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2
회귀의 전설
392장. 개 버릇 남 못주는 새끼 (2)
“태산아…. 진짜 죽인다!”
오창성은 조수석에 앉아 감탄만 터트렸다.
에스틴 마린은 청춘들에게 꿈의 슈퍼카 중 하나였다.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와 품격이 다른, 에스틴 마린만의 멋이 있었다.
묵직하게 울리는 엔진음과 경쾌하게 움직이는 핸들링이 몸에 그대로 전달됐다.
엄청나게 빠른 응답성이었다.
다만 장주시에서는 달릴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슈퍼카만의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여자 친구하고 데이트 하고 싶으면 말해라. 빌려주마.”
“정말?”
“우린 친구잖아~.”
“오오오! 태산이 너 진짜….”
오창성이 감탄사를 남발했다.
“학교는 다닐 만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만큼 따뜻하게 안부가 물어졌다.
약간 보인 허세는 관계에 있어 조미료와 같았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맛이 나지만 넘치면 맛을 버리게 된다.
“컴공과가 적성에 맞아~. 그리고 요즘 입덕했다. 그 재미로 산다. 흐흐흐.”
“입덕?”
“걸그룹 알지?”
“응.”
“내가~ FOB에 제대로 입덕했다.”
“누구 좋아하는데? 서련이?”
“아니~ 서련이는 묘하게 임자 있는 것 같아.”
뭐지? 이 녀석….
“그래? FOB는 사생활 관리에 꽤 철저하다고 하던데?”
“입덕하면 너도 알게 돼. 숭배하는 여신에 관련해서는 감이 달라져.”
“…….”
재수생에 소개팅 한 번 제대로 못해봤을 창성이.
녀석이 괜히 무서웠다.
세상에 또 다른 형태의 현자들이 산다더니 이 녀석도 마법사가 될 소질이 다분해 보였다.
“그럼 누구?”
“미나~.”
“아~ 미나.”
“뭐야? 너도 미나 알아?”
안다 뿐인가.
먹을 것 앞에서는 꼭 팔을 붙들고 사랑한다는 멘트를 으레 날리는 미나였다.
그리고 긴 머리가 매력적인 소녀였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청순가련형이었다.
“요즘 FOB 모르는 청춘도 있나?”
“그렇지?”
흐뭇하게 웃는 오창성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이 녀석 덕분에 우리 FOB가 먹고 사는 거다.
입덕들은 우상숭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는 어디 다녀?”
“연지대.”
연지대 컴공과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줬다.
“오! 촌놈 출세했네~.”
오창성은 초등학교 시절에도 반에서 1, 2등을 도맡아 했었다.
중학교부터 성적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공부 잘하는 녀석들은 본래 떡잎부터 다른 법이다.
“그런데 너 대식이 만나도 괜찮겠냐?”
오창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초등학교 시절 대식이 놈이 저질렀던 악행은 도가 지나쳤었다.
“너는?”
“…사실은 곧장 서울로 가려했는데 널 보니까 용기가 생기더라. 태산이 너 확실히 달라졌어.”
“그래 이 형만 믿어라.”
“흐흐~ 그래. 나 오늘 너만 믿을게.”
“여기야?”
“어~ 맞네.”
엄마와 몇 번 와봤던 장주강 커피거리였다.
장주강을 배경 삼아 분위기 있는 커피숍들이 밀집돼 있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커피숍 주차장에 차를 파킹했다.
바로 옆에 하얀색 신형 BNW 5시리즈 주차되어 있었다.
2009년에는 명차 소리를 듣는 차지만 2018년에는 화끈하게 불타올라 이슈거리가 됐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리콜까지 했으면서도 끝까지 대한민국 소비자는 봉으로 취급했었다.
주행 중 도로 한가운데서 몇 대가 불타도 소비자 탓이라 우겼다.
그러다 2018년 무더위에 아주 제대로 문제를 일으켰다.
불특정 상황에 여기저기서 불타오르게 되자 결국 손을 들었다.
그래서 그때 얻게 된 별명도 BNW의 약자인 ‘불난다와우’가 붙기도 했다.
“그 새끼 변했을까?”
“아니~ 전혀.”
오창성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널 뭐라고 부르며 초대했는데?”
“호구….”
“안 변했네. 사람 성격 쉽게 변하는 거 아니더라.”
대화를 나누며 당당히 문을 열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오창성은 쫄래쫄래 나의 뒤를 따랐다.
과거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오! 오창성 왔냐~.”
“호구 창성! 살아 있었네? 크크크.”
“우리 호구 아직 여자 친구 없지? 호호호호~.”
“개호구~ 아직도 상태가 메롱이네~.”
10여 명의 남녀 동창생들이 오창성을 먼저 발견하고 이구동성으로 놀려대기 시작했다.
커피숍은 강이 시원하게 보이는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딱 보니 자세들이 아주 건방졌다.
한 마디씩 던진 면상들을 훑어보다 보니 과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과거 나와 오창성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던 놈들이었다.
지들 건물도 아니건만 누가 보면 주인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 놈들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오창성을 보며 입을 놀렸다.
과거의 습관이 그대로 아직까지 재현됐다.
저벅저벅.
오창성과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실로 반갑기(?) 그지없었다.
최대식처럼 집중 공략해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묵시적 방관자 내지 협조자들이었다.
오창성을 보는 눈빛이 정말 재수 없었다.
친구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었다.
오늘 안주거리가 필요해 오창성을 불렀음이 확실했다.
“다들 오랜만이다. 주혁이는 언제 클래? 내가 중학생 때도 너보다는 컸다. 형욱아 얼굴에 여드름은 아직도 분화 중이냐? 찌질하게 그러고 다니냐. 피부과 시술비도 없어? 그 얼굴로 연애나 하겠냐? 희정아~ 담배 피냐? 이제 좀 끊어라. 차라리 향수를 뿌리지 말든가. 여기까지 냄새가 쩐다.”
오로지 팩트로만 폭력이 터졌다.
과거 싹수 있었던 애들은 이곳에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오창성을 갈구겠다고 모인 동창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내는 것 자체가 불필요했다.
한 방에 제대로 갈궈야 기가 죽는 법.
아직도 최대식과 어울리는, 재활용도 불가능한 쓰레기들이었다.
털썩.
놀라 눈만 껌벅거리는 동창들을 보며 비어 있는 중앙 자리에 앉았다.
“누, 누구세요?”
“아는 애야?”
“오창성…. 니 친구냐?”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리바리해진 상태다.
내가 뿌리는 마력의 기운에 쉽게 반발하지 못했다.
다만 만만한 오창성을 다그쳤다.
나를 제대로 기억하는 놈들이 없었다.
“태산이야~ 장태산~.”
오창성이 싱글거리며 내 옆에 앉았다.
잊고 살았다 생각했지만 기억 저편에서 소환되는 악연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이것도 하늘이 주신 기회.
확실히 날 잡은 만큼 오늘 손 털고 갈 생각이다.
“장태산?”
“그 찐따 장태산?”
“미친….”
내 얼굴을 몇 번이라도 확인하려는 듯 쳐다본 놈들이 곧 다시 기세를 회복했다.
이름만 듣고 과거를 떠올리며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찐따’라는 말 오랜만에 들어봤다.
과거의 별명을 다시 들으며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추억 속의 그 별명.
되씹을수록 부글부글 피가 끓어올랐다.
로버트가 들었다면 당장 킬러를 보내겠다고 날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표정은 스마일.
지금 이 순간도 괜찮았다.
현재의 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과거의 찐따를 기억하는 순수한 우정이(?) 심히 나쁘지 않았다.
사람 봐가며 대하지 않는 친구들.
한결같이 나를 찐따로 생각해주고 있는 친구들.
“다들 잘 지냈냐? 지금 대학들은 다니지? 딱 보니까 공부하고 담 쌓던 놈들만 모였네~ 그래. 요즘은 수능 찍어도 들어가는 대학교가 한둘이냐. 그런데 졸업하면 뭐할래? 대식이 새끼가 알바자리라도 알아봐 준대?”
손에 깍지를 끼며 느긋하게 그들을 훑으며 갈궜다.
조금이라도 인정을 봐줄 필요가 없는 놈들이었다.
상대 가치조차 없었다.
“야! 찐따! 너 많이 컸다? 어디서 성형수술이라도 제대로 받았냐? 그런다고 과거가 없어지냐? 쳐 맞고 다니던 주제에 어디서 우리를 갈궈!”
“어머머 내 말이~ 성형빨 진짜 쩐다. 찌질했던 천성이 성형으로 바뀌니? 재수 없어 정말!”
“오랜만에 좀 맞아볼래? 빙신 새끼!”
쪽수를 믿고 상황파악 못한 채 주둥이를 놀려댔다.
몇몇 남자 새끼들은 쌍심지까지 쳐올리며 주먹을 날릴 듯 행동을 취했다.
“니들 돈 많아?”
“…….”
웃으며 던진 한 마디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나 병원에 누우면 우리 회사 소속 로펌에서 하루당 몇 억씩 손해배상 비용 청구할 건데 자신 있어? 너희들이 그렇게 부유한 집 자제들이었나?”
“!!!”
몇 억이라는 말에 놀라는 녀석들 표정에 괜히 씁쓸했다.
저런 놈들 때문에 괴롭기만 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안타까웠다.
그때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친구를 보증 선 것 때문에 우리는 거지꼴로 시골에 내려왔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기가 죽었기에 한 번도 저놈들의 괴롭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최대식은 땅 좀 있는 옆 동네 유지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땅부자 부모 믿고 싸가지가 없었다.
지난 생에도 최대식이 주최한 동창회에 나왔다가 별 꼴을 다 당했다.
그때 지금 살고 있는 장주시 아파트 정보를 얻었다.
얼마나 잘난 체를 하던지….
“거, 거짓말! 네 주제에 무슨 로펌이야!”
“거지새끼가….”
“너 호빠 취직했냐? 딱 보니까 맞네~.”
애써 짐작되는 나의 배경을 부정하는 동창들.
스윽 손을 내밀었다.
손에 차고 시계를 보여줬다.
녀석들 수준대로 상황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이 시계가 정확히 5억이야. 그리고 이 슈트는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작업한 수제 명품이고~ 가볍게 3천. 구두는 좀 싸네. 3백.”
막상 봐도 모르겠지만 줄줄 돈 자랑을 좀 했다.
아무리 보는 눈이 없어도 슈트 광택빨은 정말 달랐다.
로버트가 때때마다 적당한 선물을 보내왔다.
손에 차고 있는 시계도 로버트 작품이다.
셔츠와 바지, 신발에 구두까지 모두 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과거 기억 속에 찐따가 아니었다.
“다들 왜 그래~. 오랜만에 찐따 친구를 만났는데 아가리 더 놀려도 돼~. 우리 그 정도는 용서되는 친구잖아? 안 그래?”
친구라는 말에 모두 시선을 회피했다.
괜히 걸렸다가 엿 될 수 있다는 걸 감 잡은 것이다.
더 이상 철없던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겪을 나이다.
강자의 등장에 모두 꼬리를 바짝 말았다.
“창성아, 우리 커피 마시자. 너희들 마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해.”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카드색이 블랙이다.
특이한 무늬와 카드 이름을, 아닌 척 유심히 살피는 녀석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태산아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
“그럼~ 친구 아니냐. 난 드립 커피로 한 잔 부탁해~.”
“오케이!”
오창성이 카드를 받아서 카운터로 갔다.
“여기 있는 조각 케이크들 다 주세요. 쿠키도 한 바구니 주시구요. 커피는 저기 모모라 내추럴, 그리고 아메리카로 라지 사이즈 부탁합니다.”
유일하게 마음이 자유로운 오창성만이 내 카드로 소소한 쇼핑을 했다.
하지만 자리가 불편해진 다른 동창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오늘 자리를 마련한 소환자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직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여전히 최대식의 밥이 분명했다. 최대식이 나타나면 뭔가 달라질 거라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 다들 먹자. 케이크가 아주 맛있어 보여.”
커피와 함께 직원이 쟁반 가득 케이크를 세팅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다들 맹물만 마시고 있었다.
“흐음~ 괜찮네~.”
직원이 가져온 드립 커피 향은 의외로 부드럽고 좋았다.
분위기는 개 같았지만 커피 맛은 명품 브랜드 못지않았다.
“태산아~ 도도히 흐르는 저 장주강물 보며 커피 마시니까 진짜 맛있다. 흐흐흐.”
“마음에 들어?”
“응~.”
“그럼 여기 건물 하나 살까?”
“저, 정말?”
“그럼~ 분위기가 딱 좋다. 가끔 친구들 만나서 커피 한 잔 마시기에는 그만이다.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남녀를 불문하고 내 말에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실실 쪼개며 하는 나의 말이 농담 같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하~ 분위기가 왜 이래? 내가 보고 싶어서 그래? 연락한 애들은 다 모인 거야?”
그때 시건방진 목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초급 악당 보스.
나름 명품으로 쫙 빼입었지만 중고를 사 입었는지 광택빨이 다 죽었다.
뻔지르르한 얼굴에 기름기만 번들번들 흘렀다.
기생오라비 같은 뾰족한 얼굴에 가식으로 쩐 거짓 웃음을 피웠다.
어린 시절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어~ 오창성! 이 개호구 자식~ 왔구나. 크크크.”
잘 만났다 최대식….
내가 약속한다.
오늘 이후 너와 네 집안은 장주시 개호구가 될 것이다.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