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9화 (418/1,284)

 # 419

회귀의 전설

419장. 꺼져 (2)

“놈들 위치는 파악했나요?”

“아직입니다.”

“하아…….”

프랑스 동계 올림픽 대표팀들을 이끌고 도착한 지원팀들 중 일부가 밴쿠버 특급 호텔에 모였다.

그들은 최대한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CIA를 비롯해 각국에 비밀정보망 루트를 확보해 놨습니다.”

“단장님의 염려가 큽니다. 그래서 저를 보냈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이곳 캐나다는 우리 기사단 후원자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반드시 올림픽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야 합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아사신의 악마들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본거지를 격파하겠지만 지금은 세상에 나온 악마 자식들을 격살함이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기사단이 당신들 뒤에 있습니다.”

“영광을 위하여!”

일제히 뜨겁게 화답하는 이들.

“물러들 가세요.”

터더더덕.

팀장들이 서둘러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 남자만이 남았다.

“에두아르……. 나 두려워요.”

“잘 하고 계십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사신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가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에두아르는 눈앞의 여인에게 응원을 보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던 철부지 여인이었다.

남자와 탈주까지 벌였던 그 여인은 지금 기사들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기사단장 가문의 피가 이제 본격적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교육을 마쳤고 이번 올림픽에 투입됐다.

아사신의 악마들이 올림픽을 노린다는 첩보를 받았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캐나다는 과거 기사들이 피난을 떠났던 곳이다.

그 후손들의 지원금이 상당했다.

“정말 그가 왔나요?”

“……네. 며칠 전 입국했다고 합니다.”

“별일 없는 거죠?”

“로버트 라이언과 함께 동행중이라고 합니다. 경호원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 실력이 대단합니다. 아사신 따위는 단박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에두아르는 확신을 가졌다.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인은 정보를 캘 때마다 두려울 만큼 성장해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기까지 했다.

아사신 앞에서 아가씨를 보호했던 괴물이었다.

이제는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 캐나다에 와 있었다.

“보고 싶습니까?”

에두아르가 조용히 물었다.

손을 움켜쥐는 비비안.

그리움은 하늘까지 닿을 정도였지만 맡은 바 임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가 이상하게 얽혀 버렸다.

가문의 대를 이을 아이를 잉태한 새언니가 다니엘의 전 여자친구였다.

동시에 홍콩에 있던 새언니의 아버지가 살인을 청부했었다.

홍콩에서 있었던 다니엘 추격전.

그때만 생각하면 비비안은 지금도 미안함에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아, 아니에요…….”

애써 마음을 감추는 비비안.

남들이 보기에는 짧은 시간 별것 아닌 추억일 수 있지만 비비안에게는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켰었다.

“경호원을 보낼까요?”

“인원이 부족해요. 그리고 다니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에요.”

“맞습니다. 도리어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존심 강한 에두아르도 그 사실만은 인정했다.

총알도 두려워하지 않는 아사신을 도끼로 두 쪽 내버렸던 다니엘 장.

에두아르도 그가 이상하게 호감이 갔다.

“일단 우리가 맡은 임무에 충실하도록 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에두아르.”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충직한 기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비비안.

‘다니엘…….’

같은 캐나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비안은 그리움이 배가 되는 걸 느꼈다.

***

“무슨 헛소리야!”

들려오는 영어에 사라소바는 러시아어로 소리쳤다.

“오빠아아아아!”

김유나는 소식도 없이 등장한 남자를 보고 더없이 반가워했다.

얼굴에 순식간에 번지는 격한 반가움.

‘오빠?’

아사다 마유는 오빠라는 한국말을 알고 있었다.

김유나로 인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짧게 한글을 배웠었다.

아사다가 김유나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아사다 마유는 깜짝 놀랐다.

겨울이라 매서운 추위가 강타한 시애틀.

두툼한 점퍼가 아닌 상큼한 스웨이드 블루종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모델?’

한 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은 외모였다.

아사다 마유가 봤던 동양 모델들 중에서도 탑이었다.

입가에 피어난 소소한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사다는 나름 충격을 받았다.

김유나가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사람을 반기며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선수권 대회에 나갈 때마다 남자 피겨 선수들이 연락처를 물었다.

그때마다 냉정하게 거절하던 김유나였다.

후배들 말고는 남자와 아는 체도 하지 않던 김유나였기 때문에 지금 모습이 몹시 낯설었다.

‘친오빠는 아닌데…….’

아사다도 경쟁자인 김유나 가족에 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해줘? 지금 여기서 꺼져주세요~.”

‘러시아어?’

오빠라는 남자는 사라소바에게 러시아어로 응대했다.

코치들과 소통 때문에 아사다 역시 약간의 러시아어를 배웠다.

원어민과 똑같은 발음.

아사다 마유는 흥미롭게 남자를 바라봤다.

“당신 뭐야? 이곳은 우리가 예약했어!”

일본 빙상 연맹에서 파견한 직원이 따지듯 영어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 시간부로 예약 파기 됐다.”

이번에는 일본어로 답하는 남자.

‘도쿄 발음이야.’

사투리가 섞이지 않은 정확한 일본어 구사 능력까지 보유했다.

“경찰을 부르겠어!”

연맹 직원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러시던가~.”

남자는 거침이 없었고 전혀 주눅도 들지 않았다.

파밧.

그때 남자의 눈과 아사다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가볍게 웃었다.

“미안하게 됐는데 오늘은 그만 가줘야 할 것 같아.”

“네?”

아사다는 자신을 향해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아이스링크 장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컨디션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비행기 시차는 생각보다 많이 몸을 망가트렸다.

“당신 뭐야? 한국 관계자야? 아니면 마피아? 지금 하는 행동이 불법인 건 아는 거야!”

평소 소리가 큰 사라소바가 러시아로 다다다 쏘아붙였다.

말싸움 전문 여전사 같았다.

“사라소바. 당신 그러다 큰일 나~”

“무슨 헛소리야!!!”

“후웃.”

남자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러시아 금메달리스트인 사라소바가 저에게 협박을 하는군요.”

능숙한 러시아어로 상대와 통화를 하는 남자.

“바꿔달라는데?”

남자가 핸드폰을 사라소바에게 건넸다.

“어디서 헛수작이야!”

씩씩대며 사라소바는 남자가 건넨 핸드폰을 받았다.

“뭐에요! 당신들 마피아…….”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치던 사라소바의 큰소리가 한순간 뚝 끊겼다.

“네, 네.”

그리고 갑자기 더없이 공손해지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무슨 일이지?’

뜬금없는 상황의 연속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아사다 마유 역시 호기심이 일었다.

올림픽 중압감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코치와 연맹 직원이 따라다녔다.

일체의 자유 없이 인형처럼 피겨를 타던 아사다 마유.

궁금한 눈빛으로 코치를 바라봤다.

“……아, 알겠습니다.”

고개까지 숙이며 전화를 받는 사라소바.

핏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통화를 끝낸 핸드폰을 공손히 남자에게 돌려줬다.

“마피아가 뭐라고 합니까?”

아무렇지 않게 피식 웃으며 남자가 물었다.

“죄송합니다!”

피겨계에서는 허리를 절대 굽히지 않는 그녀가 일본인처럼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죄송할 건 없고 어디 가서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충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 내가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과거처럼 허튼 수작부리면…….”

남자는 웃는 얼굴로 차갑게 경고했다.

“그, 그럴 일 없습니다.”

사라소바는 공포에 질린 듯한 눈으로 대답했다.

감히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빨리 꺼져주세요~.”

남자는 연맹 직원에게 나가라고 재촉했다.

“당신 정체가 뭐야!”

연맹 직원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삿대질을 했다.

평소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인이라면 삼가 할 행동이었다.

아사다도 이런 태도를 처음 볼 정도였다.

“나? 여기 주인.”

“???”

타다다닥.

그때 경비원과 링크 장 관리자로 보이는 남자들이 뛰어왔다.

모두 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잘 왔습니다. 여기 불법 침입자를 쫓아내 주십시오!”

연맹 직원이 그들이 다가오자 화색을 띠며 말했다.

그리고 힘주어 쫓아내라고 지시했다.

“방금 연락 받았습니다.”

아이스링크 장 관리자가 고개를 숙여 남자 쪽에 인사를 했다.

연맹 직원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시간부로 시간 약속을 어기고 소란을 피운 일본 대표분 연습을 취소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뭣들…….”

연맹 직원이 크게 당황했다.

“어제부로 회사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CCTV로 모든 걸 봤습니다. 약관에 의거해 일본 대표팀의 연습을 취소합니다.”

링크 장 관리자가 냉정하게 말을 꺼냈다.

“…….”

사라소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아사다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멍해졌다.

여기서 연습을 못한다면 당장 아이스링크 장을 구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뭣들 합니까.”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말하는 남자.

“오빠 잠깐만!”

그때 지켜보고 있던 김유나가 남자를 붙들었다.

***

모든 걸 보고 있었다.

사라소바라는 아사다 마유의 코치가 하는 짓거리에 어이가 없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정정당당해야 옳았다.

하지만 한계를 넘는 사라소바의 행동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유나가 이곳에서 연습한다는 걸 알고 로버트를 통해 아이스링크 장을 매입했다.

불경기라 싸게 나왔다.

1년 후에 팔아도 두 배는 남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내친김에 마음껏 주인의 권리를 행사했다.

여차하면 위약금까지 물어 줄 생각이었다.

지난 생에 추접하게 유나를 괴롭혔던 일본 피겨에 대한 약간의 복수였다.

사라소바에게는 푸틴 형님을 따라다니는 고위급 부하를 전화로 연결해 줬다.

예상했던 대로 사라소바는 바로 깨갱.

원칙을 먼저 어겼기에 아사다 마유도 함께 쫒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TV화면으로 봤을 때보다 아사다는 더 귀엽게 생겼다.

유나에게는 없는 아사다 마유만의 매력.

유나가 여왕이라면 아사다 마유는 귀여운 막내 공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유나는 왜?

“???”

유나를 돌아봤다.

“오빠……. 나 아사다와 같이 연습하고 싶어.”

“응?”

유나의 생각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

“하루라도 연습을 망치면 본 실력이 안 나와. 올림픽도 가까운데 링크 장 구하기가 쉽지도 않고……. 난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싶어.”

아! 유나야……. 너 진짜 짱이다!

이래서 여왕이다.

아무나 흉내 내거나 품을 수 없는 대범함과 공평함.

유나의 뽀얀 피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의 에너지 덕분이었다.

“뭐 그렇다면……. 알아서 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저벅.

그때 아사다 마유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아사다.

“호빠……. 고마스미다…….”

응? 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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