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0
회귀의 전설
410장. 신들의 전장 (2)
신들의 전장? 이건 또 뭐야!
파아아앗!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렬한 빛이 터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눈앞의 광경.
낡은 성 대신 완벽하게 복원된 성이 웅장하게 눈앞에 나타났다.
들꽃이 만발한 봄날인 듯 내가 서 있는 구릉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었다.
동화 속에서나 그려지는 풍경이었다.
- 악귀와 결투가 진행됩니다.
아니 저기요. 제가 언제 결투를 받아들였다고…….
- 전쟁에 함께할 신들이 합류했습니다.
전쟁에 함께할 신?
신들의 전장이라는 곳은 나도 처음 보는 곳이다.
알림음이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고 연속 지 말만 했다.
불친절했다.
이계에서 전송되던 알파닥과는 다른 지구 버전이었다.
“아니 내가 아는 신들이 누가 있다고…….”
파아앗! 팟! 팟!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변 사방에서 연속 빛이 터졌다.
“오!”
“흐음…….”
“태산~.”
그리고 느닷없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들.
아니 당신들이 여기서 왜 나와!
면면이 내가 아는 신들이 분명했다.
주몽, 솔로몬 왕 그리고 강감찬 사자까지.
- 응원하는 신들도 감응합니다.
파아앗! 팟! 팟!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머~ 태산~.”
“태산아 삼촌 왔다~.”
“흐흐흐. 음악적 영감이 새록새록 돋는군.”
“여기는 명당 같은데…….”
“형! 오늘 파이팅!”
“풍경화 건지기에 그만이네~. 십장님 오랜만입니다.”
“통역 필요하신 분~ 싸게 모십니다.”
“오~ 나의 사랑 러시아의 숨결이여. 거친 들판에 핀 꽃이여. 참으로 어여쁘기도 하여라~,”
도대체 당신들이 왜!
크리스 반스데일부터 시작해 장금이 누님, 남사고와 박유봉, 진이 누님, 화선 삼촌, 음악신과 미술신들, 푸시킨을 비롯해 인연 맺은 온갖 신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러니까 이들이 나를 응원하는 신들이라는 거다.
“아니 다들 여긴 무슨 일로 왜…….”
“태산아, 누나가 춤은 춰도 쌈은 못하잖아~. 이따가 끝나고 화끈하게 놀아줄게~.”
쫙 달라붙은 블랙 가죽옷을 입은 진이 누님이 상황에 맞지 않게 윙크를 날렸다.
그럼에도 이 와중에 심장이 뛰었다.
“간식은 내가 팔아주마.”
장금이 누님은 요리도구를 꺼냈다.
요즘 출장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것 같다.
“내가 술 마시고는 쌈질하는 데 일가견이 있지만……. 요즘 술을 끊어서~. 큼.”
비겁한 화선이 삼촌은 뒤로 살짝 빼며 헛기침을 뱉었다.
술 취하면 쌍심지 키고 봬는 게 없다는 양반이 엄살이다.
“헤헤.”
블라디미르는 미성년자라 열외.
나머지 미술신과 음악신들도 도움이 안 되기 마찬가지였다.
영감에 빠져 다들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황홀경에 빠졌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대를 위한 교향곡을 만들어 주겠소! 제목은 ‘영웅 재림!’”
베토벤이 엄지척을 내밀었다.
“장 공자~. 오늘 그 쪽에 걸었소이다. 흐흐.”
크리스 반스데일이 음흉하게 웃었다.
지금 모습은 언어학자가 아니라 사기꾼에 가까웠다.
“걱정 말라! 모두 다 한 방에 죽여주마!”
응원자들과 달리 주몽 형님이 든든하게 옆에 섰다.
고구려의 건국 대왕답게 역시 포스가 남달랐다.
든든했다.
“썩을 러시아 악귀들 같으니라고! 내가 오늘 영업구역 침범 징계먹더라고 오랜만에 힘 좀 써주마!”
강감찬 장군의 전신인 저승사자 리차드 강이 팔을 걷었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두말 하면 입만 아팠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난 뒤에서 전략을 짜마.”
응? 전략?
“너와 난 그렇지 않아도 잘 엮여 있는 운명이다. 확실히 밀어주마!”
황금 갑옷을 착용한 솔로몬 왕은 보이는 것과 달리 영 미덥지 않았다.
검도 화려하기만 했지 장식품이나 진배없었다.
마법을 가르쳐 줄 당시와 다르게 허세가 아주 쩔었다.
숫자도 얼마 안 되는데 여기서 무슨 전략이 뭐가 필요하겠나.
“후우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이 상황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오랜만에 신들을 만나 반갑기는 하지만 좋아하기에 유쾌한 장소가 아니었다.
회귀해 너무 오래 산 것 같았다.
악귀인지 악신인지 모를 놈과 이제는 정말 맞짱 뜨게 생겼다.
이러다 퇴마 전문가로 업종을 바꿔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퇴마사로 업종 변경하시겠습니까?
이제 저 녀석도 전혀 믿음이 안 갔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도 나에게 약 팔려고 한다.
내가 원치 않아도 북 치고 장고 치고 알아서 벌어지는 판이었다.
“오는구나!”
저승사자 리차드 강이 한 곳을 노려봤다.
아직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
저승사자라서 귀신 냄새를 귀신같이 맡았다.
파앗! 파아앗! 파아앗!
전면 1킬로미터쯤에서 검은 광채가 연속으로 터졌다.
밝은 빛의 선신들과는 등장부터가 달랐다.
히이이잉 히이잉!
말들이 먼저 나타나며 힘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숫자는 대충 봐도 수백 마리.
말 등에 앉은 운게른과 그 뒤로 늘어선 부하들이 서부 시대 활극 악당처럼 총을 들고 웃음을 흘렸다.
하나같이 인간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입고 있는 옷과 풍기는 기운 모두가 다 검고 진득했다.
“흐흐흐. 포인트들이 굴러왔구나!”
운게른의 웃음이 귓가에 울렸다.
무림이라면 마교 장로 급 고수쯤 될 것으로 짐작됐다.
“우리가 죽으면 저 자식이 포인트 먹습니까?”
“신들의 전장에서는 한 방이다. 이긴 놈이 다 먹는다.”
솔로몬 왕이 뒤에서 대답했다.
“네??? 다 먹어요?”
이거 생각보다 판이 컸다.
운게른이 나를 노린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다시 신계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넌……. 육신을 빼앗길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것이다.”
리차드 강이 덧붙여 설명했다.
아니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중국 짱깨들과 붙었던 한 판보다 더 위험했다.
“죽여라! 그리고 빼앗아라! 저 간악한 선신 놈들을 모조리 죽여!!!”
운게른이 날 가리키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거기서 쏜다고 날아올까?
타아앙!
“피해!”
쇄애앳.
탕 소리와 함께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탄환.
뭐 이런 개 같은!
“저자는 이승에 원한이 많은 놈이다. 쌓은 악업이 모두 악신의 포인트가 됐다. 악한 만큼 강하다. 충분히 죽어서 명분 있는 악신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인간계에 미련이 남아 아직도 머물고 있다. 결코 만만히 볼 자가 아니다.”
“아니 살아생전 하고 싶은 짓 다 한 거 아닙니까?”
“악한 놈들이 세상에 미련이 더 남는 법이다.”
“아…….”
리차드 강의 설명에 할 말이 없었다.
죽이고 빼앗고 마음껏 살았던 놈이 세상에 미련이 더 남는다니.
더 착취하지 못한 것에 원한이 많은 것이리라.
“크하하하하! 어서 육신을 내 놓거라!”
탐욕스러운 놈이 약을 올렸다.
머리 뚜껑에서 스팀이 빡 치솟았다.
“제 포인트도 통하죠?”
“당연하다. 여기는 인간계가 아니라 신들의 전장. 네가 쌓은 카르마 포인트만큼 강해진다.”
“아공간 오픈!”
파앗.
다행히 이곳에서는 아공간이 열렸다.
어떤 법칙에 의해 굴러가는지 몰라도 내 건 챙길 수 있었다.
아공간에 들어찬 무기 중에서……. 큰 놈을 뽑아들었다.
“오! 그거 좋구나.”
솔로몬 대왕이 감탄을 터트렸다.
“하하. 뒤는 내가 맡아주지.”
주몽 형님이 웃었다.
“한창 때 내가 사용하던 녀석과 비슷하군.”
고려 장군들도 도끼를 종종 들었던 모양이다.
“오늘의 전략은…….”
솔로만 왕이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아닥 돌격!”
떨어지는 전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죽여라!”
운게른도 부하들을 향해 공격명령을 내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처음 참전하는 신들의 전장.
포인트 놓고 포인트 먹는 쫄깃한 한 방의 도박판.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을 한껏 열고 운게른과 그의 부하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
“어!”
“와아아아아아…….”
“오! 저런!”
응원 왔던 신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운게른이라는 미친 악귀를 공식적으로 처음 목도했다.
인간계에 머물며 떠나지 않는 악귀들이 막강하다는 건 모두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얽혀 있어 빼도 박도 못하고 장태산을 응원하러 왔다.
인간들만 인맥이 있는 게 아니었다.
신들 사이에서도 엄연히 신맥이 존재했다.
누가 봐도 신빨로 대성할 것 같은 장태산에게 눈도장 한 번은 찍어야하니 공식적인 자리를 빌려 자리했다.
그런 신들이 두 눈으로 지켜보는 광경.
그들도 신들의 전장에 발을 들인 건 처음이었다.
뻐어억!
주몽이 날린 화살에 운게른의 부하 두 놈의 머리통이 뚫렸다.
“신빨이 다르구만!”
“그래도 전직 왕이잖아. 포인트가 장난 아니지.”
남사고와 박유봉이 주몽의 활솜씨에 감탄했다.
“언니. 저 차사…… 대장군이지?”
“그래 한때 고려 국토를 수호한 유명한 분이란다.”
“멋있다. 저 가죽 바지 위로 치솟아 오른 탱탱한 힙과 허벅지 봐……. 터지겠어.”
“넌 아직도 그게 눈에 들어오니?”
“언니는 안 외롭수?”
“난 요리가 낭군이자 아들이다.”
“살아서도 그렇더니……. 더 늦기 전에 괜찮은 신선 하나 잡아요. 인간으로 환생해도 신생의 인연은 이어지는 법이니.”
“아직 취미 없다.”
대장금과 황진이는 사적인 대화를 시간을 흘려보냈다.
“요즘 나이트 물이 좋아. 언니 스타일도 있으니까 찾아와.”
“그건 그렇고……. 태산이 저 아이는 볼수록 무섭구나. 저 정도 악귀라면 악신 중에서도 중급이 넘어갈 것 같은데…….”
“내가 그래서 태산이를 사랑하잖아~.”
빠가가가각.
새파란 신기로 무장한 도끼가 악귀들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꾸에에에엑!”
대가리가 터지고 몸뚱이가 박살난 채 강제 지옥행 열차에 탑승한 운게른의 부하들.
“잘한다! 잘해! 다들 봤지? 내 조카가 한 성깔해~. 저 새끼들 오늘 다 강제 지옥환생각이다! 크크크.”
술을 끊었다던 취화선이 벌컥벌컥 술을 마시며 어깨를 폈다.
“역시 십장님 조카님입니다.”
“오! 악상이 팍팍 떠오릅니다! 악신과의 전투를 벌이는 인간! 오! 장엄하게 영웅스럽구나!”
“우리는 그림을 그립시다! 이건 다시 볼 수 없는 완벽한 전투입니다!”
예술 계열 신들도 신이 났다.
구경만 하고 있지만 명분이 있는 응원은 공짜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볼 때는 한없이 착한 인간 장태산.
그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
주몽의 화살에 맞거나 저승사자 리처드 강이 휘두른 검에 맞아 저승으로 사라지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무리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는 장태산.
퍼버버버벙!
앞을 막아서는 악귀들의 육신을 도끼로 찍어 버렸다.
한 방에 한 놈씩 아작이 났다.
이를 지켜보는 신들은 괴력이 넘치는 장태산의 강렬한 몸놀림에 눈을 떼지 못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케게게겍.”
악귀들이 신력에 터지며 영혼체가 지옥으로 끌려갔다.
도끼에 난도질 당할 때마다 닫혀 있던 지옥의 입이 열리며 그들을 한입에 삼켰다.
신들도 그 장관을 두 눈으로 보며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어느새 난리였던 전투가 조용해지고 악귀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응원 온 모든 신들의 눈이 악귀와 인간 장태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