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3화 (392/1,284)

 # 393

회귀의 전설

393장. 지옥의 환영식 (1)

케이크를 먹고 있는 오창성을 향해 대놓고 개호구라며 비아냥을 떠는 최대식.

‘분위기 왜 이래?’

“…….”

친구들의 리액션이 없었다.

평소라면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거들고 남았을 놈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언제나 모임이 있을 때면 최대식 자신이 차지하던 중앙 자리.

그곳에 처음 보는 놈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어이~ 친구~. 오랜만에 보는데 개 싸가지는 여전하네~.”

“뭐, 뭐라고? 너 뭐하는 새끼야!”

학교 다닐 때부터 귀족처럼 살던 최대식의 인상이 곧바로 구겨졌다.

누구 하나 이렇게 대놓고 면전에서 욕하는 놈이 없었다.

거친 성질에 큰소리로 욕이 터졌다.

주변 눈치도 보지 않았다.

앉아 있던 손님들 인상이 찌푸려졌다.

카페 세입자 사장과 알바생들이 난처한 표정으로 최대식의 눈치를 봤다.

“성질머리 지랄인 건 여전하네. 적당히 소란 피워, 새끼야. 무식한 티 내지 말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놈이 비웃듯 피식거리며 이죽거렸다.

하는 짓이 두려울 게 없는 놈이었다.

‘이 새끼 뭐야?’

친구들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모두 벙어리가 된 듯 시선을 회피했다.

최대식의 인내 게이지가 바닥을 찍었다.

자리를 뺏어 앉은 놈이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게 느껴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최고급 명품으로 도배를 했다.

반면 최대식의 스타일은 냉정하게 말해 촌스러웠다.

장주시에서나 먹힐 스타일이지 놈 앞에서는 참 부끄러운 행색이 아닐 수 없었다.

“꼴통~ 대학은 다니냐?”

“X발! 닥쳐!!!”

최대식의 아픈 손가락이 바로 대학 진학이었다.

지방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실력도 안 됐다.

학교 시절 성적은 1, 2등을 찍었다.

문제는 뒤에서 1, 2등이었다는 것이다.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챙겼다.

그래서 더 부모님이 일찍 군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유일한 약점이라 친구들 누구도 학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너 누구야! 왜 여기 있는 거야!”

“나 몰라? 헐~ 이거 실망인데? 초등학교 때는 이렇게까지 멍청하지 않았는데…. 훗.”

놈이 사악한 눈으로 웃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정체가 뭐야!”

급기야 최대식의 뚜껑이 열렸다.

성질 같아서는 한 대 먹이고 싶었지만 행색에 밀려 참았다.

그리고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친구도 몰라보고…. 벌써 조기 치매냐?”

“치, 친구?”

‘누구야? 동창이야?’

최대식은 아무리 봐도 건방진 놈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도무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식아…. 태산이야.”

그때 한 녀석이 조용히 놈의 이름을 알려왔다.

“태산이?”

“찐따 장태산.”

“!!!”

찐따 장태산이라는 말에 최대식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과거 기억 속의 찐따 모습은 지금 놈의 모습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에서 전학 왔지만 기죽고 키가 작던 빼빼 마른 찐따의 흔적은 없었다.

한눈에 봐도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상류 레벨이었다.

최대식도 장주시에서나 먹히는 자신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지방에서는 어깨뽕 하고 다니지만 서울에서는 그저 그런 한 인간일 뿐이다.

전에 뭣 모르고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진짜 부자들을 본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수십 억대 규모 건물의 카페 사장이지만 무늬만 그럴싸했다.

아버지가 아들인 최대식을 못 믿고 가압류를 걸어 놨다.

세는 받아봐야 겨우 월 800만 원 정도였다.

이게 최대식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장태산은 달라 보였다.

그 때 봤던 강남 상류층들이 풍기는 포스가 느껴졌다.

아니, 여유로움과 리치들만 풍기는 냄새 그 이상의 향취가 느껴졌다.

‘말도 안 돼. 저 새끼가 찌질이 장태산이란 말이야?’

최대식은 다시 한 번 버젓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장태산을 살폈다.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여유롭게 웃고 있는 놈은 진짜 그 녀석이 맞았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잘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앉아.”

장태산이 중앙에서 가장 먼 끝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치 오늘 이 자리를 계획한 주선자처럼 말이다.

“너…!”

최대식이 손가락으로 장태산을 가리켰다.

몰라볼 만큼 변했지만 과거 자신에게 얻어맞던 장태산이라는 사실을 알자 호기가 일었다.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통과했던 망한 집구석 아들이었다.

그런 놈이 으스대는 꼴을 볼 수 없었다.

특히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처럼 구는 모습을 최대식은 인정할 수 없었다.

“손가락 접어라. 부러뜨려 놓기 전에~.”

장태산이 웃으며 말했다.

얼굴 표정의 미소는 부드럽기가 휘핑크림 같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사나운 맹수의 것이었다.

최대식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접고 손을 내렸다.

군대에서 봤던 하늘같던 사단장의 무서운 기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내가 쫀 거야?’

“어디서 개수작이야!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개새끼!”

최대식은 퍼뜩 쫄았던 마음에서 깨어나며 장태산에게 강하게 한 마디 뱉었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과거 한 주먹거리도 안 되었던 놈에게 치욕스러운 모욕을 당했다.

그것도 그간 왕처럼 군림하던 동창 모임에서 말이다.

“지랄 똥개 같은 성질머리는 여전하네. 크크.”

장태산이 고개를 저으며 비웃었다.

완전히 최대식을 무시하는 말투였다.

“너 이 새끼 내가 가만 둘 줄 알아!”

“왜 깡패라도 부르게?”

“그래, 새꺄. 장주시에서 너 하나쯤 손봐주는 건 일도 아냐, 임마!”

최대식의 아버지가 지역 유지였다.

새로 장주시에 터를 잡은 신흥 조폭들과도 호형호제하는 하는 사이였다.

세상이 변해도 아직 지역에서 힘을 쓰려면 주먹과 통해야 했다.

“와아…. 무서워라~.”

장태산이 장난스럽게 몸을 웅크렸다.

누가 봐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몸짓.

“뭣들 해! 저 새끼 끌어내!”

최대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그러나 친구 녀석들 누구 하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애들 다 쫄았어. 그러니까 그만 해, 임마. 쟤들이 니 똘마니냐?”

친구들이 반응하지 않자 장태산이 대놓고 이죽거렸다.

“이이!”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오창성이 케이크와 쿠키를 먹다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가슴 뻥 뚫린 듯한 웃음이었다.

“닥쳐!”

“너나 닥치세요~. 크크.”

오창성도 달리는 말 등에 몸을 실었다.

지난 세월 당했던 모욕을 장태산 덕분에 원 없이 풀고 있었다.

“야! 이 X새끼들이 누구를 호구로 보나! 꺼져! 여기 내….”

“네 가게 아니잖아? 주인분 저기 계시잖아~.”

오창성이 냉정한 눈빛으로 최대식의 말을 잘랐다.

“그게 그거지! 여기 내 건물이라고!!!”

최대식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목 좋은 건물 주인의 포효에 세입자 주인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세입자의 현실적인 서러움이었다.

자칫 건물주의 기분이 나쁘면 쫓겨날 수도 있다.

계약 기간이 이제 1년 남았다.

그 동안 질 좋은 원두와 유기농 재료로 쿠키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부수입을 올려놓았다.

건물 위치도 좋았지만 커피숍 사장의 정성이 몇 배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겨우 본전을 찾는 장사를 했다.

커피숍 인테리어와 투자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권리금을 받아야 손해가 안 났다.

길길이 날뛰는 최대식의 고함에도 커피숍 사장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최대식이 군 제대를 하고 난 뒤 이런 상황은 자주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불시에 나타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긴 시간 큰 소리로 떠들었다.

요즘 그 일로 단골손님들이 떨어져 나갔다.

지금도 몇몇 손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갔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자리가 건물주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었다.

그저 빨리 이 상황이 종료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 여기가 네 건물이었어?”

“그래, 이 새끼야! 옛날부터 X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건방을 떨어!”

장태산의 놀란 표정에 최대식은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질렀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 흐흐흐.’

최대식은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이 나이 때 수십억 가는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장주시에서 드물었다.

부모에게 배운 게 돈질 밖에 없어 그게 좀 아쉬웠다.

“세금은 냈냐?”

“…무, 무슨 세금!”

“증여세~.”

증여세라는 말에 최대식은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멍청해도 증여세라는 말은 알았다.

아버지가 증여세 포탈을 위해 수많은 불법을 동원해 건물을 자신에게 넘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 너 내가 뭐하는지 잘 모르는구나. 미안하다. 먼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나 한국대 법학과 재학 중이다. 그리고 이번에 사법시험 2차에도 붙었고. 안 믿기면 인터넷으로 검색해봐~.”

“…….”

최대식을 비롯해 오창성과 동창생들이 장태산의 말에 놀라 눈만 껌벅거렸다.

말로만 듣던 한국대 법대생.

장주 고등학교 앞에 현수막이 나붙었지만 여기 있는 놈들 모두 장주 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라 몰랐다.

“와아아아! 장태산 너 뭐냐? 진짜 한국대생이었어?”

오창성이 탄성을 터트리며 다시 물었다.

“증여세 냈냐고~”

“…뭔 개소리야!”

최대식이 흥분해 목소리 톤을 더 높였다.

“이 자식은 입만 열면 저급한 말뿐이야. 주둥이에 걸레를 물고 태어났냐?”

‘X발!’

최대식은 아버지를 닮아 눈치가 빨랐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사과해라.”

갑자기 장태산이 사과를 요구했다.

“뭐, 뭘!”

“나와 오창성에게 했던 과거 모든 악행들에 대해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 그럼…. 친구라는 이름으로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마.”

진심인 듯 담담하게 말하는 장태산.

눈빛으로 보아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최대식의 눈동자가 심각하게 흔들렸다.

갈등이 극에 달했다.

만약 여기서 사과하면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쫙 날 것이다.

호구와 찐따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병신이 되는 것이다.

다시는 지금껏 해 왔던 왕 노릇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여러모로 상황이 귀찮아질 것 같았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장태산이 한국대 법대생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됐어! 여차하면…. 아버지한테 말하면 돼!’

수백 억대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아버지였다.

시장과 시의원들, 장주시 고위 공무원들이 서로 진하게 얽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흥 조직도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운 후배가 보스로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장주시에서 최대식은 귀족의 아들이었다.

“됐어! 새꺄! 어디서 돼먹지도 않은 개소리야! 사과? X까는 소리 마 새끼야~.”

최대식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으며 양아치처럼 건방을 떨었다.

“후회할 텐데….”

“크크크크. 후회는 네가 할 거야 임마. 오늘 이 순간부터 넌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쌍둥이 여동생들 잘 컸냐? 옛날부터 걔들이 좀 예뻤는데~”

최대식이 장태산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잡고 신경을 건들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장태산의 두 여동생을 넌지시 입에 올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발육이 남달랐던 쌍둥이들이었다.

“환영한다. 최대식.”

“뭘 환영해. 이 똘아이 새끼야!”

“…네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온 것을.”

갑자기 환하게 웃는 장태산.

‘이 새끼…. 뭐야!’

그때서야 최대식은 똑똑히 봤다.

장태산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차가운 살기.

최대식은 자신도 모르게 장태산의 눈을 피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저절로 몸이 덜덜 떨렸다.

“창성아 가자.”

“그래! 친구~.”

쿠키를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오창성과 장태산.

두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부르르릉.

그리고 들려오는 굵은 배기통음.

최대식의 하얀색 BNW 옆에 주차돼 있던 슈퍼카에 시동이 걸렸다.

“허업…. 저거 장태산 차야?”

“뭐야…. 에스틴 마린 아냐?”

“와아아아아아. 저거 최소 10억은 나가겠지?”

‘이, 이게 뭐야!’

최대식은 멍하니 멀어져 가는 에스틴 마린을 바라보며 얼굴을 구겼다.

뭔지 모르지만 순간의 선택이 불러온,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온몸에 느껴졌다.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전쟁.

최대식은 온몸을 감싼 한기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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