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8
회귀의 전설
428장. 선물하다
“으으으으…….”
“머리 아파…….”
“으으으. 추워.”
“우, 우리가 왜 여기 있어?”
“으헉!”
“아아아악!”
99번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대부분 개막식을 마치고 휘슬러로 가던 노르딕 스키 선수들이었다.
자신들이 왜 이렇게 차디찬 곳에 누워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악마의 속삭임에 조종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폴……. 자네 총을 쏜 거야?”
“경사님……. 우리가 왜.”
휴게소 지붕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경찰들도 지금 상황이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안개로 지원 명령을 받고 휴게소로 달려왔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은 지붕에 올라와 있었다.
총은 뽑아져 있었고 총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찌된 상황인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오, 옷이 왜 이래!”
“버스는 어쩌다 이렇게 망가진 거야!”
“아이고 손목아…… 누가 날 때린 거야?”
“으윽 옷이 왜 이렇게 더러워.”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몰골이 엉망이 된 것에 당황했다.
구겨진 버스와 깨져 나간 유리창.
찢겨진 옷과 타박상을 입은 듯 통증이 느껴지는 몸 이곳저곳.
도저히 어찌된 상황인지 이해를 못했다.
갑자기 안개가 끼기 시작해 안전상 휴게소에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이후부터 이 순간까지의 모든 기억이 끊겼다.
“크게 다친 분 안 계십니까?”
“인원들 모두 맞습니까?”
정신을 차린 경찰관들이 지붕에서 내려와 상황을 체크했다.
치이이잇.
- 찰리. 무슨 일 있어? 왜 통신이 안 돼?
“루이스. 우리도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와 통신이 끊겼었나?”
- 무슨 소리야. 30분 동안 아무 응답이 없어 얼마나 걱정했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30분이나?”
고속도로 순찰대 대원 루이스는 차에 돌아와 무전을 날리다 할 말을 잃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 현장 상황은 어떤가?
“현장은…….”
루이스는 입을 다물었다.
30분 동안 통신이 두절됐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 다 그랬다.
유령에라도 홀린 것처럼 다들 자신들의 상태를 이해 못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때 휘슬러 쪽에서 군용 헬기가 날아왔다.
삐뽀 삐뽀 삐뽀.
뿐만 아니라 구급차를 대동한 채 군 특수부대를 태운 장갑차 10여 대까지 등장했다.
처처저저적.
특수부대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총구를 겨눴다.
이마에 나이트 비전까지 착용한 특수부대원들의 움직임은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모두가 숨을 죽였다.
여차하면 총질을 해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게 무슨…….”
경찰 생활 10년 만에 처음 겪는 이해할 수 없는 난리였다.
휴게소 도로에 비상착륙한 헬기에서 롱코트를 걸친 남자 두 사람이 내렸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는 포스를 풍겼다.
“현장 지휘관이 누굽니까?”
경찰차 앞에서 무전을 치고 있던 루이스에게 한 사내가 물었다.
“접니다만…….”
“CIA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캐나다 정부와 협조한 올림픽 테러 지원팀의 이름으로 이곳을 통제합니다.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올림픽 시작과 동시에 상부로부터 받았던 명령 중 하나였다.
“모두 상태 확인하고 테러 분자들 찾아!”
“예써!”
타다다다다닥.
중대 병력은 족히 될 것 같은 병사들이 빠르게 선수들을 분류하고 주변을 점령해 갔다.
“잠시 마이크 좀 부탁합니다.”
“넵.”
경찰차에 달려 있는 마이크를 집어든 CIA 요원.
“여러분 모두 테러 훈련에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이곳에 대 테러 훈련 지령이 떨어졌습니다. 신원이 확인되는 즉시 바로 훈련은 해제 될 겁니다.”
CIA 요원의 목소리가 휴게소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요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테러 훈련이 아니라 진짜 테러가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분위기의 99번 도로 휴게소였다.
***
“커어억!”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지하 석실.
아사드의 실질적 주인 무자히드가 눈을 감고 있다고 목을 움켜잡았다.
촤아아아앗.
뿜어지는 검붉은 핏줄기.
“컥컥…….”
자신의 피를 나눠 키우고 있던 전사들이 모조리 사자가 되었다.
시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며 그들이 느낀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뇌파에 파고드는 참을 수 없는 고통.
“시, 실패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환하는 순간 몸에 잠복된 흑마법과 결합한 숙주가 깨어난다.
총알 따위는 가볍게 튕겨내며 인간의 몇 배 이상의 괴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런 그들이 모조리 시체 덩어리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누구……. 도대체 누가!”
피를 개어 내고 바닥을 기며 무자히드는 자신의 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인 자를 떠올렸다.
- 어리석은…… 종아…….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위대한 존재의 음성.
무자히드는 벼락을 맞은 듯 벌떡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
- 더블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강력한 어둠의 신이 당신을 저주합니다.
“다니엘…….”
한때 비비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여인이 헬기에서 내렸다.
고귀한 프랑스 왕가였던 귀족가의 여식.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발랄했던 고양이 인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잘 지냈어?”
“응.”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이럴 때는 어설프게 분위기 잡을 필요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뒤돌아서서 떠나가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날처럼 나에게 안겨오지 않았다.
그래도 눈빛은 그대로였다.
잘 지냈냐는 말에 모든 의미가 함축됐다.
비비는 아직 비비였다.
“이놈들 처리하러 온 거야?”
바닥에 널브러진 아사신 괴물들의 시체를 둘러보았다.
괴물의 모습인 채로 생을 마감한 전직 아사신 살수들의 모습은 괴기했다.
붉은 인간의 피는 푸른색의 괴물 피로 변해 있었다.
내장과 피가 빠져나와 널린 괴물은 잔혹동화에나 그려질 법한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비비안은 동요하지 않았다.
아사신 살수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사이 특수 훈련이라도 받은 듯했다.
그런 그녀의 변화가 안타깝기도 했다.
비비는 이런 꼴 안 보고 살았으면 싶었지만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녀를 핵심 축으로 끌어들였다.
“응…….”
“은탄 총으로?”
멀찍이 덜어져서 사방을 경계하며 총을 들고 경호하는 에두아르와 경호원들을 봤다.
탄탄한 체격만 보면 듬직했지만 아사신과는 차원이 달랐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사신은 업그레이드가 됐다.
깊은 내공을 상당히 사용해서야 처리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 수준으로는 웬만해서는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불가능해.”
고개를 저었다.
은탄 총은 놈들의 가죽을 뚫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목숨을 끊어놓을 수 없었다.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놈들의 운동신경과 파괴력이었다.
도리어 에두아르가 속한 일개 팀은 간식 수준 정도로 처리될 가능성이 더 컸다.
“도와줄 수 있어?”
비비가 희망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다니엘이 사용하는 무기면 되지 않을까?”
방패와 도끼는 아공간에 다시 집어넣었다.
비비가 헬리콥터에서 봤던 창은 아직 손에 들고 있었다.
마법진이 각인된 마력창에 비비가 관심을 보였다.
“가능할 것 같아?”
“응~.”
눈썰미까지 좋아졌다.
보통 창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것 같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놈들은 흑마법을 사용해. 오래전 사라져버린 저주의 술법이지.”
“알고 있어. 저 놈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어. 그들의 활동을 막는 게 우리 기사단의 의무야.”
비비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그녀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감지 됐다.
이 세계에 속해 있는 신전 소속의 사제 같았다.
“기사단원이 된 거야?”
“……응.”
“그랬구나.”
비비의 대답을 들으며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피와 죽음, 괴물들과 싸워야 할 전장에 그녀가 던져진 셈이다.
비비는 여자의 몸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보이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순례자가 된 것이다.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줬다.
그리고…….
“좀 비싸~.”
“응?”
“이게 보기보다 원가가 세.”
비비는 비비고 거래는 거래였다.
썸 타는 여자라고 막 깎아주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정말?”
“이거 보이지? 이게 지구에서는 거의 구하기 힘든 보석이야. 마력석이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깃들어져 있어.”
“아!”
비비가 창에 박혀 있는 마력석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은은하게 마력을 뿜어내는 마력석은 그 어떤 보석보다 보는 사람을 매료시켰다.
“이 창은 마력석과 동화되어 있어. 이걸 함부로 빼낸다면 창은 쓸모가 없고 마력석도 파괴 돼.”
어차피 마력석을 한 번 팔아먹으려고 했다.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에 갈아 넣을 생각이었지만 비비를 위해서는 몇 개 정도 양보할 수도 있었다.
비비가 죽음과 맞닥뜨려 있는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다니엘……. 마법사야?”
비비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과거 아사신의 목을 벨 때도 뜬금없이 도끼를 꺼내 도끼 춤을 추었던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당시에는 묻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비비. 아사신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분들이 세상에 좀 있어. 내 스승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셔.”
“그랬구나…….”
생각보다 쉽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
워낙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봐 왔기에 간단하게 인정해 버렸다.
“눈 감아봐.”
“???”
나의 말에 눈을 쳐다보던 비비가 얼굴을 붉혔다.
뻔한 스토리일 거라고 생각하는 그녀.
그게 아닌데…….
사르르.
비비가 기다란 속눈썹을 자랑하며 눈을 감았다.
그녀만의 특유한 향기가 맡아졌다.
사랑스러운 프랑스 여인.
파아앗.
아공간을 열었다.
서둘러 푸른빛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조심스럽게 걸어줬다.
나의 손이 스치자 파르르 떠는 비비.
지금 자신이 나에게 선물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긴박한 위험에 처할 때 이걸 손에 잡고…… ‘다니엘’이라고 외쳐. 그럼 널 지켜 줄 거야.”
이계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마법 목걸이였다.
5서클 강력 방어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작은 마력석이 들어 있어 수십 분쯤은 사용 가능했다.
마법 시동어는 다니엘.
“다니엘…….”
비비가 눈을 떴다.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손으로 잡으며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또로로로.
비비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렀다.
순간 와락 안겨오는 비비.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차갑게 식은 내 입술을 뜨겁게 덮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