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4화 (413/1,284)

 # 414

회귀의 전설

414장. 확실한 한 방 (2)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부회장 천해운은 찝찝한 듯 입맛을 다셨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천일 그룹 사장단 회의가 그룹 본사에서 열린다.

월요일 회의는 그룹이 결성되던 초기 당시부터 쭉 진행되어 왔다.

계열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많지도 않았고, 누구도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 회의장에서 직접 아랫것들 단속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 출발이 안 좋았다.

주가 동향을 비롯해 여러 가지 회사와 관련된 문제 사항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해외 자본의 국내 주식 투자는 과거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금융위기가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자본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그룹 말고도 오정이나 연대 등에도 투자금이 몰려드는 상황입니다. 기업 신용도에 좋은 일입니다.”

그룹 재무담당 이사가 답변했다.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지. 우리 회사가 막말로 잘 나가는 그룹은 아니잖아. 사업 대부분이 과거와 달리 내수에 집중되는 소비재인데 뭘 보고 투자해? 요업, 콘크리트, 기계. 그리고 석유 조금……. 천일산업 쪽에서 해외플랜트 수주했다지만 그거 돈 안 되는 거 우리도 알고 걔들도 알아. 주 수익이 모두 건설과 연관돼 있어 이런 불경기에는 바닥을 치는데……. 이상하지 않아?”

존칭은 아예 생략된 말로 천해운 부회장은 자신의 감대로 거침없이 말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해외 투자자들 지분이라고 해봐야 1000억대가 전부였지만 요사이 해외 주식 매입 자금이 수천억이 넘었어. 이거……. 기분이 나빠.”

부회장 천해운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성격이었다.

안아 그룹 전 오승혁 회장과 달리 무리하게 회사를 확장하지도 않았다.

욕심은 많지만 매사 신중했다.

해외 사업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형식적인 거래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건설 사업이 주였다.

과거와 달리 저가 외국 건설이나 플랜트 사업들은 중국 건설사들이 쓸어갔다.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정부 자금을 받는 시절은 지났다.

돈 되는 국내 사업이 주력이었다.

그룹에서 생산하는 요업과 건설부자재가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정치권 로비를 통해 대규모 관급 공사에서 천일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싼값에 땅을 불하 받아 돈 덜 드는 아파트를 지어 팔아먹는 고전적 수법을 사용했다.

다른 건설사와 달리 이윤이 상당히 짭짤했다.

자재를 비롯해 모든 것들을 천일에서 생산해 공급했다.

평당 단가를 후려쳐 아무리 싸게 팔아도 이윤이 남았다.

또한 비싼 모델들을 이용해 브랜드 이름값을 유지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3년 정도 지나야 하자가 발생할 정도로 건축 노하우가 발전했다.

석유화학이나 제조, 상사나 기타 등등의 사업 등은 비용 처리와 집안사람들 챙겨 주기 위한 계열사였다.

지금 참석한 사장단도 대부분 친인척들이었다.

오암 천재국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사업을 부흥시켰던 방법이 그대로 전수됐다.

건설부자재를 헐값에 받아 비싸게 팔아먹는 재주가 비상했다.

천 씨 집안사람들은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았다.

“부회장님의 심려는 알겠지만 저희 그룹이 과거와 같은 규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한 해 매출이 10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해외 투자자들도 그걸 알고 투자하는 것일 겁니다.”

“맞습니다. 부채비율도 100% 밑으로 맞춰 우량합니다. 따놓은 관급 공사는 캐시 카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경영권 방어에 지장 없는 주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해외 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걸 뉴스에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룹 이미지 재고 상 필요합니다. 주식 갤러리들도 이번 해외 자본 주식 구입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부회장님, 모든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면 됩니다. 염려 마시고 2010년 그룹의 나아갈 바를 다시 점검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오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합니다. 그 쪽에 좀 더 로비를 진행해야 할 때입니다.”

“흐음……. 이미지 재고와 오대강 사업이라…….”

천해운이 할아버지 천재국에게 배웠던 사업 지론은 하나였다.

권력자들에게 돈을 아끼지 말아야 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룹 순위는 한참 아래였지만 권력에 5대 그룹 정도 되는 로비 자금을 투입했다.

인간은 배신해도 돈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그래 언론사에 광고 한 번 시원하게 때려줘. 애들도 받고 나면 조용해지니까. 건설사에서 맡아봐.”

“알겠습니다.”

“설도 다가오는데 떡 좀 돌려야겠어. 배고픈 하마도 아니고 정치하는 양반들 배는 언제나 비어 있다니까……. 진 실장.”

“넵!”

“이번에도 자네가 배달해. 인사할 곳 명단 가지고 있지?”

“있습니다.”

“올해는 S급은 2장, A급은 1장, 나머지는 반장으로 통일하자고. 추 이사 자금 준비해봐.”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반짝!

평소와 같은 천해운 회장의 지시에 진광형 비서실장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뭔가 기회를 잡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말 잘 듣는 상머슴 정도의 느낌만 줄 뿐이었다.

“진 실장.”

“넵! 회장님!”

“그런데 그 새끼 자료 찾아왔어?”

“준비해뒀습니다.”

“진짜 잘 나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고? 너 지금 나랑 장난 하냐?”

“아, 아닙니다!”

“아오! 저 밥통 새끼를 내가 월급 주고 부리고 있어요. 이제 정리를 해야 하나……. 쯧.”

면전에 놓고 욕하고 무안을 주는 일이 일상인 천해운.

그는 진광형이 절대 자신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아픈 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저 나이에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어. 일이나 똑바로 처리해!”

“넵!!!”

***

“축하한다. 트윈스~.”

“말만?”

그렇지 세상에서 말로 때우는 고마움이란 필요 없다.

오고가는 물질 속에 정이 싹트는 법이다.

“이건 주아 선물.”

“꺄아아! 람브란트!!! 내가 가지고 싶었던 전설의 화구 세트야!”

전생에 전문대에 진학하며 꿈을 포기했던 주아가 방방 뛰었다.

그림 좀 그린다는 이들에게는 꿈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화구 명인이 만든 수제 세트였다.

붓부터 시작해 물감까지 모두 다 최고급으로 준비했다.

몇 년 전에 예약이 끝난 걸 받아왔다.

이탈리아에 있는 형님들에게 전화 한 통 했더니 그 즉시 비행기로 물건이 배달됐다.

주아는 한국대 미대에 합격했다.

막내 주희도 한국대 의대에 가뿐하게 입학했다.

쌍둥이들은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전생에 나만 뒤떨어졌던 것 같다.

나도 놀랄 정도로 쌍둥이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내 거는?”

“의대니까 청진기 사줄까? 오랜만에 추억의 돌잡이 하자~.”

“오빠아아아아!”

성격 강한 주희가 빽 소리를 질렀다.

“운전면허 땄지?”

“응. 오빠가 말한 대로 틈틈이 준비해서 가뿐하게 땄지.”

“이거 써.”

차 키를 내밀었다.

“뭐야?”

“튼튼한 놈으로다가 하나 골라 놨다.”

“트랙터?”

“…….”

주희의 농담에 순간 얼어붙었다.

나이도 어린 녀석이 아재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밖에 나가봐.”

“저, 정말?”

기대에 잔뜩 찬 얼굴로 뛰듯 밖으로 나가는 주희.

“꺄아아아아악!”

그리고 터지는 비명.

포르쉐 한 대 사줬다.

그동안 버릇 나빠질까 봐 나름 평범하게(?) 여동생들을 양육했다.

착한 녀석들답게 돈 자랑 하지 않고 원만하게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생이다.

좋은 자동차 한 대쯤 타고 다녀도 괜찮다.

가족 간에 어설프게 아껴봐야 돈도 똥 된다.

“오빠. 선물 차이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주아가 삐친 척했다.

화구 세트가 수천만 원이라는 걸 녀석은 미처 몰랐다.

“운전면허 따. 그럼 통학용으로 오빠 차 하나 줄게.”

“헤에~ 고마워.”

한국대 미대생들 상당수가 개인 차를 타고 다녔다.

여동생을 기죽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너, 잘 해야 한다.”

“뭘?”

“미대 교수님들이 오빠 수준에 맞춰져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수준?”

말해야 입만 아프고 스토리만 길어진다.

미대 도장 깨기로 격파한 오빠에 대해서 주아는 상상도 못하고 있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나의 역사에 관해 알 것이다.

“언니! 나랑 차 타고 드라이브 가자!”

주희가 밖에서 설레는 목소리로 주아를 불러냈다.

“그래!”

쌍둥이들은 누구보다 사이가 좋았다.

“운전 조심하고!”

“네~ 엄마.”

부웅! 붕!

밖에서 포르쉐 특유의 배기음이 들렸다.

“애들에게 선물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아버지가 나섰다.

수억짜리 트랙터를 비롯해 농기구 세트를 구입한 분이 할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도 서울로 오세요. 회사 하나 사 드릴 게요.”

크게 던졌다.

“……됐다. 난 흙이 좋다~. 그리고 올해도 영농회장을 맡았어. 아무도 안 부러워~.”

사업 체질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잘 알았다.

그 점이 고마웠다.

“태산아, 그런데 그 쓰던 글은 완결했니?”

옆에서 사과를 깎던 엄마가 물었다.

“65권으로 깔끔하게 완결 쳐서 넘겼습니다.”

아직 최종권 발간은 안 됐지만 나는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끝냈다.

글이 글을 창조해 낸다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고 실천에 옮겼다.

전생에 끝을 못 봤던 <구름전투사>는 내가 완결했다.

“그럼 이제 글은 더 안 쓰는 거냐?”

아버지가 물어왔다.

“왜요?”

“……재밌던데.”

집에 배달된 작가용 소장본을 읽어본 것 같았다.

“신간 준비 중입니다.”

“신간?”

“뭔데?”

부모님 두 분이 같이 관심을 보였다.

우리 집안을 일으킨 주인공이 책이라는 걸 두 분은 알았다.

“장르는 퓨전 판타지이고 제목은 <마계대공 연대기>라고…….”

“흐음……. 제목은 좋네. 연대기라고 하니까 뭔가 있어 보인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조광수 작가.

하렘의 절정판이지만 고자 작가로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다.

미녀 등장인물들은 많지만 매번 화끈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워낙 인터넷에서 욕을 많이 먹어서 그렇지 재미는 괜찮았다.

나는 그것을 리뉴얼해서 15금 버전으로 낼 생각이었다.

마계에서 시작해 인간계까지 후려치는 주인공의 활약이 심히 기대가 됐다.

“그래……. 이번에도 대박 날 것 같다.”

엄마가 웃었다.

대박 안 나면 어떠랴.

글 쓰는 게 의외로 재미있고 스트레스도 풀렸다.

“이번 설에는 일찍 올 거지?”

“무슨 일 있습니까?”

“일은 무슨. 아들과 술이나 한 잔하려고 하지.”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올 설에는 못 옵니다.”

“왜? 또 어디 가니?”

엄마가 의아한 듯 물었다.

“캐나다로 메달 따러 갑니다.”

“메달?”

부모님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바라봤다.

“동계 올림픽에 선수로 나갑니다.”

“선수? 국가대표???”

“네.”

“세상에…… 세상에.”

엄마가 할 말을 잃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네가 대표라고?”

“아버지. 메달 따면 동네잔치 한 번 여시죠.”

“허어…….”

아버지도 입을 다물기는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봐도 내가 자식인 게 믿기지 않을 것이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곰 대표의 전화였다.

“전화 받고 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입니까?”

- 보스……. 확보했습니다!

“그래요?”

- 지금 진광형 실장이 여기저기 떡값을 배달하고 증거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진행할지 물어왔습니다.

증거도 가래떡처럼 따끈따끈할 때가 맛있는 법.

“바로……. 경찰서로 가라고 하십시오. 기자 뒤에 붙이는 거 잊지 마시고……. 크게 터트리십시오.”

- 넵!

이제 막 뜬 떡값만큼 확실한 물증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료 저에게도 보내주십시오.”

- 처리하겠습니다.

통화는 짧게 끝냈다.

감히 동네 똥강아지가 날 물려고 했다.

대가는 확실한 몽둥이찜질밖에 없다.

천일 그룹을 한 큐에 박살낼 확실한 한 방.

입가에 평온한 미소가 절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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