 본 것은 있어서 마법에는 심장이 쫄깃한 것 같다.
돌격해 오다가 일제히 멈추더니 주춤거렸다.
“왜 쫄았어? 방금 전처럼 아주 죽어라 달려오시지~.”
오크어까지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충분히 지금 상태가 짐작 가능했다.
짐작했던 대로 산에서 오크들과 조우했다.
눈이 뒤덮인 영주성에서 보이는 뒷산은 다우링 중앙 산맥과 연결 됐다.
성에 찾아온 음유시인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산맥, 돌아올 수 없는 눈물의 산맥이라고 불렸다.
크로얀 제국 시절에는 자유로이 통과가 가능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막혔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던 절대 권력이 사라지고 나타난 문명 쇠퇴기.
로마가 멸망하고 맞이했던 유럽 암흑기와 많이 닮았다.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고 난 뒤 지금 이곳 대륙은 그야말로 난리법석이 됐다.
귀족들은 왕이나 고위 귀족이 되기 위해 사방에서 끼리끼리 뭉치거나 전쟁을 해댔다.
눈앞의 오크들도 생존하기 위해 영역을 넓히며 인간들을 수시로 죽여 식량으로 삼았다.
오크들에게 인간들은 맛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흩어지는 순간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잡아먹기 딱 좋은 사냥감.
그런데 오늘만큼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산맥 쪽에 위치한 버려진 요새를 찾았다.
광산 마을 요새라 불렸던 덱턴.
버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끼가 뒤덮고 수목이 많이 자라 있었다.
한때 백작령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와서 보니 오크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약 300여 마리.
먹을 게 없으면 나무 뿌리도 캐먹는다는 놈들이 요새를 차지하고 마을을 형성했다.
모두 떠돌이였던 듯 따로 무리를 이루는 암컷이나 가족이 없었다.
척 봐도 대다수 오크 전사들이었다.
인간의 침입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듯 경비병도 따로 세우고 있지 않았다.
때가 되면 더 몰려든 주변 오크들까지 합세해 영지로 쳐들어오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영지의 병사들을 투입하면 사상자가 날 게 뻔해 핑계를 대고 혼자 움직였다.
그리고 전적으로 영주인 내가 나설 때이기도 했다.
궁금해 하는 자들에게는 이곳에서 엘프들과 드워프를 만나 거래를 한다고 뻥을 좀 쳐놨다.
지구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더 이상 영주성에 불쑥불쑥 뽑아 놓을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많았다.
자칫 마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영지민들은 나를 전적으로 믿지만 신전이나 이방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마차를 요새와 가까운 돌탑 경비 초소에 넣어 두고 왔다.
그리고 가벼운 몸으로 찾아온 덱턴이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에 조건이 완벽했다.
어차피 봄이 되면 수복할 생각이었던 요새였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인간의 침략을 전혀 대비하지 않은 놈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개운하고 홀가분한 상태였다.
지구에서의 계획했던 일들은 생각대로 마무리가 잘됐다.
메달을 따고 안전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올림픽 폐막식까지 제대로 즐겼다.
소피아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노르딕 복합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염을 보였다.
대신 내 요구 조건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고 떠났다.
유나와도 더 편해져 선수들 사이에서 오빠 동생처럼 지냈다.
뜬금없이 아사다 마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던 유나.
그 질문 끝에 묘한 미소를 지어 보여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치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큰 문제없이 올림픽을 치르고 국내로 돌아왔다.
메달을 따면서 군 문제도 무난하게 해결됐다.
군사 훈련은 여름 방학 때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올림픽 결과에 있어 나의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조영준을 비롯해 피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유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동메달을 딴 나의 이야기는 저 바닥에 파묻혔다.
막상 나를 궁금해 했던 몇몇도 ‘공부 좀 한 놈이 스키 좀 타네’ 정도로 평가하는 정도였다.
올림픽에서 동메달 따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일반 국민은 체감하지 못했다.
차라리 무관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잠시 이계로 넘어왔다.
영지에도 제대로 겨울이 찾아왔다.
메달을 따기 위해 집중하느라 바빴던 만큼 이곳 시간도 한창 겨울이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따뜻함이 충족된 영지는 큰 걱정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평화 속에서도 경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가끔 정찰병들이 떠돌이 오크 전사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뱃속이 비면 눈깔 뒤집어지는 종족들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됐다.
가볍게 오크 떼를 한 판 처리하고 난 후 방문한 요새.
혼자였지만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아공간에서 화살을 뽑아 슬렁슬렁 망을 보던 놈부터 요란법석하게 죽였다.
생각지 못한 적의 출현을 알아챈 오크전사들이 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놈들에게 화살비를 내렸다.
수십 마리가 무방비 상태로 나자빠졌다.
그 광경에 동료 오크들이 광분했다.
내친 김에 성질 더러운 오크들을 유인해 냈다.
앞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요새였기에 더러운 오크 피로 범벅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뒤가 절벽인 곳으로 오크들을 끌고 왔다.
동료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눈이 돌아간 오크 전사들.
나를 코너에 몰아넣었다고 착각하고 이까지 드러내며 더럽게 웃었다.
참 인상 한 번 제대로 더러웠다.
“케르르르르.”
“쿠르르르르르르 쿠쿠쿠.”
흉악하게 생긴 흉터와 근육을 움직이며 건들건들 다가오는 오크들.
이제는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먹고 이 한 번 안 닦은 누렇게 변하고 썩어 들어가는 이빨 모양이 제멋대로였다.
날카롭게 입술을 비집고 나온 송곳니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침이 연신 흘러내렸다.
낭떠러지 코앞에 서 있는 나를 소풍 도시락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오크들.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여유까지 보였다.
때를 맞춰 마법을 꺼냈다.
매직 미사일이 우윳빛 광채를 발하며 람보르기니 몸매처럼 매끄럽게 잘 빠져보였다.
“아공간~”
아공간에서 도끼도 뽑아들었다.
오크 썰 때는 이만한 무기가 없었다.
장주시의 잘 나가는 30년 수타 짜장면의 맛 집 비결이 손맛인 것처럼 나도 그랬다.
“…….”
순간 오크들이 당황했다.
인간 마법사가 아주 무섭다는 걸 놈들도 대가리가 있으니 알 것이다.
“어유. 아가들 많이 쫄았어요? 걱정 마요. 도끼질 잘하는 이 몸이 최대한 깔끔하고 매끄럽게 절단 내 줄게요~.”
부드러운 말투와 눈빛으로 오크들을 달래듯 다가갔다.
이계에서 오크를 상대로 살육을 벌이는 일은 정당했다.
그리고 수많은 오크를 죽여 넘어뜨려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핸드폰, 동영상 기록 실시간 검색 없는 세상이다.
“오! 거기 뒤에 대전사! 안전벨트 꼭 메고 그 자리에 있어라. 금방 니 차례다!”
보너스도 있었다.
오크 전사들을 이끌고 있는 마력석을 품고 사는 돈 되는 오크 대전사가 보였다.
“쿠라라라라라라라라!”
나의 말투에 감을 잡고 포효하는 오크 대전사.
“케루루! 케라라라라!”
“아쿠라라라라라!”
오크들이 지랄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닥치고 돌진!
“푸하하하하하하하!”
등 뒤쪽에 깎아지른 절벽을 두고 미친 듯이 시원하게 웃었다.
“퐈이이어!”
쇄애애애애애앳.
명령에 따라 하늘을 가르는 매직 미사일.
나에게는 영어처럼 해석됐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다 룬어로 구성된 영창어였다.
퍼버버버버버버벙.
선두로 달려오던 오크들의 머리통과 몸통을 박살내버리는 무시무시한 7서클 마법사표 매직 미사일.
화끈하게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화룡아! 불 질러라!”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크들 뒤쪽에서부터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한 정령의 불꽃.
매직 미사일을 뚫고 용감하게 창을 찌르며 다가오는 오크가 보였다.
오른손이 풀 스윙으로 날아갔다.
콰드드드득.
사선으로 베어지는 오크의 거대한 몸뚱이.
쓰러지는 오크에게서 창을 뺏었다.
쇄애앳.
그대로 다음 타자로 따라붙은 오크의 주둥이를 향해 찔러 넣었다.
퍼어억!
주둥이를 꿰뚫고 뒤통수로 삐죽 튀어 나온 녹슨 창끝에서 흘러나오는 오크의 노란빛 뇌수.
차가운 날씨가 뜨거운 김을 풍기는 뇌수를 금방 식혔다.
마치 막 만들어 놓은 두부처럼 보였다.
역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마법과 정령만으로 모조리 정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몬스터와의 전투가 짜릿한 흥분을 안겨왔다.
인간 내면에 잠자던 야성의 본능이 활성화되는 것 같았다.
쩌어억!
도끼로 투구를 쓰고 다가오는 오크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혼자 영화 제대로 찍고 있었다.
영화 제목은 <300>.
“쿠아아아아아아아아!”
동료들의 피 냄새에 취한 오크들이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놈들을 바라보며 나도 목청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미칠 것 같은 흥분과 짜릿한 손맛.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풀기에 이만한 놀이가 없었다.
이계에서만 허락된 정당한 백정놀이였다.
- 칭호가 ‘피맛골 망나니’로 변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