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6화 (395/1,284)

 # 396

회귀의 전설

396장. 땅 장사란 이런 것이다. (2)

“네? 계속 장사해도 된다고요?”

“조 사장 운이 좋았어. 이번에 이곳을 인수하신 분이 자비심이 넘쳐. 보증금은 그대로에 월세를 반절이나 깎아 줬어. 계약도 다시 5년 갱신이야.”

“아!”

장주강에 위치한 카페 주인 조동영은 믿기지 않는 사실에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거만하기 이를 데 없던 건물주가 큰 사건에 휘말렸다.

연일 TV에 언급되는가 싶더니 급기야 아들도 3층에서 쫓겨났다.

그 여파가 세입자인 자신에게도 미칠 거라는 생각에 몇 날 며칠 잠을 못 잤다.

혹 경매에 들어가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을 찾을 길이 막막했다.

가족들의 피 같은 돈의 전부인 1억이 고스란히 묶여 있었다.

언제나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자의 처지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토막잠을 자는 것도 불가능했다.

건물주가 바뀌면 대부분 쫓겨나가는 게 이곳 상권 관례였다.

점점 더 찾는 손님이 많아져 월세와 권리금이 올랐다.

주인도 내년 갱신 때 월세 200을 더 올리겠다고 통보해 온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월세와 전기세, 알바비를 주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어라 일했지만 겨우 먹고 살 만큼만 손에 떨어졌다.

그것도 버젓이 주인과 한 건물에 동거하는 모양이어서 서러움은 더했다.

꼭 현대판 솔거 노비 신세였다.

그런데 지난 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이더니 대박이 터졌다.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어머니.

아무래도 고단해 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침 가게 문을 열자마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과거 이곳을 연결해 줬던 행복부동산 유길태 사장이었다.

그가 웃는 얼굴로 생각지도 못한, 꿈 속 어머니의 웃음에 담겼던 선물을 가져왔다.

“단, 조건이 있어.”

“어, 어떤 조건요?”

이 정도 파급적인 조건이 공짜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커피 맛과 기타 식품들 품질 유지하기.”

“네? 그게 다에요?”

“응. 건물주 요구 사항은 그게 끝이야. 여기 빨리 사인해. 건물주 마음 바뀌기 전에~”

‘도대체 누가!’

월세를 내려주는 현대판 천사 같은 건물주.

부동산 건물명의자는 여성의 이름이었다.

조동영은 떨리는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그 동안 개 같은 건물주 만나서 고생했어. 이제 마음 놓고 돈 벌어. 셋째 임신한 자네 와이프도 집에서 쉬어야지.”

“유 사장님…. 흐윽.”

조동영은 자신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최근 임신한 아내는 몇 푼 벌고자 유치원 선생님으로 다시 재취업해 출근을 하는 중이었다.

노산이라 얼굴이 수시로 붓는 와중에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

생활의 고달픔보다 뱃속 아이에 대한 사랑이 컸던, 사랑하는 와이프.

하늘이 주신 선물이 분명했다.

살아오면서 양심만은 속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

본의 아니게 대학교 졸업 전에 아기를 갖게 돼 일찍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어렵게 모은 돈으로 알바 경력을 살려 커피숍을 계약했다.

당시만 해도 이곳 커피거리 상권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일궈냈다.

와이프와 아이들이 먹어도 안전할 커피와 먹거리를 만들었다.

그 자부심으로 버텼던 지난 세월.

악독한 건물주와 그의 아들 밑에서 맘 고생했던 아픔이 깡그리 소멸됐다.

“자넨 복 받은 겨. 열심히 살고…. 돈 많이 벌어.”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는 내가 아니라 여기 건물주에게 해야지.”

“넵! 제가…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아직 얼굴도 못 본 건물주.

조동영은 진심으로 건물주에게 감사함과 축복을 빌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획득했습니다.

청소만 했다 하면 이렇게 포인트가 터졌다.

장주시 적폐들을 싹 쓸어 분리 수거했다.

감옥 보낼 놈은 보내고, 쫒아낼 것들은 멀리 내다 버렸다.

방금 전 최대식 일가 건이 마무리 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멸치 잡는 데 회칼을 쓴 꼴이다.

새끼 악마들을 상대함에 최선을 다했다.

최대식은 알거지가 되어 버스를 타고 장주시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아버지 명의 리스 차도 빼앗았다.

씨큐리티 경호원들을 동원해 적당한 협박까지 선물했다.

장주시에서 손 큰 양아치 노릇을 했지만 아직 나이가 어렸다.

그렇게 도망쳤으니 평생 장주시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다.

개과천선은 기대하지 않았다.

머리에 상한 우동사리만 들어 있는 놈이 그렇게 될 리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심장에 양심이라는 걸 키우지 않는 놈이다.

앞으로 최대식은 세상이라는 지옥을 제대로 맛보게 될 것이다.

최대식을 키워낸 부모들은 수감 중이며 그들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

가격을 후려쳐 세금으로 나올 금액만 남겼다.

어머니 여유 자금으로 계약했다.

3층은 그림 그리기 딱 좋은 장소였다.

커피숍 사장님께 선물을 남겼다.

최대식에게 그 동안 당했던 서러움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상이었다.

을도 갑처럼 살 수 있는 세상.

내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법에 맡겼다가는 한 세월 갈 게 뻔했다.

그리고 막 도착한 곳.

“자네는 정체가 뭔가?”

윤용곤 대목장이 경외의 시선으로 내 정체를 물었다.

“사업하는 학생입니다.”

“아니, 그거 말고 도대체 모르는 게 뭐냐고? 어떻게 나보다 한국 건축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 수 있냐는 말일세! 허어….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더니…. 내 요즘 자네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네.”

봄부터 시작된 내 궁전은 지하 공사가 끝나고 이제 지상 기둥이 세워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거대한 공사장.

오고가는 인부들 숫자만 해도 상당했다.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마을 옆에 위치한 거대한 공터.

과거 밭과 논이었던 곳이 성벽으로 둘러졌다.

야적장에는 캐나다 대왕송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나무와 대리석들이 수북이 쌓였다.

국산은 얼마 남지도 않아 구입할 수가 없었다.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나만의 왕국.

기단이 쌓인 곳이 많았다.

음양, 구궁과 팔괘진법에 따라 방위를 설정하고 건물이 들어섰다.

대목장도 모르는 전직 대목장 신선들의 노하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그러니 대목장이 놀라는 것이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왕이 되고 싶은가?”

“왕이요?”

“지금 건축되고 있는 것들은 궁궐이네. 그리고 그 주인은 임금이고.”

대목장의 눈에는 확신이 들어 차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왕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왕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을 꿈꿨다.

신들이 몰아주는 재능을 낭비하는 것도 죄다.

“동양에서 방위는 거주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네. 무덤이 아닌 이상 사람의 평안과 발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지.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은 북향을 기준으로 삼아 원을 그려 건물을 짓게 되지…. 우측은 양의 건물이 좌측은 음의 건물이 들어서게 돼 있어. 동시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원리도 담겨져 있네. 오상(五常)의 큰 원칙은 일반 집에서는 볼 수 없지. 한양 도성의 흥인지문이나 숭례문, 돈의문과 같은 건축 원리에 스며들어가 있네. 그런데…. 이곳에서도 그걸 보았네. 왕이 거주했던 조선 왕궁처럼 말이야!”

대목장의 명성은 거저 얻는 게 아니다.

귀신 같이 감춰져 있는 비밀을 알아챘다.

“특히 군주는 남쪽 터에 앉는다는 군주남면이치가 곳곳에 숨어 있어. 정말 왕을 꿈꾸지 않는가?”

“주역 공부를 했습니다. 설괘전에서 군주남면의 이치를 알아 접목시켰습니다.”

“허허. 나도 주역 공부를 했네. 그게 안다고 접목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 음양의 이치, 땅의 지기와 산세까지 살필 줄 알아야 해.”

대목장 윤용곤은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를 보고 싱겁게 웃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내기를 했습니다. 회사 건물 중 어느 쪽이 더 상대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지 하는 내기입니다.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건물을 건축하고 싶었습니다. 대목장 어르신…. 이곳은 그저 제 삶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대목장 어르신께서 보고자 하면 그게 정답이고 다른 이가 다르게 해석하면 그것 또한 답이 아니겠습니까?”

알았으면 그냥 조용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이곳에 궁전을 짓는다고 해서 내가 왕이 될 것도 아니다.

“에잉~ 고약한 젊은이로세.”

고개를 흔드는 대목장.

더 이상 물어봤자 답이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오늘 막걸리 대접하겠습니다.”

“그걸로 돼?”

“돼지고기 수육에 김장김치까지 곁들이면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수육에 김장김치?”

대목장 눈이 흔들렸다.

그 동안 고생하신 것에 비하면 소소했다.

최고 대우를 한다고 했지만 인간적인 교감은 드물었다.

“제 어머님이 김장을 끝냈다고 합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천상의 맛입니다.”

엄마 김장김치는 감히 장주시에서 최고라고 말하고 싶었다.

각종 유기농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시원하게 내린 젓갈로 담가진 김장 김치.

한 번 맛보면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당 음식 솜씨가 훌륭하지….”

윤용곤 대목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공사 중 엄마가 식사를 대접했다고 했다.

“가시지요. 내일 멀리 출장을 갑니다. 그 전에 코가 삐뚤어지게 대접하겠습니다.”

“다른 애들도 부를 거야~”

“당연하죠.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내 말에 시원하게 미소 짓는 대목장.

“그래! 왕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하랴. 그냥 죽여주는 건물을 선사해 주마!”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런데 비밀 지하는 왜 그렇게 깊게 파는 것이냐?”

“실험실입니다.”

“그래?”

대목장에게만 제출된 비밀 지하실.

내가 거주하는 공간 아래에 규모가 상당한 공간을 비워뒀다.

오직 나만의 비밀 공간.

미래를 대비한 또 다른 포석이었다.

***

“준비가 끝났습니다. 내리십시오.”

여자 승무원이 웃으며 공손하게 자세를 잡았다.

편안하게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땅에 도착했다.

대형 자가용 여객기를 탔다.

사하 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 공항.

수도라고 해봐야 오래된 회색 건물들 밖에 없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었다.

차가운 시베리아의 바람이 거칠게 뺨을 순식간에 얼렸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에 위치한 사하 공화국.

한국의 30배 정도의 넓이지만 인구는 100만 명이 안 됐다.

오는 동안 봤던 건 새하얀 설원, 강, 호수 정도가 다였다.

삭막한 러시아의 옛 도시.

공항은 긴급 제설로 가동이 됐다.

“수고했습니다.”

“아닙니다.”

승무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열린 문으로 내렸다.

그곳에 선글라스를 끼고 두툼한 외투를 걸친 덩치 큰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러시아 깡패로 보이는 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를 영접했다.

비행기 아래 대기하고 있던 사륜 구동 대형 지프에 올라탔다.

공항의 비상 출구로 바로 빠져나갔다.

사방은 특수 부대원들이 철통같이 경호를 서고 있었다.

도로 사정은 좋지 않았다.

30여 분쯤 달려 도착한 곳에 고풍스런 저택이 모습을 보였다.

이동하는 도중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세 대의 차가 호위하듯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저택.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경호원도 없이 찾아온 나를 중년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안내했다.

저택 주변은 수십 명에 달하는 경호원들이 곳곳에서 눈을 빛냈다.

모두 다 최고의 특수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확 느껴졌다.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에서 잘 마른 장작이 뻘겋게 불타올랐다.

창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신장은 크지 않았지만 짧은 회금발의 머리칼을 소유한 사내의 등판은 넓었다.

뒷모습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상남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러시아어로 인사를 건넸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낯익은 얼굴.

러시아의 차르.

그가 나를 향해 씨익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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