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회귀의 전설
391장. 개 버릇 남 못주는 새끼(1)
“오빠아~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나를 발견하고 노래와 율동을 곁들이는 소녀들에게 할 말을 잃었다.
“오빠~ 시험 잘 보세요. 여기 엿 드세요~.”
“오빠는 잘생겨서 드리는 거예요~.”
2009년 11월 12일 수능 날이 됐다.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장주시 시험장에 갔다.
내가 수험생인 줄 알고 여학생들이 포장한 엿을 건네줬다.
좌우지간 이놈의 인기는…….
방문했던 이계 영지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물론 신전 건도 상큼하게 처리했다.
싸가지 없는 오스란 신과 그의 아이들은 영지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나를 후원했던 신들 위주로 신전을 분양했다.
신의 축복을 직접 받아서인지 신전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나의 말을 무척 잘 들었다.
7서클 마법사 아린이 든든한 병풍이 됐다.
영지민들은 무조건 좋아라 했다.
신전 중에서도 평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신전들 위주였다.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고 예술을 사랑하는 신이었다.
영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사제들에게도 경고했다.
절대 일정 이상 기부를 받지 말라 당부했다.
만약 발각 시에는 바로 영지에서 쫓겨날 것이라 엄포를 놨다.
큰 사건 없이 평화로운 영지에서 시간을 보내다 지구로 돌아왔다.
오크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마법 수련이 필요했다.
계속 이계에 머물게 되면 짧은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기에 지구로 돌아와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마침 오늘은 사랑하는 쌍둥이들의 수능 날이다.
과거 전생에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쌍둥이들은 공부실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인터넷 강의를 비롯해 직원들 중에서 능력자 몇을 과외 선생님으로 붙여준 덕을 톡톡히 봤다.
머리도 좋아서 녀석들은 전교에서 성적순으로 손가락에 꼽았다.
수능만 문제없다면 한국대 후배가 될 것이다.
“아직 안 왔나?”
내가 다녔던 장주고등학교가 수능시험장이 됐다.
여동생 주아와 주희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속속들이 학생들이 학교로 들어갔다.
“오빠~ 재수생이죠?”
“응?”
“흐흐흐. 진짜 멋있어요.”
장주여고 여학생들이 교복 위에 점퍼를 껴입고 눈빛을 빛냈다.
선배들을 응원해야 하는 마당에 소녀들은 나만 바라봤다.
“이건 특별히 비싼 엿인데~.”
가장 예쁜 소녀가 웃으며 엿 하나를 까서 들이밀었다.
요즘 애들 진짜 용감했다.
얼떨결에 엿을 입에 물었다.
“오~ 뭐야? 오빠. 이제 내 후배들에게 작업하는 거야?”
“이거 범죄 아냐? 오빠 쟤들은 아직 미성년자라고~.”
어느새 쌍둥이들이 나타났다.
“……그게 아니라 엿이 맛있어 보여서…….”
“뭐야? 2년 전에 내가 준 엿은 맛없다고 쳐다보지도 않았잖아!”
주아야. 그 엿과 이 엿은 다르단다.
“어! 쌍둥이 선배님들!”
나에게 엿을 물려 준 예쁜 소녀가 쌍둥이들을 알아봤다.
“수정아~. 우리 오빠 바람둥이다.”
“네?”
“잘 봐~. 아저씨 냄새 나잖아. 2년 전에 졸업하고 한국대 다닌다.”
“와아아아아아! 진짜요?”
주아가 디스를 위해 디스했건만 수정이라는 소녀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라 했다.
매력이 통통 튀는 소녀였다.
예전 서련이를 보는 것 같았다.
“언제 온 거니?”
“방금 왔습니다.”
“시간이 난 거야?”
“네~.”
“그래. 동생들 수능일인데 하나뿐인 오빠가 와야지.”
부모님이 흐뭇하게 날 봤다.
자식들의 우애 있는 모습은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쌍둥이들, 한 방에 해치우고 와. 모르는 문제 있어도 볼펜 굴리지 말고 그냥……. 1번으로 찍어.”
“핏! 우리 그 정도 아니거든~.”
“바쁜 오라버니가 무엇을 알겠나이까~.”
자신들 과외 선생님 다 내가 붙여준 걸 모르는 바보들이다.
“빨리 끝내고 나와 밥 사줄게.”
“정말?”
“맛집 예약해 놨다.”
“우아앙! 오빠 사랑해~.”
주아와 주희가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렸다.
여동생들과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볼 때마다 착착 용돈을 안겨준 결과였다.
장주에 내려와 시간 날 때 답답할까 봐 드라이브도 시켜줬다.
나와 다르게 평범한 능력을(?) 소유한 쌍둥이들은 박 터지게 공부했다.
이제 결실을 맺을 때였다.
스윽스윽.
쌍둥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힐!
그리고 마음으로 가볍게 외쳐지는 마법 주문.
힐 마법은 육체의 긴장감을 푸는 데 최고였다.
쌍둥이들은 모르겠지만 녀석들의 컨디션은 최고가 됐다.
“어? 오빠가 머리 만져주니까 몸이 따뜻해졌어~.”
“와아. 우리 오빠 손 약손~.”
쌍둥이들이 엄지 척을 내밀었다.
“날 춥다. 어서 들어가.”
“그래. 들어가 자리에서 쉬어라.”
“금방 끝내고 올게! 흐흐흐.”
“다녀오겠습니다!”
씩씩하게 쌍둥이들은 인사를 하고 수능장으로 들어갔다.
지난 생과 다른 이번 생.
녀석들에게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
“저, 저기요.”
부모님을 보내고 주차장으로 가려는 순간 누군가 날 불렀다.
수정이라는 아이는 몇 번 번호를 물었지만 씩 웃기만 했다.
아무리 궁해도 고삐리는 만나면 안 되는 법이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학교 정문.
고개를 돌렸다.
“혹시 오성 초등학교 6학년 2반이었던 장태산 아닌가요?”
조심스럽게 날 부르는 한 남자.
뚱뚱한 데다 안경도 썼다.
아직도 얼굴에 여드름 꽃이 피어있다.
“오창성?”
그래도 한눈에 알아봤다.
“어! 태산이 맞지!”
“오랜만이다. 창성아.”
“그래! 야, 너 진짜 많이 변했다. 얼굴도 그렇고 몸도…….”
오창성은 나를 보며 말을 끝내지 못했다.
과거에 알던 나의 희미한 흔적을 귀신같이 알아봤다.
“어떻게 알아봤어?”
“니 동생들 어릴 때부터 예뻤잖아~. 그런데 뭐야? 너 수술했냐?”
“서울 물 먹어서 그래.”
“그래? 부럽다……. 나도 서울 물 좀 마셔야 하는데.”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사촌 남동생 녀석 시험 보러 왔다”
“얼굴이 삭았다. 혹시 군대 갔다 왔어?”
다정하게 물었다.
오랜만에 보는 초등학교 친구가 반가웠다.
“무슨 소리야! 나 이제 파릇파릇 신입생이야.”
누가 봐도 신입생은 아니다.
“재수했어?”
“흐흐흐. 공부가 쉽냐~ 그런데 넌 뭐해?”
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부터 학교가 달라졌다.
장주시가 생각보다 넓었다.
“그냥 학교 다니지.”
최대한 친절하게 오창성을 대했다.
초등학교 시절 오창성과는 추억이 많았다.
강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놀던 시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서울 전학생에게 녀석이 먼저 마음을 열었다.
시골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녀석이 슈퍼맨처럼 도와줬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너 완전 멋있다! 용 됐다. 용!”
“용은 무슨~.”
용이 아니라 신이 됐다고 말 못했다.
“태산아. 지금 바빠?”
“아니.”
“그럼 우리 초등학교 동창 모임 가자.”
“동창 모임?”
“최대식 그 새끼 전역 기념으로 애들 소집한단다.”
“최대식!”
최대식이라는 이름을 듣자 불현듯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야! 장태산~ 아침부터 재수 없게 일찍 다니고 그래! 네 찌그러진 면상만 보면 속이 뒤틀리잖아! 너 오늘 내 눈에 띄면 뒤질 줄 알아!”
“아, 알았어…….”
“아오. 밥통 같은 새끼. 알긴 뭘 알아! 서울에서 망하면 거지돼서 기어 들어오는 게 우리 동넨 줄 알아?”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그 녀석 아버지 덕분에 장주시에 아파트를 두 채 구입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무시하던 최대식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느 날 사라졌다.
그런데 그 자식 이름이 다시 들렸다.
전생의 악연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 흑역사가 소환됐습니다!
닥쳐! 알파닥!
알파닥 이 녀석 요즘은 지구까지 찾아와 가끔 속을 뒤집어 놨다.
갑자기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나 가도 되는 거지?”
“그럼.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니까 너도 가도 돼.”
“고맙다. 창성아.”
“뭐가 고마워~ 흐흐.”
“몇 시에 보기로 했어?”
“11시에 들꽃마당에서 만나기로 했어.”
“새로 생긴 커피숍이야?”
“커피숍이야. 대식이네 건물이잖아.”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생에서는 동창 모임에서 나를 대놓고 면박을 줬던 최대식.
이번 생은 달랐다.
“가자~.”
씩씩하게 앞장섰다.
“거기 버스 승강장 아니잖아. 택시비 비싸. 버스 타고 가자.”
“걱정 마.”
창성이와 함께 학교 옆 유료 주차창으로 향했다.
“너 차 있어?”
“어~.”
삐빅.
주차 요금을 선불로 내 바로 차키를 꺼내 차문을 열었다.
“태, 태산아.…….”
나를 따라오던 오창성은 차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동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슈퍼 카.
에스틴 마린 77.
인수 기념으로 로버트가 보내줬다.
2008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이고 2009년에 제네바 모터쇼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녀석이었다.
단 77대만 생산됐고 12기통 7.3리터 엔진에 3.6초면 100을 찍었다.
최고시속 357km의 괴물.
우리나라에는 오직 이 녀석 한 대 뿐이었다.
***
“흐흐흐~ 드디어 오늘이군. 아오~ 빡쳐~.”
최대식은 느긋하게 자신의 건물 3층에서 창밖을 내다봤다.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창밖으로 장주강의 푸른 강물이 흘렀다.
땅부자가 된 아버지가 3층 건물을 올리면서 값이 치솟았다.
장주시에 새로 조성된 강변 커피거리에서 가장 장소가 좋았다.
그곳 3층에서 거주했다.
1층과 2층은 커피숍으로 사용했다.
서울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시가로 수십억에 육박했다.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됐다.
“군대에서 개고생은 이제 아웃이다~ 아우! 대통령 하나 잘 못 만나가지고 현역이 됐네. 썅!!!”
공부와는 담을 쌓았기에 대학진학은 아직 하지 못했다.
최대식은 아버지 도움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병역특례업체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일은 거의 안 하고 서류만 조작하면 끝났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지시한 병역비리 특별 감사에 걸려 현역으로 징병됐다.
최전방 가칠봉에서 개고생하다 이번에 전역했다.
잘난 맛에 살던 최대식은 겪지 않아도 되는 지옥을 맛봤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줬다.
아버지가 일찍 넘겨준 건물 월세가 통장에 착착 꽂혔다.
상병을 단 이후 군대에서 돈으로 자기 세력을 만들었다.
장교부터 시작해 하사관, 동료 병사들을 구워삶아 나름 편하게 살다 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유가 없었다.
“오늘은 깔쌈하게 누구를 꼬실까~. 흐흐.”
군 제대 후 마음대로 여자들을 후렸다.
강변이 보이는 건물주 앞에서 머리 빈 여자들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외제차 키를 흔드는 커피거리 건물주.
최대식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사냥터였다.
“오창성……. 그 새끼 오랜만에 제대로 갈궈야겠군. 장태산 그 새끼만은 못하지만~”
왁스로 짧은 머리칼을 다듬으며 최대식은 오늘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껏 애들을 갈굴 수 있었던 학창 시절만큼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다.
돈이 넘쳐 수시로 부부싸움을 하고 쌍으로 바람이 난 부모님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최대식은 왕따들에게 풀었다.
몸에 깊숙이 밴 가학적 쾌감.
그것은 그 어떤 쾌락보다 강렬했고 중독적이었다.