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2화 (411/1,284)

 # 412

회귀의 전설

412장. 제목은…….

“도대체 이게…….”

러시아 연방보안국 소속 요원 아리스토브는 할 말을 잃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흔적은 분명 곳곳에 존재했다.

강렬한 무언가가 모조리 태워버린 자국이 선명했다.

녹아버린 눈과 새카맣게 타버린 대지 위에 반쯤 녹아내린 총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이곳은 격렬한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그러나 그 증거가 될 만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제트 스키들은 성안에 있습니다.”

“생존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전부 죽었다는 말인데……. 사체 처리는…… 늑대 짓인가?”

장태산이라는 한국인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야 찾아온 성터.

성 안에서는 중국 요원들이 타고 온 제트 스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늑대 먹이가 됐어도 뼈는 남습니다.”

“산성 액체로 녹였을까?”

“불가능합니다. 단시간에 그것도 혼자 이렇게까지 흔적없이 처리할 수 없습니다.”

부하 직원 세르도프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뭐야? 소이탄이라도 터트렸다는 거야?”

“그것도 아닙니다. 화학 반응이 일어났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거 강하잖아.”

“그래도 뼈는 남습니다.”

“하아……. 골치 아프군.”

상부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해 상세히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증거물이 거의 없었다.

전투는 분명 있었지만 과정을 짐작할 만한 증거가 빈약했다.

“마술사일까요?”

“헛소리가 참신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리스토브와 세르도프는 입맛만 다셨다.

여기저기서 보안국 직원들을 동원해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휘이이이이이잉.

찬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치는 사하 공화국의 버려진 폐성.

“내 기분만 그런가? 오싹하지 않아?”

“……사실 이곳은 유령이 나온다고 주민들은 얼씬도 안 합니다.”

“그런데 이 땅을 왜 샀을까?”

“모르죠…….”

“됐어. 일단 오늘은 철수하자고. 이곳에 더 있다가 얼어 죽겠어.”

책임자 아리스토브가 철수 명령을 내렸다.

상부의 명령이 있었지만 아무리 살펴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는 증거.

그저 당장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이 폐성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

“앉으십시오.”

“실례하겠습니다…….”

장태산의 권유에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바짝 얼었다.

‘이거 엄청나게 비싼 녀석 같은데……. 인테리어 봐라. 돈을 처발랐네.’

친구들 중에 잘 나가는 몇 놈들 사무실보다 더 끝내줬다.

최웅천은 빠르게 장태산 사무실을 스캔했다.

상당한 인세가 지불됐지만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규모였다.

밖에 있는 미모의 여성 정도를 채용하려면 연봉으로 꽤 높은 액수를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저 미모의 여직원을 둔다는 건 곧 돈과 연결됐다.

‘컴퓨터도 최신형에……. 대표실이 출판사보다 더 크군.’

이건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편안하게 감청색 니트에 편안한 면바지를 입고 있는 장태산은 발광 그 자체였다.

고삐리 때 봤을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기업가 모임에서 만난 대기업 사장들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이 마치 자신의 건물이라도 되는 양 여유가 넘쳤다.

“대표님. 커피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해요.”

“네~.”

안내를 했던 여성은 상냥하게 웃고 물러났다.

“오랜만입니다.”

장태산이 편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잘…… 지냈지…… 요.”

최웅천이 말을 놓지 못했다.

한국대 입학 당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가끔 작가 관리를 위해 전화 통화를 해왔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말문이 막혔다.

장태산도 말을 놓으라고 권하지 않았다.

“학교생활과 이것저것 투자 사업 때문에 바빴습니다.”

“대단하네요. 우리도 학교생활 해봐서 아는데 만만치 않은데…….”

황성우 편집장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한국대 국문과 출신인 최웅천과 황성우 편집장이었다.

“학점이 뭐가 중요해. 법대생들은 사법시험 패스하면 끝이지~.”

최웅천이 아는 체를 했다.

한때 그도 사법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성이 놀기 좋아하고 글 읽은 걸 좋아해 생리에 맞는 출판사를 차렸다.

일반 출판사를 차렸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돈을 쫓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다.

돈은 벌었으나 친구들은 아직 이쪽 시장 출판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들이 격려해 주셔서 2학년까지 올 A+를 받았습니다.”

“올 A+?”

“헐…….”

두 사람은 경악에 가까운 감탄을 했다.

한국대에서 졸업 때까지 한 과목 A+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전 과목 만점이라니…….

“사법시험은…… 안 봅니까?”

최웅천이 진심으로 놀라 물었다,

“2009년에 2차까지 합격했지만 면접은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네? 하, 합격했다고요?”

경악의 연속이었다.

한국대 법학과에 합격한 것도 쉽지 않지만 사법시험은 더 극강이었다.

“그런데 왜???”

황성우가 믿지 못하겠는 눈빛을 보였다.

“성적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

둘 다 할 말을 잃어버렸다.

동차 합격생은 더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뭣도 모르고 복을 걷어차 버린 장태산.

두 사람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안 됐다.

“사업은 잘 되십니까?”

장태산이 역으로 질문해 왔다.

“그냥 그렇습니다.”

최웅천이 자신 없게 대답했다.

“작가님……. 아니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이쪽이 레드오션입니다. 그나마 몇 개 없던 대여점은 망해가고 독자들은 책을 구입하지 않습니다.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곧…….”

편집장이 죽는 소리를 뱉었다.

“나이스 미디어도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죠. 작가님 책은 구매하는 독자분이 많습니다. 다달이 한권씩 출간되고 계속 퀄이 보장되니 잘 팔립니다.”

“장희재 작가님도 잘 나가지 않습니까?”

“그게 신기합니다. 가끔 대량 주문이 들어와 권당 2만 부를 돌파했습니다. 재미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나갈 작품이 아닌데…….”

편집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이 남는 누군가 도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재벌 같은 분들이 책에 꽂혀서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삐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도도희 상무님이 보고서를 가져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장태산이 능숙하게 사업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스르르릇.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등장한 도도희 상무.

“대표님 지시하셨던 서류입니다.”

오늘도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는 블랙 오피스 룩의 절정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나타난 도도희가 생긋 웃으며 보고서를 건넸다.

날씬한 키와 몸매에 최웅천과 황성우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한마디로 여신이었다.

빨간 안경테가 이렇게 잘 아울리는 여성을 두 사람은 처음 봤다.

“대표님 커피 가져왔습니다.”

도도희에 이어 재등장한 유세라가 커피를 세팅했다.

“두 분 고마워요.”

“그럼…….”

두 여성이 고개를 짧게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두 여성이 남기고 간 향수 냄새에 중년 아재들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는 거야? 으으!’

최웅천은 장태산이 마치 신처럼 보였다.

얼굴도 환상인 놈이 머리도 좋고 사업도 잘나가는 것 같았다.

연예인 급 비서들을 두고 사업하면 진시황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장태산의 죄송하다는 말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사래를 쳤다.

요즘 같은 출판 불경기에 작가들에게는 절대 갑인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

그 두 사람이 자처해 저자세를 취했다.

다음 작품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

“출판시장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네?”

갑작스런 장태산의 발언.

“지금은 레드오션이지만 곧 블루오션이 될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전자책 시장이 태동하고 있더군요.”

“그거 재미없습니다. 몇몇 곳에서 뛰어들었지만 독자들이 편당 결제를 싫어합니다. 이북 판매 수익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대여점 시장만 못합니다.”

편집장 황성우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여점 사장들이 이북 출간하면 불매 운동한다고 난리입니다. 시장 파이가 커지려면 최소 10년은 걸릴 겁니다.”

최웅천도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그럴까요?”

뭔가 알고 있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는 장태산.

‘뭐야? 출판시장이 장난인 줄 아나!’

최웅천은 자존심이 강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쪽 업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했다.

“현 장르시장 총매출 200억. 앞으로 5년 안에 다섯 배 이상 큽니다.”

“뭐라고? 다섯 배???”

“그런 말도 안 되는…….”

***

러시아에서 돌아왔다.

내가 로마시대 검투사도 아니고 나를 통해 짭짤하게 벌어들인 그들이 알아서 파티를 열었다.

솔로몬 대왕의 궁전에서 파티가 열렸다.

그동안 마법을 가르친 대가로 착실하게 포인트를 받아간 대왕의 성이 보란 듯이 바뀌어 있었다.

곳곳에 선녀 급 여신들이 보였다.

퇴색하던 궁전도 최상급 인테리어로 전부 바뀌고 있었다.

그림 신들에게 통 크게 일거리도 제공했다.

대왕답게 포스가 달랐다.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먹고 마시며 신들의 연회를 구경했다.

음악 신들의 황홀한 천상 연주를 원 없이 들었다.

장금이 누님이 요리를 담당했다.

황진이 누님은 친구들을 불러왔다.

솔로몬 대왕의 궁전은 세상에 없는 유일한 최고의 나이트가 됐다.

신세계 샐럽들의 파티장이었다.

후회 없을 만큼 선녀급 여신들을 물리도록 봤다.

그들과 부비부비도 즐기며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꿈같은 휴식을 즐기고 인간계로 돌아왔다.

짱개들이 남긴 흔적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푸틴 아재가 내가 돌아간 뒤 둘러볼 게 뻔했다.

흠이 될 만한 것들을 다 처리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곧 동계 올림픽 시즌이었다.

그 전에 마무리해야 할 2010년 사업 계획들이 많았다.

이것저것 챙겨 처리하다 출판사 측의 전화를 받았다.

신간 이야기가 나왔다.

내친 김에 최웅천 사장과 편집장을 초청했다.

그리고 갖게 된 대화 자리였다.

나름 똑똑한 사업가들이지만 시절을 맞추지 못하는 사업적 판단은 어쩔 수 없었다.

<구름전투사>로 짭짤한 재미를 봤지만 미래 시장 파이까지는 짐작 못했다.

지금부터 작가에게 투자했다면 미래에 원탑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스 미디어를 비롯해 대형 장르시장 출판사들은 실기했다.

높아지는 작가 인세에 부담을 느껴 후려칠 생각만 했지 자체적으로 성장 발판을 마련해 버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광고 같은 프로모션을 통해서가 아닌 순전히 작가의 스토리로 버티는 장르시장에서 그들의 행태는 지탄을 받아 마땅했다.

전자책 시장은 미래에 분명 커진다.

막상 시장이 넓어지면서 출판사들보다 출판 관계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

편집장이나 편집부 출신의 인재들이 상당수 유통업체를 차렸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출판사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과거 매절로 후려쳤던 습관이 남아 있던 출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시장에 편승해 흘러갔다.

물론 출판사들은 미래에도 살아남는다.

신인들에게 보장 인세를 제공한다는 미끼를 제공하고 끌어들여 버텼다.

과거 맺었던 계약서를 바탕으로 저작권 사용을 확대했다.

자주 들르던 대여점이 사라지면서 관심을 갖게 됐던 시장.

그때는 관심만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다시 얻은 생의 시작이 결국 여기 있었다.

나이스 미디어는 그나마 나았다.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작가들 계약을 서운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소유한 2차 저작권도 중요합니다. 전자책 판매는 작가 7에 출판사 몫으로 3을 가져가는 게 옳습니다.”

“네? 7대 3요?”

“말도 안 되는…….”

작가 인세를 10%도 책정 안 하던 출판사 입장에서는 나의 말이 어이 없을 것이다.

특히 온라인 시장의 개념이 전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자책의 미래를 전혀 모르고 있고 또 준비도 안 됐다.

“아직은 작가들이 봉으로 보일 겁니다.”

“장 작가님!!!”

최웅천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기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작가들이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그들이 상상 속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밥 먹고 가끔 술도 한 잔 기울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인생입니다. 작가들의 흥이 살아나야 독자도 그 흥에 취해 이 시장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게 독자 유입으로 연결됩니다. 언제까지나 작가들의 유한한 흥을 짜서 출판사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시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겁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계속 뱉었다.

“끙…….”

큰소리치던 최웅천 사장도 말을 듣다 신음을 내뱉었다.

“그 시장이 오기도 전에 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계약 체결된 작가님들이 책을 안 내요. 돈이 급하면 인세 땡겨 가고……. 다섯 작품이나 밀린 작가님도 있습니다.”

듣고 있던 편집장이 하소연해 왔다.

과거 인터넷에 많이 돌던 이야기였다.

“장 작가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먹고 살아야죠. 깔린 선인세만 5억입니다. 직원들 월급에 사무실 월세, 인쇄소나 기타 업체도 우리만 보고 살아갑니다.”

최웅천 사장이 편집장 말에 하소연을 보탰다.

그야말로 지금은 버티는 시기.

“투자하겠습니다.”

“네! 투, 투자요!”

“나이스 미디어가 개인사업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법인으로 돌리십시오. 투자 자금은 1차로 20억. 지분은 49%를 요구합니다.”

“!!!”

20억이라는 말에 두 사람의 눈빛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세한 출판 시장에 20억은 큰 자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미래에 판이 커지면 수백억을 들고 이 판에 합류하려고 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신간도 출간하겠습니다.”

“네? 신간요?”

연신 놀라는 최웅천 사장.

“장르와 제목이…… 어떻게 됩니까?”

편집장이 두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퓨전 판타지,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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