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5화 (424/1,284)

 # 425

회귀의 전설

425장. 스키장 가는 길 (1)

“우웩….”

CIA 팀장 루크는 저녁에 먹었던 햄버거를 그대로 토해냈다.

피투성이로 난자된 아파트 살인 사건 시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휘슬러에 위치한 민가 주택에서 집단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첩보를 받았다.

경찰차가 눈에 띄긴 했지만 경찰들은 주변에 퍼져 있었다.

CIA를 비롯해 캐나다 정보국요원들이 대거 출동했다.

하지만 집안에는 CIA 직원들만 들어갔다.

너무 처참해 사람의 말로 표현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변해 버린 내부.

목이 잘리고 미라처럼 수축돼 버린 시신들이 탁자와 의자,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온전한 사람의 형체를 유지한 시신은 한 구도 없었다.

흡혈귀가 빨아 마신 듯 가죽이 뼈에 바짝 달라붙은 것이 그야말로 미라나 다름없었다.

매장된 지 몇 년 지난 시체처럼 변한 시신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떠는 얼굴로 일그러져 있었다.

죽임을 당할 당시 겪었을 감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남녀노소 불문이었다.

수많은 죽음을 봐왔던 루크도 뒷걸음질 치며 기겁할 광경이었다.

“이거…. 수상합니다. 특수팀에 연락할 사건 같은데요?”

따라온 팀원 잭슨은 시신들을 살피며 별다른 반응 없이 사무적으로 행동했다.

“특수팀에?”

CIA 특수팀은 비밀 조직이었다.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될 좀비나 UFO와 외계인 사건 같은 걸 취급했다.

대통령도 보안 인가를 받아야 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이건 인간들이 한 짓이 아닙니다. 1997년 이집트에서 발견됐던 미라 사건의 연장선상 같습니다.”

잭슨이 차분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했다.

1997년 이집트에서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물론 언론을 통제해 뉴스에 단 한 줄도 나오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세상에 알려지면 공포에 휩싸여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질 만한 내용이었다.

그 때도 특수팀이 움직였다.

이집트 정부도 정권 안정을 위해 협조했다.

마을 자체가 하루아침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묻혀 버렸다.

“특수팀 연락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 거야! 테러리스트 소행은 아닌 것 같은데…. 아오!”

루크의 얼굴이 강하게 찌푸려졌다.

승진 코스로 여기고 찾아온 자리였다.

이번 올림픽만 잘 마무리하면 부국장 정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기대하던 것과 달리 대형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잘못 처리하면 승진이 아니라 좌천될 수도 있었다.

발령이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으로 떨어지면 평생 나락이었다.

동료들도 그곳으로 파견되고 난 뒤 실종되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루크도 이제 편하게 여생을 살고 싶었지만 하늘이 그를 돕지 않았다.

“이거…. 그 쪽에 연락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쪽? 특수팀 말고 누구?”

“기사.”

“아!”

기사라는 말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적을 초월한 비공식적 기관이지만 정보 세계에서는 인정을 받는 집단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쪽 지배자들은 그들의 권리를 인정했다.

오래된 역사를 소유한 기사들.

불가사의해 보이는 이런 사건들을 추적하고 다녔다.

알려줘야 했다.

어차피 공짜는 아니었다.

첩보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계산이 됐다.

“바로 연락해. 그리고 이것들…. 모두 깔끔하게 처리해.”

“알겠습니다.”

깔끔하게 처리하라는 말은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말이다.

이들의 가족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망 원인은 단순 화재나 가출로 처리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서둘러 흔적을 모두 지워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아주 가끔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사건은 이미 약속된 듯 자연스럽게 은폐가 됐다.

특히 지금은 올림픽 기간이었다.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서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었다.

드러나지 않는 세상의 규칙.

그 세상은 또 다른 규칙들로 굴러가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

“쿠아아아아아아!”

“쿠케케케케케! 케르르르르.”

인간들이 순식간에 괴물이 됐다.

침을 질질 흘리며 사방을 어슬렁거렸다.

누가 봐도 오싹한 장면이었다.

“아! 진짜 이건 아니잖아!”

안개가 핏빛으로 변했다.

살기는 진하다 못해 따가웠다.

과거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이 오버랩 됐다.

“아사신…. 이 개도 안 물어갈 새끼들!”

덜컹!

차 문을 재빨리 열었다.

나에게 돌격해 오는 존재들은 모두 올림픽 대표 선수복을 입고 있었다.

노르딕 스키 선수들이었다.

눈은 이미 사람의 눈이 아닌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육신이 무엇인가에 조종당하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말로만 듣고 영화로만 보던 좀비들과 똑같았다.

“소피아…. 조영준! 교수님!!!”

당연히 아는 이들 얼굴이 섞여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 나와 웃고 떠들던 이들이었다.

아사신 정신계 흑마법에 당한 게 분명했다.

흑마법을 깨트릴 방법은 아직 없었다.

마력이 강한 나는 크게 상관없지만 타 마법사가 펼친 정신계 마법을 파훼할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당장 이계로 넘어갈 수도 없었고 지금은 가고 싶지 않았다.

분노가 심장을 쥐어짜듯 가득 들어찼다.

아사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방법은 하나.

“아사시이이이인!”

터엉! 바닥을 박차 버스 위로 몸을 날렸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잡것들을 먼저 찾아야 했다.

그들의 소행이 분명한 만큼 아사신을 목청 돋워 불렀다.

내공을 끌어 올렸다.

- 1,000년 전쟁의 한복판에 섰습니다.

- 당신을 증오하는 타민족의 신이 추종자들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는 신들의 가호가 임합니다.

- 더블 카르마 포인트가 계산됩니다.

이 와중에도 눈치 없이 알림음이 들렸다.

타민족의 신은 후레자식이었다.

파아아앗!

좀비로 변한 선수들의 몸에 핏빛 광채가 더해졌다.

조종자들이 강해지니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타다다닥.

그러면서 좀비들이 달려오는 속도가 달라졌다.

“아공간!”

나에게만 보이는 아공간이 열렸다.

그 안에서 창을 뽑아 들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해야 했다.

“쿠케케케 쿠에에에!”

“키키키키키키.”

콰앙! 쾅! 쾅!

눈이 돌아간 선수들이 내가 올라선 버스를 흔들었다.

그들이 괴력을 발휘하자 버스가 거칠게 출렁거렸다.

“에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화에서처럼 저들을 정말 좀비처럼 죽일 수 없었다.

몰골은 저렇지만 저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파스스스스스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핏빛으로 변한 안개가 사방에서 꿈틀거렸다.

비비안을 습격했던 놈들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들까지 이성을 잃었다.

더 이상 큰 일이 나기 전에 정리해야만 했다.

“스키장 가는 길 더럽게 힘드네.”

메달 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스키장 가는 것도 일이었다.

한 단계 전진해 보려고 했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사법시험 합격하고 법무장교로 가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맞닥뜨린 전쟁.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속을 노려봤다.

“거기 있어… 개새끼들!”

놈들의 기운을 발견했다.

휴게소 옥상에 올라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다섯 놈의 아사신.

놈들 주변으로 뭉클뭉클 피의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야! 너희들 도망가지 말고 거기 있어라!”

터어엉!

창을 들고 차 지붕을 있는 힘껏 박찼다.

쇄애애애앳.

한 마리 새처럼 공간을 날아올랐다.

거리는 약 200미터.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놈들이….

타다다당!

그때 느닷없이 울리는 총성.

이번 아사신 새끼들…. 완전 X새끼들이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빠르게 중형 헬기가 어둠 속을 갈랐다.

캐나다 정부 허가를 받고 이동하는 헬기에는 10여 명의 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 다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전 괜찮아요.”

단단하게 특수 제작된 방탄 겸용 방검복을 착용한 비비안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아.”

에두아르는 비비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아니 꺾을 수가 없었다.

“오른쪽 방향이에요!”

비비안이 헬기 방향을 알려줬다.

특수한 능력으로 아사신을 찾아냈다.

비비안의 몸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성스러운 기운.

각성 능력이 대단했다.

거의 기사단장급이 확실했다.

‘도대체 이런 능력은….’

에두아르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 된다면 기사단 내에서 비비안의 위치는 한참 격상될 것이다.

“직진이에요!”

그녀가 능력을 발휘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모두 장비 준비해!”

아사신과 몇 번 전투를 벌여봤던 역전의 기사들이 무기를 점검했다.

은탄을 자동소총에 장전했다.

아사신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 조종당하는 생물체도 존재할 게 뻔했다.

긴장은 됐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사신과 모두 은원이 넘쳤다.

‘이번에도 모조리 죽여주마!’

에두아르는 아사신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방금 전 CIA 쪽에서 정보를 받았다.

미라로 변한 시신들이 대거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악마들 짓이었다.

“어…. 저건!”

“아사신의 안개입니다!”

“뭐, 뭐가 이렇게 짙어!”

창밖을 보던 기사들이 당황하며 놀랐다.

휘슬러로 향하는 99번 도로를 따라 자욱하게 퍼져 있는 안개.

달리는 차에서는 바로 앞길도 보이지 않겠지만 헬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한 지점을 시작으로 꿈틀꿈틀 안개가 퍼져 나갔다.

전체 길이는 약 10킬로미터 정도.

헬기는 빠르게 안개의 중심부 상공으로 이동했다.

“저기에요!”

공중에 뜬 상태라 달빛만으로도 지상이 훤히 보였다.

비비안이 손으로 정확하게 가리키는 지점.

붉은 안개가 테두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오! 신이시여….”

“저게 무슨!!!”

붉은 안개 중심부를 확인한 기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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