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9화 (428/1,284)

 # 429

회귀의 전설

429장. 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 (1)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뭔가 있는데…….”

CIA 팀장 루크는 떠나는 헬기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밀 채널을 통해 기사단이 테러분자들을 처리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휴게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두 정리가 됐다.

의심 가는 자들은 없었다.

테러 훈련이라는 말을 대부분 납득하지 못했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선수들은 버스에 나눠 타고 서둘러 휴게소를 떠났다.

이틀 뒤부터 시작되는 경기가 그들에게는 더 중요했다.

경상 환자들은 가볍게 치료를 받았다.

급박했던 분위기와 달리 뒤처리는 조촐한 사건으로 끝났다.

루크는 쓴 입맛을 다셨다.

뭔가 드러나지 않은 게 더 있었지만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상부에서도 입 닫으라는 명이 내려왔다.

사건의 전후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건 한복판에 있었던 모두가 기억을 상실한 채 잠을 잤다고만 했다.

CIA 특수팀에서 맡아야 할 사건이 분명했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었던 루크에게 이번 일은 벅찼다.

그에 반해 팀원 잭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이것저것 적었다.

특수팀 출신답게 상부의 지시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잭슨 우리도 이제 철수를…….”

“팀장님! 저기!”

그때 따라왔던 잭슨이 한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시간이 흘러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특수부대도 떠나고 경찰들만 몇몇 남아 뒷수습을 하던 곳에 한 남자가 보였다.

안개가 사리진 달밤에 산책이라도 한 듯 여유로웠다.

“다니엘 장!”

루크도 깜짝 놀랐다.

다니엘이라 불린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휴게소로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경찰관이 다가가 신원을 확인했다.

“한국 노르딕 스키 국가 대표 태산 장이라고 합니다.”

“버스 안 타셨습니까?”

“저기 개인 자가용을 타고 왔습니다.”

“여권과 운전면허증, 선수 증명 서류를 보여주십시오.”

예민해져 있던 경찰이 까칠하게 나왔다.

누가 봐도 수상한 등장이었다.

“팀장님…….”

“알았어.”

루크가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이분. 내가 압니다.”

“네?”

경찰관이 당황했다.

CIA 직원이 나섰다.

“신원검증 안 해도 압니다. 이름은 태산 장. 국적은 한국. 현재 스키 선수 맞습니다.”

루크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물러갔다.

“절 아십니까?”

“그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니엘 장 대표님. CIA 팀장 루크라고 합니다.”

활짝 웃으며 손을 내미는 루크.

‘흐흐흐. 이게 웬 보너스야!’

직접 만날 기회를 노렸던 승진의 열쇠.

“감사합니다. 루크.”

다니엘이라는 슈퍼 인사가 루크의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

“으윽…….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픈지…….”

조영준이 쑥쑥거리는 허리를 잡고 인상을 썼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난 잘 알고 있다.

“가장 먼저 뛰던데요?”

“네? 뭘요?”

뭐긴 뭐야.

날 잡으려고 선두에 섰던 좀비 무리들 중에 한 분이었다.

조영준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 저에게 불만 많았죠?”

“제가요?”

“그런 것 같은데…….”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감정적으로 표출할 정도는 아닙니다.”

“와아! 내 기억에는 잘 해준 것밖에 없는 데 뭐죠? 치킨에 맥주에~.”

“그래서 그 정돕니다. 태산 씨 선수촌에서는 남자들 적입니다. 유나 양하고 친하잖아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영준 씨도 여친 있잖아요.”

“그건 그거고 유나는 유나 양이죠.”

“헐…….”

조영준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사정 다 아는 선수촌 사람들이 이럴진대 모르는 국민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나는 그냥 동생이에요.”

“다들 그렇게 시작하죠.”

“아오! 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요!”

“그럼 더 나쁜 놈이네요.”

“…….”

오늘따라 더 까칠한 조영준이다.

아사신에 의해 오염되었다 정신 차린 줄도 모르는 그가 어이없었다.

“연습 안 해요?”

“했어요.”

“언제요?”

“러시아에서요.”

“러시아요? 언제요?”

“틈틈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잘하는 것 같군요.”

“그날입니까?”

“뭐요?”

“여자들 한 달에 한 번 걸리는 그날.”

“……변태.”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조영준이 이렇게 말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뜻도 됐다.

“어디가 아픕니까?”

“……왜요?”

“물리치료 좀 해주려고 그럽니다.”

“…….”

“뭐죠? 그 의심스런 눈초리는?”

“세상이 하도 험해서.”

“아! 정말 됐고요! 빨리 누워 봐요!”

조영준이 휘슬러에 지정된 선수촌 호텔 개인 침대에 누었다.

아사신의 습격 때문인지 경호는 삼엄했다.

“자격증 없지 않습니까?”

“유나도 저에게 받았습니다.”

“……소문내도 됩니까?”

“내일 경기 뛰기 싫죠? 그냥 한국 가고 싶으면 말만 하세요.”

우두둑 손을 풀었다.

“…….”

새벽에 도착한 선수들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다들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잤다.

그런다고 돌아올 컨디션이 아니었다.

점심 먹고 운동 대신 호텔방으로 돌아온 조영준은 심각했다.

그에 반해 북유럽 선수들은 그사이 컨디션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바이킹을 조상으로 둔 후손들다웠다.

“아파도 참아요.”

“어설프게 만지면 근육 탈 납니다.”

“한 번 받고 나서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따라온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엉망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의 결투였다.

손을 비비며 조영준 등판으로 다가갔다.

새벽에 그렇게 날뛰더니 등판에 멍도 들었다.

조영준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내 인생 프로젝트를 위해 앞에 세울 방패로 필요했다.

힐 마법을 조종해서 손에 담았다.

손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천천히 조영준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으윽……. 으으으……. 흐윽……. 하윽…….”

처음에는 신음을 흘리던 조영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흘러나왔다.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을 장면과 효과음이었다.

조영준 몸에 남는 마력 좀 뿌려줬다.

내일 15km가 아니라 40km를 뛰어도 쌩쌩할 것이리라.

그렇게 약 20분쯤 마사지를 해주었다.

“뭐, 뭐죠?”

나른한 데다 개운 플러스 황홀함까지 가득한 표정으로 조영준이 물었다.

“메달 따면 한턱 쏴요.”

멍한 표정을 짓는 조영준.

자신의 몸이니 잘 알 것이다.

지금 그 어떤 때보다 최상의 몸 상태로 회복됐다는 것을.

***

“수면 가스였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납득이 안 가.”

소피아는 호텔 로비를 걸으며 새벽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풀고자 노력했다.

상부에 연락했지만 그곳에서도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

“단체 세뇌도 아니고……. 도대체 뭐야.”

여러 훈련을 받았던 소피아였지만 짐작을 못했다.

“CIA가 투입될 정도라면 심각한 건데 아무 일도 없었어.”

혼자 중얼거리는 소피아.

내일 펼쳐지는 단거리가 아닌 노르딕 복합에 출전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어차피 조직에서 제공한 특수한 훈련과 비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몸 상태가 좋았다.

금메달은 염려 없었다.

노르웨이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됐다.

“이거 마셔요.”

“???”

갑자기 스윽 자신 앞에 나타난 커피를 든 손 하나.

굵고 거친 남자 손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니엘…….”

“무슨 문제 있습니까? 혼자 중얼거리던데…….”

어느새 다가온 다니엘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소피아는 활짝 웃었다.

조직에서 최대한 가깝게 지내라는 명을 받은 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호기심이 갔다.

미국 사교계의 거물 사라 요한슨이 좋아하는 동양 남자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쳤다.

거친 선수들과 달리 지적 향기가 풍기고 동시에 은은한 자신감이 몸에서 배어 나왔다.

호르몬 강렬한 수컷이 아니었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교육을 잘 받고 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후손 같았다.

영국에서 접해봤던 귀족가문의 자재들과 비슷했다.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남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여자에게는 존경을 받기에 합당한 어떤 기운.

카리스마였다.

그리고 가볍게 커피를 건넬 정도로 친절했다.

목소리도 듣기 좋았다.

노르웨이 현지인 특유의 발음에 마음이 활짝 열렸다.

“육상도 잘하시죠?”

“네~. 한때는 육상 선수였어요.”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는 다니엘.

‘뭐지? 뭘 알고 있다는 저 표정은?’

다니엘의 시선이 조금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감탄이 아니라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었다.

“왜요?”

“하하. 아닙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것 같아서요.”

‘이 남자 앞에서 뛴 적이 없는데?’

다니엘이 뭔가를 아는 것 같았다.

“시합 시간이 내일 11시죠.”

“네.”

“첫 경기니까 부담 내려놓고 달려요. 크로스컨트리는 운동에 좋아요.”

“메달 딸 겁니다.”

“메달요? 내일요?”

“네~.”

“…….”

소피아는 할 말을 잃었다.

내일 크로스컨트리 프리스타일 15km 경주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스웨덴 선수들이 강자였다.

특히 동료인 한센은 이 종목에서 압도적이었다.

동양인이 결코 낄 자리가 아니다.

메달 안정권이 37분대가 유력한 상황에서 동양인 선수들은 대부분 40분을 넘어갔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소피아는 믿지 못하는 것 같군요.”

“사실……. 그래요.”

소피아는 솔직하게 답했다.

괜히 예의상 하는 말을 뱉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과 친해져야 하지만 선수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은 남았다.

“이거 메달을 딸 이유가 하나 더 생겼군요.”

“네?”

“내기해요. 만약 내가 메달을 따면 소원 들어주기.”

다니엘이 웃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지그시 다니엘을 바라보던 소피아.

‘이 남자 바보 아냐?’

절대 자신이 패배할 수 없는 내기였다.

“네……. 그렇게 해요. 반드시! 소원 들어주기.”

소피아는 가지런한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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