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9화 (408/1,284)

 # 409

회귀의 전설

409장. 신들의 전장 (1)

“어떻게 됐나? 연락은?”

천지회의 지단 단주 리장창은 속이 타들어 갔다.

천지회 고수들이 파견된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놈이 제거되는 건 당연했다.

러시아도 나서지 않았다.

불과 몇 십분 전까지 인공위성 전화를 통해 암호 통화가 됐다.

놈이 거주하는 사하 공화국 내 성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였다.

부득이 그곳에 정찰위성은 띄우지 못했다.

아직 섬세한 관측 기술도 없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군사 위성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아직 없습니다.”

“아직?”

벌컬벌컥.

목이 탄 리장창은 연신 냉수를 들이켰다.

평소에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그 놈과 얽힌 사건들에는 속이 탔다.

‘이번에는 반드시 없앨 수 있다! 아니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특급은 팀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살수 팀을 조직해 보냈다.

100명의 A급 요원을 육성하는 기간은 최소 20년이라는 시간과 헤아릴 수 없는 자금이 소요됐다.

그런 그들이 실패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리장창은 속이 탔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되는 동안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리장창이 자신도 모르게 부정했다.

극심한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다.

띠룽 띠루랑~♫.

최근 교체한 리장창의 아이펀이 요즘 최신 유행하는 중국 노래를 토해냈다.

리장창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이 됐다.

모르는 번호였다.

“누굽니까?”

- 하하. 리 대협. 잘 지내셨습니까.

처음 들어보는 외국인이 중국어로 어설프게 아는 척 인사를 해왔다.

“누구?”

- 오늘 보내주신 귀한 선물 잘 받았다고 보스가 고마워하십니다. 그 보답은 영국을 경유해 보내드렸습니다.

“누구냐니까!”

리장창의 개인 전화번호는 극비로 관리됐다.

- 흐흐. 그건 선물을 받아보면 알 겁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로 전화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뚝.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끊겨버린 핸드폰 통화.

“보스라면……. 러시아?”

찝찝한 기분만 남기고 끊긴 전화에 복잡한 마음이 된 리장창.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해킹 당했음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자행할 자들은 러시아밖에 없었다.

“다, 단주님.”

한쪽에서 급한 연락을 받은 듯 통화를 하던 제갈유량이 당황하며 리장창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예민하게 날이 선 목소리로 묻는 리장창.

“……영국에 파견되어 있던 인단 소속 요원 세 명이……. 방금 전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상대 사고 차량 운전자들은 러시아 출신 여행자들이라고 합니다.”

“!!!”

러시아가 보낸 경고라는 걸 리장창은 확실히 깨달았다.

명분을 놓쳤다.

홍콩에서 있었던 장태산 구출 작전에 러시아가 개입되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 사하 공화국 사건은 중국 짓이라는 게 너무 명백했다.

그 사건에 대한 경고였다.

상대방 요원들의 목숨을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되돌려 보냈다.

‘……놈만 없앨 수 있다면!’

이를 악물고 리장창은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러시아 요원들을 죽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때가 적당하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명분이 약하면 자칫 큰 사건으로 번져 화를 입게 된다.

세계 각국 첩보요원들도 오늘 사건에 대해 다 알게 될 것이다.

괜히 그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 첩보 전쟁 시절처럼 1년에 수백 명씩 죽어나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리장창의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제갈유량이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뭐라고!”

통화를 하자마자 다급하게 소리치는 제갈유량.

“무슨 일이야!”

리장창이 서둘러 물었다.

“다, 단주님.”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제갈유량.

“어떻게 됐냐고!”

장태산에 대한 일이라는 걸 리장창은 알았다.

“……실패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생명장치에서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

보고에 순간 몸이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쓰러지는 리장창.

지끈거리며 밀려오는 강렬한 두통에 눈앞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했다.

***

“누구냐 물었습니다!”

검을 든 채 어둠 속을 노려봤다.

끈적끈적한 기운이 분명 그곳에 가득했다.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의 느낌도 아니다.

“크크크크…….”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어둠 속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악독하고 사악한 악당의 전형적인 웃음 소리였다.

“누구냐니까…….”

대번에 반말이 나갔다.

좋은 뜻으로 찾아온 것 같지 않았다.

짝짝짝짝짝.

갑자기 들려오는 박수 소리.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짙은 강한 검은빛과 함께 공간이 열렸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등장한 한 남자.

고풍스러운 군복을 입고 있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과 검이 싸한 분위기를 더했다.

“오랜만에 겁도 없이 나를 부르는 인간을 보는군……. 크크.”

억양이 강한 옛 러시아 말투를 사용했다.

키는 작았지만 안광이 시퍼렜다.

광기와 살기 같은 거친 기운이 그에게서 풍겨 나왔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놈은 아니었다.

“누구냐…… 넌.”

“이곳의 주인이다.”

놈의 말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귀신으로 치면 아주 나쁜 귀신이 분명했다.

놈이 말할 때마다 주변에서 일렁이는 어둠의 기운이 강하게 요동쳤다.

짱개들을 정리하고 난 직후 나타난 귀신.

“로만 표도로비치 폰 운게른 시테른베르크~ 남작.”

뭔 이름이 이렇게 길어?

전생 귀족이었던 게 분명한 귀신은 장황하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그건 그렇고, 운게른…….

“몽골의 전쟁 살귀, 운게른?”

“오! 날 아는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근대 러시아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이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전쟁에 참전하고 싶어 군대에 간 미친 귀족이었다.

끓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보드카를 마시고 매일 밤 러시아 룰렛 게임을 벌였다고 했다.

심심하면 부하들과 결투를 벌일 정도로 다혈질이었고 그때 뇌를 다쳐 평생 광인으로 살았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들의 목을 베어 소령으로 진급했다.

적군과 백군의 전쟁 당시에는 모시던 상관을 따라 백군이 됐다.

그 후 승진을 더 해 권력을 잡게 됐고 종국에는 반쯤 미쳤다.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 총알을 반절 충전한 총을 난사해 무작위로 사살했다.

자신의 총알에 맞아 죽은 자는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라고 말했다는 미치광이.

살아 있는 동안 운게른은 신처럼 행동했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중국군을 몰아내고 몽골을 점령했다.

물론 똥개는 제 버릇 못 끊는 법.

길가는 무모한 자들을 상대로 살인을 자행하고 여성들을 강간했다.

그랬던 그도 결국에는 백군의 몰락과 함께 끝났다.

한 생에 홀로 죽인 인간 숫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였다.

“놀랄 것 없다. 이 성도 과거 내 것들 중에 하나였지. 흐흐흐. 건방을 떨던 백작이라는 귀족놈을 잡아 껍질을 벗기고 늑대 먹이로 던져줬다. 계집들은 모두 창녀가 됐고~.”

살아서 광기에 미친 자는 죽어 귀신이 되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다.

악행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나라 저승사자는 뭐하는지 모르겠다.

저런 미친 귀신이 지옥에 있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니는 게 이상했다.

“저승사자? 크크크. 내가 쌓은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넘쳐흘러. 그깟 사자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악신 중에서도 상급 악신이 될 놈이었다.

아직 무슨 미련이 남아 인간계에 남아 있는 게 분명햇다.

“날 찾아 온 이유는?”

“네가 날 깨웠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이곳은 내가 잠자는 대지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짜릿한 죽음을 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주 죽여줬다! 너도 느끼지 않았나?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숨통에 박힌 검에서 느껴지는 살아 있는 맥박의 마지막 리듬을~.”

눈에서 흐르는 광기가 더 진해졌다.

이곳은 놈이 죽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먼 곳이다.

절대 그의 대지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박령 귀신은 아닌 것 같았다.

“궁금해 할 것 없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사랑하는 종들이 뼈를 가루 내어 이 땅에 뿌렸다. 이곳에서 난 부활과 천년 제국을 꿈꿨다. 크하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는 귀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미친 새끼.”

뚝.

놈의 웃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내놔라.”

상 또라이였다.

갑자기 나한테 맡겨 놓은 물건이 있는 듯 내놓으란다.

“아닥하고 있던 데로 꺼져줄래?”

나에게 살인의 쾌감 같은 것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사람인 이상 마음에 상처는 남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적 양심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나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내놔라……. 나의 종아~ 내놔…….”

놈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곳은 신계가 아니었다.

이런 지독한 귀신은 처음 만났다.

대부분 착한 귀신들이 자신의 후손들 곁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거나 살인자 곁에 남아 한을 풀고자 하는 경우가 다였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놈은 예상치도 못한 데다 지독하게 강한 기운을 뿌렸다.

화르르르르르르.

놈이 다가올 때마다 쌓여 있던 눈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처음 보는 괴사.

태릉의 왕후나 왕을 내세워도 잽이 안 됐다.

물질세계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다.

저승사자가 두렵지 않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내놔라……. 내놔…….”

저건 또 뭐야!

운게른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짱개 살수들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어느새 어둠에 잠긴 나의 주변을 포위한 채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들.

반쯤 썩은 송장들과 뼈다귀만 남은 앙상한 귀신들이 총과 온갖 무기를 들고 다가왔다.

운게른을 신처럼 여겼다는 그의 부하들인 것 같았다.

빨간 눈깔이 더욱 붉게 빛났다.

지옥에서 출정 나온 병사들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뭘 내놓으란 거야?

“몰라서 묻나……. 네 육신! 그것을 내놔라.”

“내 몸? 왜?”

“너의 몸을 내가 쓰겠다. 현재 인간 중에 가장 강한 자……. 너. 네 몸을 위대한 역사를 위해 바쳐라~. 너를 통해 나는 인류를 정복하겠다~. 크크크크크크크.”

완전 미친 잡귀가 확실했다.

목적이 나의 몸을 강탈하려는 운게른.

“운게른. 너 죽다 살아는 봤냐?”

“???”

가까이 다가오다 나의 물음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의 운게른.

“새끼! 죽어서 다시 태어나보지도 못한 놈이 어디서 어설픈 개소리야~.”

“뭐라고? 미천한 인간 놈이!”

“됐고. 말 길게 할 시간 없어. 바쁜데 꺼져.”

“크크크. 네놈의 영혼을 강탈하겠다. 아주 지랄 같은 그 성격이 마음에 든다~.”

이빨도 이끼 낀 듯 푸르딩딩한 놈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웃었다.

“닥쳐 새끼야. 나 혼자 챙겨먹기도 바쁜 세상이야. 가서 지옥이나 정복해~.”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닌 밤중에 지랄발광을 하는 운게른.

파스스스스스슷.

놈의 몸뚱이에서 새파랗고 빨간 광기와 살육의 기운이 거침없이 뿜어져 나왔다.

살짝 갈등 되는 순간이었다.

인간이나 신분이 확실한 신과 다른 악귀와의 한판.

순간의 선택이 당분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또 내 힘으로 상대가 가능할지 가늠이 안 됐다.

- 악신과 전투를 벌이겠습니까?

뭐? 악신과의 전투?

- 신들의 전장에 입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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